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0)
몬스터를 가공해서 이질적인 힘을 지닌 무구(武具)를 제작해 내는 이들, 그들은 몬스터 스미스 혹은 몬스터 야장(冶匠)이라 불렸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특별한 칼, 창, 갑옷, 방패는 마법사들이 부여하는 마법과는 질적으로 다른 특성을 지녔으면서도 마법처럼 작용했다.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까닭, 그것은 그들이 특별한 장인(匠人)으로서 특별한 소재를 사용하기 때문이라 했다.
이상한 힘을 지닌 마석과 몬스터의 잔여물, 이는 특히나 몬스터 야장이 선호하는 소재라 했다.
“번쩍거리는 파란 이빨이 뭘 깨물면 푸른 섬광이 피어나면서 싹둑 자른다고 했다고요! 늑대처럼 생겨서 악어가죽으로 덮인, 드라고니아의 이종이라고요! 그런데…… 이런 마석을 갖고 만든 거라니! 그런 못된, 흉악한 사기꾼 같으니라고!”
투란은 분해 못 참겠다는 듯, 쏟아 내고 있었다.
키린이 보니, 말 어이가 없는 모습이다.
이건 꼭 다른 사람이 아니고 투란 자신이 사기당한 모습이잖은가?
‘그럴 리는 없는데…….’
몬스터 블레이드 푸른 섬광, 그 칼날은 모두 세 자루로 만들어졌고 두 자루는 현역 몬스터 헌터에게, 한 자루는 악명이 자자한 칼 수집가에게 팔렸다고 했다. 그래서 몬스터 헌터 사이에서는 그 위력이 크게 알려졌고, 칼 수집가는 남은 두 자루마저 갖기 위해 온갖 수작을 다 부렸다. 하지만 푸른 섬광을 휘두르는 두 몬스터 헌터는 상당한 베터랑이었고, 결코 수집가 따위에게 귀한 무구를 팔 리가 없다고 했다.
그걸 투란이 만져 봤다든가 구경했을 가능성은…… 꽤나 희박하잖은가?
—키린, 얘는 네가 실종되고 50년이 흘렀다고 했다.
‘어라?’
키린은 돌연 찔러 오는 ‘드라코눔의 아칸’의 말에 멈칫했다.
세월이 흘렀고, 세상에는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투란은 샤오 마을에서 왔다.
“투란, 그 칼 본 적은 있냐?”
불쑥 키린이, 악악거리며 앉은 채로 깡충대는 듯한 꼴을 보이는 투란에게 조금 큰 소리로 물었다.
“……예.”
움찔하면서, 깡충거리던 꼴을 딱 그친 투란이 억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뭔가 푸른 섬광, 블루 팽에 얽힌 일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키린이 어이없어하면서 다시 묻는다.
“어떻게?”
“예? 어, 그건…… 블루 팽을 들고 마을에 온 사람이 있었어요. 음…… 집안이 망해서 블루 팽을 팔려고 하는데, 살 만한 사람을 찾는다고요. 그게 뭔 칼인가 이야기를 듣고 싶으면 동전을 세 닢씩 내라고 했다고요! 젠장, 이 사기꾼…… 잡히기만 해 봐! 아, 샤오덴 할배! 그게 사기인 줄 알았을 텐데, 구경만 하고 있었다 이거지! 두고 보자!”
투란이 투덜거리며 쏟아 내는 말에 키린은 잠시 정신이 사나워지는 기분이었다. 특히, 그중 가장 어처구니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집안이 망해?”
투란은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원래 집안이 온갖 신기한 무구를 수집해 쌓아 놓는 부자였대요. 근데 집안이 망해서 이것저것 내다 팔고 있다고, 제값을 받으려고 샤오콴까지 왔다고 했어요. 그래서 뭔 칼이냐고 물으면, 이야기 듣는 데만 동전 세 닢을 내라고 했거든요. 칼을 휘두르는 시범을 보고 싶으면 은전을 내라고 해서…… 음, 마을을 오가는 사냥꾼 중에는 은전을 내고 본 사람도 있었다고요! 아, 근데 이야기가 뻥이라니! 어흐…….”
나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키린의 마음은 조금 더 복잡해졌다.
투란이 하는 말은, 그 악명이 자자한 칼 수집가의 집안이 망했다는 것이었다.
‘그 마법사 가문이? 그럴 리가!’
집안사람이 다 죽어도 수집한 도검은 한 자루도 내놓지 않을 거라던 사람이었다. 마법사의 가문이었고, 그들 혈족이 모두 죽는다 해도 그 가문의 창고는 어디 있는지 밝혀질 리조차 없다고 했다.
그 후손이 칼을 내다 팔았을 리도 없었다.
키린은 잠시 복잡해진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미련이 남는지, 투란이 앙앙거리는 소리를 잇는다.
“겨우 마석이나 주워다가 만든 거라니! 그럼 그 괴물 이야기는 대체 뭐야! 어으으…….”
키린의 입가에 쓴웃음과 함께 장난기가 피어났다. 그리고 투란을 향해 조금 뚱하고 까탈스러운 소리가 나온다.
“투란! 이거 마석 아니라니까!”
“네?”
앙앙대던 투란이 눈을 깜박이면서 잠시 키린을 바라봤다.
그리고 작은 구덩이 속을 내려다보며 항의하는 말이 나온다.
“돌이잖아요?”
아무래도 키린이 한 말을 까먹거나 납득하지 못한 표정이 역력했다.
슬쩍 한숨을 뱉는 시늉을 하면서 키린은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몬스터라고.”
“꼼짝도 않는데요?”
“꼼짝 않는 몬스터가 세상에 없다고 누가 그래?”
“어라? 아니, 그래도…… 그냥 신기한 마석 아닌가요?”
뭔가 삐친 투란은 뭐든 일단 우기고 싶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빙긋, 웃는 키린의 표정은 환했지만 가늘어진 눈매에서는 약간 험악한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확인시켜 줄까?”
“어…… 예! 어떻게 마석하고 꼼짝 않는 몬스터를 구분하는데요?”
투란이 눈을 크게 뜨면서 호기심 가득하게 반짝대는 눈동자로 말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키린은 살짝 뒷골이 찌릿한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투란이 납득하지 못하는 까닭이란, 꼼짝 않는 괴물과 마석 사이에는 구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이상한 힘을 가진 돌은 일단 모두 마석이라고 생각하는 탓인 모양이잖은가.
‘이 녀석, 구분할 방법이 없다 생각되면 일단 우기고 보는 거였나!’
키린의 눈가에 살짝 핏대와 힘줄이 돋았다.
주변의 불꽃이 키린의 표정에 호응하듯 화려하게 치솟으며 울타리가 두꺼워지고 높이 솟아 머리 꼭대기까지 기울어지면서 단단한 성벽처럼 보일 지경이 되었다.
투란은 돌연 불꽃의 성채 안에, 하늘조차 가려진 불꽃의 벽 안쪽에 머물게 된 꼴에 놀랐다. 하지만 그에 대해 투란이 뭐라 하기 전에 키린의 몸에서 주변을 휘감으며 맴도는 불꽃조차 밀어내는 강한 생명력이 뿜어져 나왔다.
“오러……!”
투란의 입에서 자연스러운 한마디가 나왔다.
키린이 뿜어내는 오러의 도도하고 이글거리는 느낌이 선명하게 전해졌다.
이는 투란만이 느끼는 것이 아닌 듯, 작은 성을 만들어 낸 듯한 불꽃조차 계속 주변을 맴돌면서도 키린이 일으키는 오러의 영역 안에서 물러서는 광경을 보이고 있었다.
키린은 천천히 앞섶을 풀어 헤쳤고, 투란은 처음으로 키린이 제대로 된 복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키린의 가슴, 목 아래쪽에서 옷으로 가려졌던 자리에 검은 매의 머리와 발톱이 또렷한 윤곽을 지닌 채로 드러났다!
‘매의 문장!’
투란은 그 형상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몬스터 엠블럼, 투란이 지닌 ‘천칭의 문장’과 다른 ‘매의 문장’이었다.
매의 머리와 발톱이 한자리에 모여 세모꼴을 만드는, 춤추는 산맥의 몬스터 로드 열에 다섯은 지녔다는 몬스터 엠블럼이었다.
그 매가 검은 머리를 꿈틀거리면서 부리를 열었고, 웅크렸던 두 발톱을 활짝 폈다. 부리 사이에서 환하게 회색의 빛이 일렁이며 흘러나왔고, 키린이 손으로 빛을 받아서 쥐는 시늉을 했다. 그런 키린의 손바닥에는 어느새 발톱의 그림자 같은 것이 어려 있었다.
키린은 일렁이는 불꽃처럼 보이는 회색의 빛 조각을 구덩이 속 파란 돌 위로 기울여 떨궜다. 회색의 빛, 불꽃처럼 응어리진 형상이 돌이 뿜어내는 푸른 색채와 맞섰고, 갈라지며 활짝 퍼져 나가 작은 구덩이를 채웠다.
곧 회색의 가느다란 선이 넝쿨의 뿌리처럼, 그물처럼 번져 갔고 파란 돌에서 낮게 치솟으며 흙구덩이를 긁어 대는 푸른 빛과 뒤엉켰다.
“어…… 와!”
투란의 입에서 놀란 소리가 났다.
파란 돌은 색채를 잃으며 투명해지는 대신에 새카맣게 변해 갔다.
회색의 불꽃이 파란색을 모조리 끌어당겨 가둔 것처럼 보였다.
키린이 그 작게 웅크린 회색의 불꽃, 빛의 조각을 가슴으로 가져갔고 매의 부리가 활짝 열리며 날름 삼켰다. ‘매의 문장’은 곧 내밀었던 부리와 발톱을 거둬들이고 원래의 형상으로 돌아가며, 선명한 윤곽을 보였다.
투란은 그 광경을 눈에 새기고, 구덩이 속에 남은 검게 번들거리는 돌을 봤다. 파란빛이 싹 사라지고 나서 검게 변한 채 반짝이는 돌은 투란을 이모저모로 놀라게 하고 있었다.
정말 몬스터 엠블럼에 의해 삼켜졌고, 남은 잔해조차도 검은 보석처럼 보이다니!
보통 투명하게 변해 깨질 텐데 실로 기괴한 몬스터, 진짜로 마석이 아닌 놈이었다. 투란이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것이다!
“좋아, 어디 보자.”
키린이 잠시 눈을 감으면서 중얼거렸다.
투란은 그런 키린을 보며 꼴깍, 침부터 삼켰다.
몬스터를 삼켰다. 그런데 키린은 부적을 모른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체 지금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까?
‘억! 자, 잠깐! 온몸이 파랗게 변하면…… 으악, 사람 크기의 파란 돌이면 이 거리는 위험하잖아!’
가장 먼저 스쳐 간 생각이었고, 때문에 투란은 슬그머니 엉덩이를 뒤로 뺐다.
번쩍!
“뭐 하냐?”
두 눈을 부릅뜨며 키린이 대뜸 물었다.
은근히 그 눈동자가 푸른 빛에 물든 광경을 확인하면서 투란은 어색하게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에? 에헤헤…….”
피식, 키린은 그런 투란에게 기묘한 웃음을 보였다.
뭔가 화난 듯도 하고 뭔가 장난치는 듯도 한, 투란에게는 어떻게 생각해도 다 맞을 듯한, 느낌이 기묘한 웃음이었다.
키린이 천천히 목을 꺾으며, 두 손을 깍지 끼고 쭈욱 뻗듯 하면서 일어섰다. 사방을 둘러싼 두꺼운 불꽃의 성벽이 얇아지면서 다시 주변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고, 불꽃의 울타리가 아주 낮아져 이제 무릎 높이에서 춤추는 정도에 머물렀다.
“그럼 시험해 볼까?”
명쾌하게 말하는 키린이었다.
투란은 눈을 깜박였고, 어리둥절했다.
“예? 시험이라니……?”
키린은 두 번 말하지도 않았고, 설명하지도 않았다.
그저 주먹을 꼭 쥐어 보였다.
“엇! 그, 그거!”
파랗게 빛을 머금어 가는 키린의 주먹을 보며 투란은 놀란 소리를 내고 말았다.
마치 파란 돌처럼 보이는 주먹이었다.
키린이 그 주먹을 곧장 한쪽을 향해 뻗었고, 푸른 빛줄기가 소용돌이처럼 뿜어져 나갔다.
콰득, 사아아아아!
어떤 나무는 부러졌고, 어떤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내며 갈라지고 베어졌다. 소용돌이치는 푸른 빛줄기는 울창한 숲을 관통하면서 사그라졌지만, 그 위력을 확실하게 선보였다.
투란이 입을 벌린 채로 놀랄 때, 키린은 천천히 손을 펴 들어 올리고 손날을 칼날 휘두르듯이 움직였다.
푸른 섬광이 길게 뻗어 나가며 칼날처럼 가까운 숲의 촘촘한 나무 둥치를 가르고 지나갔다.
솨아아…… 쿠쿠쿵.
나뭇가지가 뒤섞이며 허공을 긁는 소리에 이어, 나무가 베어져 쓰러져 갔다.
“헤에, 이거 완전히 소문의 몬스터 블레이드를 휘두르는 느낌인데.”
키린이 그 광경을 보고 중얼거린 말이었다.
어느새 넋 놓고 바라보던 투란은 이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아! 브, 블루 팽!”
“그렇지?”
키린은 투란의 말에 동의했다.
그 위력은 분명히 푸른 섬광이라 불리는 몬스터 블레이드의 소문대로였다.
키린이 파란 돌을 삼키고, 바로 그 위력을 재현해 낸 것이다. 몬스터 로드로서!
투란의 눈이 반짝했고, 바로 구멍을 향해 투란의 두 손이 뻗어 갔다. 그리고 곧 투란은 꽤액하는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 어, 없잖아요! 이제 파란 돌이…… 없어!”
구덩이에 다 담겨 있던 파란 돌이었다.
그 돌이 모조리 새카맣게 변해 보석처럼 반짝이는데, 그 속에 더 이상 파란빛은 없었다. 한 점의 파란 흔적조차 없는 그 돌 사이를 헤집다가, 투란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키린을 보며 중얼거리다.
“가, 가로채기!”
“응?”
이번에는 키린이 눈을 깜박였다.
몬스터 로드가 말하는 가로채기, 그건 남이 잡아 놓은 몬스터를 슬쩍 끼어들어 먼저 삼키는 짓거리잖은가.
“어라?”
키린이 살짝 멋쩍고 민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우에에엥! 하, 하나도 남기지 않았잖아요! 블루 팽인데! 으아앙!”
우는소리와 함께 드러누워 뒹구는 투란을 보며 키린은 깊은 눈빛을 반짝이면서 빙긋 웃고 있었다. 뭔가 실수로 가로채기를 한 사람치고는 대단히 침착한 눈빛이었지만, 투란은 미처 보지 못했다.
“아, 미안한 짓을 했네. 투란, 그 대신에 몬스터를 하나 줄게. 블루 팽, 푸른 섬광보다 너에게 더 어울리는 것으로 말이야. 얘는…… 다루기 좀 희한하거든.”
미안한 기색이 가득하고 달래는 키린의 그윽한 목소리가 투란을 발딱 일어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