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1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13)
오버-오실레이션(Over-Oscillation).
초월격동(超越激動), 궁극진동(窮極振動).
혹은 울티무스 바이브레이션(Ultimus Vibration).
모두 사룡의 권능(權能)을 일컫는 말이었다.
마법사가, 연금술사가…… 지혜를 갈고닦은 현자가 온갖 형용을 다 동원해서 설명하려 애쓴 결과, 실로 다양한 낱말을 꾸며 낸 셈이었다.
드래곤 로드 그림 투아란은 그런 노력에 대한 보상처럼, 사룡에게 부여된 그 힘을 간단하게 설명해 줬다고 했다.
“드래곤이 포효(咆哮)하면 세상이 흔들린다는데.”
스스로 생각한 말이 아니고, 드래곤의 말을 그대로 옮겨 준 것이라 했다.
―전해진 이야기가 진짜 그대로인가는 애매하다만, 그 말은 틀림없어. 분명히 용의 화신으로서 그 포효, 그 음파를 발생시키는 기능을 온몸으로 구현해 낸 것이니까. 하지만 그 때문에 사룡은 대지를 울리는, 삼라만상의 기반이 되는 기초 속성을 흔들어 거의 모든 물질을 완전 분쇄하는 괴이(怪異)한 권능을 얻었지. 그러니 투란, 놈이 진짜 사룡이라면 가까이 붙을수록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용암이고 뭐고, 일단 그 기반이 명확한 물질인 상태라면 완전 분쇄를 피하지 못해. 그 결과가 바로 모래, 저 티끌의 평원인 거고.
드라고니아가 미리 말해 준 바였다.
거기에 사룡이 불을 뿜는 것은 하품이나 다름없고, 뿔을 기반으로 뇌전을 일으키고 이를 쏘아 내는 것은 그저 머리를 까닥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그저 용의 화신으로서 지닌 몸짓에 불과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날갯짓으로 바위를 날리거나 언덕 같은 모래 더미를 몰아붙여도 특별히 그럴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몸을 움직인 것일 뿐이라고!
그러니 그런 소소한, 사룡의 입장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 전력을 기울일 궁리하지 말고 진짜 권능이 발휘될 때 주의하라고 드라고니아는 거듭 당분했다. 때문에 그 권능의 일부라도 미리 끌어내고 이를 피해 공격할 방법을 찾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함께 내놨다.
그래서 되든 안 되든 키유나에게 일단 먼저 한 대 치라는 말을 하긴 했다.
‘무슨 바위 속을 움직이는 것 같잖아.’
분명히 힘과 힘이 격돌하는 틈새를 파고들려는 상황인데 벽을 밀고 있다는 느낌만 한결같이 짙어질 뿐이었다. 그래도 억지로 힘을 줘서 파고들 수 있지는 않을까 했는데, 격돌의 여파가 느릿하니 잦아들면서 사룡의 주변을 메우는 격동은 틈을 지우며 촘촘하고 한층 더 강력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바위가 아니라 정련된 강철을, 그 강철로 만들어진 절벽에 몸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그 강철이 금방 가느다란 바늘이 되어 바들바들, 온갖 방향으로 부르르 떨면서 몸을 찔러 오는 분위기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야말로 살 한 점 한 점 찌르고 쑤셔서 찢어 놓으려는 듯한 상황!
―널 쳐다보기는 하는 것 같은데?
불쑥 나온 드라고니아의 말이었다.
자신이 허공에 박힌 조약돌 꼴인가 투란이 어이없어할 때였다.
곧이어 바늘이 창이 되기라도 한 듯이 더 굵고 날카롭게 느껴졌다.
‘젠장, 관심받아 좋을 일이 없구먼!’
새파란 눈동자, 사룡의 눈길이 닿을 때부터 투란도 바로 알고 있었다.
허공의 철벽이 더욱 강렬해졌고, 주변으로 몰아치는 바람이 더욱 사납고 날카로우면서 단단해졌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격동만으로 허공이 철벽처럼 단단해지다니…….
쿠우우우.
거대한 날개가 치솟았다.
갑작스러웠고, 그 날갯짓에 따라 모래 더미가 장벽처럼 함께 치솟고 있었다.
투란이 단단한 허공에 당황하니, 그냥 모래 더미로 장벽을 꾸며 주려는 친절이라도 베푸는 것일까? 번개가 맴도는 뿔을 내밀면서 입가에 불꽃을 머금은 꼴을 보니 바람결에 날려가 부서지는 꼴보다는 그냥 꿰뚫거나 깨물어 죽이겠다는 의도가 더 짙게 엿보이는 듯했다.
‘와아, 큰소리쳐 놓고 이게 뭐야.’
어느 틈엔가 사방이 꽉 조이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사룡이 악의를 품었든 호의를 품었든 자신이 철벽 속에 파묻힌 꼴이란 것을 깨달아야 했다. 그저 격동에 흔들린 바람이 찰랑거리며 단단해진 것뿐인데!
금세 투란의 몸에 금색 털 가닥이 맴돌기 시작했고, 그 바탕으로 금빛 비늘의 형상이 어른거렸다. 드레이크와 스테노아의 형상을 동시에 끌어내는 모습이었다. 더불어 투란의 이마도 불끈거리며 두 가닥 뿔을 뿜어내는 중이었다. 사룡의 격동을 느끼고 파악하기 위해서, 생체 파동으로 한몫하는 카프리곤의 뿔을 이용할 셈이었다.
이 와중에 투란은 사룡의 격동, 이 거대한 풍경을 더욱 정확하게 알고 싶었고 품고 있는 몬스터의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기 위해 온갖 궁리를 다하는 중이었다. 마음이 수 갈래로 갈라진 채, 한꺼번에 여러 가지 생각을 동시에 쥐어짜 내는 중이었다.
그런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냉정하게 말한다.
―이건 듣던 것보다 더한 상황이야! 투란, 물러서라! 이 격동은 지금 네가 품은 몬스터의 능력으로는 해소할 수 없어! 스테노아든 카프리콘이든, 그저 널 즉사당하지 않게 버텨 줄 뿐이라고!
‘그래, 그런 것 같긴 하다만…….’
투란은 순순히 인정했다.
백여 미터 거인을 떠올리게 하는 체격, 하지만 더욱 얇고 긴 몸 탓에 어딘가 훨씬 유연해 보이는 모습의 사룡. 그 몸, 특히나 날갯짓에 따라 치솟았다가 흩어졌다가 하는 모래 장벽은 격동 속에서 부서졌다가 뭉쳤다가를 되풀이하며 거대한 숨결에 따라 요동치는 듯한 광경을 그려 내고 있었다.
사방 수백 미터가 가볍게 거기에 휘말리는 중이었고, 스톰라이더의 날개를 활짝 펼친 채라도 십 미터가 되지 않는 투란은 예상보다 더 지독한 압력에 공중에 못 박힌 것처럼…… 모래와 바람의 장벽에 꽂혀 흔들거리는 꼴일 뿐이었다.
처음 키유나를 뒤편으로 날려 보낼 때는 격동이 좀 심하다 해도 어쨌든 골든드레이크와 카프리곤, 고르고니아의 첫째가 세 자매 속에서 강화된 능력을 발휘하면 어떻게 되겠거니 했는데 지금 상황은 그런 틈이 없었다.
그럼에도 투란이 뭔가 엿보는 듯한 낌새로 말을 흐리니 드라고니아가 바로 묻는다.
―왜? 뭐가 보이나? 뭘 할 수 있겠어?
‘어, 왕이…….’
중얼거림과 함께, 투란의 눈언저리가 푹 패어 들어갔다.
오롯하니 눈구멍만 뚫린 듯한, 눈알이 없는 기괴한 형태 속에서 가느다란 금색의 실뭉치가 꾸물거리며 흘러나왔다.
―아라크……?
드라고니아는 그 예상하지 못한 기이(奇異)함에 흠칫하며 말을 흐렸다.
그리고 투란은 아라크녹스 왕의 본능이 무엇을 하려는가를 어렴풋이 느꼈다.
‘아, 이게 되려나?’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이나 궁리가 아닌 본능적인 통찰을 통해 ‘알아버린’ 채로 투란이 바로 왕의 형상에 집중했다.
퀸 아라크레온의 형태를 기반으로 아라크녹스 왕의 형상이 투란의 몸 곳곳에서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미 드러낸 몬스터의 형상들을 유지한 채로, 그 위에 덧씌워지거나 융합하는 형태로 왕의 자태가 갖춰지며 이전에 해 본 적이 없는 모습으로 투란은 변해 갔다.
그 변화가 그저 외형만이 아니란 듯, 금방 투란의 손끝이 터졌다.
처절한 음향을 터뜨리며 손톱을 가르고 튀어 나간 것은 몇 센티를 가지 못해 사룡의 격동 속에 으스러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으스러짐과 함께 퍼뜨려진 작은 실그물, 실 가닥 하나하나가 허공에 걸린 채로 파르르 떨리는 순간…….
콰드득, 꾸드득.
허공이 일그러지는 소리를 내면서 투란을 억누르던 격동의 압력 한쪽이 사라졌다.
“아아아아아아!”
곧바로 투란이 입을 열고 높은 소리를 터뜨렸다.
그 소리에 파르르 떨기 시작한 스톰라이더의 날개가 금빛 비늘을 입은 채로 단단한 허공을 찢어 냈다.
치이앙.
파앙.
되풀이되는 찢기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투란의 비행이 다시 시작되었다.
―상쇄?
드라고니아가 그 광경의 의미를 찾아냈다는 듯, 그러면서도 의심스럽다는 듯이 나직하게 속삭였다.
‘아마 그럴걸?’
왕의 본능에 따라 저질렀기 때문에 투란은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드라고니아가 파악한 것처럼, 사룡의 격동을…… 비록 십여 미터도 안 되는 날개를 펼치고 지나갈 정도에 불과한 범위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그 일부라도 ‘지워’ 버린 채로 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방법은 왕이 자아낸 거미줄, 여왕의 기량을 뛰어넘는 듯한 거미줄이 격동에 따라 진동하고, 그 진동을 뒤틀어서 정반대되는 또 다른 진동을 만들어 내서 허공에 되돌려 준 것이었다. 그러면 새로운 진동과 만난 격동이 ‘지워’졌다.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두 가지 파문이 서로를 삼키며 사라진 듯한…… 상쇄의 현상이었다.
―이런 게 된다고?
어딘가 떨림을 간직한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다시 속삭였다.
투란이 마음 한구석으로 기억해 버린 왕의 방식, 그 수단은 그냥 보기에는 아주 간단했다.
세 가닥의 실로 꼬아 한 줄기로 만들어 낸다, 그 세 가닥의 첫 가닥은 사룡의 격동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진동하고 둘째 가닥은 그 진동을 뒤틀기 시작한다, 세 번째 가닥이 그 뒤틀어진 결과물을 받아들여 격동을 상쇄하는 새로운 진동…… 사룡이 일으키는 격동과 마주할 수 있는 또 다른 격동을 형성해 내는 것이다.
그리고 ‘절규하는 마물’, 군단장의 한자리를 차지한 것이 튀어 나가면서 그 거미줄이 그물로 허공에 자리 잡게 하면 그 영역에서 사룡의 격동이 사라진다!
그렇게 지워진 자리로 투란은 날아들고 나아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드라고니아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왕의 거미줄…….
어떤 물질이든 완전 분쇄한다는 사룡의 격동에 분쇄될 낌새는 전혀 없이 자연스럽게 이를 받아들이고 뒤틀며 역전된 형태의 파문을 머금어 버리는 기괴한 형질의 실이 대체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가!
‘지금 그런 거 따질 때냐! 묻지 말라고!’
품기 시작한 의문이 너무 짙고 깊어서 저절로 마음을 울릴 지경이었기에 투란이 바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사이에 입으로는 아까와 같은 높은 괴성을 지르는 채로 주먹을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마치 내 목소리로 너의 포효를 지운다고 시위라도 하는 듯한 외침, 그와 함께 투란의 주먹이 불씨를 머금은 검은 재처럼 물들면서 불꽃을 튕기며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허공에 튀어 나간 불씨는 곧 재를 휘날렸고, 재는 다시 주먹의 윤곽을 그려 내다가 그 속으로 꽉 채워 넣었다.
그렇게 거대하게 재로, 불씨를 가득 머금은 검은 재로 이뤄진 거대한 주먹이 만들어져 갔다. 그 잿더미는 어디론가 흩어지는 것이 당연한 듯했지만, 금방 재를 휘감는 가늘고 길며 촘촘한 그물주머니에 휩싸이고 감기면서 오히려 더 단단하게 뭉친 형태를 꾸며 내고 있었다.
사룡이 입을 연 것은 그 주먹이 어느새 움직이는 날개의 끝자락에 닿을 듯한 때였다. 열린 입에서 불꽃이 일렁였지만 격동 속에 순식간에 사라졌고, 대신 허공을 뒤틀며 일렁이게 하는 파문이 뿜어 나왔다.
―포효다! 투란, 맞서지…….
드라고니아의 격한 외침이 매듭지어지기 전에 투란의 머리가, 몸이 맹렬하게 부풀며 터져 나가고 있었다. 너무 격렬하고 강력한 탓에 소리조차 삼키는 듯한 폭쇄가 일렁이는 허공을 짓이겼다.
재와 불씨, 시뻘겋게 달아오른 격류가 투란을 대신하며 허공을 물들이고 채워 나갔다. 처음 내지른 주먹이 사룡의 포효에 사라질 듯하다가 오히려 그 격류를 머금으면서 거대한 불꽃이 엉긴 꼴이 되어 더욱 빠르게 사룡의 목줄을 향해 뻗어 나갔다.
불꽃과 재, 뚝뚝 흘러내리는 마그마의 거인이 출현한 것은 거의 그 순간이었다.
단숨에 백여 미터의 체격을 키워 내며, 온몸 곳곳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듯한 거미줄의 무늬를…… 때로는 재로, 때로는 붉은 줄기로, 때로는 불꽃의 형태로 머금은 거인이 사룡의 격동을 짓이기는 새로운 파동으로 온몸을 감싼 채로 사룡의 꼬리를 밟고 날개를 젖히며 그 목줄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리고 포효했다.
“우워어어어어어어어어!”
키유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추락하는 중이었지만 키유나의 검은 눈동자는 자신의 안전히 내려설 곳 따위는 한 조각도 비춰 내지 못했다.
신화(神話)에나 등장할 듯한 거인…… 용의 화신을 때려잡겠다는 모습이 마치 거신(巨神)이라 불러야 할 듯한 위엄을 간직한 거대한 사람의 형태가 사룡을 사나운 짐승에 불과하다는 듯이 움켜쥐고 후려치며 모랫바닥에 내다 꽂고 있었다.
철벽이 된 바람, 강철의 칼날이 되어 세상을 갈아 버릴 듯했던 모래의 격동 따위는 몸에 두른 재와 불꽃으로 무시하면서 사룡을 두들겨 패고 있었다!
“몬스터 로드……?”
키유나는 마녀로서 살아온 시간을 한순간에 되짚어 봤지만, 아무리 몬스터 로드가 기괴하다 해도 백여 미터의 거신을 품었다가 내뿜는다는 일은 상상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는 것을 기억해 냈을 뿐이다.
저런 거대한 몬스터를 품었다고 알려진 몬스터 로드가 있다면, 유일하게 키유나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했다.
‘드래곤 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