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1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10)
어둠이 내려앉았다.
밤이 찾아오는 풍경을 보며 투란은 한숨을 내쉬었다.
모래 더미가 거대한 풍경이 되어 지나가고 난 지 몇 시간 만의 일이었다.
‘해가 저물기는 저무네.’
키유나와 함께 이 녹원에 오기 전에는 이 사막에 해가 지는 일이 없는 줄 알았다!
한데 막상 샘물이 있고, 캐 먹고 따 먹을 뿌리와 열매가 있는 곳에서 바람과 모래를 피하고 햇살도 비켜 갈 그늘이 있구나 싶었더니 날름 밤이 찾아오다니!
이 사막이 자신을 놀리는 중인가 하는 망상까지 떠올리면서 투란은 한숨을 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투란이 이렇게 찾아온 밤을 보면서 복잡한 기분일 때, 키유나는 한구석 나무 아래에서 잠든 채였다. 풀과 넝쿨이 가득한 바닥에 그냥 누워 자려는 모습에 투란이 가죽을 엮어 내서 야외용 침낭을 마련해 줬다. 거기에 대해 좋다 나쁘다 아무 말 없이 키유나는 조용히 침낭 안에 들어갔고,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키유나를, 그 소녀 같은 모습을 확인하고 투란은 후욱 숨부터 골랐다.
‘자, 그러면…….’
바로 투란의 눈길이 돌기둥 쪽을 향했다.
봉인의 석주, 원래라면 부서지기는커녕 금가는 일도 없어야 한다는 것.
완전히 부서져 돌 더미로 무너진 것은 아니지만, 덕분에 아직은 돌기둥이라는 형태를 유지는 하고 있지만 제대로 부서진 채라…… 반쯤 깨져 내려서 둘러싼 샘물에 돌멩이 조각을 가득 꽂아 넣고 있는 대마도사의 봉인을 향해 투란은 다가갔다.
‘여기서 무슨 마력을 끌어낼 수 있겠어?’
―이게 무슨 파워 서클이냐? 안 돼. 전혀 파워 소스의 역할을 하지 않아. 그런 재주는…… 마녀의 비술 중에는 있을 수도 있겠군. 하지만 사룡의 봉인에는 그런 짓 할 수 있을 리가 없어.
‘그래, 그러니까 이게 사룡의 봉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뭐든 해 보자고.’
―뭐?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투란의 말에 드라고니아가 흠칫했다.
피식, 웃음과 함께 투란은 샘물에 발을 담그고 돌기둥에 붙으면서 손을 댔다.
‘옛날 있던 몬스터랑 비슷한 짓을 한다고 그게 똑같은 놈이라고 생각하는 거, 좋지 않아. 같은 놈이라고 제대로 확인된 것도 아니잖아. 자, 그러면…… 음, 느낌이 꽤 신기한데? 이거 마력 맞나?’
―특이한 것이 정말 대마도사 카엘이 손을 댄 것 같은 느낌이다만.
겨우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는 듯,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탐색에 가담하는 의지를 드러내며 말했다.
투란은 조용히 손을 움직여 돌기둥의 깨진 부분, 깨지지 않은 부분을 번갈아 가면서 더듬으며 조금 더 그 감각을 파고들며 묻는다.
‘키유나가, 마녀가 착각할 정도로 말이지?’
―그래. 확실히…… 그런 면도 있기는 있군.
씁쓸하게 드라고니아가 대답했다.
그 심정을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만약 대마도사 카엘이 뭔가를 봉인한 것을 만났는데, 그게 자신이 손을 대서 깨진 것 같은데, 거기 봉인되어 있었다는 것과 닮은 것이 튀어나와 주변을 다 파괴하고 아는 이들을 잔뜩 죽인다면…… 키유나처럼 생각하는 쪽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터였다.
겨우 드라고니아가 그런 부분을 이해했다는 듯하니, 투란은 조금 더 진지하게 돌기둥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딱히 더 부서진 곳은 없었다.
솟아나는 샘물에도 특별한 부분은 없었다.
다시 한번 돌기둥을 더듬고, 마력이라 여겨지는 힘의 반발을 차분히 느끼고 나서 투란은 샘 안에 잠겨 있는 돌기둥의 파편을 집었다. 아직 온전한 부분과 떨어져 나온 파편, 그 느낌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으흠?’
―뭐냐?
투란이 손안에서 작은 파편, 물에 시달려 부드럽게 된 듯한 돌 조각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껴 움찔하니 드라고니아도 어리둥절했다.
―힘이라도 줬냐? 뭔가 했어?
‘아니, 이게 저절로……?’
혹시라도 투란이 몰래 무슨 장난이라도 한 거냐 묻는 말이었고, 그런 누명은 싫다는 듯이 대꾸하던 투란의 말이 멈춰졌다.
어두운 밤, 하지만 하늘까지 열려 있는 위에 뭔가가 불쑥 튀어나와 드리워졌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어두운 밤인데 거기에 한 겹의 짙은 그림자가 더 겹쳐진 사실이 분명했다.
무겁고 강인한 뭔가가 있다…….
없던 것이 불쑥 투란의 머리 위에, 이 사룡이 쉬어 간다는 곳의 위에 분명히 나타나 있었다.
투란은 긴장했고, 한껏 그 긴장을 유지한 채로 느릿하니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봤다.
밤하늘의 풍경을 가로지르는, 내리누르면 녹원의 한복판을 바로 갈라 버릴 듯한 긴 목을 가진 것이 밤의 풍경과는 완연히 다른 새파란 눈알을 드리운 채로 투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묘한 정적이 맴돌았다.
아까까지 나직하게 울리던 바람소리조차 사라졌다.
―이런 썩을!
드라고니아가 소리를 죽이는 듯한 말투로 한없이 작게 내려고 애쓰는 듯한 외침을 흘렸다.
그 외침이 마음을 울릴 때, 투란은 그 까닭을 납득했다.
눈알 사이로 길게 흘러나온 듯한 뿔, 꼿꼿하지는 않았고 살짝 휘어지며 끝이 위를 향한 둔탁한 느낌이 나는 까닭이 너무 큰 탓에 굵어 보이는 것이라 여겨지는 몰골…… 밤인데도 누런빛의 모래가 까끌까끌하며 잔뜩 들러붙은 듯한 그 비늘이 깃든 머리통의 생김새가 딱 키유나가 묘사했던 것이랑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크기는 투란이 듣고 예상했던 거랑 완전히 다르잖은가!
몸통이나 날개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데, 그냥 목을 드리웠는데 이 녹원을 목줄만으로 반 토막 낼 듯하다니! 심지어 그 목을 완전히 편 것도 아니고 구부정하니 만들어서 투란을 내려다보며, 내 쉼터에서 뭐 하냐고 묻는 듯한 저 기묘한 눈빛이라니!
사아악.
투툭.
두 가지 일이 동시에 투란을 자극했다.
한 가지는 퍼런 눈알 아래에서 긴 혀가 날름거리며 슬그머니 허공을 핥는 듯한 광경이었고, 한 가지는 투란이 쥐고 있는 돌멩이가 팔딱거리는 맥동을 일으키며 손안에서 벗어나려는 듯이 움직인 것이다.
그리고 투란이 어떤 반응을 하기 전, 그 두 가지 일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밤하늘이 다시 녹원의 위에 당당하게 드리워졌고, 손아귀에서 팔딱거리던 돌은 돌이 그럴 리가 있냐고 놀리는 것처럼 잠잠해졌다!
‘뭐?’
멍하니 있던 투란은 입술을 달싹이면서도 아무 소리도 못 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그래도 생각은 한 셈이었다.
혹시나 해서 고개를 돌려보니 키유나는 그냥 침낭 속에 고이 잠든 모습 그대로.
날카롭고 예민한 마녀이면서도, 그 몸 주변에 쉴 새 없이 맴도는 셀레스티얼 가드가 느긋한 마력을 풍겨 내는 와중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잠든 채란 것은…….
―환각 아냐!
투란의 이어지려는 생각을 드라고니아가 단호하게 부정했다.
‘아냐?’
손에 쥔 돌 조각을 조금 더 꽉 움켜쥐면서 투란이 되물었다.
―절대 아냐!
‘어, 그러면…… 이게 뭔 일이야?’
돌 조각으로부터 미묘하게 울려 나오는 반발, 아까와 마찬가지인 듯했고 돌기둥이 품고 있던 힘과 같다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이 물었다.
―공명(共鳴)을 이용한 환영(幻影)이다! 봉인의 석주에 담긴 힘을 역이용해서 이쪽을 탐사한 거야. 너 역시 그 공명을 이용해서 녀석을 본 거다. 마력 공명 현상을 이용한 장난질이기도 하고, 이걸 응용하면 메신저 마법으로 확장할 수도 있어. 넌 그 효과로 본 거다. 녀석도 널 봤고!
‘으흠…….’
한번 더 돌 조각을 쥔 손을 꾸물거려 보고, 아예 돌기둥에도 손을 대고 살금살금 자극도 해 보면서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한 말을 되뇌었다.
분명하게 어떻게 한 거라고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투란에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저게…… 사룡인지 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저 녀석이 지금 날 엿보고 혀를 날름하면서…… 입맛 다시고 간 거란 말이지?’
―입맛? 야, 그건 아니야. 마력을 이용해서 상대를 탐지한 거라고! 그러니까 지금 네 상태를 녀석이 엿본 거지 먹어치우겠다고…… 투란? 너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투란의 말에 장난이 아니라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라고 말을 이으려던 드라고니아가 당황스러운 듯이 묻고 있었다.
‘생각? 내가 뭘 생각했나? 아니야, 생각이 아니고…….’
히죽, 투란의 입가에 기괴한 웃음이 떠올랐다.
비웃는 것도, 기뻐하는 것도 아닌 괴상한 표정.
하지만 이를 보는 이는 없었다.
드라고니아가 느낄 뿐이었다.
―투란?
너무 이상해서 다시 이름을 불러보는 듯한데, 투란이 웃음과 함께 으스스한 눈빛을 짙게 풍겨 내면서 소리 없이 중얼거린다.
‘아기가 놀랐어. 용의 이름을 얻었든 아니든, 드레이크라면 본능적으로 갖춰야 하는 상식이 있지. 남의 아기가 있는 곳에 대가리 들이대는 거 아니란 상식 말이야. 그런데 저게 아기를 품은 나한테 대가리를 들이대고 혀를 날름거렸잖아. 아주 몰상식하게 말이야.’
―그건 무슨 헛소리야!
드라고니아가 정신 줄 놔 버린 것 아니냔 듯이 으르렁거렸다.
투란은 그 말을 무시하듯, 자신의 문장이 그려 내는 풍경 한구석을 가만히 마음에 떠올렸다.
작은 알, 부서진 껍질 속에 잔뜩 웅크린 채로 금빛 비늘을 일렁이면서 징징거리면서 조금 전의 광경에 겁먹었다는 것을 몸짓으로 훌륭하게 드러내는 아기…… 전혀 자라날 낌새가 보이지 않는 골든드레이크 새끼의 모습.
조금 전에 본 녀석의 모습에 투란은 여차하면 싸울 자세까지 갖췄고, 투란이 품은 몬스터의 형상은 모두 이에 대비했다고 해도 좋았다. 비록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다고 움찔거리는 부분도 꽤 많았지만…… 그 속에서 절대로 싸울 수 없다고 한껏 웅크리며 반항한 부분이 바로 저 아기 드레이크!
그 본능적인 방어, 겁에 질린 채로 오직 도주만을 염두에 둔 자세가 투란의 마음을 깊이 후벼 팠다.
때문에 투란은 배 속 깊은 곳에서 치솟는 분노를, 울화를 느낄 수 있었다.
누가 감히 내 새끼를 보고 혀를 날름거리면서 입맛을 다시냐고!
―투란? 정신 차려! 갑자기 뭔 생각을 하는 거야? 너 그놈이랑 헷갈린 것이 대체 언제 적 이야기냐? 이제 와서 뭔……!
‘헷갈리지 않아. 하지만 화난다고. 성질난다고! 내 새끼 노리고 와서 맛있어 보이네 하고 간 놈을 봐 버린 드레이크, 지금 딱 그런 기분이야!’
―야! 공명을 이용한 환영 탐사일 뿐이라니까! 대체 그걸 어떻게…… 투란?
툭, 툭.
투란의 주먹이 가볍게 돌기둥을 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드라고니아가 당황스러워하던 말을 멈추고 말았다.
뭘 하려는가 짙은 의문을 연이어 쏟아 내려 했지만, 투란은 이런 드라고니아의 심정을 알 바 아니란 듯이 돌기둥을 두드리며 차분히…… 성질났다고 하는 말과는 전혀 다른 냉정한 태도로 두들기며 마력을 흘려 내고 있었다.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이 돌기둥에 특이한 공명을 일으켰다.
손과 돌이 만나는 작은 소리, 하지만 이질적인 마력이 만나 울리는 소리와 무관한 공명이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투란의 몸에 느껴지며 퍼져 나갔다.
마치 조금 전의 환영을, 그 거대한 머리통을 다시 부르려는 듯했지만 투란은 다시 그 몰골을 볼 수 없었다.
다만 멀리서 짙어지는 듯한 바람소리만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 이게 응답을 안 하네?’
―얀마! 그게 막 흉내 낼 수 있는 재주로 보였냐? 아니야! 그건…….
‘너도 무서웠어?’
―뭔 얘기야? 내가 뭘 무서…….
‘해볼 만한 놈이었지?’
―뭐라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투란의 말은 드라고니아의 말을 끊고 뜬금없어하는, 당황해하는 반문을 끌어냈다.
‘아기는 겁을 먹었지만, 너는 괜찮았잖아, 그렇지?’
―그게 내가 겁을 먹고 어쩌고 할 상황이 아니었잖아!
‘관찰했잖아, 제대로 말이야. 그러니까 말해 봐. 내가 못 이길 거라고 생각, 아니 그런 느낌이 조금이라도 들었어?’
드라고니아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러쿵저러쿵 떠들고 있는 듯했지만 투란이 뭘 가늠하려는가를 분명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거기에 함부로 대답하지 않으려는 듯한 낌새가 역력했다. 그저 마력의 공명으로 서로를 엿본 상황에서는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다고 보류한 듯.
피식, 투란이 그 신중한 태도에 웃었다.
가만히 돌기둥 주변을 뒤지면서 또 다른 작은 돌 조각 하나를 찾아 쥐면서 투란은 깊이 숨을 고르면서 단호하게, 그래도 여전히 소리는 내지 않고 말한다.
‘키유나는 이제 상관없어. 녀석이 날 봤고, 나도 녀석을 봤지. 그리고…… 날 보고 혀를 날름거렸어. 맛있어 보인다는 생각은 없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날 그냥 보내 줄 태도도 분명히 아니야. 그러니까 시작된 거라고. 둘 중 하나가…… 죽는다.’
드라고니아는 침묵을 지켰다.
투란은 조용히 샘을 걸어 나왔다.
이제는 잠을 좀 자고 쉬어야 하니까.
사룡이든 아니든, 거대한 괴물과 싸울 일이 생겼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