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0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04)
“나, 몬스터 로드인데…….”
신음하듯 투란이 중얼거렸다.
소녀, 마녀가 나직하게 말한다.
“몬스터 로드는 몬스터에게, 혼돈의 파편을 품은 존재에게 강해. 하지만 정령이나 섭리를 바탕으로 한 힘, 그 조작에는 마법사보다 더 약해. 강한 몬스터를 품었다고 해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자연 그대로라면 진실과 거짓의 차이를 혼동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어서 날아가. 그냥 열 걸음씩 난다고 생각하고 날아. 내가 알려 줄 테니까.”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때문에 그냥 ‘어.’라고 소리 낸 채 투란은 조심스럽게, 정말로 허공을 열 걸음 정도 걷는다 생각하며 날갯짓했다.
그사이에 드라고니아도 신음하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자연 그대로……? 그렇다면 이 거대한 영역에 자리 잡은 바람의 미로가 순전히 정령의 힘과 기교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바람왕이라 해도, 대정령을 수십 기를 거느린 바람왕이라 해도 이렇게는 못 한다고! 도대체 무슨…….
퍽!
“껙?”
무릎에 볼을 채였기에 투란은 비명과 함께 소녀의 낯을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손으로 뺨을 두드리던 상냥함은 어디 가고, 느닷없이 안긴 채로 얌전히 늘어뜨렸던 무릎으로 머리통을 차올린단 말인가!
때문에 소녀의 두 다리를 받치던 투란의 팔이 균형을 잃고 흘릴 뻔했고, 엉겁결에 손으로 꽉 붙들려 하다가 냅다 소녀의 엉덩이를 부여잡는 꼴이 되고 말았다.
“정신 차려! 감각을 지속시키려 하지 마! 계속해서 흔들어. 보던 것이 변화가 없다고 계속 보려 하지 말고, 들리던 것이 계속 들린다고 변화가 없다고 여기지 마. 감각을 닫았다가 다시 연다고 생각해. 마력도 일정하게 유지 말고 흔들어, 몸을 흔들고 어지러울 때까지 머리를 돌리는 것처럼!”
무슨 일이냐고 따져 묻기 전에 투란의 귓가에 숨결과 함께 소녀의 목소리가, 마녀의 이야기가 엄격하게 꽂혀 들고 있었다.
어리벙벙한 채로 투란은 눈을 감았다 떴고, 소녀의 얼굴이 바싹 자신의 눈가에 붙어 있는 꼴을 봤다. 아주 가까워서 숨결이 모래 티끌을 머금은 바람보다 훨씬 먼저 투란의 낯에 몰아닥치는 중!
찰싹.
뭔가 맹한 채인 투란의 볼에 다시 소녀의 손이 닿았다.
퍼뜩 눈을 부릅뜨면서 투란은 방금 전에 들은 이야기를 되새겼다.
‘흔든다, 닫았다가 연다…….’
날개가 펄럭였고, 고유 마력이 진동(振動)했다.
형상을 해제할 듯하면서 다시 똑바로 유지되고, 오감(五感)이 그에 따라 재구성되는 듯했다. 몬스터의 감각과 사람으로서 지닌 본래의 감각이 교차하면서 투란은 마녀의 이야기가 말하는 바를 느낄 수 있었다.
분명히 날개를 한껏 펼치고 똑바로 날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는데 아주 잠깐 사이에 날개 한쪽이 굽어 있었고 바라보는 풍경이 뒤틀리기라도 한 것처럼 엉켜 있었다.
‘이게 그냥 바람의 정령이 한 짓이라고? 바람만으로?’
투란은 깊은 의혹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촉감을 어루만지고, 몸 안으로 스며들 듯하면서 감각을 혼란시키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 멀리 보이는 풍경조차 뒤틀어서 모래만 가득한 지평선을 만들 수도 있는가? 바람을 다루는 마법이라 해도 눈앞에 허상(虛像), 환영(幻影)을 머금은 얄팍한 장막을 드리우는 것이 고작인데?
바람의 속성을 다루는 에어로가 풍경을 일그러뜨리기는 해도 역시 바람 마법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난 이적(異蹟)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한데 이 방대한 넓이의 사막 전체를 뒤덮는 허공(虛空)을 장악하고 바람길을 뒤틀며 풍경 전체를 갈아엎어 버리는 막대한 조작이라니…….
―바람만 다룬 것이 아냐. 이건 아무리 봐도 빛을 직접 사역(使役)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대체 무슨 수단으로…….
드라고니아가 투란에게 동조하며 다시 중얼거리고 있었다.
열심히 상황을 관찰하며 파고들어 생각하려 하지만 드라고니아 역시 뚜렷하게 단서를 잡지 못하는 것.
투란은 숨을 고르고, 뺨을 톡톡 두드리는 소녀의 손길을 느끼면서 한번 더 세차게 마력을 격동시켰다.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이 짙게, 오러의 성질까지 머금으며 허공에 파문을 일으켰다.
바람이 살짝 밀려 나갔고, 주변의 풍경이 이지러지는 듯했다.
그리고 투란이 안고 있는 소녀의 몸에서 움찔하는 듯한 반발이 살짝 피어나는 듯했다가 사라졌다.
잠깐 사이의 그 미묘한 반발이었지만, 투란은 바로 소녀의 몸에서 떨림이 억제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게 충격을 받고 이를 억지로 짓누르려는 듯한, 마녀가 자신의 마력을 강제로 억누르려는 듯한…….
“다쳤어?”
다름 아닌 자신의 마력이 소녀의 몸에 충격을 주고 마녀의 마력이 이에 반발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에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는 투란이었다.
“괜찮아, 어서 가.”
소녀의 목소리는 긴장감을 억지로 감추는 평행선처럼 울렸다.
―거짓말이다. 흩날리는 미세한 모래에도 지금 상처를 입고 있어. 무슨 고집인지 모르겠다만 지금 제대로 몸을 보호하는 것은 본신(本身) 마력이 고작인데 방금 너한테 충격받고 꽤 나빠진 상태야.
드라고니아의 말을 들으면서 투란도 확인할 수 있었다.
허공에서 흩날리는 옅은 모래 티끌이 소녀의 드러난 살갗에 들러붙으며 메마르게 하고 갈라지게 하는 변화가 또렷하게 보였고, 소녀의 차림새는 그에 대한 방비 따위는 전혀 없으니까.
“잠깐 내려가자. 이대로는 제대로 길잡이 노릇도 못 하겠어.”
단호하게 말한 투란은 마녀의 대답 따위는 기다리지도 않고 날개를 접으며 하강(下降)했다.
옅었던 모래 티끌이 살짝 짙어졌고, 나선의 궤적을 남기며 내려서는 투란과 소녀의 주변을 가볍게 회오리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결은 거칠었다. 그 바람결처럼 소녀의 숨결도 거칠어진 것을 들으면서 투란은 한 손으로는 등을 받쳐 준 채로 다리 쪽은 내려놔 줬다.
햇살이 흩날리는 모래 티끌을 넘어서 소녀를 비추니, 누런빛의 모래 위로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솟구치고 있었다. 그림자는 한 쌍의 날개가 되었고 바로 소녀의 다리부터 휘감으며 온몸을 덮고 다독이듯이 움직였다.
―그림자를 매개로 한 탓에 공중에서는 제대로 셀레스티얼 가드의 능력이 발휘되지 못했던 모양이군.
중얼거리는 드라고니아의 평가는 어느 정도 투란에게 이해가 되었다.
셀레스티얼 가드가 대체 뭔가 아리송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내려서고 녀석이 그림자 속에서 날개 두 장을 꺼내고부터 소녀의 살갗은 빠르게 상처를 회복했고 처음 만났을 때의 희한하고 이상했던…… 이 사막에서 아주 멀쩡해 보였던 소녀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투란은 깨닫고 있었다.
‘마력 고갈(枯渴)…… 아니야?’
―맞겠지. 이 사막에서 저 차림새로, 겨우 윗몸만 덮는 꼴인 채로 아무것도 없이 나돌아다니면서 죽지 않는 수단이 따로 있어 보이지도 않으니까. 얼마나 오래 버텼는가는 전혀 모르겠다만, 아무리 셀레스티얼 가드라 해도 본신의 마력을 바탕으로 존재를 유지하는 거니까. 마력 고갈이 아닐 가능성이 적다.
드라고니아는 더욱 깊이 투란의 추측을 파고드는 것처럼 말했다.
투란에게는 그냥 무표정한 채로 고통을 억제하기 위해서 표정조차 지워 버리는 소녀의 태도만으로도, 몸이 치유가 되지만 훨씬 옅어진 마력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좋은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하기에 충분했지만 드라고니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대로라면 샌드 드래곤을 만나고 어쩌고 하기 전에 날다가 소녀, 마녀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소녀, 마녀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제 괜찮아, 가자.”
다시 투란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면서, 한 팔을 살짝 올린 채로 말하고 있었다.
자신을 들어 올리고 다시 날아오르라는 그 손짓과 말에 투란은 한숨을 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죽어. 그러면 난 다시 길잃은 바보 꼴이 되겠지. 잠깐…….”
미묘하게 찌푸려지는 소녀의 눈가를 봤지만 무시하고 투란은 등 뒤로 손을 돌려 여우가 삼켰던 배낭을 꺼냈다. 배낭 안에 미리 준비해 뒀던 물통 하나를 꺼내 소녀를 향해 내밀며 투란이 엄격한 표정을 꾸미며 말을 잇는다.
“마셔. 나랑 약속을 지키려면 우선 몸부터 챙겨야잖아.”
소녀는 물끄러미 투란이 내민 물통을 바라봤다.
표정이 없는 것처럼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 담담한 소녀의 눈빛.
투란은 낯을 구기면서 소녀의 입가로 물통을 들어 올려 다시 내밀면서 또박또박 말한다.
“마법으로 몸을 지키더라도 물은 마셔 둬야잖아. 얼마나 굶었는지 모르니까, 일단 물부터 마시라고. 사룡좌인지 샌드 드래곤인지 만나러 가려면 일단 살아 있어야 하는 것 아니야?”
―죽으러 가는 것 같다만?
소녀가 무슨 반응을 하기도 전에 심드렁한 드라고니아의 말이 먼저 투란의 마음을 울려 왔다. 눈살을 찌푸린 채로, 소녀의 눈동자를 똑바로 노려보면서 투란이 드라고니아를 향해 소리 없이 으르렁거린다.
‘그런 거면 벌써 죽었겠지! 몸을 지키면서 길잡이 노릇도 할 필요가 없잖아!’
―글쎄다…….
뭔가 미심쩍은 대꾸를 하면서도 드라고니아는 묘한 침묵에 빠져들고 있었다.
소녀의 입술이 열리며 투란의 말에 대한 대꾸가 나온 것은 잠시 후였다.
“그래…… 살아서 만나야지. 알았어.”
말과 함께 소녀의 두 손이 내밀어졌고, 투란은 물통을 가만히 그 두 손 사이에 끼워 넣듯이 건네려 했다. 하지만 소녀의 두 손은 물통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바로 미끄러뜨리며 바닥에 떨궈 버릴 뻔했다. 냉큼 투란이 다시 물통을 잡았는데, 소녀의 표정이 미묘하게 찌푸려진 것을 보니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때문에 투란은 바로 그 원인을 말할 수 있었다.
“이런 물통도 잡지 못할 정도로 약해져 있었잖아.”
“실수한 거야. 잡을 수 있어.”
딱딱한 소녀의 대꾸, 그리고 곧바로 한 손으로 투란이 쥔 물통을 잡아당기는데 이번에는 힘이 꽤 담겨 있는 손짓이었다. 물통을 놔주면서 투란이 혀를 차는 소리로 말한다.
“마력으로 체력을 대신하는 거, 좋지 않아.”
소녀는 대답하지 않았고 그냥 물을 마셨다.
여리고 약해 보이는 목이 움직이면서 물이 거칠고 사납게, 쉬임 없이 넘어가는 듯한 모양새가 투란에게 한번 더 한숨을 쉬고 혀를 차게 했다.
결국 소녀가 숨을 몰아 내쉬며 마시기를 멈춘 것은 물통을 다 비운 다음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투란은 드러난 소녀의 다리, 그 살갗에 핏줄기 곤두서면서 번져 가는 꼴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잃어버렸던 생명력을 되찾듯, 투란이 건넨 물이 보통 물이 아니라 전설적인 치유력을 지닌 무슨 생명의 물이라는 것처럼 핏줄은 살갗을 채우고 번지며 미세했지만 분명했던 상처를 없애고 있었다.
투란이 기대도 하지 않은 희한한 일이었다.
‘마녀는…… 이런 능력도 있나?’
―셀레스티얼 가드가 하는 짓이야, 지금은 말이지. 마녀의 능력은 마녀마다 천차만별(千差萬別). 단정 지어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드라고니아의 담담한 말을 마음속에 고이 접어 두고 투란은 소녀가 내미는 빈 물통을 받아 배낭에 담으면서 진지하게 말한다.
“그 상태로는 위험해. 최소한…… 맨살은 가려야 하잖아.”
“괜찮아. 버틸 수 있어.”
소녀, 마녀의 대답은 단호하고 빨랐다.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면서 투란이 다시 말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간섭하고 싶은 거는 아닌데, 그래도 나랑 있는 동안에는 그렇게 억지로 버티느라 힘을 소모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거든. 나한테…… 여벌의 옷을 만드는 재주가 있어. 그러니까 최소한 바지라도 입었으면 하는데…….”
“옷을…… 만든다고? 몬스터 로드가?”
소녀의 고개가 갸웃했고, 마녀가 진심으로 의아해하는 표정이 살짝 스쳐 갔다.
아주 잠깐이었고 그저 스쳐 간 것에 불과했지만 처음 드러낸 표정이 자신을 의심한다는 마음을 가득 드러냈다는 점이 투란을 쓴웃음 짓게 했다. 어찌 보면 당연하기는 한데, 그렇다고 여태 단단한 철갑 두른 것처럼 무표정하다가 의심하는 표정부터 띠다니!
“몬스터의 능력은 예측할 수 없고, 예상해서도 안 되지.”
말과 함께 투란은 아예 자신의 팔뚝을 손으로 쓰윽 문지르며 보여 줬다.
두 손으로 두 팔뚝을 연이어 문지르니, 검은 가죽이 팔뚝을 휘감고 번지면서 그럴듯한 가죽 보호대가 순식간에 나타나 채워져 있었다.
“만들어진 가죽은 말하자면, 소산물(所産物)이야. 내가 먹고 마시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옷을 만들 수 있어. 편리하지?”
마녀는, 소녀의 낯에는 흐릿한 호기심과 함께 미묘한 당혹스러움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곧이어 미묘하지만 뭔가 의심하는 소녀의 눈빛이 투란을 잠시 더듬었다.
어쩔 수 없는 쓴웃음을 다시 피워 내며 투란이 말한다.
“힘을 낭비하면서 가면 금방 또 내려와야 하잖아. 오래 날려면, 어느 정도 제대로 된 차림새를 해야 한다고. 적어도 내가 길 찾는 법을 다 배울 때까지라도, 나랑 함께 있는 동안에는 제대로 좀 입고 있었으면 좋겠어.”
“알았어.”
가만히 투란을 보며 귀를 기울이는 듯했던 소녀, 마녀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하고 있었다. 대답을 하는 사이에 그 표정은 다시 무심하고 단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