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0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02)
휘이잉.
모래바람이 가볍게, 그럼에도 사람의 살갗 정도에는 흔적을 남길 정도로 날카롭고 거칠게 불고 지나갔다.
그 바람을 쏘이는 소녀(少女)의 새카만 머리카락이 휘날렸고, 한 조각으로 이뤄진 옷도 소녀의 몸을 바싹 조이듯이 오그라들었다. 하지만 반쪽 소매 아래 드러난 소녀의 팔, 허벅지부터 고스란히 노출된 맨살의 다리에는 모래 티끌의 자취만 남겨졌을 뿐이고 거칠고 날카로운 바람으로 인한 상처는 전혀 없었다.
스쳐 간 바람을 짓누르는 듯한 햇살이 유난히 소녀의 주변에서 더욱 강렬해진 것처럼 이글거렸지만, 이는 오히려 소녀의 투명한 살갗을 밝혀 주며 보호해 주는 듯한 기묘한 분위기를 꾸밀 뿐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소녀는 모든 감정이 마모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모래 언덕, 모래 골짜기…… 여린 바람이 끊임없이 흩어 놓는 풍경에서 매우 이질적으로 보이는 사람의 형체가 소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는 만날 리가 없는 누군가…… 하지만 소녀의 눈길은 무심하게 다가오는 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가만히 모래 티끌을 머금으며 휘날리고 살갗을 어루만지기만 한 채로 머물지 않고 두어 번 더 스쳐 갔다 싶을 때, 소녀 앞에 그가 도달했다.
그리고 매우 어색하게 소녀에게 말문을 열었으니…….
“어, 뭐 좀 물어보려고 하는데요.”
투란은 뭔가 그럴듯한 말을 고를 수 없었다.
드라고니아가 그런 투란에게, 마력을 전혀 움직이지 않은 채로 마음을 울리는 말을 한다.
―마녀라고, 마녀! 정상적인 반응을 바라지 마라!
‘가만히 좀 있어 봐!’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동감하면서도 일단 이 괴기하고 이상한 소녀에게 집중을 하려 노력했다. 애초에 정상적인 반응 따위는 가까이 오는 사이에 이미 포기한 일이었으니, 딱히 드라고니아의 말이 필요하지도 않은 상황이기도 했다.
과연 기대를 버린 것처럼, 소녀는 눈도 깜박이지 않은 채로 물끄러미 투란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방금 말을 들었는가, 무슨 말을 했는가 이해를 하고 있는가조차 의심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래도 일단 다가와서 말을 건넨 쪽인지라 투란은 멈출 수가 없었다.
“이 사막에서 길을 잃어서 그런데요…… 어떻게 하면 사막 밖으로 나갈 수가 있는가, 혹시 알고 있나요?”
묻고 나니 굉장히 멍청해진 기분이 바로 투란의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휑하니 사방이 열린 사막, 그 한복판에서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소녀에게 도대체 뭘 묻고 있는가! 이런 곳에서 다가오는 이를 지켜보면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모래 티끌 구경하듯 보고 있었는데…….
소녀의 입은 다물어진 채였다.
투란은 더 물어야 하는가, 아니면 말해 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고 잘 있으라 하고 그냥 가야 하는가 고민해야 때인 것을 알아차렸다. 곧바로 드라고니아가 이런 투란의 생각에 끼어들었다.
―가긴 어딜 가. 이 마녀, 네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이 사막에 대해서 철저하게 알고 있을 거다. 보통 마녀가 아니야! 보이는 모습이랑 태도에 얼렁뚱땅 넘어가지 마! 대체 뭐가 민망해서 그러는 거냐?
‘시끄러워, 가만히 좀 있으라고.’
투란은 한숨부터 쉬면서 뒷머리를 긁적이며 드라고니아에게 대꾸했다.
하지만 곧바로 입을 열며 다시 소녀를 향해, 드라고니아가 마녀라 부르는 이상한 여자애를 향해 묻는 말을 이어 가는 투란이었다.
“음, 혹시…… 내 말 들려요? 내 입술이 움직이는 거 보여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슬그머니 입술을 크게 움직이면서, 소녀의 시야 앞에 똑바로 서면서 하는 말은 ‘제정신이니?’라고 따지는 듯한 낌새가 슬그머니 배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귀머거리가 입술을 통해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는 경우까지 고려해서 움직이는 친절함도 함께 몸짓에 담고 있으니, 조금 괴상하게 보이기는 했다.
소녀는 그런 투란을 가엾게 여겼는가, 입술을 움직여 말문을 열고 있었다.
“길잡이…… 다른 사람을 찾아. 나는…… 여기서 떠날 수 없어.”
매우 간결한 거절.
투란은 바쁘게 더듬거리면서 허둥지둥 소녀에게 떠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네…… 바쁘시군요, 네…… 음, 그런데 다른 사람이 어디 있는지…… 에, 그러니까 여기 떨어진 지 며칠 지났는데…… 음, 헤헷. 겨우 처음 만난 분이시라서……. 저기,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길 찾는 법이라도 좀 알려 주면 안 될까요? 여기 새 한 마리 날지도 않고…… 해는 지지도 않고…… 뱀도 며칠 전에 겨우 한 마리 봤을 뿐이라서…….”
소녀는 여전히 아무 표정도 없이, 텅 빈 듯한 눈길로 투란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무런 대꾸도 필요 없다는 듯, 그저 할 말은 이미 끝냈다는 듯…… 그러다가 갑자기 소녀의 눈동자가 한쪽으로 움직이며 투란의 어깨 너머를 향했다.
이러쿵저러쿵하던 투란은 그 색다른 움직임에 움찔했지만 소녀의 눈동자에 선명하게 비치는 등 뒤의 풍경을 보면서 바로 하던 말을 멈추고 움직여야 했다.
“피해야아……?”
말과 함께 투란이 소녀의 허리를 팔뚝으로 휘감으며 냅다 뛰려 했는데, 허공을 휘저으며 앞으로 구르는 꼴로 끝나고 말았다.
소녀는 둥실 허공으로 치솟았고, 아무 기척도 없이 모래에서 치솟아 나와 덤벼드는 무리를 향해…… 내던져지듯이 튀어 나가고 있었다.
모랫바닥을 구르면서 투란은 이 광경을 봤고, 어처구니없어 드라고니아에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야, 저런 거 감지 못 했어?’
―못 했다! 샌드 리저드에게 저런 은폐 능력이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
당황했다기보다는 성난 듯한 드라고니아의 대답.
투란은 샌드 리저드라는 몬스터 몇 마리를 재빨리 둘러보다가 그 한복판에 뛰어든 듯, 떨어져 내린 듯한 소녀를 보며 당황했다. 피하라 하면서 함께 몬스터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려 했더니 그 안으로 튀어 들어가다니…….
‘쟤는 어쩌려……?’
―마녀라니까.
의아해하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다시 한번 알려 준다는 듯이 명쾌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이 뜻하는 바를 투란은 바로 관람할 수가 있었다.
소녀의 그림자가 밝게 빛나면서 빛으로 된 석상(石象), 빛으로 되었으니 석상이라고 하기가 어려운 기묘한 형상이 그대로 바위 같은 무거운 기척을 흘리면서 나타나더니 그대로 네 손과 여섯 쌍의 날개를 휘두르며 샌드 리저드 몇 마리를 모래 티끌로 바꿔 지워 버린 것이다.
―봤냐?
‘어.’
―분명히 열두 장의 날개와 팔이 넷이었지?
‘어? 어…… 대강 그런 것 같았는데?’
드라고니아가 묻는 말에 투란은 빠르게 방금 전의 광경을 되새겼다.
기사, 혹은 철갑으로 완전무장한 전사의 모습을 바탕으로 비정상적인 팔과 몰상식한 숫자의 날개를 드러낸 그 괴이한 그림자 속의 뭔가…… 그게 대체 뭣인지 투란에게는 아주 낯설었다.
다만 샌드 리저드, 도마뱀 머리를 얹고 도마뱀 꼬리까지 달려 있지만 몸통은 건장하고 강해 보이는 인간의 것에 모래 가죽을 한 겹 더 씌운 듯한 모습으로 칼과 방패까지 든 녀석들을 한 방에 휘젓고 먼지가 되게 날려 보낸 그 힘은 낯설지가 않았다.
어딘가 성스럽고, 어딘가 짙은…… 사제나 오러클의 낌새가 서려 있지만 오히려 마법사에 가까운 듯하면서도 어딘가 다르다는 확신을 할 수밖에 없는 이상한 힘.
‘뭐지? 뭐였던 거야?’
―셀레스티얼 가드. 선천적으로 타고난 마녀이면서, 계승의 제례까지 끝낸 진짜 마녀…… 저 여자가 설마 여기서 저런 몰골로 있을 줄은 몰랐는데.
‘야, 혼잣말하지 말고 뭐냐고!’
―놓치지 말고 쫓아가라. 정체가 어쨌든 놓치면 넌 계속 이 모랫바닥을 헤맬 수밖에 없잖아.
이 말은 투란을 퍼뜩 깨닫게 했다.
샌드 리저드를 가볍게 날려 보낸 괴이한 형상, 드라고니아가 ‘셀레스티얼 가드’라 불렀던 것은 다시 햇살 아래 짙은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고 마녀라는 소녀는 가냘픈 다리를 멈추지 않고 무릎 아래까지 모래에 푹푹 처박으면서 멀어지고 있다!
“우아앗! 자, 잠깐만! 잠깐마아아안!”
다급히 소리치고 내디디다 보니 투란의 다리는 무릎까지 푹푹 모래에 잠기는 꼴이 되고 있었다. 그래도 억세게 그 다리를 뽑아서 다시 내디디며 투란은 소녀, 마녀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갔고 더욱 급박하게 외칠 수 있었다.
“저기요오오! 도와줘요! 여기서 다른 길잡이를 어떻게 찾냐고요! 당신 만나는 동안 사흘이나 모래만, 모래랑 햇살만 보고 있었다니까요! 그러니까…….”
“사흘?”
되묻는 말과 함께 마녀, 소녀의 눈꼬리가 살짝 꿈틀했다.
굉장히 미묘했지만 투란으로서는 처음 보는 표정이나 다름없었다.
“어, 아마 그쯤일 거예요.”
시간을 어떻게 정확하게 쟀느냐고 따져 물을까 봐 투란을 일단 변명부터 내놓아야 했다. 하지만 소녀는 그걸 물은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당신…… 어떻게 살아 있지?”
“에, 네?”
투란은 눈을 껌벅였다.
―뭔 소리지?
드라고니아도 이런 질문을 예상하지 못한 듯이 중얼거렸다.
소녀가 바로 손을 쭉 뻗으며 투란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이제까지 모래 속에 푹푹 박히던 소녀의 발은 가볍게 모래를 밟고 섰고, 내민 손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맥동하며 허공에 투명한 파문을 퍼뜨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투란이 흠칫했지만, 소녀는 투란이 무릎까지 잠긴 모래 위에 가만히 선 채로 퍼져 가는 힘의 파문을 바로 거두면서 속삭이는 듯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상한…… 몬스터 로드…… 모래가 물을 빼앗지 못하는…… 그랬군요.”
입만 벙긋거리면서 투란은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소녀를, 마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미묘한 오러의 방어를 어떻게 뚫고 바로 투란이 지닌 몬스터 엠블럼을 감지해 냈을까? 분명히 웬만한 마법으로는 탐지해 낼 수 없다고 드라고니아가 자신 있게 보장한 것인데!
―투란, 이 여자는……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동안 전승되어온 셀레스티얼 가드와 맹약한 마녀야. 선천적으로 타고난 네이처 포스만으로도 충분히 마녀라 불릴 만하지만, 그 이상의 경험과 지식을 전승받은 마녀 중에서도 최상위 계층에 속하는 여자라고. 방금 전의 것은 몬스터 엠블럼을 탐지한 것이 아니라, 네 안에서 꿈틀거리는 악마의 심장 줄기를 파악한 것이고 말이지. 거기서 고유 마력의 성질을 보고 알아낸 거다.
오롯하니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에 투란은 숨을 고르면서 마녀를…… 어떻게 봐도 열다섯이나 여섯 언저리에 불과한 소녀의 모습인 마녀를 다시 찬찬히 바라봤다. 그리고 신중하고 심각하게 물었다.
“모래가 물을 뺏는다니, 이 사막에서는 말라 죽어야 정상이란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한 거야?”
햇살이 지독하고 모래도 꽤 심하기는 했다.
하지만 방금 전에 나온 말은 몇 걸음 걷지 않아서, 하루를 채우기 전에 바로 말라 죽어야 한다는 뜻이 분명하니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설마 그렇게까지 심한 곳일 리가…….
“모래왕이 깃든 곳이니까. 모래왕이 사룡좌와 싸우기 위해서 그 힘을 퍼뜨리고 있으니까.”
말과 함께 소녀가 바로 몸을 돌리며 검은 머리카락을 투란 앞에 휘날렸다.
그사이에 투란은 그야말로 맹한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뭐?”
―뭐라는 거야?
드라고니아도 알아듣지 못한 말이라니!
투란은 재빨리 숨을 고르면서 냉큼 무릎까지 파묻힌 다리를 빼내서 모래를 살짝 밟고 움직이려는 소녀의 곁에 푹 꽂아 넣으며 다급하게 말해야 했다.
“잠깐, 잠깐만! 나 좀 도와 달라고! 길 찾기! 길 찾는 방법만 알려 줘! 아무렇게나 똑바로 날아가면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곳이잖아! 그러니까…….”
갑작스럽게 검은 머리카락이 휘날렸고 소녀의 얼굴이 투란의 눈가에 가깝게 들이대듯 다가왔다. 덕분에 투란의 말은 끊어졌고, 소녀의 말이 나직하고 또렷하게 울려 나온다.
“날 수 있어? 이 바람 속에서?”
“어, 어…… 날 수는 있는데…….”
대답을 꺼내면서 투란은 안타까운 표정과 함께 한숨을 푸욱 내쉬기부터 했다.
사흘 전, 저물지 않는 해 덕분에 뜨고 지는 방향을 잡는다는 계획이 망가졌고 이 사막에서 살아간다는 원주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늘어난 선택지를 기뻐했다. 하지만 사흘이 지난 지금까지, 투란은 원주민을 만나지 못했고 날아서 벗어나지도 못했다.
단지 방향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십 킬로미터까지는 느긋하게 파악할 수 있는 프로브가 있었고, 그냥 높이 허공에서 내려다봐도 그 정도는 거뜬히 간파할 수 있었다.
그러니 제대로 사방을 분간할 수 없다면, 아무리 바보스럽고 멍청하게 생각한다 해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수단은 아무 쪽이든 방향 잡고 직선으로 돌파하는 것이 가장 쉽고 단순한 선택!
하지만 그런 쉬운 길이 있음에도 투란은 사흘 동안 힘겹게 사막을 걸어야 했다.
반갑게 만난 것이 모래 상어니, 정체 모를 물고기 가재 같은 것이 고작인 채로!
“날 데려다줘. 그럼, 길을…… 길 찾는 법을 알려 줄게.”
투란의 되새김이 처량하게 길어지려는 찰나, 마녀가 말하고 있었다.
원하던 대답이었지만 투란은 눈을 껌벅거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