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1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14)
우르릉, 퍼억!
천둥 치는 소리와 함께 거인의 한쪽 옆구리와 엉덩이 반쪽이 터져 나갔다.
사룡의 두 다리가 할퀴며 내리찍은 자리였다.
‘우에?’
―파문 위상을 바꿔 버렸어! 진폭이 다른 격동이다! 상쇄를 알고 바꾼 거야!
투란이 다리 한 짝 크기가 거의 키클롭스랑 비슷하다는 것과 그 발톱에서 울려 나오는 색다른 파동에 의아해할 때, 드라고니아는 거인의 몸뚱이를 파쇄한 그 파동이 사룡의 격동과 어찌 다른가를 말하고 있었다.
‘아하, 그런 얘기란 말이지.’
설명은 한 귀로 흘려 냈지만, 투란은 아라크녹스 왕의 본능을 통해서 사룡이 무슨 짓을 했는가를 한 박자 늦게 파악할 수 있었다.
뿔과 꼬리, 발톱 부근에서 일어나는 격동이 이전과 달랐고 덕분에 거인의 몸이 파괴된 것. 세세하게 더듬으려 한다면 사룡이 격동을 어찌 제어하고 어찌 집중해서 이런 파괴 현상을 일으켰는가를 엿볼 수도 있었겠지만, 투란의 대응은 간단하고 명확했다.
“와아아아아아아!”
거인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거인의 두 눈이 부릅뜬 채로 금색의 광채를 머금었다.
사룡의 새파란 눈빛이 거인의 금색 눈빛과 마주치는 순간,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눈가와 비늘 사이로 검푸른 핏줄과 힘줄이 곤두서면서 사룡의 온몸으로 번져 나갔다.
‘우와, 이놈 봐라?’
투란은 스테노아의 눈에 저항하는 사룡에게 감탄했다.
외부로 방출하던 격동을 몸속으로 되돌리면서 거인을 후려 패던 위력은 줄어들었지만, 그로 인해 고르고니아의 맏이가 지닌 눈빛의 마력을 완전히 뿌리치고 있는 셈이었으니까.
―통하기는 통했다. 단지…… 격동을 이용해서 저 큰 몸을 강제로 움직일 뿐이야. 젠장, 이러나저러나 안 통했다고 해야 하나.
상황을 분석하며 드라고니아가 넋두리처럼 중얼거렸다.
콰앙, 퍼억!
그사이에 재와 불꽃, 붉은 격류와 시커먼 잉크의 폭포가 뒤엉킨 형상 속에서 터져 나간 부분을 매운 거인이 주먹으로 사룡의 머리통을 갈기고 무릎으로 몸통을 찍어 댔다.
콰르르, 우르릉.
거대한 몸집들이 격돌하는 탓에 천둥소리가 울려 나오는 듯했다.
사룡의 격동과 이를 상쇄하는 거인의 몸이 허공을 짓이기고 찢어 대는 듯한 음향은 거대한 범위를 울리며 닿은 것을 뭉개 버리는 파괴력마저 드러내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사방이 이미 분쇄된 형질, 모래와 티끌이 뒤엉킨 바람만 가득한 탓에 실제로 부서지는 것은 없는 듯했지만…….
‘야, 키유나는?’
격돌 속에서 투란은 문득 번져 가는 괴력의 영향을 떠올리며 물었다.
드라고니아의 대답은 물음이 나오는 순간부터, 그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빠르게 매듭짓고 있었다.
―천상의 날개로 아주 잘 버티고 있다. 거리를 뒀으니 전혀 안 다쳐.
‘좋아!’
염려를 떨쳐 내고 투란은 더욱 강력하게 사룡을 공격하려 한 손을 살짝 뒤로 당겼다.
거인의 주먹이 웅장하게 힘을 모으듯 팔꿈치를 뺀 그 순간, 사룡의 날개와 뿔이 날카롭게 휘둘러지면서 거인의 목과 머리, 가슴을 찍었다.
격동의 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상쇄를 피한 그 파문의 위상이 금방 거인의 형체를 부수며 흩어 내려 했다. 그 위력으로 거인의 한쪽 눈이 그대로 으깨졌고 목의 절반이 날아가며 머리가 기울어지며 끊어질 것처럼 덜렁거렸다.
어깨까지 반쯤 뭉개진 탓에 사룡의 목줄을 붙잡고 있는 거인의 손이 풀려났다.
크콰아아아아아!
사룡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한 맹렬한 포효는 새로운 격동을 일으키며 사룡의 몸과 주변을, 들러붙은 거인을 덮쳐 나갔다.
키이익, 키아앙!
날카로운 쇳소리, 불길이 날름거리는 칼날이 거인의 주먹 위에 맺힌 채로 솟구쳐 나오며 사룡의 새로운 격동을 갈라 버렸다.
부서졌던 거인의 몸에서 뭉클거리는 시커먼 체액이 솟구치며 수정빛을 뿌려 대고 복구가 이뤄지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거인의 주먹이 너클 블레이드를, 목줄을 쥐었다가 놓친 손아귀에서는 팜 블레이드가 돋아나며 반격을 한 것!
거대한 칼날에 걸린 왕의 거미줄은 사룡의 격동이 어찌 변화하든 대응할 수 있도록, 수십 가닥을 엮은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때문에 새로운 격동을 금방 상쇄하며 가르고 사룡의 몸을 찌르고 베었다.
검푸른 힘줄과 핏줄이 엉킨 사룡의 비늘이 녹색으로 물들며 제각각 떨기 시작하면서 거인이 내지르는 거대한 칼날을 튕겨 냈다.
키잉, 카카카칵.
그 접촉을 통해 투란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썩을 놈, 드레이크처럼 할 줄 아나 보네?’
비늘을 강화하는 생체 파동, 골든드레이크도 아기 때부터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재주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다 크다 못해 죽어서 썩어 문드러졌어도 당연해 보이는, 사룡씩이나 되는 놈이 그러니 투란에게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쓸모없는 짓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느낌대로 거인의 주먹과 손바닥에서 뻗어 나온 칼날은 잠깐의 저항을 금방 짓이기며 사룡의 비늘을 가르고 그 살점을 헤집으며 톱니처럼 긁어 내고 파고들어 갔다.
이에 대해 더욱 거세게 저항하려는 것처럼 사룡의 격동이 몸 부위마다 달라지고 더욱 다채로운 진폭을 지니며 변화했지만, 여왕과 왕의 힘을 동시에 발휘하는 아라크녹스의 대처와 반응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마치 사룡은 홀로 분투하지만, 투란은 거미 군단을 동원해서 맞서는 것처럼 순간마다 각기 다른 판단과 사고가 거듭되면서 사룡의 다양한 대응을 즉각적으로 파괴하는 듯한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 대해 드라고니아가 잠깐 할 말을 잃은 듯하다가 튀어오르는 사룡의 살점과 핏방울, 비늘의 파편을 뒤늦게 발견한 것처럼 외치기 시작했다.
―투란! 저 피! 저 살! 더스크라이더의 피와 살이다!
‘얀마, 무서워. 살 떨리게 소리 지르지 마.’
―너라면 할 수 있……!
‘알아, 안다고!’
사룡의 꼬리에 등짝을 꿰뚫려 심장 언저리를 관통당하면서, 긴 몸과 크기 탓에 짧고 작아 보이지만 다시 봐도 역시 키클롭스보다 커 보이는 두 발에 차여 골반과 복부가 으스러져 날아가는 상황에서도 투란은 미친 듯이 외치는 드라고니아가 더 무섭다는 듯이 대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흘려 내는 와중에도 투란은 몬스터 로드로서 지닌 특성을 강조하는 드라고니아의 의견은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중이었으니…… 열심히 칼질하고 톱질하는 동작 속에서 가늘고 길게, 희미하게 뻗어 나간 실그물로 사룡의 피와 살, 비늘 조각을 닥치는 대로 긁어모으고 있었다.
크콰아아아!
부수고 짓이겨도 마주치며 더욱 사납게 덤비는 투란을 향해, 그러면서도 피와 살, 비늘을 빼돌리는 모습에 사룡이 한층 더 격노한 듯이 포효했다.
허공이 울렸고, 찢어졌다.
하늘을 가리고 있던 누런빛 모래가 어스름한 그림자로 채색되며 황혼(黃昏)과 여명(黎明)의 어둠으로 사방을, 온 세상을 물들이는 것처럼 덮어 버렸다.
그 어둠 속에서 거침없이 퍼져 나가는 것은 사룡이 일으키는 온갖 형태의 파문, 격동뿐인 듯했다.
온 세상이 흔들리는 듯한 광경 속에서 거인의 모습마저 어둠에 파묻힐 듯한데, 그 풍경의 한쪽을 찢으며 새하얀 광채를 머금은 창이 날아들었다.
창은 격동에 휘말리며 공중에서 으스러져 바로 사라졌다.
그에 대해 드라고니아가 헛웃음처럼 말한다.
―셀레스티얼 스피어? 투란, 마녀가 돕겠다는데? 저런 걸 내질러 볼 정도로 너 지금 엄청나게 위험하게 보이나 봐.
‘위험하잖아! 잠깐, 너 지금 사방이 제대로 파악이 되는 거냐?’
―밖에서 보는 중이지. 이 격동 밖에서 말이야. 저쪽에 심어 놓은 내 의식과 네 안에 있는 내가 공명해서 객관적으로 이 상황을…….
‘설명 그만하고! 이놈, 몸뚱이 찢어진 자리로 손이 나가는 거 맞아?’
―벡터칼크로 궤도를 잡아 주겠다. 지금 목과 꼬리로 기간틱의 형태를 휘감으며 꽤 잘 피하고 있거든. 아무래도 하클의 칼날이 꽤 성가시고 아팠나 보니까.
‘젠장, 역시 이게 잔재주를 부렸구나. 어째 손맛이 없었어!’
투란은 투덜거렸고, 드라고니아는 멀리서 보는 풍경을 비춰 줬다.
사룡은 투란에게 직접 닿은 격동의 파문은 속이지 못하지만, 몇 겹으로 겹쳐진 파동이 닿는 사이에 그 너머로 몸을 감추며 거대한 칼날을 피해 내는 재주를 부리던 중이었다. 그로 인해 어둠이, 황혼과 여명의 어스름한 그림자가 온 세상을 덮듯이 투란을 가려 버린 것이었고…….
멀리서 보는 풍경, 미리 계산된 궤도에 따라 투란이 다시 제대로 겨냥하고 거인의 몸을 움직였다.
사룡이 잠깐의 재주로 비켜 냈던 투란의 공격이 다시 꽂혀 들어갔다.
콰르릉!
아예 천둥 치는 소리를 내면서, 사룡이 간신히 칼날을 피해 돌린 머리로 주먹이 꽂혀 들었다. 주먹 위의 칼날은 피했지만 주먹은 그대로 처맞은 셈이었다.
그리고 그 주먹에서 한 무더기의 뱀이 솟아올랐다.
뱀 무리가 바로 꼬이고 엮이면서 얼굴을 만들어 냈고, 세상에서 가장 추악할 듯한 얼굴이 섬뜩한 보랏빛 눈동자를 드러냈다. 붉은 테를 두른 보랏빛 눈은 거대한 사룡의 눈…… 새파랗다가 새빨갛게 변한 눈동자를 향해 요사스러운 광채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사룡의 눈알이 새하얗게 물들었다가 백은(白銀)의 거울처럼 번들거리는 색채로 변해 버렸다. 그 위로 거대한 주먹과 그 주먹에서 솟아난 메듀시아의 머리 형상이 고스란히 투영되며 제대로 거울 노릇을 하려는 순간, 메듀시아의 머리를 휘감는 금색의 파동을 머금은 하얀 촉수가 튀어 올랐다. 그 촉수에 파묻히며 메듀시아의 형상이 순식간에 넓고 커다란 주먹 위에서 사라졌다.
그 대신이란 듯, 주먹이 잠깐 움츠러드는 척하다가 팔꿈치부터 부풀며 아예 뼈대가 팽창하는 듯한 괴기스러운 몰골로 뻗어 나갔다.
콰아아아—앙!
‘이 자식, 정말 별 재주를 다 부리네! 얌전히 돌이 되기 싫으면 그만이지, 어딜 거꾸로 돌이 되라고 거울 짓거리야!’
투란이 소리 없이 으르렁거렸다.
―별 소용 없는 짓이기는 서로 마찬가지였다고 본다만…….
사룡의 머리가 튕기는 광경을 파악하며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어차피 고르고니아 세 자매를 품은 투란이니, 그냥 메듀시아의 힘은 되돌려지든 말든 상관없었다. 대단한 것은 눈동자의 색채를, 그 형질을 바꾸며 그 능력을 완전히 무시하는 사룡인 셈.
하지만 그런 재주를 보이고 사룡은 더욱 사납고 무거운 주먹에 처맞아야 했다.
어느새 투란이 일으켜 세운 거인의 형상은 원래의 백여 미터 수준을 넘어서는 중이었고 거의 백삼, 사십여 미터까지 확장된 채였다. 거대한 몸이 한층 더 부풀어 굵고 무거워지며 사룡의 길고 거대한 몸, 그 몸에서 흘러나오는 격동의 온갖 파문을 모조리 받아들이고 집어삼키겠다는 규모를 드러내는 셈이었다.
드라고니아가 서서히 우세와 여유가 갖춰지는 상황을 놓고 경고한다.
―피와 살을 먼저 삼키지 마라. 괜히 드레이크 때처럼 이상한 꼴 당할 수도 있어. 멀쩡한 놈 놔두고 그 앞에서 똑같이 생긴 미친놈이 되지 마라.
‘알아! 잔소리 말고, 키유나는?’
―나풀나풀 깃털처럼 잘 떠다니고 있다. 듣도 보도 못한 재주를 부리네. 아무튼 안전해. 영리한 마녀라니까.
‘그래? 그럼, 이놈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 이거 대체 죽기는 하는 거냐?’
머리를 젖힌 채로 허우적거리는 사룡, 목줄을 다시 꽉 쥔 손 말고도 거인의 손은 어느새 여덟 개가 더 돋아난 채로 사룡의 몸 곳곳에 거대한 칼날을 박아 넣고 있었다. 거대한 거인의 형상 곳곳에 시커먼 껍질처럼 갑주의 형태가 드러나 있었고, 자연스럽게 여러 개의 팔이 돋아난 모습이었다.
사룡의 날개, 꼬리, 다리보다 더 많은 그 팔로 완전히 제압했다 싶은 상황이었는데 사룡의 몸에서 울려 나오는 격동은 멈출 낌새가 전혀 없었다.
―토막이라도 내야지, 별수 없잖아?
뚱하니 드라고니아가 잠깐 더 상황을 지켜보는 척하다가 말하고 있었다.
어느덧 160에서 170미터에 달하는 거인의 체격이 사룡의 거대함을 압도하는 우람함을 과시하고 있기는 했지만, 다시 봐도 사룡은 죽을 낌새가 전혀 없어 보였다. 이쯤 되면 그저 찢고 으깨서 사룡이 움직임을, 이 격동을 멈출 때까지 쥐어패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어쩔 수 없네.’
투란도 사룡의 강인함을 인정하며, 팔들을 움직였다.
수십의 손가락 끝에서 ‘절규하는 마물’이 쏘아졌고, 사룡의 몸을 감는 견고한 그물이 그려지듯이 펼쳐졌다. 비늘이 그물의 실코에 파여 나가고, 사룡의 살이 잔혹하게 찢기며 피가 튀었다.
그럼에도 어스름한 그림자로 풍경을 장악하는 격동은 멈추지 않았다.
아무래도 몸이 완전히 토막 나야 멈출 것인가 해서 그 마지막 마무리를 하기 위해 투란이 힘을 더하려는데…….
사룡의 백은 거울 같은 눈알이 튀어나왔다.
눈알이 터지며 광채가 뿜어졌다.
그 광채 속에 담긴 마력이 투란을, 드라고니아를 당황시켰다.
‘이거?’
―봉인의……?
어떤 색이라 특정할 수 없는 광채가 사룡을, 거인을 뒤덮으며 어스름한 풍경을 지우듯이 번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