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1)
Chapter 19. 외톨이! 드라고니아!
사르르…… 바람이 늪가와 숲 사이를 스쳐 갔다.
화르르…… 늪과 숲의 경계, 작은 마당같이 정리된 곳에 아홉 개의 불꽃 창이 기둥처럼 치솟으며 이글거렸다.
짙은 녹색, 환한 연녹색과 푸르스름한 나무껍질이 가득한 숲의 한쪽에는 넓게 펼쳐진 진청(眞靑)으로 물든 듯하면서도 황갈색의 표피를 두른 듯한 늪이 강처럼 흐르는 광경이 보였다.
그 경계선에 서 있는 아홉 개의 기둥 같은 불꽃 창!
중앙에 보다 큰 기둥처럼 선 불꽃 창을 둔 채, 여덟 개의 방향을 정확하게 계산해서 원주를 팔등분해 박아 놓은 것처럼 불꽃 창이 여덟 기둥처럼 서 있었다. 중앙의 불꽃 창이 그 땅에 박힌 부분을 펼치며, 원뿔의 밑동처럼 속에 담긴 투란을 가리는 장막이 되어 있는 풍경이었다.
투란은 배를 긁적거리며 음냐, 음냐, 소리를 흘리면서 잠든 모습이었다.
화르륵, 주변을 휘감은 여덟 가닥 불꽃의 창이 꼿꼿하게 선 채로 주변을 향해 불꽃의 가지를 치며 울타리처럼 불의 장벽을 흘렸다. 중앙에 우뚝 선채로 밑동에 투란을 담아 둔 불꽃 창, 거대한 기둥이 더욱 이글거리며 원주의 여덟 창을 향해 그물을 흘리듯이 불길을 뿜어내며 불꽃의 장벽을 더욱 북돋웠다.
그런 불의 기세가 투란을 움찔거리게 했고, 눈을 반쯤 뜨게 했다.
“음냐……?”
투란은 부스스한 기색으로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휘저었다.
머리가 멍한 것이 깊이 자고 일어나기는 했지만 뭔가 상쾌한 느낌이 없어서 조금 언짢은 듯, 손으로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다시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찬찬히 둘러봤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불의 장막이었다.
“아! 어?”
투란은 자신을 휘감은 불꽃의 천막 같은 것을 보며 바로 키린을 떠올릴 수 있었고, 동시에 키린이 보이지 않는 것에 의아함을 느꼈다.
키린이 없는데도 불꽃이 이리 유지되다니!
음유시인의 술 취한 주정 속에 나오던 이야기처럼, 정말로 키린은 정령을 다루는 몬스터 로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투란의 뇌리를 스쳐 갔다. 본인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마음대로 불꽃을 다룰 수 있는 능력, 투란도 악마의 심장 넝쿨로 조금 비슷한 짓을 할 수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완전히 키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정도로 정교하게 뭔가를 보호하고 지키는 장막과 벽을 남기는 일은 어림도 없다!
그야말로 투란 자신의 것과는 격이 다른 능력임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어라?”
하지만 곧 투란은 고개를 갸웃해야 했다.
왜 키린이 보이지 않는가?
그리고 지금 눈앞에 기묘하게 나타나는 이 무늬는 뭘까?
투란은 불꽃이 일렁이며 펼쳐 놓는 이 무늬가 어디서 본 것과 많이 닮았다는 것을 느꼈고, 잠시 뒤에 생각해 냈다.
“아, 글자!”
곧 투란의 눈매가 구겨졌다.
굉장히 멋진 모양으로 짜인 이 무늬는 틀림없는 문자이고, 이렇게 줄줄이 늘어선 꼴로 봐서는 무슨 이야기를 담은 글자가 틀림없다!
그러나 숫자도 아닌 이런 글자를 남겨 두면 읽을 수 있을 리가!
키린은 대체 무슨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일까?
갸웃하는 투란의 뇌리를 향해, 돌연 아득하게 먼 곳에서 하지만 정말 가까운 깊은 곳에서 뭔가 울컥하는 듯한 낌새가 전해졌다.
—썩을……!
‘응?’
투란은 예리하게 눈매를 가다듬고 주변을 앉은 채로 둘러봤다.
아무것도 없다.
‘어라?’
이상한 낌새에 갸웃하는 사이, 돌연 투란은 자신을 감싼 불꽃의 천막에서 묘한 압력을 느꼈다. 한순간에 팔다리를 꽉 잡고, 앉은 채로 엉덩이를 왈칵 구덩이 속에 빠뜨려 꼼짝도 못하게 하더니 머리와 목, 허리로 이어지는 몸을 완전히 고정시키면서 한쪽만 보게 하는 강한 압력이었다.
투란은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버버하다가, 돌연 눈꼬리를 타고 쿡쿡 찌르듯이 스며드는 불꽃의 기척을 느꼈다. 그 기척은 곧 투란의 눈꺼풀을 밀어붙였고 눈알이 한 곳에 초점을 집중시키도록 붙들었다!
“음므으흣!”
단순히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눈길도 꽉 붙들어 버리는 것이잖은가!
투란은 잠깐 당황했지만, 곧 이 불꽃 속에 담긴 기척이 키린의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이건 키린이 하는 짓이다.
이런 생각은 곧 투란에게 느슨하게 긴장을 풀고 똑바로 보이는 것에 주목하게 했다.
뭔지 모르지만 키린이 하려는 짓을 기다리는 듯한 태도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투란이 눈앞에 걸려 있던 불꽃의 문자가 춤을 추듯이 일렁이면서 다가오더니, 그대로 투란의 눈동자를 덮쳤다. 투란은 귓속에도 비슷한 불꽃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끼에! 꽤에에에!”
저절로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투란의 눈과 귀,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파고들면서 한순간에 뇌리에 새겨지는 것으로 인해 저절로 눈물과 콧물이 질질 흐르고, 귀가 멍해지면서 헛소리가 들려오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이 감각은 오래가지 않았고, 곧 멈췄다.
투란은 눈동자를 찍어 누른 불꽃이 물러서면서 다시 아까처럼 무늬를 그려 내는 것을 봤다. 한데 이번에는 이를 보는 투란의 생각이 아까와는 완전히 달랐다.
“어…… 어!”
글자를 읽을 수가 있었다.
혹시나 해서, 준비한 건데 이제는 읽을 수 있겠지? 아직 못 읽는다면 한 번 더 할 거니까. 소리 내서 읽는 게 좋아. 다음 한 문장을 크게 소리 내 읽어 봐.
갑자기 투란은 잠이 확 달아났고, 정신이 번쩍 하는 것을 느꼈다.
바쁘게 투란의 입이 움직였다. 다시 비명을 지르기보다는 읽으란 것을 바로 읽는 것이 기분 좋을 거라는 듯했다.
“키린의 편지!”
이 소리를 들은 듯이 일렁이던 불꽃이 곧 다음 문장으로 넘어갔다.
투란, 네가 기절하고 한 사흘 지났어. 얼마나 더 오래 기절해서 안 일어날지 알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나 혼자 먼저 가기로 했다.
“기, 기절?”
투란은 멍한 소리를 냈다.
자고 일어난 게 아니었던가?
그래서 머리가 상쾌하지 않고 멍하고 기분이 좀 이상했던가?
투란이 더 생각하기 전에 불꽃이 춤추면서 다음 문장을 그려 냈다.
그래, 너 기절했어. 내게서 몬스터를 전승받으면서 기절해서 일어나지 않았다고. 뭐, 좀 특별한 몬스터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거니 했지만…… 문득 오래전에 카엘 아저씨가 한 말에 따르면 몬스터 중에 정말 특별한 것을 삼키게 되면 몬스터 로드는 바로 깊은 잠에 빠져서 몇 달을 보낼 수도 있다고 한 말이 생각나. 어쩌면 몇 년을 자는 수도 있다는데, 아닌 척했지만 그때 카엘 아저씨는 정말 몇 년을 잔 경험이 있어 보였어. 그러니, 난 투란이 대체 언제 깨어날지 모르겠더라고. 그냥 기절한 것이 아니고, 그런 깊은 잠으로 바로 빠져들었을지도 모르니까. 음,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남기고 먼저 가는 거야. 자, 읽어 봐. 편지.
“펴, 편지!”
읽지 않으면 바로 덮칠 듯한 불꽃의 기척을 느낀 탓에 달달 떠는 입술로 투란이 재빨리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나타나는 문자의 몇몇 부분을 읽지 않으면 투란이 글자를 여전히 읽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저 불꽃이 다시 덮친다는, 투란으로서는 그런 확신을 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므로!
화르르…… 불꽃이 춤을 추며 다음으로 편지를 잇는다.
신기하지, 투란? 어떻게 단숨에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는지 말이야.
투란은 전혀 신기하지 않았다!
눈과 귀를 통해 두개골 안쪽에 단숨에 뭔 각인이 낙인처럼 푹푹 처박힌 과정을 생생하게 기억나니, 그 꼴 당하고 못 읽는다면 그건 사람이 아닌 것이란 생각이 먼저 뇌리에 터져 나올 뿐!
이건 말이야, 대마도사 슐테그 님께서 발굴해 낸 고대 왕국의 강화 주입식 학습법이란 건데, 굉장한 ‘지식의 마법’을 응용한 거야. 나도 이렇게 배웠다면 거의 4년을 고생해서 글자를 읽히느라 애먹지는 않았을 텐데…….
내 아빠…… 아, 의부이신 구엔 말고…… 투란에게는 아무래도 괴물 왕 아빠만 쉽게 기억할 것 같지만, 날 낳아 주신 왕 아빠는 대마도사가 내게 이 학습법을 이용하는 것을 반대하셨거든. 글자 따위는 천천히 배워도 된다고, 느긋하게 배워도 되는 걸 억지로 쑤셔 박으려 하지 말라고 말이야.
그래서 왕궁의 많은 관료들이랑 귀족들이 나만 보면 글자도 못 읽는 산맥의 괴물이라고 수군거리는 꼴을 4년이나 봤지. 처음에는 뭔 소리인지 모르다가 한 2년 지나서 여전히 내가 글자를 서툴게 읽고 쓰는 걸 뒤에서 욕하는 것을 보고 그게 왕자로서는 흉한 짓이었나 생각하게 됐어.
물론 왕이신 아빠 말대로 그건 딱히 흉한 게 아니야.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 하지만 왕자로서 왕궁에 머물고, 왕자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데는 상당히 귀찮은 장애물이었다는 점은 맞았어. 그래서 4년째, 보통 다뤄지는 문자를 모두 그럭저럭 읽게 되었을 무렵에 슬그머니 슐테그 마도사에게 내가 부탁했어. 몰래 그 학습법을 알려 달라고, 어지간한 왕자 따위는 싹 무시할 정도의 지식을 한꺼번에 삼키겠다고 말이야.
음, 다시 생각해 보니…… 좀 끔찍한 짓이기는 하네.[문서]
투란의 입이 떠억 벌어졌다.
다시 읽어 봐도 키린은 분명히 ‘끔찍’하다고 했다!
아니, 그런데 왜 나한테 그런 짓을……!
이어지는 문장을 향해 투란의 눈길이 좀 더 빠르게 움직였다.
그 학습법으로 어지간한 지식은 다 삼켰는데, 한 사흘 걸렸지. 무슨 왕궁의 예법이라든가, 고대의 역사라든가, 왕가의 계보라든가…… 나중에 써먹을 일 없어 보이는 것도 그냥 한 번에 끝내자고 다 ‘강제 주입’을 받았거든. 투란에게는 굳이 그럴 필요 없겠지?
도리도리.
투란은 마치 소리를 듣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바로 필요 없다는 의사를 드러내듯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방금 같은 꼴을 사흘간 당하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의사 표현인 셈이었다.
그래서 딱 필요한 것만 추려서, 짧게 하기로 했어. 짧아도 아주 분명하게 새겨지도록 말이야. 물론, 나는 마법사가 아니니까 한 번에……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뭐, 그럴 경우에는 반복하면 되니까 조금만 더 참으면 되지. 하지만 이걸 부드럽게, 막힘없이 읽고 있는 투란이라면 더는 반복하지 않아도 될 거야. 강제 주입식 학습법을 몇 번 경험했나 궁금하지만…… 아무튼! 투란, 넌 이제 다양한 문자를 마음대로 읽을 수 있어! 사실 이 편지도 여러 가지 문자를 막 섞어 놨거든. 읽다가 막히거나 하는 부분이 나오면 다시 새겨지도록!
바르르.
투란은 몸을 떨었다.
도대체 키린은 뭔 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아니, 왜 굳이 글자 읽는 것에 정성을 쏟아부어 뇌리를 불꽃으로 지져 대는 고통을 선물한단 말인가!
샤오콴 마을에 살면서, 투란은 굳이 글자를 읽어야 하는 일 따위 본 적이 없었다! 숫자라면 저울눈 속이는 사기꾼 때문에 반드시 읽고 셈할 줄 알아야 했지만.
‘아, 샤오덴 할배도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게 좋다고 했지.’
문득 투란은 기억해 냈다.
웬만하면 쉬운 편지 정도는 읽고 쓰는 게 좋을 거라고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치는 시간을 내고는 했던 샤오덴 할배. ……물론 그거 배우겠다고 모이는 애들 따위 없었지만.
간혹 다 큰 어른 중에서 큰 도시에 살기 위해 필요하다고 배우겠다는 경우는 봤다. 그걸 옆에서 보다 투란도 몇 글자 듬성듬성 읽는 것이 생기기는 했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왜 남의 머리에 낙인을 처박는단 말인가!
투란으로서는 바르르 떨면서 겁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겁내는 순간, 투란은 뭔가 다시 아주 먼 곳에서 울리는 듯하고 혹은 아주 가깝고 깊은 곳에서 퍼붓는 듯한 아련한 느낌을 받았다.
—이런 무식한……!
‘뭐야, 누구야?’
눈알을 굴리지도 못하게 여전히 꽉 잡힌 상태이기에 투란은 마음속으로 외쳤다. 아무래도 뭔지 모를 것 또한 투란의 마음에 직접 대고 울컥거리는 듯하니까. 그러나 이번에도 그 느낌은 곧 사라질 뿐이었다.
그리고 불꽃이 일렁이면서 강조된 글자 몇 개가 눈앞에 떠오르고 있었다. 투란은 재빨리 목청을 울리고,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입을 움직였다.
“강제 주입! 학습법!”
화르르, 불꽃이 곧 다음 글을 그려 나갔다.
그 꼴을 보면서 읽는 것보다 먼저 투란은 등골이 시원하다 못해 서늘해져서 식은땀이 새는 것을 느꼈다. 키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거 진심이다!
여차하면 저 불꽃이 다시 달려들 것이다!
그의 뇌리를 지지고 볶아, 글자를 새겨 읽게 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