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0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96)
Chapter 180. 사하(沙河)의 미궁
푸스스…….
빛의 기둥을 타고 모래 티끌이 흘러내렸다.
어찌 보면 천장에 기둥이 박혀서 여린 빛이라도 흘리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 기둥을 중심으로 네모반듯한 모래 상자들이 무질서하게 놓인 듯한 풍경, 상자의 크기가 어지간한 집 한 채 정도는 되는 것이 많았고 겹쳐지거나 나란히 놓이고 때로는 크고 작은 상자가 포개져 있기도 했다.
그 상자의 표면 곳곳에 문과 창문의 형태를 흉내 낸 듯한 네모난 구멍도 뚫려 있었다. 제대로 된 사람이 드나든다면 모래로 집을 짓고 산다고 여길 듯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모래 상자로 이뤄진 마을에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을 대신하는 것은 인간의 형체를 띤 채로 부스스하니 모래를 흘리며 움직이는 허상(虛像)…….
모래 망령(亡靈)이었다.
‘저게 뚜껑이 열리면 무조건 세상으로 튀어 나간다고?’
멀리 숨은 채로 살피면서 투란이 숨소리조차 죽이며 소리 없이 물었다.
수십은 가볍게 넘고, 수백은 거뜬히 헤아릴 수 있는 모래 망령은 모래 상자를 들락거리다가 상자 틈새를 오락가락하며 서로 마주하고 헤어지고…… 모래로 이뤄진 마을의 모래로 이뤄진 허상이 아니었다면 조금 특이한 네모난 모양의 집을 짓고 사는 마을의 평범한 사람들처럼 보일 행동을 드러내고 있었다.
―모래 바람이 거칠고 사납게, 주로 회오리치면서 잔뜩 굵어지면 사막의 모래가 한없이 구덩이를 만들 듯하다가 미궁의 형체를 드러낼 때가 있다. 그러면 그 바람을, 회오리를 타고 모래 망령이 날아올라. 그다음에 바람결에 따라 미궁 영역을 벗어나는 거야. 그런 식으로 벗어난 모래 망령이 사막을 헤매는 꼴을 보고 약칭해서 더스트, 정식으로는 더스트 인 고스트 현상이라고 부른다. 그게 다른 생물과 결합해서 사막을 떠도는 몬스터가 되는 경우가 많지. 이 대사막의 대표하는 샌드 리저드가 그렇게 발생해서 번식까지 한 경우야.
‘샌드 리저드? 모래로 된 도마뱀이란 말이네? 그래봐야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거 아닌가? 딱히 대단한 몬스터라도 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투란은 갸웃하면서, 빛의 기둥과 그 주변으로 모여들어 집회라도 하는 듯한 모래 망령 무리의 분위기를 살폈다.
―샌드 리저드는 리저드만(Lizardman)의 형태에 군단을 조직해서 움직인다. 그냥 모래 망령을 뒤집어쓴 도마뱀의 행태인 채가 아니야. 뒤집어쓰면서 인간의 행태까지 옮겨 붙은 채이지. 덕분에 무기나 갑주까지 갖춘 것이 보통이다.
‘헐? 그러면 굉장히 유명해야 하는 거 아냐? 난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야 대사막에서 벗어나질 않으니까. 대사막 주변까지 도달한다 해도 모래의 영향력이 유지되는 곳까지만 가고 그 이상으로는 결코 벗어나질 않아. 춤추는 산맥 밖에서 발생한 채인 데다가 그쪽으로 가질 않으니, 그쪽 몬스터 헌터들 사이에서는 거론될 필요가 없지.
‘흐흠, 그런 건가. 근데, 쟤들 지금 뭐 하는 거래? 설마 마을 집회?’
적당히 샌드 리저드에 대해서 마음속에 기억해둔 채로 투란은 멀리 보이는 모래 망령의 움직임에 대해 의혹을 드러냈다.
빛의 기둥에서 부스스거리는 티끌 모래가 조금씩 짙어지며 슬그머니 모래비처럼 쏟아질 낌새를 띠었는데, 그게 무슨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모래 망령 무리는 더욱 열심히 빛이 여리게 번져가는 중심지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면서 웅성웅성 시늉이라도 하는 것처럼 서로 마주 봤다가 엉겨 붙었다가 떨어졌다 하며 그 주변을 맴돌 듯하다가 모여서 빛의 기둥을 응시하는 자세로 멈춘다.
투란에게 저런 모습과 가장 비슷한 경우는 샤오콴 마을에서 샤오덴 할배가 마을 사람 다 모아놓고 뭔가 말할 때, 혹은 외부에서 찾아온 누군가가 열심히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뭔가 이야기할 때의 일이었다.
하지만 대체 모래 망령이 왜 빛의 기둥을 중심으로 저런 꼴을 보이는가?
―망령이니까, 한때 이곳에서 살아있던 사람들이 남긴 자취니까 저러는 거겠지. 살아서 했던 마지막 행동을 되풀이하는 걸 거야. 그 행동에 방해가 되거나 하면 적대적으로 돌변하고 말이지.
‘유령 이야기잖아!’
―망령이나 유령이나. 아무튼 모래 미궁이 지속되는 한, 모래 망령도 저 짓을 멈추지는 않을 거란 말이다.
‘지속되는 한? 그럼, 이 마을을 통째로 날려버리면 이 미궁이 바로 무너져 내리고 끝나는 건가?’
―투란, 이 마을을 통째로 날려도 미궁은 멀쩡하다만?
‘어? 왜?’
―너, 설마 이 마을이 미궁 전체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냐? 넓잖아? 페브라 왕도의 궁전보다 더 넓은 마을이잖아? 미궁이면, 이 정도인 거 아냐? 사방이 꽉 막힌 채라고, 또 뭐가 있을 리가 없어 보이는데? 여기도 아래층 위층이 있는 거야?’
두서없이, 투란은 미궁이란 이름이 가져야 할 크기를 떠올리며 마을의 규모를 다시 가늠하며 아리송해 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로 중얼거렸다.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만, 이 대사막의 모래 미궁은 네가 상상하는 그런 미궁과 크게 다르다.
살짝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한숨을 머금고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투란으로서는 한층 더 어리둥절하고 아리송한 말이었다.
‘뭐가 다르다는 거야?’
―사막 어딘가에 아무렇게나 떨어져도 모래 미궁 안으로 끌려들기 쉽다, 이 말을 다시 생각해봐. 네가 떨어질 때 봤던 사막이 왜 대사막이라고 하는지, 그 크기를 다시 가늠해봐라. 이 정도 크기가 사막 모든 곳에 영향을 끼치겠냐?
‘어…… 크기만 보면 아니겠지만…… 여기 무슨 마법이 걸려서 그런 걸 수도 있잖아? 사막 곳곳에 소용돌이 늪처럼 구멍을 잠깐씩 뚫는다든가…… 아닌가? 그럼, 대체 뭔데?’
적당히 추측을 해보는 시늉을 하다가 투란은 조금 더 언덕에 몸을 납작 붙이고 슬쩍 고개를 뒤로 물리면서 물었다. 저 먼 곳에서 어쩐지 이쪽을 흘깃거리는 듯한 동작을 하는 모래 망령의 묘한 꼴이 보였다. 정말 본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숨어 본다는 태도에는 충실한 투란이었다.
―마법은 아니고, 저주로 생긴 곳이다. 너도 잘 아는 드래곤로드 그림 투아란, 그로 인해 생겨버린 용의 저주. 이곳은 그 저주의 여파로 사막이 돼버린 곳이지. 원래는 풍요로운 산하(山河)로 이뤄졌던 나라가 몇이 있던 곳이다만, 그 풍요로웠던 영토를 샌드드래곤이 저주를 품고 직접 날뛰어서 이렇게 사막으로 바꿔버렸어.
‘헐?’
배 아래 깔린 모래, 주변에 살며시 휘날리는 티끌이 갑자기 투란에게 낯설게 느껴졌다. 드라고니아의 이야기는 낯익었지만, 그 오래된 전설의 흔적이 바로 자신이 깔고 엎어져 있는 모래 티끌이란 사실은 투란에게 꽤나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샌드드래곤이 뭐야? 그림 투아란이 계약했다는 드래곤은…… 아니잖아?’
차라리 투란의 골든 드레이크 쪽이 그 전설의 드래곤에 훨씬 가까울 듯싶은 외형이라 할 수 있었다.
금빛 바탕에 온갖 광채를 둘렀다는 이야기도 있으니까!
이야기꾼에 따라서는 하얀 바탕에 금은보석을 둘렀다고 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모래 두른 꼴은 이야기에 없다!
―드래곤로드 그림 투아란의 권속, 그 얘기는 들어봤지?
역시 이야기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드라고니아는 먼저 확인부터 하고 있었다.
‘권속? 어, 와이번이나 드레이크를 부하로 다룬다는 이야기?’
투란이 대강 들었던 얘기를 떠올리니, 바로 드라고니아가 보충한다.
―그래, 그중에서 사대권속이라고 사대속성을 강하게 드러낸 드레이크 종(種)이 있었다. 그중에서 소일, 흙의 속성을 지닌 한 마리가 용의 화신(化身)으로 각성했지. 사룡(砂龍), 샌드드래곤이 바로 그 녀석이다. 지진(地震)을 일으키고, 대지를 갈아엎어서 모래가 될 때까지 갈아엎는 것이 가능한, 그야말로 초월적인 능력을 지닌 탓에 드래곤이란 호칭을 의심할 수조차 없게 만드는, 몬스터를 초월한 몬스터이며 그림 투아란이 건재할 시기에는 강력한 수호자 노릇도 했었어. 하지만 그림 투아란이 인간들의 배신으로 인해 몰락한 다음, 샌드드래곤은 용의 저주를 품은 채로 몬스터의 본능에 충실하게 활동했다. 그 결과가 바로 대사막, 모래 미궁이 자리 잡은 거대한 영역이란 이야기지.
‘뭔 속성의 권속이란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 그냥 막 크고 센 덩치가 졸졸 따라다녀서 보는 것만으로 다들 ‘우와, 그림 투아란이다!’라고 놀랐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감탄하는 투란이었다.
드라고니아는 혀를 차며 다시 말한다.
―요점은 그게 아니잖아! 여길 만들어낸 것이 그 샌드드래곤이고 모래 망령은 용의 저주를 뒤집어쓰고 죽어간 자들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죽었을 당시 자신들의 모습을 여태 되풀이하고 있는 중이라고! 저렇게 말이야!
‘어, 근데 대체 뭘 하고 있는 건데?’
조금 뚱하니, 투란이 다시 고개를 살짝 올리면서 물었다.
빛의 기둥이 정체가 뭐길래, 저들은 그 오랜 세월 동안 저 주변에 모였다 맴돌다 흩어졌다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인가?
드라고니아도 이에 대해서는 조금 맹한 낌새로 답한다.
―글쎄? 갑작스럽게 대지가 요동치는 꼴에 대책을 마련하려고…… 아니면 피난이라도 가려고 일단 모이는 것 아닌가? 아무것도 못하고 그대로 전부 모래 변하면서 죽어버린 거고 말이야.
‘그리고 그게 여기 한 곳이 아닐 거라?’
문득 투란은 이야기를 처음부터 되짚어서 물었다.
나라 몇, 대사막의 영역 안에 있었다고 했었다.
원래는 풍요로웠던 곳에 몇 나라가 있다가 한꺼번에 뭉개졌다고 했다.
그렇다면 왕도가 몇이고, 도시가 몇이고, 이런 마을이 또 몇일 것인가?
그림 투아란이 세계를 누비며 수많은 전설을 흘린 것처럼, 그의 죽음과 몰락으로 인해 남겨진 흔적 또한 세계 곳곳에 상처가 되어 남았다고 했다. 이야기꾼은 그 대목에서 인간의 배덕(背德)과 추악함에 치를 떠는 시늉을 하기 마련인데, 어쩌면 이런 섬뜩한 꼴을 보고 겁먹은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불쑥 들지 않는가.
―한두 곳의 문제가 아니야. 모래 미궁은 광대하다. 이 대사막의 지저(地底)를 끊임없이 흘러 다니는 미궁인지라 제대로 탐색조차 된 적이 없지. 그나마 이런 마을의 중심지에는 저렇게…… 옛 나라의 희미한 자취인 아크의 광휘가 남아 있다는 것이 탈주한 이들이 공통적으로 진술한 유일한 부분이야.
‘아크?’
―응? 아, 설명을 빼먹었군. 저 빛, 저건 이 지역에 있던 네 왕국이 협력해서 만들어낸 마법의 빛이야. 그 이름이 아크이지. 지고(至高)의 광휘란 의미로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더군.
‘뭐에 쓰는 빛인데?’
―여러 가지? 거의 대부분의 일에?
‘뭐냐, 그 애매한 말은?’
―애매한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어. 기본적으로는 치유의 술식이 짜여 있고, 외적을 막기 위한 방어의 술식, 재난에 대비하는 구호의 술식까지…… 나라가 움직이고 힘을 모아 만든 마도구로서 여러 가지 상황에 대비해서 다양하게 사용가능하다는 말이야.
‘굉장히 쓸모없는 얘기 같은데? 저런 걸 항상 밝혀놓으려면 들어가는 마력이 장난 아닐 텐데?’
기본적으로 머리에 새겨놔야 했던 마법의 상식을 떠올리며 투란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저런 빛을 계속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마력이라면 필요할 때 마법을 구성하는 편이 훨씬 더 효율적인 것이라 하니까. 정작 그 사용한다는 마법 또한 필요한 순간이 오기 전에는 전혀 쓰일 곳이 없는 듯했고.
―아, 그건…… 용의 숨결을 바탕으로 만든 도구이기에 마력에 대한 걱정은 없는 거였다.
‘용의 숨결? 그건 또 무슨…….’
―드래곤로드의 권능을 통해 마력을 거의 무한정 공급받고 있을 당시에 만들어진 것이니까. 그림 투아란의 호의, 그렇게 말해지는 혜택을 통해 아크는 넘쳐나는 마력을 공급받고 있었다고 했어.
‘아…… 그런 호의를 얻어 누리면서도 그림 투아란을 배신했다고 하는 얘기였구나.’
투란은 돌연 납득할 수 있었다.
무한정의 마력, 무슨 권능인지 전혀 모르겠지만 그런 것을 얻어 쓰면서도 정작 그 호의를 베풀어준 이를 배신해서 죽이고 농락했다. 그 때문에 추악한 배덕자들이라 불리며 이야기 속에 악인들로 남은 것일 터였다.
하지만 이런 납득은 곧바로 투란에게 아주 새롭고 중요한 의문을 되새기게 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여태 저게 왜 저렇게 반짝이는 거야?’
그림 투아란 시절이면, 뭘 해놨더라도 지금쯤이면 빛이 사라졌어야 정상 아닌가?
그 시절에 만든 마도구라면 낡아서 마력이 줄줄 새다가 망가질 때가 아닌가?
어떻게 여전히 망령들이 그 주변을 맴돌며 인사하는 듯한 대상이 되어 저리 빛나고 있는가?
―지금은…… 저주의 핵으로서 남아 있는 거야.
드라고니아의 대답은 꽤나 간결했다.
어딘가 자세한 설명을 회피하는 듯도 했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도 했다.
투란은 그 낌새를 모두 납득할 수 있었다.
저주의 핵이라면, 그 저주로 떠도는 망령이 저리 있으니 흐릿해진 채로 버티는 것이 어딘가 당연하니까. 그런 저주가 뚜껑 열고 세상에 나가면 또 다른 몬스터가 태어날 정도라는데 굳이 다른 말이 필요하지도 않으니까!
그리고 투란에게 중요하게 느껴지는 또 한 가지는…….
‘저 안에서 누가 날 자꾸 보는 거 아닌가?’
망령들이 흘깃거리는 듯했던 미묘한 상황 너머에서, 저 빛 속에서도 뭔가 자꾸 흘깃거리는 듯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