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1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12)
‘저렇게 크니 쫓기는 쉬운…… 쪽이 아니려나?’
투란은 키유나가 외치는 말에 담긴 감정, 너무 노골적인 분노와 적의를 깨달으면서 침착하게 거대한 몬스터를 살폈다.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누런 모랫빛, 새파란 눈알, 뇌전의 그물을 두건처럼 쓴 채로 입에서는 시뻘건 불길을 길게 혀처럼 날름거리고 있는 저런 거대한 체격은 ‘몰튼노트 더 기간틱’을 곧바로 떠올리게 했다. 다만 목과 꼬리, 그 몸의 부드러운 선형(線形) 탓에 가늘고 긴 느낌이 더 심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날개는 백여 미터의 거인이라도 단숨에 휘감아 조일 듯한, 얇아 보이는 그 두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괴한 위압(威壓)을 흘러내고 있기도 했다.
―계획대로 할 거냐?
투란이 주변을 거의 멈춰진 듯이 바라보면서, 키유나의 목소리가 긴 여운을 흘리는 메아리처럼 아직 귓가에서 요동치고 있는 사이에 드라고니아가 스쳐 가는 섬광(閃光)과 빠르기를 겨루겠다는 듯한 속삭임으로 물었다.
키유나의 계획에 대한 물음이 아니었다.
키유나가 깨어나기 전까지 투란이 샘물에 발을 담근 채로 몇 시간 동안 갖은 잔꾀를 짜내서 꾸민 계획을 실행할 것이냐 묻는 말이었다.
‘그래야지. 봤잖아, 내 말대로잖아?’
―나도 말했다만.
‘그래, 키유나는 살아서 저걸 어떻게 하려는 게 아니니까.’
―네 계획대로 된다 해도 이 마녀가 살지 죽을지는 모른다. 각오했지?
‘각오는 무슨…… 아무튼 저걸 샌드드래곤, 사룡이라 불러도 상관없는 거지?’
―저 정도면 아니라고 하는 쪽이 바보스럽잖아.
‘아하하.’
자포자기한 듯한 드라고니아의 투덜거림은 투란을 소리 없이 웃게 했다.
그리고 투란의 한 손은 두툼하게 굵어지면서 곧바로 키유나를 앉혀 놓을 정도의 크기로 부풀어 올랐다. 그 큰 손이 곧바로 키유나를 의자처럼 받쳐 올렸다.
“세게 던질 거야. 준비됐어?”
사나운 바람결이 주변을 맴돌며 쉴 새 없이 몰려오는 풍경을 꿰뚫듯이 투란의 목소리가 키유나의 귓가에 꽂혀 들었다.
마녀는 투란의 손에서 은은하게 정령의 자취가 흘러나오는 것을, 그 손을 감싼 검은 줄기가 다시 한번 자신의 몸에 번져 오면서 헐렁하던 가죽 바지를 조이고 허리와 배를, 어깨를 감싸며 밀착한 갑주의 형태를 꾸며 나가는 것을 느꼈다. 괜히 불필요한 자극을 주는 일이 없었고, 관절과 급소 부위가 적절한 두께로 덮이면서도 부드럽게 휘감기는 느낌은 오히려 기분 좋다 할 만했다.
‘오우거…….’
문득 숲을 지키는 폭군이 마녀의 뇌리를 스쳐 갔다.
하지만 그에 대해 뭐라 묻고 어쩌기 전에 키유나는 자신이 엉덩이부터 받쳐 올려진 채로 높이 치켜올라 간 상황을 느끼면서 대답부터 했다.
“됐어.”
“몇 바퀴 돈다!”
어지러움이 찾아올지 모른다는 경고까지 하고, 투란은 키유나를 치켜올린 손을 내지르는 자세로 맴돌며 공중을 짓쳐 나아가기 시작했다. 무거운 돌을 멀리 던지기 위해서 빙빙 도는 사람의 흉내를 내는 셈이었다.
스톰라이더의 날개가 몰아치는 바람을 긁고 누르고 품고 튕겨 내며 격렬한 난투 속을 파고드는 것처럼 움직이며 투란은 나아갔고, 빙빙 돌았다. 키유나는 그 중심축인 채로 빙빙 돌면서도 저 멀리 거대한 형체를 결코 눈에서 놓치지 않았다.
이 광경을 거대하고 새파란 눈동자가 지켜보는데, 투란이 크게 외친다.
“최초의 일격, 그리고 최후의 일격을 준비해 줘!”
“뭐?”
키유나가 놀란 소리를 냈을 때, 투란은 이미 키유나를 내던지고 있었다.
새파란 눈동자를 지닌 거대한 몬스터를 향해서가 아닌 그 반대편으로.
거기에 더해 키유나가 외마디 반응을 하기도 전, 투란의 손아귀에서 여우의 입이 나타났고 키유라를 향해 숨결을 토해 냈다. 투란의 마음속으로 드라고니아의 속삭임이 울리고 있을 때였다.
―리틀 점프.
키워드를 통해 계약된 마법이 발휘되었다.
키유나의 모습이 잠시 사라졌다가 훨씬 더 높고 먼 곳에서 나타났다.
순간적으로 이동한 다음에도 내던져진 힘이 그대로 키유나의 몸에 실린 채로 작용했기에 그다음에도 키유나는 잠시 높이 솟구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키유나의 입에서 흘러나간 외마디는 바람결에 삼켜져 갈 곳을 잃은 듯이 흩어지는데, 키유나는 그 틈새의 짧은 시간을 아주 길게 느낄 수 있었다.
투란이 남긴 이야기는 그렇게 가속된 키유나의 귓가에 격류가 되어 흘러들었다.
‘죽고 싶어서 몬스터와 싸우지 않아. 몬스터 로드는 살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몬스터와 싸우고 삼키지.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도 몬스터 로드의 사명이니까. 그러니 키이유나르, 마녀면서 죽으려고 발버둥 치지 마. 나를 도와줘. 내가 사룡을 쓰러뜨릴 테니까. 녀석에게 내가 달라붙을 기회를 만들어 줘. 강한 마녀답게 아주 세게 녀석을 한 대 패라고. 그리고 기다려. 내가 끝내지 못했을 때는 키유나가 녀석을 마무리 짓는 거야. 그러면…… 이제 싸우자!’
휘이이잉.
검은 머리카락이 한없이 뻗어 나갈 듯이 흩날렸다.
검은 눈동자가 동그랗게 드러난 채로 멀어지는 투란을 향했다.
어느새 스톰라이더의 날개는 미묘한 금빛 비늘의 흔적이 드러나는 중이었고, 두툼하고 우람한 주먹에는 회오리치는 물결이 감겨 있었다. 투란이 섬세하게 몸에 두른 시커먼 가죽은 번들거리는 비늘 무늬를 머금은 채로 촘촘하고 강력한 힘이 맥동하는 줄기가 꿈틀거리면서 맺힌 기괴한 형태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도대체 몇 가지 몬스터를 품은 것일까?
바다 깊은 곳, 폭풍이 멈추지 않는 곳에서나 산다는 스톰라이더의 날개를 어떻게 얻었을까? 정령의 냄새가 가득 밴 오우거의 손은 또 어떻게 얻었을까? 분명히 처음 봤을 터인 저 거대한 사룡이 두른 비늘 가죽에 버금갈 듯한 금빛 비늘과 가죽은 한 가지 몬스터인가, 아니면 몬스터 로드의 고유한 특성을 이용한 융합 형태인가?
키유나는 이성적으로 수많은 의문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 모든 의문은 감성적으로 피어난 한 가지 의문에 모두 뒤로 밀려났고, 그대로 파묻힐 뿐이었다.
‘왜……?’
오랜만에 추억을 꺼내 준 저 ‘투란’은 대체 왜 키유나의 원수를 향해, 키유나를 위해, 키유나보다 먼저 돌격하며 싸우려는가?
예전에는…… 이 사막에서 키유나가 알던 이들이 모두 전멸해 버린 삼 년, 혹은 사 년 전에는 가끔 길 잃고 헤매는 이들을 볼 수 있었고 이야기도 전해졌다. 이 사막의 풍속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그 모습은 광막하게 모래만 가득한 곳에서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질 수 있는 좋은 이야깃거리니까.
수백 년 전에 헤매던 이들부터, 수십 년, 수년 전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낯설고 수상하며 좋은 이야기의 소재가 돼 줬던 이들…….
저 ‘투란’도 이전이었다면 그런 소재가 되었을 터였다.
특히나 사막 밖에서 찾아온 이가 사막의 주민들이 아주 소중하게 경건하게 여기는 이름을 진짜로 지녔다면 더욱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다.
하지만 사룡좌가 그 쉼터에서 깨어난 후로는 우연히 사막에 들어섰다가 헤매는 이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아무리 흥미로운 누군가라 해도 더 이상 떠들고 들을 이들이 없었다.
사룡의 쉼터, 그 녹원을 중심으로 사막 곳곳에 뿌려져 있던 모든 녹원이 파괴되었고 모두 죽었으니까.
녹원의 파괴를 피한 이들은 모래 미궁의 위협이 가득한 쪽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 또한 살아남았다고 말하기는 곤란했다. 모래 미궁은 산 자를 게걸스럽게 삼키고 오래 고통스럽게 살려 두느니 오히려 일찍 죽는 편이 더 낫다 할 지경.
그 모든 절망의 시작을 키유나는 고스란히 지켜봤다.
강대한 마력의 공명과 함께 봉인의 석주가 으스러지고, 봉인되었던 사룡이 그 형태를 드러내며 멈췄던 파괴와 살육을 재개하고…… 이 사막에서 모래 미궁의 영역만이 산 자가 거할 곳이라고 주장하는 듯한 짓을 시작하는 그 순간을 키유나는 그 자리에서 지켜봐야 했다.
그때 키유나는 저 교활하고 간악한 사룡이 봉인의 마력을 꿰뚫는 과정에서 자신의 마력을 끌어들여 열쇠처럼 사용한 것을 분명히 느꼈다. 부정할 수 없는 그 감각이 키유나에게 말했다.
저 사룡의 해방은 키유나가 원인이라고.
모두의 죽음이 키유나 탓이라고.
마녀가 이 사막에 발을 들여놓아서 생긴 일이라고!
그러니 키유나는 죽어야 했다.
아직 봉인의 마력이 바닥나지 않았을 때, 사룡을 향해 발악하고 죽어야 했다.
저 사룡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봉인의 마력을 해제하고, 키유나를 열쇠 삼아 완전하게 풀려나기 전에 죽어야 했다.
키유나는 그렇게 자신의 죽음을 결정했고, 그 과정에서 낯선 ‘투란’이 끼어드는 것을 상관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배려로 도망치라는 말을 해 줬으니 그다음 일은 키유나가 외면해도 괜찮지 않은가?
중요한 점은 저 ‘투란’이 키유나에게 죽음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것.
분명히 그뿐이었다.
그뿐이어야 했는데…….
‘최초의 일격.’
문득 키유나는 투란이 한 말이 뇌리에서 되뇌는 것을 느꼈다.
“천상의 수호자여, 천계의 수문장이여…… 여기 그 문을 열어 허락하라.”
잊고 있던 주문이 키유나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당연하다는 듯이 흘러나왔다.
키유나의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활짝 펼쳐지면서 그 속에서 검은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검은 날개는 단숨에 하얗게 물들었고, 키유나의 주변을 장악하는 백색의 광채를 뿌려 냈다.
광채 속에서 새하얀 깃털이 스며 나왔다.
광채는 금방 날개를 펼친 거인의 형상을 그려 냈고, 키유나는 그 품에 안겨 감싸진 듯한 모습이 되었다.
“페더볼트 메테오릭.”
점차 범위를 넓혀 가던 거인의 형상이 수십 미터에 달했을 때, 가볍게 흩날리던 깃털이 꼿꼿하게 서면서 재운 화살처럼 그 촉을 한 방향으로 고정했다. 깃털의 끝자락에 검은 구멍이 피어났고, 곧이어 작은 별의 형체를 머금었다.
별과 깃털이 하나로 뭉치며 거대한 용의 화신을 향해 쏘아졌다.
바람의 장막도, 휘몰아치는 모래의 방벽도 갑작스러운 마녀의 마법에 관통당하는 광경은 별빛 밤하늘이 갑작스럽게 유성우(流星雨)를 쏟아 내어 모래 벽을 뚫는 것처럼 보였다.
* * *
“으아아아아!”
―비명이냐? 함성이냐?
곁을 스쳐 가는 새하얀 것이 뿜어내는 어딘가 성스러운 힘의 돌풍을 날개로 걷어 내고 쳐 내면서 투란이 질러 대는 소리에 드라고니아가 매우 냉소적인 말을 덧붙였다. 애초에 반쯤 비명이고, 반쯤 함성인 복잡한 심경이란 것을 알기에 묻는 시늉만 했지 정말로 묻는 말은 아니었다.
‘저런 마법을 마녀가 쓴다는 말은 안 했잖아!’
―셀레스티얼 가드가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하다는 얘기는 했다만?
꽥꽥거리는 투덜거림에 잔뜩 비뚤어진 대답이었다.
‘야아, 안마! 그보다 열 배는 더 무시무시하고 어마어마어마하잖아!’
―그건 스타 슈터, 화룡 스타파이어가 하는 짓이고. 이제 봐라, 화룡과 버금가는 사룡의 능력이 어떤 것인가…… 저게 정말 그 샌드드래곤이라면…… 퀘이크가 올 거다.
여전히 투덜거렸지만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진지한 경고를 가벼이 넘기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아무리 키유나가 날린 저 섬뜩한 마법이 스쳐 갈 때마다 몸이 파들거리며 떨리고 맞지 않는 것이라도 가까이 다가오면 당장 쳐 내고 싶은 충동이 몰려온다 해도, 진짜 사룡 더스크라이더가 보일 능력은 그 이상이니까!
이런 투란의 기대에, 드라고니아가 마지막까지 확인하겠다고 다짐한 바에 호응하는 것처럼 허공을 울리는 거대한 격동이 길고 거대한 형체 주변에서 금방 피어올랐다.
별과 깃털의 새하얀 광채가 그 격동이 일으키는 보이지 않는 장벽과 격돌했다.
허공에서 부서지는 광채가 흩날리는 꽃잎처럼, 찢겨 나가는 실그물의 가닥처럼 흐느적거리며 번져 나갔다.
광채가 머금고 있던 강렬한 힘이 격동 속에 분쇄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그 힘과 힘이 맞물리며 생긴 틈새, 투란은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새파란 눈알이 번뜩이며 그런 투란을 노려봤다.
뿔에서 시작되어 머리를 넘기고 목으로 이어지던 뇌전의 그물 무늬도, 입에서 날름거리고 토해 내던 혀처럼 보이던 불꽃도 격동 속에 휩쓸려 사라진 틈새였기에 투란을 향한 것은 오직 크고 둥근 사룡의 눈동자뿐인 듯했다.
하지만 투란은 방심하지도 않았고, 방심할 수도 없었다.
사룡이 일으킨 격동과 키유나가 쏘아 낸 강렬한 공격이 빚어낸 틈새를 돌파하자마자 덮쳐 온 힘, 더욱 근원적이고 강력한 격동의 파문을 금방 겪고 있었으니!
―버티려 하지 마! 파고들어! 안 되면 도망쳐!
드라고니아가 버럭 외치고 있었다.
싸워야 할 것이 정말로 봉인에서 풀려난 사룡이라면, 그 권능을 정말로 맞서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투란은 피하거나 도망쳐야 한다는 드라고니아의 결론, 지금도 열심히 외치는 그 판단이 매우 옳다는 것을 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오버……오실…… 어쩌고 하더니, 진짜 초월적인 격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