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0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99)
“그렇군. 물결과 그림자의 작은 조각이 증명하는구나.”
모래왕이 땅이 무너질 듯한 아쉬움을 담아 말하고 있었다.
투란은 흔들거리는 바닥을 한 손으로 짚으며 잠깐 피어났던 불만을 마음 깊은 곳으로 내던졌다.
‘커! 대체 얼마나 큰 거야!’
딱히 뭔가 하지 않았다.
모래왕은 그저 아쉬운 기분을 말에 담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모래왕이 투란을 마주하기 위해 꾸민 이 모래의 방…… 어딘가 마이두스 왕의 옥좌가 있던 곳을 기억나게 하는 방이 통째로 뒤틀리면서 바닥이 당장 무너질 것처럼 출렁일 지경이었다.
너무나 거대한 힘으로 인해서, 아무 생각 없이 내쉰 한숨이 폭풍이 될 수준인 것!
키린과 함께한다는 불꽃왕, 그 불꽃에서 투란이 느꼈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전혀 억제하지 않은 그 깊이와 크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키린의 곁에 피어나서 한없이 신비로웠던 불꽃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른, 억제 따위는 전혀 모른다는 듯한 압도적인 위세(威勢)!
투란은 빠르게 생각해야 했고, 드라고니아에게 물어야 했다.
‘왜 이름이 필요하다는 거야? 설마…… 나한테 계약하자는 거? 모래왕이? 왜? 이거 절대로 그냥 만난 김에 그러는 거 아니잖아? 뭐야? 말해!’
대신 투란이 허용한 윌 라이트의 마력을 이끌어내 모래왕을 향해 다시 쩌렁쩌렁 소리를 울려 묻는다.
“모래왕이여! 새로운 맹약이 아니면 그대를 이곳에서 해방시킬 수 없는가? 진정 다른 길은 없는가? 자신의 진정한 이름을 모르는 자에게는 그대를 해방시킬 열쇠가 허용되지 않는가?”
‘야, 그건 또 무슨…….’
투란에게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해방이라니, 모래왕이 여기 감금이라도 당했다는 것인가?
감금당한 김에 모래 망령을 뿌리며 드래곤의 저주에 한몫한다는 것인가?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그런 모래왕을 해방시킬 열쇠노릇을 하길 바라는가?
간신히 투란의 생각이 뒤죽박죽으로 이어질 때, 모래왕이 말한다.
“휘광(輝光)의 성궤(聖櫃), 이 모래왕과 이뤄진 언약(言約)의 증표(證票)일지니…… 아크의 휘광을 쫓으면 성궤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용의 파편이여, 그대의 동반자에게 그래야 할 까닭이 있는가? 드래곤로드를 향한 배덕의 길일지니…… 진정한 이름을 찾는 것이 더 나은 길. 동반자를 왜 그리로 인도하지 않는가, 용의 파편이여?”
“모래왕이여, 우리는 지금 그 여로(旅路)에 서 있소. 이 여정의 어딘가에서 나의 동반자는 반드시 그 진정한 이름을 찾을 것을 나는 믿소! 그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소? 우리의 여정이 이 자리에서 끝나지 않게, 이 미궁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줄 수 있소?”
드라고니아의 대답은 투란에게 장황하게 느껴졌다.
무슨 이야기인가 어디서부터 캐물어야 하는가 전혀 짐작도 안 될 지경!
하지만 모래왕에게는 뭔가 자세하고 명확한 이야기였던 모양이었다.
“모래왕은 그대들에게 한 번의 기회를 줄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이름을 찾지 못하고 다시 미궁에 떨어진다면, 그대들이 미궁을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성궤를 찾아 미궁의 저주를 해결하는 것뿐이다. 용의 파편이여, 머물면서 영혼의 탐색과 시련을 통해 진정한 이름에 도달할 수도 있지 않은가?”
“우리의 여정은 세계와 함께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소, 모래왕이여. 다시 이곳에 이를 때, 반드시 나의 동반자가 진정한 이름을 알고 있거나…… 성궤의 탐색을 시도할 의지를 지녔을 것이라 약속하겠소.”
웅장한 대화, 그 커다란 말소리의 교차 속에서 투란은 소리 없이 드라고니아를 향해서만 따질 수밖에 없었다.
‘야, 멋대로 이상한 약속 하지 마!’
이에 드라고니아가 살짝 ‘가만히 있어!’라는 미묘한 사념(思念)을 전해오는 듯한 순간, 모래왕의 대답과 함께 모래의 방이 맴돌며 천장에 소용돌이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모래왕은 그 약속을 받아들이겠다. 용의 파편이여, 심연의 흔적을 간직한…… 그림 투아란과 닮은 이여, 다음에 찾아올 때는 지금처럼 벗어나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것이 모래왕이 그대들에게 베풀 수 있는 마지막 호의일지니…….”
“우어어어!”
그럴듯한 대답을 대신해서 비명이 투란의 입에서 터져 나갔다.
발목을 휘감는 작은 모래 회오리, 몸을 감싸며 치솟는 모래의 소용돌이가 투란을 빙빙 돌리면서 천장에 쑤셔 박고 있었으니까!
―가만있어! 숨이나 쉬고 있으라고!
덤으로 드라고니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윽박지르며 마력으로 투란을 꽁꽁 묶듯이 휘감고도 있었다. 윌 라이트의 마력으로 모래의 압력을 받아내며 투란을 감싸는 것이었으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놀라기는 했어도 딱히 투란이 불만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대체 이렇게 해서 어디로 날려가는 것인가?
―내보내준다잖아!
무심결에 떠올리는 투란의 의문에 드라고니아가 답했다.
그 답에 대한 반발, 반문은 곧바로 투란이 둘러보는…… 천장 속에 처박혀 치솟는 와중에 비치는 풍경이 투란을 대신해서 쏟아내고 있었다.
분명히 모래로 가득 차 있었으니, 눈가에 쏟아지는 모래를 마력으로 밀어내는 중이었으니 보이는 것은 모래가 얼마나 작은 티끌이 되어있는가일 텐데…… 전혀 그런 풍경이 아니었다.
완전히 투명하지 않지만, 투란을 감싼 모래의 회오리는 저 먼 곳의 풍경을 끌어당겨 비춰주는 중이었다.
하염없이 치솟는 빛의 기둥은 수십을 가볍게 넘겼고, 수백을 넘게 헤아릴 듯했지만 제대로 셀 수가 없었다. 대신 유난히 빛나는, 다른 기둥과 격이 다른 듯한 밝은 빛을 머금은 기둥 하나가 유난히 크고 굵어 바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기둥 주변에 거대하게 자리 잡은 성채, 왕궁의 형상은 투란이 둘러봤던 어떤 도시에서도 느끼지 못한 우아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 모래로 빠져든 어떤 나라의 수도가 분명하다고 저절로 느낄 지경이었다.
그리고 맴도는 사이에 스쳐가는 모래 속의 또다른 풍경들…….
마치 대사막의 모래 미궁이 가득 펼쳐진 광경을 허공으로 치솟으면서 한꺼번에 둘러보는 듯한, 그렇게 일부러 보여주는 듯했다.
―모래왕의 호의로군.
드라고니아가 문득 알아차렸다는 듯이 말했다.
투란은 그에 대한 대꾸하기보다 위를 봤고, 아래를 보며 자신을 감싸고 소용돌이치며 흘러가는 풍경을 향해 눈을 부릅뜨며 더 많이 보기 위해 애썼다.
두껍고 먼 모래층을 그렇게 지난 시간은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게 끝났다.
푸아학!
“푸엣, 퉤퉤퉤!”
―아무것도 입에 들어가지 않았잖아!
모래 뱉는 시늉을 하는 투란에게 바로 드라고니아가 핀잔했다.
투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봤고, 광막하게 펼쳐진 모래의 대지(大地)를 둘러봤다.
누군가 지은 도시의 풍경 따위는 모래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숲도, 강도, 흔한 들판의 덤불도 보이지 않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없었다.
그나마 점점이 흩어진 구름, 그 바탕이 되어 시퍼렇게 펼쳐진 하늘이 그럭저럭 투란이 아는 세상과 비슷할 뿐!
스르르…….
투란을 밀어 올렸던 모래 소용돌이가 그 결을 잃고 볼록한 모래더미가 되면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제는 임무를 다해 추진력도, 회전력도 남아 있지 않으니 안식(安息)을 누리겠다는 것처럼.
입가를 훔치면서, 사실 마력으로 보호된 탓에 딱히 입안에 모래 티끌이 스며들지는 않았지만…… 모래왕과 만나기 전에 이미 모래 티끌이 가득한 곳을 헤치고 다니느라 맑게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 시간은 투란에게 반사적으로 계속 입가를 닦아내게 하고 있었다.
모래 가득한 곳에서 해방되었으니 당연히 해야 할 것처럼!
내친김에 투란은 바로 마법배낭 블랙레온을 팔뚝에서 끄집어내고 물 한 모금을 머금은 채로 입안을 헹구기까지 했다.
푸엣!
까끌까끌한 느낌이 입안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이쯤해서 투란은 겨우 드라고니아의 핀잔에 대한 대답을 떠올린 듯.
“겨우 시원해졌네. 온통 모래투성이…….”
저절로 흘러나오던 말이 멈췄다.
모래가 위아래, 사방을 감싼 곳에서 벗어나기는 했는데 지금 둘러보니 하늘이 위에 있고 사방이 탁 트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모래가 가득한 한복판 아닌가!
“지평선도 모래뿐이냐?”
울퉁불퉁, 장난처럼 쌓아놓은 모래산처럼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누릇하고 희끄무레한 그 모래산 너머의 풍경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사막이란 이름에 걸맞게, 그야말로 사방이 끝도 없는 모래, 모래, 모래뿐이었다.
―착시(錯視)야. 대사막의 권세(權勢)가 시야를 훼방 놓게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십 킬로미터 범위 밖의 풍경은 그냥 전부 그렇게 보여.
‘헐? 그러니까, 이 사막도 무슨 마경?’
소리를 잊고 투란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경은 무슨…… 그냥 저주받은 곳이지. 음, 어떤 의미로는 마경이라 부를 만도 한가? 아무튼 춤추는 산맥처럼 마경이라 불리지는 않는다. 어, 뱀부터 잡아라. 방금 뱉은 물 냄새를 맡고 온 모양이네.
‘바이퍼?’
쉬이잇, 요란하게 모래 속을 뚫고 튀어나오는 뱀은 투란이 모래 미궁 속에서 봤던 사막의 독사였다. 다만 몸통이 한 삼십 센티 정도로 굵었고, 머리부터 절반정도만 드러난 길이가 벌써 5, 6미터는 돼 보였을 뿐! 덕분에 활짝 열린 입은 대략 2미터는 됨직한 목구멍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주섬주섬, 투란은 일어섰고 바이퍼의 아래턱을 밟고 위턱을 손으로 잡으면서 갸웃거리는 시늉과 함께 묻는다.
‘얘는 미궁 안에도 밖에도 많이 있나보네? 마음대로 들락거리나?’
―알이 미궁 안에서 깨어난 경우가 있는 거지. 사막 아무 곳에나 알을 까놓으니까, 미궁 속에 들어가서 부화하는 경우가 없을 리가 있냐. 이 사막의 짐승이나 몬스터라도 멋대로 미궁을 들락거리지는 못해.
와지끈!
뱀의 입이 뼈와 함께 찢어졌다.
경련하는 꼬리가 모래 안에서 튀어 오르면서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머리통을 꿰뚫은 투란의 손짓에 사막 바이퍼는 몸이 팔딱대는 채로 늘어질 뿐이었다.
풀썩, 푸스스.
뱀이 십여 미터의 몸통을 길게 누이며 여전히 꿈틀거렸고, 모래가 그 파문을 이어받는 듯이 흐트러졌다.
‘정리 좀 하자.’
투란은 숨을 고르며 소리 없이 말했다.
드라고니아는 프로브부터 서넛 형성해서 주변으로 흩어 뿌렸다.
‘아까 그 이야기, 대체 뭐야?’
―음? 무슨 이야기?
너무 당당한 되물음에 투란은 잠깐 핏대가 서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가 시침을 떼자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할지 애매해 하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모래왕과 만난 것은 드라고니아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아까 전력을 다해 설득하는 시늉을 했지만 정작 생각하고 말했다기보다는 갖다 퍼부을 수 있는 말은 전부 갖다 썼을 뿐인 듯!
‘대체 무슨 약속을 한 거야?’
일단 투란은 마지막에 모래왕이 미궁 밖으로 자신을 날려준 한마디, 그 의미부터 캐묻기 시작했다. 한데.
―아, 그거. 괜찮아. 다시 미궁에 빠지지만 않으면 돼.
너무 뻔뻔하고 태연한 대답이 아닌가!
즉, 드라고니아는 모래왕에게 진심으로 투란이 약속을 시킬 거라고 말한 것이 아니란 뜻이잖나?
‘야!’
울컥한 투란의 한마디가 깊은 감정을 담아 소리 없이 마음에 울렸다.
드라고니아가 그 반발에 혀를 차며 길게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쯧, 투란…… 모래왕은 호의라고 말했지만 정말로 너에게 호의를 베푼 것이 아니야. 그저 자신이 처한 상황, 미궁에 갇혀있다는 그 처지를 해결하기 위해서 너를 이용하려 했고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빠른 길을 골랐을 뿐이다. 그 녀석,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을 기억할 때까지 거기 널 가둬둘 작정부터 했다고. 그거 잘못되면 말라 죽든 늙어 죽든 할 때까지 그 녀석 곁에서 기억을 살리는 시늉을 계속하는 꼴이 되었을걸? 그 꼴 겪지 않게 널 빼돌리려고…….
‘잠깐! 갇혀 있다? 모래왕이 갇혀 있는 거라고? 진짜? 불꽃왕이나 물결왕만큼 강한 어마어마한 대정령이잖아? 그런데 어떻게…….’
―계약, 약속, 징표. 왕이라 할 만한 대정령이든 티끌 같은 미약한 정령이든 이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내고 힘을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절대적인 조건, 요소…… 기억하지? 모래왕은 억누르는 힘으로 묶인 상태가 아니라, 그러기로 약속을 했고 그 징표가 남아있기에 지킬 수밖에 없는 거다.
‘내 이름을 물은 까닭이……?’
―새로운 계약, 이전의 계약 주체가 완전히 사라졌지만 여전히 모래왕에게 약속을 상기시키며 묶는 징표가 있다 해도 무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새로운 계약이다. 하지만 투란, 감금에서 벗어나기 위해 널 이용하려 한 거지 진심으로 너랑 계약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
‘탈출용 계약?’
―그래. 미궁 밖으로 벗어나자마자 끝나는 그런 계약을 하려고 들었겠지. 그런 계약이면, 계약이 끝나는 순간 계약자의 생명이 완전히 소모되기 쉽다.
꿀꺽, 투란은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