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0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98)
―어디로?
어이없어하며 묻는 드라고니아였다.
‘구멍 중에 통로가 있다며? 찾아야지!’
투란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괴이한 형태의 거인이 쿵쾅거리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외곽의 모래 상자 몇이 질주하는 거인의 무릎과 허리에 격돌하며 으스러졌다.
모래 티끌이 흩어졌다가 다시 모래 상자가 되었을 때는 거인은 사방을 둘러보는 투란의 윗몸을 머리 대신에 얹은 채로 다른 곳을 향해 멀리 간 다음이었다.
모래 망령 무리가 거인의 다리에 달라붙으려 했지만, 키클롭스의 형상을 바탕으로 마울 트롤의 주먹, 스톰라이더의 날개, 마그마 로드의 결정을 껍질 삼아 두른 괴이한 형태가 뿜어내는 거친 힘에 휩쓸려 모래 티끌로 흩어질 뿐이었다.
그렇게 내달리며 다시 뛰쳐나오는 기사와 군마는 아예 몸에 들러붙을 때까지 상대도 하지 않으며 투란은 어깨와 손 언저리로 형성한 프로브를 가까이 둔 채로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보통 때라면 프로브를 따로 멀리 보내서 정찰과 탐색을 맡길 터였지만, 모래 망령에 먹힌다고 하니 아예 몸 가까이 두고 멀리 둘러보는 도구처럼 부려먹는 중이었다. 어쨌든 여러 가지 눈의 다양한 시각과 다르게 촉각과 청각, 후각 등을 종합해서 탐지하는 능력은 그대로 살아 있으니까.
‘야, 정말로 프로브 먹혀?’
그래도 살짝 답답했기에 투란이 바쁜 와중에 묻는 말이었다.
드라고니아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먹힌다, 먹히다가 완전히 파괴되지 않으면 모래 망령이 프로브의 기능을 활용하는 일까지 벌어진다고 했어. 그렇게 삼켜진 프로브가 저 기사에게 넘어가면, 그때는 데쓰나이트보다 사납다던가?
‘젠장.’
냉정하고 엄격한 경고에 투란은 시험해 볼 생각을 버렸다.
대신 슬그머니 정령수 에어로를 풀어봤다.
하지만 결과는 에어로가 모래 망령에게 정령의 힘이 손상당해 강제로 해체될 뻔한 것이었으니…… 망령의 힘이란 것이 물질적인 경계를 무시하고 정령력과 마력에 골고루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었다.
‘아으, 어쩐지 휘드라곤이랑 얌전 떤다 했다!’
가계약한 자연발생 정령수들을 향해 투덜거리면서도 투란은 보다 빠르게 두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며 마을의 외곽을 따라 내달렸다. 새 구멍이 가까워질 때마다 격하게 울려나가는 충격, 그 파동에 의해 일어난 반향을 통해 막혔는가 통로가 되었는가를 파악하면서.
그렇게 거의 삼분의 이 정도를 돌았을 때, 막히지 않은 구멍…… 어쩌면 아주 깊이 뚫렸을지도 모르는 구멍을 찾아냈다.
또다시 덤벼온 기사와 군마를 냅다 발길질로 차버리고, 주변을 향해 두 팔을 바람개비처럼 휘둘러 사납게 충격파를 흩날려 뿌리친 다음…… 투란은 거인의 형상을 지우고 스톰라이더의 날개로 허공을 휘저으며 구멍 속으로 뛰어들었다.
구멍은 날개를 활짝 펼치기에는 좁았지만, 애초에 근접 격투와 난투, 완전히 날개를 펼치지 못한 상황에 더욱 그 기량을 높이는 스톰라이더의 날개였다. 그 역량으로 투란은 쏜살같이 깊이 파고든 구멍 속을 날았고, 수십 미터를 내려갔다가 다시 수십 미터를 올라가면서 확신했다.
‘이 통로, 어떻게 위로 열린다고?’
―운 좋게 열린다고 했다만, 여기서부터는 뚫고 올라가도 상관은 없을 것 같은데? 모래 망령이 따라붙지 않았어. 그래도 모르니 통로를 메워놓고 위로 뚫어봐.
드라고니아가 하는 말을 투란은 바로 실행했다.
날개로 통로를 긁어 일단 지나온 통로를 무너뜨렸고, 멀리 저편으로 꺾이는 앞쪽도 역시 날갯짓으로 후려쳐 일으킨 억센 돌개바람으로 무너뜨렸다.
그리고 곧장 위를 향해 주먹을 내리 꽂으며 스며들었다.
모래로 이뤄진 암벽 속으로 시커먼 잉크가 치솟아 스며들며 얼룩이 남았다가 그 얼룩조차 잠시 후에 사라졌다.
그렇게 투란은 모래에 스며들고, 모래를 밀어내며, 모래를 으깨고 녹이는 채로 위를 향해 쭉쭉 올라가는데…….
‘아으아! 테라트, 좀 도와라!’
푸슥거리며 쉽게 뭉개지고 무너져야 할 모래가 단단히 눌리고 뭉쳐서는 바위보다 더 까칠하고 무거운 장애물 노릇을 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정령수 테라트까지 동원하고 윌 라이트의 마력도 최대한 끌어내서 가능한 한 빠르게 돌파하지 않으면 이 답답함과 숨 막힘에 돌아버릴 지경!
―좀 참아라. 어차피 뚫릴 거라고.
드라고니아는 뭔가 ‘내 일 아닌데.’라는 낌새로 느긋한 말을 하고 있었다.
‘너도 도와! 뭘 구경꾼 흉내야!’
투란이 바로 으르렁거렸다.
피식 웃는 듯한 낌새와 함께 드라고니아가 점잖게 대꾸하는데.
―준비하던 참이다, 이렇게 뒤엉킨 것보다는 조금 여유 공간을 두…… 응?
나오던 말이 갑자기 멈췄고, 투란도 금방 그 까닭을 느꼈다.
‘흣?’
소리 없는 땅울림, 이 경우에는 모래의 무거운 반향(反響)이라고 해야 할 기괴한 명동(鳴動)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분명히 똘똘 뭉친 모래이니, 저런 기괴한 메아리 현상은 없어야 했고 소리의 매질(媒質)이 될 자격도 없을 텐데.
―이게 무슨…… 정령? 설마!
투란이 몸에 바싹 붙여놓은 프로브를 번개처럼 조작하던 드라고니아가 화들짝 놀란 외침을 터뜨렸다. 투란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따져 묻지 않았다. 그럴 겨를도 없이 이미 몸이 휩쓸려가는 중이었으니, 묻기에 너무 늦기도 했다.
‘꽤애애애애!’
발성기관을 꾸미지 않았기에 소리는 못 냈지만, 투란은 기꺼이 마음을 다한 듯한 비명을 질렀다.
투란이 섞여 있는 모래, 마그마 로드와 ‘파라블랙․잉크’의 조합 형태인 형상을 담고 있는 모래가 한 삽에 뜨인 것처럼 통째로 움직이고 있었다. 단단한 주변 모래가 저절로 허물어지며, 이 한 덩이의 모래 더미가 지나갈 길이라도 열어주는 것처럼…… 혹은 이 한 덩이의 모래를 발길질로 차서 굴리는 것처럼 어딘가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느닷없이 위아래 구별 못하게 데굴거리며 굴러가는 신세가 되었으니, 투란의 비명은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드라고니아가 그런 투란을 진정시켜보겠다는 듯이 떠드는데.
―정신 차려! 아무리 강력한 정령이라도 정신 바싹 차리고 대응하면 괜찮아! 어차피 한 속성이 두드러진 놈이다! 넌 사대속성을 갖춘 정령 넷을 모두 다룬다고! 어떤 상황에서도 맞설 수 있다! 겁먹지 마!
‘야, 겁은 네가 내고 있잖아아아!’
격한 말투 속에 담긴 당황스러움,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서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 황당함을 담아 외쳐본 것인데 드라고니아가 이에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투란을 담고 있던 모래 더미가 갑작스럽게 확 풀리며 사라졌다.
갑작스럽게 허공에 붕 떴다가 떨어지는 꼴이란 것을 확인하며 투란은 재빨리 몸을 수습했다. 단단하고 시커멓게, 언제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몸을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스스로 타고난 사람의 형상으로…… 하지만 덕분에 다시 갖춰진 발성기관, 목젖을 울리며 투란의 입 밖으로 불쑥 새어 나간 소리는 눈앞의 흐릿한 광경이 진짜인가 의심하며 그 터무니없는 풍경에 얼빠진 듯했다.
“눈깔……?”
처음 마을 모양을 했던 모래 미궁의 일부란 곳과 너무 달랐다.
황량한 분위기가 가득한 절벽, 그 절벽에 거대하게 박힌 눈알.
그 눈알을 마주 보며 아래로 나풀나풀 떨어지는 것이 바로 투란의 처지!
이 상황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
―모래왕!
경악을 가득 머금은 드라고니아의 외침이 투란의 마음을, 뇌리를 쩌렁쩌렁 울렸다.
너무 울려서 잠깐 투란의 생각이 이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투란의 생각을 계속 뭉개고 지우겠다는 듯한 웅장하고 거대한 소리가 절벽에서 뿜어져 나왔다.
“투……란?”
멍한 기분 속에서 겨우 생각의 끄트머리를 잡으며 투란은 자신이 잘못 들었는가 하는 의심부터 떠올렸다.
커다란 눈깔 박힌 절벽이 왜 이름부터 부르고 있는가?
말문을 겨우 연 것처럼 더듬거리는 꼴이 말하는 것이 낯설다는 듯한데, 어째서 대뜸 투란을 향해 투란이냐고 묻는 듯한 분위기를 가득 머금고 이름을 불러대는가?
투란의 생각이 더 이어지고 주변을 조금 더 둘러보기 전에 드라고니아가 맹렬하게 대꾸하는 소리가 울렸다.
“아니다, 모래왕이여! 이자는 그림 투아란이 아니야!”
‘에? 야, 너 지금 말을…… 그림 투아란?’
마력을 이용해 소리 내서 말했다는 것에 움찔하던 투란은 그 말에 담긴 이름, 원래 자신의 이름의 원본이요 시작이었다는 전설의 이름을 되뇔 수밖에 없었다. 저 절벽이 부른 것이 ‘투란’이 아니라 ‘그림 투아란’인데 듣기를 잘못 들었든가, 절벽이 말을 제대로 하지 않아 투란에게 ‘투란’이라 들렸다는 것인가?
웅, 웅, 웅.
절벽이 울렸다.
거대한 눈알이 움직였다.
여전히 추락하는 중이었던 투란은 문득 자신의 몸을 받쳐오는 모래 티끌을 느꼈다.
티끌은 순식간에 투란의 발아래를 메웠고, 허공을 지웠다.
갑작스럽게 거대한 눈알 절벽을 향해 돌출된 맞은 편 바위에 얹힌 꼴이 된 투란, 이쯤 되면 놀라고 어쩌고 하기 전에 대체 주변이 어떻게 생겨먹었나부터 둘러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야, 여기는…….’
섬뜩함이 먼저 투란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받쳐주는 모래가 이룬 평판(平板) 형태의 바위는 공중에 뜬 채였다.
저 아래에는 모래의 소용돌이가 수십, 수백이 끊임없이 맴돌고 있었다.
이대로 떨어졌으면 그 소용돌이에 휩쓸려 무슨 꼴을 당했을까 전혀 짐작도 못할 상황이었다.
도대체 어째서 이런 곳으로 끌려왔는가?
투란이 다시 의문의 원점으로 생각을 돌릴 때였다.
“용의 비술, 용의 의지, 정령의 아이들…… 심연의 흔적까지, 모두 갖추었건만…… 그림 투아란이여, 돌아오지 않았는가?”
절벽이 다시 말하고 있었다.
처음보다 차분하게, 분명하게 하는 말이었지만 투란에게는 무슨 뜻인가 처음보다 더 납득하기 어려운 소리였다.
한데 드라고니아는 알아듣는 모양이었다.
“모래왕이여…… 흙의 권속을 모두 다스리는 자여, 드라코눔을 알고 있잖은가. 우리 일족에 대해 알고 있잖은가. 우리의 비술에 대해 알고 있잖은가! 닮았지만 이자는 그림 투아란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잖은가!”
뭔가 항의하는 듯한 말투.
투란에게는 그 말투가 살짝 거슬렸다.
절벽의 눈알이 거대한 음향과 함께 그 한구석이 일그러지는 것도 드라고니아의 말투가 거슬린 탓이었을까.
콰아아…….
눈알의 한구석이 완전히 갈라지면서 모래 융단이 허공을 메우듯이 펼쳐지며 뻗어 나왔다.
투란의 발아래 모래 바위의 평판이 그 융단에 휩쓸렸고, 투란은 융단 위를 구르면서 금이 간 눈알 틈새로 빨려들어 갔다.
“워어어어!”
할 말은 없지만, 풍부한 감정을 담은 고함은 아낌없이 내질러 보는 투란이었다.
그러다가 투란은 문득 ‘모래왕’이란 호칭을 어디서 들었는가 기억해냈다.
물결왕, 불꽃왕…… 그 이름과 나란히 하는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정령의 이름 아니던가? 그 이름에 표현된 그대로, 흙의 속성을 지배한다는 정령들의 왕이잖은가!
‘아, 이런 썩을! 대체 무슨 일에 휘말린 거야아아!’
드라고니아는 투란에게 답하지 않았다.
모래 융단에 실려 눈알 속, 절벽의 거대한 형태에 살짝 열린 눈알 속으로 굴러떨어진 투란도 더 따져 물을 겨를이 없었다.
구르다 멈추고 보니, 사방이 흐르는 모래로 이뤄진 벽이었고 들어온 틈새는 단숨에 다시 막혀버렸다. 앞에는 소용돌이치는 모래를 옥좌로 삼은 것처럼, 흘러내리는 회오리 같은 외투로 몸을 이룬 채 커다란 달걀 같은 머리통을 그 몸에 올려놓은 기괴한 뭔가…… 정령의 기척을 짙게 머금은 채로 절벽에 박혔던 눈알의 미세한 모형 같은 두 눈을 지닌 채로 자신을 바라보는 존재가 투란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닮았다…… 하지만 아니다…… 그렇군. 그렇기에…… 이 저주를 거둬줄 수 있지 않은가? 그대의 진정한 이름을 이 모래왕에게 건네겠는가?”
연이어 나온 물음, 제안은 투란의 정신을 곧바로 일깨웠다.
드라고니아가 투란이 뭐라 하기 전에 놀란 소리를 낸다.
“저주……? 모래왕이여, 드래곤로드의 저주가 그대에게도 적용되는가? 어째서, 어떻게?”
‘뭔……?’
움찔하며 투란이 의아해 할 때, 모래왕의 달걀머리가 저어지며 대답이 나온다.
“용의 저주는 모래왕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교활한 인간의 간교한 계책은 모래왕을 묶고 있지. 저주받았음에도 그들과의 계약은 유효…… 그러므로 모래왕은 이곳에 묶여 있노라. 용의 파편이여, 그대의 동반자는 어째서 모래왕에게 이름을 건네지 않는가?”
가만히 듣고 있던 투란은 말의 의미보다 먼저 그 말투에서 쿤토르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쩐지 쿤토르가 저 모래 형체 안에서 부드럽게 떠드는 것 같잖은가!
드라고니아는 그런 소소한 일은 전혀 관심 두지 않은 채 모래왕의 의문에 답하고 있었다.
“모래왕이여, 이자는…… 자신의 진정한 이름을 모른다.”
왠지 투란은 낯이 후끈해지는 기분이었다.
정말 닥치라고, 내 이름은 투란이라고 으르렁거리고 싶어지는 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