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1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07)
―이런 미친 마녀조차도 널 이용하겠다고 하는 건가? 뭔 의무고 책임이야. 무슨 몬스터에게 원한을 품었길래 지나가던 몬스터 로드에게 고대의 사명(使命)을 들먹이기까지 하냐. 어이가 없군.
드라고니아가 진심을 절절히 담아서 투란의 마음에 또렷하게 울리도록 말했다.
굳이 따져 물을 필요 없이 무슨 기분인가, 왜 이렇게 마녀…… 키유나의 제안에 반쯤 성난 듯한 말투로 또박또박 짚어 말하는가 투란은 알 수 있었다.
괜히 지나가던 길에 이용당하는 얼빠진 몬스터 헌터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영웅적이라는 칭찬과 함께 그 고난과 역경을 비웃기도, 찬양하기도 하는 음유시인이 가장 애용하는 것이니까.
드라고니아는 투란에게 그런 기본적이고 흔한 이야기처럼 마녀의 제안에 귀 기울이지 말라 권하는 셈이었다.
투란은 이 권유를 마음 한구석으로 고이 밀어 넣었다.
대신 투란의 입에서는 마녀의 말에 대한 대꾸, 상황에 대한 물음이 흘러나왔다.
“무슨 몬스터를 생각하고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사룡좌라는 그거?”
마녀, 소녀의 표정이 이전보다 또렷하게 일그러졌다.
그래 봐야 살짝 찌푸린 정도였지만 투란은 소녀, 마녀의 주변에서 미묘하게 번져 나오는 마력의 파동도 더욱 격정적인 분위기를 띤 것까지 알 수 있었다.
이를 숨길 생각도 없는 듯, 마녀 키유나가 대답을 한다.
“그래, 사룡좌. 죽일 수 없어. 그러니까 몬스터 로드에게 맡길 수밖에 없어.”
“샌드 드래곤…… 그렇게 말했지? 어떻게 생긴 녀석이야?”
담담하게 투란은 다시 확인하겠다는 듯이 물었다.
―진심으로 따져 보자는 거냐?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태도에 의혹을 품은 듯이 물었다.
미친 마녀에게 대체 뭘 확인하고 싶냐고 궁금해하는 물음이었다.
정말로 미쳤다면 몬스터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나올 리가 없잖은가.
‘미친 사람 얕보지 말라고. 몬스터를 만나 미친 사람을 보면 그 말을 듣고 그 몸짓을 보고 아주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하는 거야. 그래야 어떤 몬스터를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나, 뭣 때문에 미친 건가 단서를 구할 수 있거든.’
계속 떠들려는 듯한 드라고니아에게 투란은 친절하고 상세하게, 더불어 아주 빠르게 몬스터 헌터의 기본적인 자세를 말해 줬다.
실제로 몬스터 헌터는 피해자가 발생하면 그 피해자가 살아 있든 죽었든 상관하지 않고 면밀히 조사하고 탐색하니까. 그렇게 해서 피해자가 알고 있는 것, 모르지만 지니고 있을 수도 있는 단서를 검토하고 확인해서 몬스터를 사냥할 준비를 하니까.
낯선 몬스터일수록 그 과정은 반드시 거쳐야 했고, 매우 중요했다.
이런 투란의 사고(思考), 감정이 곧바로 말과 함께 드라고니아에게 전해지자 금방 납득하는 중얼거림이 돌아왔다.
―그렇군. 대체 뭘 보고 샌드 드래곤이라 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기는 해.
여전히 드라고니아는 샌드 드래곤이 그 봉인된 ‘용의 화신’인가 뭔가는 아닐 거라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입가에 떠오르려는 쓴웃음을 억누르면서, 입술을 꽉 다물면서 투란은 마녀, 소녀 키유나가 하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한편으로는 투란의 물음에 겨우 마음을 정리한 듯, 기억을 되새기는 듯 절망과 고통을 담은 채로 낮게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한층 더 투란을 집중하게도 했다.
“한 쌍의 날개, 한 쌍의 다리, 목이 길고 뿔이 하나…… 긴 뿔이 하나이고 머리와 목덜미를 타고 이어지는 잔가시 같은 뿔은 많아. 입으로는 바람과 함께 번개를 뿜어낼 줄도 알고. 몸 주변으로는 계속해서 힘을 뿜어내지. 때문에 몸 주변에는 항상 잘게 부서진 것들의 티끌이 모래처럼 맴돌아. 날갯짓으로 그 티끌과 모래를 바람결에 휘말아 주변에 두르기도 하지. 아니, 보통 그렇게 모래 티끌을 휘감고 몰고 다닌다고 해야겠네. 그래서 가까이 가게 되면 햇살이 가려지고 어두컴컴한 풍경에 떨궈진 꼴이 되기가 쉬워. 이해가 돼?”
“음…….”
투란은 적당히 알아들었다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한 쌍의 다리란 부분부터 의문만 짙어질 뿐이었다.
보통 용의 머리라 일컬어지는 형상을 갖춘 몬스터라면, 그게 날개와 다리가 달린 놈이라면 와이번이 아니면 드레이크.
둘의 구분은 대부분 다리 숫자로 쉽게 나눠 생각하기도 했다.
드레이크라면 두 쌍, 네 다리이고 와이번이라면 한 쌍, 두 다리.
하지만 생긴 것이 그렇다고 해서 몽땅 와이번 아니면 드레이크라 구분할 수는 없었다. 몬스터를 외형만 놓고 분류할 수는 없으니까. 생긴 것이 그렇게 생겨 먹었어도 전혀 색다른 특징을 갖춘 경우라면 아예 다른 품종으로 나눠 놓는 편이 옳았다.
특히나 지금 키유나의 설명은 투란이 아는 와이번이나 드레이크, 어느 쪽과도 다른 느낌이라고 한마디 한마디 분명하게 확인해 주는 중이다. 도대체 저렇게 생겨 먹은 몬스터가 어떤 놈인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린다.
―저 정도면 샌드 드래곤이라고 할 만도 한데? 정말로 저런 특징을 갖춘 경우라면, 전설적인 더 샌드드래곤이라고 여길 만도 해.
‘흠? 그런데 넌 아니라고 확신한단 말이야? 왜? 근거가 뭐야?’
투란으로서는 키유나의 이야기를 인정하면서도 완강하게 아니라고 하는 드라고니아의 생각이 의아했다. 명백한 근거가 있지 않으면 저렇게까지 말할 리는 없을 테니까.
―봉인, 대마도사 카엘의 봉인이니까.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라 대마도사, 대마법사가 수십 명 모여서 지혜를 모으고 마력을 모아 짜낸 마법이라도 그 봉인에는 흔적도 못 남겨. 자연적으로 봉인이 해체되지도 않는다. 그림 투아란의 드래곤이 직접 나선다 해도 그 봉인은 버텨 낼 수 있다고 했어.
‘아, 거기도 카엘이 끼어든 거냐?’
―악룡과 카엘의 사투, 그런 이야기 들은 적 있지?
‘어? 그건 몬스터 로드 카엘이 아니었나? 데쓰나이트의 카엘 말이야.’
―그쪽으로 들었냐? 하지만 착각일 거다. 데쓰나이트의 카엘이라면 봉인은 하지 못했을 테니까. 대마도사 카엘이 가끔 기사 인형을 사용하니 잘못 전해졌을 수도 있겠지. 아무튼 그 봉인은 아무도 못 깨. 그게 깨지기 전에 세상이 먼저 깨질걸.
너무나도 단호한 말이었다.
투란은 가만히 간이 천막의 밖을 내다봤다.
소녀의 눈동자가, 마녀 키유나의 눈길이 방금 이야기한 것에 대해 투란이 어찌 생각하는가를 알고 싶다고 쏘아지는 듯했으니까. 투란으로서는 잠시나마 따로 생각하는 시늉을 하는 셈이었다.
밖은 여전히 누런빛이 가득했고 은근히 이글거리는 뜨거움이 모래에서 피어오르며 풍경을 어른거리게 하는 것조차 보일 지경이었다. 침이라도 뱉어 놓으면 금방 말라서 사라질 듯한 환경, 구멍 같은 간이 천막 속으로 스며들기 위해 더욱 뜨거워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찌 되었든 이 사막은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 곳, 이를 확인하면서 투란은 다시 소녀의 얼굴로 눈길을 돌렸다.
마녀 키유나, 투란과 눈을 마주친 소녀는 다시 처음의 무표정한 낯빛으로 되돌아간 채였다. 절망과 고통이 담긴 말을 토해 냈으니 평정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또다시 그 말을 하게 되면 여전히 낯을 찌푸릴 것은 확실한 상태.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된 거냐.’
입 밖으로 내지 않았지만, 투란은 이모저모로 일단 넋두리부터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 사막에 뚝 떨궈지는 것은 전혀 예정에 없던 일이고, 모래 미궁이니 모래왕이니, 느닷없이 마녀를 만나 어린 시절 믿을 만하다 여겼던 용병 누나의 거짓말도 확인하고…….
그런 생각 속에 문득 투란은 이 사막에서 홀로 버틸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마녀가 어쩌다 드라고니아에게서 미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상해졌는가, 그 처지 또한 심상치 않다는 점을 되새겼다.
이 모든 일은 운명이 아니라 몬스터가 끼어 벌어진 것.
투란은 스테노아가 아니었다면 고르고니아 세 자매를 쫓을 생각도 하지 않았을 터이고 그 마지막인 유렐리아가 아니었다면 이 사막에 처박힐 일도 없었을 터.
키유나 역시 어떤 사연인지 모르겠으나 스스로 샌드 드래곤이라 부르는 몬스터가 아니었다면 그런 괴이한 몰골로 사막을 홀로 걷고 다닐 까닭이 없을 마녀 아닌가.
―음, 그건 아닐걸. 셀레스티얼 가드의 마녀는 인간관계가 늘 복잡하게 꼬이기 쉬운 처지라, 인적 드문 산속이나 외딴 섬 혹은 이런 사막에 숨는 일이 잦으니까.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생각에 딴지를 걸고 있었다.
지금 전혀 중요한 일은 아닌데!
잡념을 떨치듯 표정을 굳히면서 투란은 키유나를 향해, 무표정한 그 소녀의 얼굴을 향해 말문을 연다.
“바람의 미로 안에서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놈이라고 했지? 그 아크…… 휠이란 것 때문에 녀석도 당장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야? 그래도 이 사막을 자유롭게 나는데 키유나는 녀석을 쫓을 수 있는 거야? 어떻게 하는 거야? 그것도 내게 길 찾기랑 같이 알려 줄 수 있어?”
단숨에 쏟아져 나온 여러 가지 물음이었다.
모두 중요한 점을 짚는 셈이었다.
스톰라이더의 날개가 바람의 미로에 꺾이지 않는 것처럼 날 수 있다면, 공중에서 맞붙어 싸울 준비와 각오도 해야 했다. 녀석이 투란처럼 아크휠, 빛의 정령에게 감각을 농락당하는 중이라면 서로를 보고 느끼며 싸우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만약 키유나에게 샌드 드래곤이라 불리는 이름값이라도 해서 녀석이 투란과 다르게 감각의 왜곡을 겪지 않는다면 상황은 매우 불리하게 돌아갈 수도 있다.
불리하지 않더라도 어쨌든 두들겨 패서 겨우 잡을 뻔했는데 녀석이 훌렁 도망칠 경우, 쫓지 못한다면 완전 헛짓을 한 셈이 될 터!
또 한편으로 따지면 키유나가 그 사냥에 함께할 경우라도 투란은 길 찾기와 추적에 대해서 알아 둬야 했다.
사냥 중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시작할 때는 함께지만, 그 과정에서 마녀로서도 감당 못 할 일이 생겨 다치거나 길 찾고 추적할 수 없는 처지가 될 경우도 투란은 대비해야 했다.
―잡을 생각이냐?
드라고니아가 키유나보다 먼저 중얼거리듯 물었다.
여러 가지 상황에 대비하려는 투란의 생각, 그에 따른 물음에 은근히 실린 의지는 명백하게 ‘샌드 드래곤을 잡는다.’라는 쪽이니까.
키유나가, 마녀가 샌드 드래곤이라 여길 정도의 몬스터라 해도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잡지 못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는 듯했다. 다만 이 사막에서, 모래왕이랑 기묘한 약속을 해 버린 상황에서 괜한 짓을 하려는 것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키유나에게 길 찾기를 배우지 못하면 계속 모래판이라고.’
투란은 간단하게 드라고니아의 염려를 떨치는 말을 했다.
여기서 키유나가 ‘안 도와준다면 길 찾기는 혼자 알아서 하시지!’라고 훌렁 가 버린다면, 투란이 뭘 어쩌겠는가?
소녀를 붙잡고 묶은 다음에 길 찾는 법을 알려 줄 때까지 두들겨 팬다?
그런 것보다는 그냥 이름만 세 보이는 몬스터를 잡아 주고 호감을 사는 편이 투란에게 더 편한 길이었다.
―마녀의 호감이라, 그리 권할 일은 아닌 것 같다만 지금 상황에서는 원망보다는 훨씬 낫겠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드라고니아도 납득하는 시늉을 했다.
곧 투란의 물음에 생각을 정리한 듯 키유나가 다시 말문을 열어 대답하고 있었다.
“샌드 드래곤은…… 사막을 벗어날 생각이 없어 보여. 아크휠이 힘을 보탠 바람의 미로는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 것 같으니까. 사막의 경계를 둘러보고, 두어 달…… 혹은 서너 달에 한 번은 반드시 지나는 곳이 있어. 원래 샌드 드래곤이 잠들어 있던 곳, 이 사막의 중심이라 불릴 만한 곳이기도 해서 한두 번씩 지나치는 것 같아. 그러니까 샌드 드래곤과 마주하려면, 그 자취를 잃어버렸어도 거기로 가면 돼.”
“그러면 일단 거기로 가자고. 음, 이제 몸은 괜찮은 거야?”
명쾌하게 대꾸하다가 투란은 갸웃하면서 키유나에게 물었다.
여전히 무릎을 끌어안은 모습이었던 키유나가 천천히 다리를 뻗고 몸을 움직이며 간이 천막 밖으로 기어 나가며 대답한다.
“그래, 이렇게 잘 먹고 쉰 적은 오랜만이니까. 완전히 회복되었어.”
“어, 다행이네.”
어정쩡하니 대답하면서 투란은 키유나의 뒤를 따라 나갔다.
모래 위에 키유나가 서서 잠시 멍하니 하늘을 보고 저 멀리 모래뿐인 지평선을 바라보는 사이, 투란은 재빠르게 간이 천막을 이뤘던 가죽 안에 다시 시커먼 잉크를 불어넣어 삼켜 버렸다. 배낭과 검도 금방 여우의 배 속으로 사라졌다.
펄럭.
스톰라이더의 날개가 투란의 등에서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걸어갈 생각은 아니지?”
투란의 물음에 키유나가 고개를 돌렸다.
모래 티끌을 머금은 바람이 낮게 불어와 높이 치솟으며 키유나의 검은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이전과 달리 검은 가죽에 휩싸인 두 다리에도 옅은 모래 티끌이 들러붙는 듯했지만, 이전처럼 마녀의 힘으로 떨쳐 내는 모습은 없었다. 이제는 가죽 바지에 보호를 받으니 그렇게 힘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듯이 보였다.
키유나는 가만히 투란에게 다가왔고, 한쪽 팔을 투란의 목에 걸었다.
“그러면…….”
두 팔로 키유나를 가슴 쪽에 안아 올리면서 투란이 날개를 활짝 펼쳤다.
모래바람이 날개 안쪽에 갇히며 성난 소리를 터뜨렸다.
화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