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1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09)
‘네가 죽였냐?’
투란은 어처구니없으니 어이없는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결국 소리 내지 못하고 마음속을 향해 투덜거리는 꼴이 되었다.
―지금 시답잖은 헛소리하고 싶냐?
혀를 차는 핀잔만 되돌리는 드라고니아였다.
이런 투란의 속내는 전혀 모르는 채로, 혹은 아예 관심도 없는 듯한 모습으로 키유나가 말을 잇고 있었다.
“여기는 사막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중심이었어. 까마득한 먼 옛날에 이 사막에 자리 잡은 유일한 녹원이었고, 여기 샘에서 시작된 물이 흐르다가 모래바람에 휩쓸려 도달한 곳이라야 겨우 새로운 녹원이 생겨났다고 해. 저 샘이 이 사막의 유일한 생명줄이야, 옛날부터 지금까지. 여기 사람들은 그걸 마음 깊이 새긴 채로 살아야 했어. 자신들의 배덕자의 후예란 것처럼, 용의 분노와 저주를 받은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남겨진 용의 자비, 그 한 조각이 이뤄 낸 이 녹원의 기적에 감사하며 살아야 했어. 언젠가 용의 화신이 일어나 끝내지 못한 징벌을 마칠 날까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으면서 살았어.”
‘뭔 얘기냐?’
―닥치고 들어.
끔벅끔벅, 데굴데굴.
눈을 깜박이고 눈동자를 굴리면서 투란은 소녀의 입술이 흘려 내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알 수 없었다. 언제 적 이야기인지, 지금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지…… 앞뒤도 없고 요점도 없잖은가?
저 얘기가 샌드 드래곤, ‘더 샌드드래곤’이랑 뭔 상관이 있는가?
이 사막을 헤맨다는 몬스터를 잡을 단서라도 되는가?
드라고니아는 일단 듣고 기억해 두라고 투란에게 으르렁거렸고, 키유나는 투란의 표정도 태도도 모른다는 듯이 하던 이야기를 이어 갈 뿐이었다.
“미신(迷信)이라고 생각했어. 고대의 일은 고대에 끝났으니까. 그 잔재가 남아 있다고 하지만, 그건 모래 아래에서 꿈틀거릴 뿐이고 여기서 사는 법을 아는 이들에게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니까. 너무 바보라서 일부러 뛰어들지 않는다면 모래 미궁에 빠질 일이 없는 거니까.”
투란은 인정할 수 없어서 얼굴을 구겼다.
드라고니아는 뭐라 할 말이 없다는 듯한 낌새를 흘렸다.
툭 떨어지면 바로 빠지는 곳을 일부러 뛰어드는 바보가 아니면 빠질 리가 없다 말하다니!
왠지 키유나가 마녀인 까닭이, 마법을 쓰는 여성이란 의미랑 다른 쪽으로 마녀라 불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투란의 뇌리를 스쳐 갔다!
휘이이…….
부서진 돌기둥 위, 훤히 뚫린 하늘을 가리듯이 누런빛의 모래바람이 활짝 펼쳐진 모양으로 스쳐 갔다. 그 모래 티끌의 한 조각도 작은 분지 안으로 떨어질 낌새는 없었다. 다만 그 소리가 음울하면서도 기분 좋은 느낌은 전혀 없을 뿐이었다.
바람이 스쳐 가는 소리에 어우러지듯, 키유나의 목소리가 낮아지면서도 더욱 뚜렷하게 투란의 귓가에 스며들었다.
“그래서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했어. 녹원을 이루는 샘, 샘을 붙잡아 두는 돌기둥의 마법을 조금 강화해도 괜찮았으니까. 못된 도적질을 하는 이들을 벌하는데도 돌기둥에 깃든 마력을 조금 끌어내 써도 괜찮았으니까. 내게 모자란 힘을 끌어내서, 여기 사는 착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몇 년을 보냈어도 아무 일 없었으니까, 조금씩 조금씩…… 더 강한 마력을 끌어내면 더 많은 녹원을 만들 수 있다고, 더 많은 사람이 이 사막에서 샘이 마를 걱정 없이…… 사막 괴물들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 녹원에 찾아와 기원하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거라고,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어. 하지만…….”
목이 멘 듯,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키유나는 한 손으로 가슴을 누르면서,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표정을 잔뜩 드러내고 있었다. 선명한 절망과 고통, 누구라도 쉽게 볼 수 있는 그 감정이 고스란히 소녀의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분명히 이어지지 않고 흐려져 가는 그 말의 뒷부분을 투란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돌기둥이 부서지고 뭔가 봉인되었던 것이 풀려난 까닭.
키유나는 그 원인이 어설프게 마력을 다뤘던 자신, 마녀인 자신 탓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헛소리. 착각으로 미친 거였나?
왠지 무거운 기분이 투란의 가슴에 얹힐 듯한 순간, 드라고니아가 냉혹하게 말하고 있었다. 가차 없이 키유나를, 이 소녀의 모습을 한 마녀를 깔끔하게 미친년으로 여기는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투란은 그 말투가 너무 가혹해서 기분이 좋지 못했다.
‘야, 자기는 그렇다고 여길 만한 일이 뭔가…….’
―봉인의 석주에서 마력을 끌어냈다는 것부터 이상한 거야. 그걸 모른다는 시점에서 이 여자, 제대로 된 마법을 배운 적이 없다고 실토한 셈이지. 대마도사 카엘의 봉인이 무슨 장난인 줄 아냐? 지나가던 마녀가 건드려서 봉인의 마력이 줄줄 새고 깨지게? 아무리 대단한 마녀의 전승을 이었다고 해도 이렇게 멍청해서는 쓸모없어!
찍소리도 내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강력한 드라고니아의 외침이었다.
뭘 따지고 어쩔 틈도 주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 덕분에 멍하니 침묵한 투란은 겨우 다시 새어 나오는 키유나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깨어난 것은 고대의 악룡이었고, 이젠 아무도 살지 않는 녹원만 남았어. 녹원과 함께 사라진 사람들은 모래 아래로 끌려들어 가 새로운 망령이 돼 버렸어. 내가 한 짓이야. 그러니까 난 샌드 드래곤을 잡아야 해. 도와줘.”
“어, 음…….”
당장 무슨 대답을 하려다가 투란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어정쩡한 소리만 내고 말았다. 잠깐 숨을 고르며 생각하니 이럴 때는 대체 뭐라 해야 할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으니까.
품고 있는 드라고니아가 뭐라 하지 않았더라면 뭔지 모를 몬스터니까 일단 자세히 알아나 보자고 뭔가 묻기는 했을까? 마녀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있었을까? 고대의 악룡이란 녀석이 사막을 훨훨 날아다니고 있다는 말을 투란은 과연 어떻게 받아야 하는가?
‘으흠, 헷갈리네.’
뒷머리가 당긴다는 기분으로 투란은 역시 뭐라 바로 대답할 말이 없다는 것만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드라고니아가 이런 투란에게 바로 놀리는 듯 말한다.
―헛소리라니까. 이건 네가 아무리 운수 나쁜 경우라도 만날 리가 없는 몬스터라고. 이 마녀, 뭔가 심각하게 착각하고 있다니까.
‘야, 야! 거기서 운수 나쁜 얘기가 왜 나와?’
후욱, 숨을 고르면서 이제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키유나에게 딴생각하지 않는다는 시늉을 꾸민 채로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울컥한 말을 하면서도 정작 소리 내서는 키유나를 향한 말을 꺼낸다.
“그 옛날이야기는…… 잘 모르겠어. 어쨌든 일단은 그 녀석의 실물을 좀 보고 싶거든. 몬스터를 잡으려면 먼저 어떻게 생겼는지, 말로 듣는 것보다 직접 보고 관찰부터 시작해야 하니까. 아, 몬스터 헌터의 방식이기는 하지만 몬스터 잡는데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거든. 그러니까…… 이 근처를 그 녀석이 언제쯤 지나갈지라도 좀 알았으면…… 키유나?”
조용히 허공을 손끝으로 가리키는 키유나의 모습에 투란은 말을 멈췄다.
무슨 의미냐고 갸웃하는 투란을 향해 키유나가 가만히 손끝을 옮기면서 말한다.
“지나가고 있어. 저 바람은 샌드 드래곤의 날갯짓에 밀려 퍼지는 거야. 지금이면 모래에 감긴 그림자를 볼 수 있어.”
“그래?”
맹한 대답을 남기는가 싶었을 때, 투란은 재빠르게 돌기둥을 향해 뛰었고, 부서진 채로도 좀 높은 돌기둥 위로 뛰어올라 밟고 한번 더 높이 치솟았다. 그렇게 해서 사방이 사막으로 보이는 높이에 이를 때까지 투란이 남긴 말의 여운은 여전히 키유나의 주변을 맴도는 듯했다.
그리고 투란은 멀리 지나가는 모래 더미…… 산이라고 해야 할지, 언덕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는 거대한 모래가 일그러지고 뭉클거리는 꼴로 그 너머의 지평선을 가리며 넓고 크게, 아주 웅장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드래곤이니 아니니 따지기 전에 그 광경 어디에서도 드레이크나 와이번의 몰골의 흔적조차 볼 수 없었다.
냉정하게, 이성적인 판단을 하자면 그냥 모래가 태풍이 되어 폭풍 흉내를 내면서 지평선 보기 지루하니 잠시 보이는 풍경을 바꿔 주겠노라 시위하며 지나는 풍경인 셈이었다.
하지만 투란이 그 광경을 보는 순간.
―더스크라이더?
드라고니아는 깜짝 놀라 외치고 있었다.
그 말이 투란의 기억 한편을 쿡 찔렀다.
‘스타폴에서 했던 말이잖아? 아, 잠깐. 그럼 저거 진짜 사룡이란 놈이라고?’
어느새 희미해져 있던 기억이 선명해지며 투란은 물을 수 있었다.
그 희한했던 도시 스타폴, 그 기반이 되는 지형을 만들어 냈다는 스타 슈터.
그 화룡이라 불렸다고도 하는 녀석과 함께 용의 이름을 허락받고 그 능력도 얻었다는 두 마리, 하지만 그 두 마리는 봉인되었다고 했다.
봉인된 한 마리가 수룡이었고 또 한 마리가 사룡.
크리스털가드와 더스크라이더.
저 모래 더미가 콸콸거리며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드라고니아가 그 별명인가 본명인가 하는 것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진짜야? 정말로?’
복잡한 내막 같은 것은 따지지 않았다.
투란은 지금 보는 저 풍경의 원인, 그게 정말로 용의 이름을 허락받고 능력을 얻었다는…… 때문에 용의 화신이라 불리기도 하는 것 같은 고대의 몬스터인가 아닌가. 그것부터 확인해야 했다.
―저 모래 아래쪽을 보라고! 어둠이 가득 내린 것처럼 그늘지고 있잖아! 저 안에 휩쓸리면 한낮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황혼, 어스름한 저녁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저런 걸 몰고 다닌다고 더스크라이더라고 불렀단 말이다! 저거 대체 뭐야, 뭔데 더스크라이더를 재현하고 있는 거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으르렁거리는 드라고니아였다.
쓴웃음이 투란의 입가에 머물렀다.
곧바로 등에서 뽑아낸 날개로 녹원의 외곽, 테두리가 되는 모래 위까지 옮겨 가면서 투란은 발을 딛고 허리를 낮추면서…… 저 먼 곳에서 모래에 가득 휩싸인 놈이라도 경계하는 태도로 눈을 가늘게 떠봤다.
‘저건 제대로 보이는 건가? 아니면 왜곡된 건가? 모래에 바싹 붙어 움직이니까 바람의 미로에는, 빛의 정령인가한테는 영향받지 않는 건가? 아니면 저 녀석이 움직이는 영역 안에서는 그런 왜곡이 망가져서 제대로 보이는 건가? 어느 쪽이라고 생각해?’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저건 기록되어 있는 더스크라이더의 비행 그대로야. 저게 정말 사룡 더스크라이더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만!
‘끈질긴 거냐, 끈기 있는 거냐. 아무튼 그 비슷한 놈인 거잖아?’
―비슷한 놈이 없다고! 사룡의 능력은 드래곤 로드에게서 부여받은, 아주 특별한 능력이란 말이다! 그렇게 흉내 낼 수조차 없는…… 아, 저거 혹시 아크휠이 장난쳐서 저렇게 꾸민 것일 수도 있겠는걸?
‘갑자기 긍정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설명 찾지 마. 그거 몬스터 상대로 아주 좋지 않거든?’
신중하게 투란이 말했다.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멋대로 해석하며 이유를 갖다 붙이면 죽는다.
몬스터를 상대할 때, 어떻게든 자신이 아는 것을 갖다 붙여서 설명하려 드는 것은 죽으려고 노력하는 짓!
때문에 투란은 선입견을 버리고, 이해할 수 없어서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는 뭔가를 찾으려 드는 드라고니아에게 말할 수 있었다.
이런 태도, 마음가짐이 드라고니아를 설득한 모양이었다.
―그렇군. 맞아, 그래야지. 잠깐, 너 저거 잡을 생각을 하는 거냐?
‘글쎄? 당장 무슨 결정을 내리는 것도 잘못인 것 같은데? 일단…….’
가만히 먼 곳의 모래 더미가 어떻게 바람결을 드러내는가를 보며 생각을 정리하려던 투란은 옆에서 난 기척에 멈칫하며 눈길을 돌렸다.
키유나가 투란 곁에 와 있었다.
조용히, 투란의 자세를 흉내 내듯이 가만히 한쪽 무릎을 모래에 대고 앉은 채로 눈을 크게 뜨고 입술을 꽉 다문 소녀의 모습에는 품고 있는 각오가 선명하게 드러난 채.
시위에 잰 화살처럼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듯한 소녀, 마녀 키유나의 어깨에 투란이 손을 얹었다. 여차하면 매가 쥐를 낚는 것처럼 잡을 준비까지 했지만 이런 염려와 달리 키유나는 멈칫하면서 투란에게 눈길을 돌리고 있었다.
담담한 말투로 투란이 말한다.
“난 저런 거 처음 봐. 저렇게 모래가 산처럼 몰려다니는 거, 상상도 안 해 봤거든. 그러니까 조금 더 살필 시간이 필요해. 저 안에 뭐가 있는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아. 정말 샌드드래곤인가 아닌가도, 키유나가 말한 모습을 전혀 확인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서둘지 말아 줘. 조금 더, 자세히 보고 알고 싶어. 어떻게 하면 저 녀석을 쫓아갈 수 있는지, 키유나 알고 있어?”
차분히, 격앙된 듯한 태도와 다르게 굉장히 고요하게 투란의 말을 들은 키유나가 손을 들어 투란의 이마를 짚었다.
“날개. 걸어서는 쫓을 수 없어. 하지만 굳이 쫓지 않아도 될 거야. 샌드 드래곤은, 사룡좌는 앞으로 사나흘 정도 이 주변을 맴돌 거야. 여기는…… 쉼터니까, 사룡이 쉬어 가는 곳이니까.”
“쉼터?”
―여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