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1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15)
흩어지고 있었다.
사룡의 몸이 으스러지며 마력을 피처럼 흘려 내며 모래바람과 함께 사라져 가고 있었다. 마치 이제 죽는다고 알려 주는 듯한 그 변화는 명백하게 투란을 향해 ‘네가 이겼네.’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 썩을 놈이!’
투란은 사룡의 마력이 만들어 내는 흐름을 간파했기에 으르렁거렸다.
―봉인의 마력을 왜 이놈이……?
드라고니아는 사룡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봉인의 석주가 흘려 내던 마력과 동일한 성질이라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거인의 손에 쥐어진 사룡의 몸이 얇게 오그라들 듯이 으스러지는 과정은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더불어 격동이 소용돌이처럼 주변을 휘감으며 마력의 흐름을 가속하는 것 또한 뚜렷해졌다.
―녹원 쪽으로 흐른다, 이건 꼭 봉인으로 돌아가려는 것 같은데?
드라고니아가 한층 더 당황스러워하며 말했다.
기껏 두들겨 패서 거의 다 잡았다 싶었는데, 사룡이 다시 봉인되겠다는 듯하니까!
‘이게 지금 무슨 나들이 나온 시늉을 하고 있어!’
투란이 으르렁거림과 함께 거인이 포효를 터뜨렸다.
우워어어어어!
사룡이 일으킨 격동 속으로 거인이 온몸을 울리며 퍼뜨린 외침이 격돌했고, 금방 사그라들었다. 아무래도 그저 큰소리만 치는 정도로는 꿈쩍할 일이 없다는 것처럼, 그 정도 포효는 어림도 없다는 것처럼.
하지만 그 외침이 이지러지는 사이에 투란은 제멋대로인 듯한 격동이 교활하게 반응하는 것을 간파했고, 곧바로 여러 팔을 움직여 그 힘을 상쇄해 버렸다. 거대한 팔이 허공에 걸린 보이지 않는 벽을 뭉개는 듯했고, 소리의 영역을 넘어선 파동이 뒤틀린 채로 주변을 휩쓸어 갔다.
―소용없다, 이놈의 마력은 격동을 타고 제멋대로 흘러나가고 있어. 더스크의 영역을 벗어나면 바로 봉인의 석주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드라고니아가 더욱 넓은 범위를, 사룡이 드리운 어둠의 영역 너머의 상황까지 파악하며 말하고 있었다.
‘도망칠 곳을 정해 놨다는 거잖아. 그렇다면…….’
투란도 계속해서 으스러지면서 망가진 몸으로 반항하는 사룡을 더 패 봐야 의미 없다는 것을 느꼈다. 스스로 마력을 흩어 내며, 어떻게 보면 마력으로 자신을 변화시켜서 거인의 난폭한 공세에서 벗어나려는 중이니까.
이대로 사룡이 다시 봉인의 마력을 두르고, 돌기둥 속에 봉인된 꼴이 된다면 과연 사룡을 물리쳤다고 할 수 있을까?
지난날에도 전설로나 기억될 정도로 오랫동안 봉인된 채였으니, 다시 또 사룡이 이렇게 나타날 때까지 수백 년은 안전하게 되었으니 괜찮다고 넘겨도 되는가?
‘놓칠 수 없지!’
쿠르릉, 쿠웅, 콰앙.
거인이 발을 구르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으스러져 가는 사룡을 여러 팔로 움켜쥔 채였다.
어찌 보면 사룡을 가슴에 끌어안고 달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리 달리면서 여전히 주먹질, 칼질로 쥐어패고 베어 내는 중이니 이뻐하는 꼴이 결코 아닌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드리워진 어둠이 거인의 움직임을 따라 뒤틀리며 따라붙었다.
거인의 등에서 새로운 팔처럼 검은 촉수가 치솟았고, 그 촉수가 허공을 긁듯이 휘저을 때마다 거인의 달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질질 흘려 내리는 사룡의 마력, 그 흐름보다 거인의 내달림이 더 빨라진 것은 금방이었다.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사룡이 미간에서 번개를 일으켰고 입을 연 틈새로 불길을 뿜어냈다. 하지만 이미 새카맣게 타 버린 재이고, 그물로 포장된 듯한 거인의 몸은 그런 작은 번개와 조그마한 불길 따위는 따갑지도 않다는 듯이 무시할 뿐이었다.
―야, 키유나!
드라고니아가 외쳤고, 동시에 투란의 마음속에 키유나의 상태를 비춰 줬다.
키유나는 깃털로 이뤄진 공 안에 담긴 것처럼 격동이 일으킨 바람을 타고 멀리서 이리저리 휘둘리듯이 떠다니고 있었다. 모래바람이 짙은 탓에 흡사 모래의 파도에 휩쓸리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투란은 벡터칼크를 기반으로 키유나의 위치, 내달리는 거인과 부딪힐 궤도를 함께 보고 있었기에 냉큼 곁가지처럼 적당한 크기의 긴 팔을 내밀 수 있었다. 금방 긴 팔 끝에 달린, 사룡을 후려 패기에는 너무 얇아 보이는 긴 촉수 끝에 달린 듯한 묘한 손에 키유나를 보호하는 깃털 무늬 공이 얹히듯 잡혔다.
한 겹의 그물이 키유나 쪽에 재빨리 씌워졌다.
거인의 질주가 한층 더 빨라졌다.
사룡이 부서지는 속도도 빨라졌고, 흘러나가는 마력도 더 많아졌다.
모래 구름이 피어올랐고, 폭풍처럼 튕겨 나갔다.
목적지를 향한 거인과 마력의 경주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새 이백 미터에 높이에 이른 거인의 몸, 그 몸에 달린 수십 미터의 다리가 질주하고 여러 가닥으로 뻗어 나온 팔 중에서 사룡을 붙잡거나 패지 않는 몇 개의 팔이 모래를 찍으며 질주를 도왔으니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은 탓이었다.
―모래에 녹원이 파묻힐 수 있어!
도착지, 녹원에 어둠이 드리워지며 거인이 그 주변에 발을 딛기 전에 드라고니아가 경고했다.
이미 모래비는 녹원에 쏟아지는 듯한 상황이었다.
격동이 끌어 올리고 뿌려내는 어스름한 그림자가 아무래도 거인보다 먼저 닿은 탓도 있었고, 거인이 내딛는 발 구르기가 이를 보챈 듯한 낌새도 뚜렷했다.
워어어어엉!
괴성이 거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거인의 머리 언저리에서 머리카락으로 착각할 듯한 가는 선이 뿜어 나왔다.
그 가늘고 긴 가닥들은 이백 미터를 넘는 체격에서 뿜어 나왔기에 가늘게 보였을 뿐임을 증명하겠다는 듯, 벼락처럼 내쏘아지며 녹원의 사방에 모래비보다 먼저 닿았고 덮개 노릇을 하는 그물을 엮었다.
그렇게 녹원 가까이에 거인의 발끝이 닿을 무렵, 쥐고 달리던 사룡의 몸통은 거의 뼈다귀만 남은 기괴한 몰골이 되어 있었다. 그 뼈다귀조차도 계속 오그라드는 탓에 이제는 그저 이삼십여 미터의 와이번이나 드레이크가 뼈만 남아 부서지고 있다는 듯한 분위기를 띤 채였다.
하지만 그 잔해를 놓치지 않고 거인은 여러 손으로 붙잡고 꽉꽉 누르며 공중에 띄워 놓았다. 그런 거인의 가슴에서 새로운 손, 촉수가 불룩 튀어나오며 녹원을 덮은 그물 위로 뚝 떨궈졌다.
촉수 끝은 방울졌고, 방울이 뒤틀리며 대강 십 미터에 달하는 거인…… 사룡의 잔해를 붙잡고 몸을 기울이며 그림자를 드리운 거대한 형체 탓에 장난감 인형처럼 보였지만 정상적으로 따지자면 웬만한 키클롭스는 눈 깔고 내려다보기 적당한 거인이 녹원 한복판으로 내려섰다.
‘뭐야, 부서진 부스러기가 다시 모이고 있잖아!’
부서졌기에 봉인이 풀렸네 어쩌네 하며 드라고니아가 혼란스러워했던 돌기둥, 그 봉인의 석주가 파편을 주워 담으며 다시 흠결 없는 형체로 복구되고 있었다. 마치 이제까지 흩어져 있던 것은 잠깐 딴짓했을 뿐이라며, 본래의 형체는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었다고 외치는 것처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드라고니아는 이제 성난 듯, 그러면서도 혼란스러움이 한층 더한 듯이 외쳤다.
봉인의 석주가 드러내는 현상을 전혀 납득하지 못하는 듯.
‘알 게 뭐야!’
투란은 더욱 간단하게 마음을 정했다.
거대한 거인의 그림자 아래에서, 녹원을 덮은 덮개가 촘촘하게 엮는 지붕 아래에서 십여 미터의 검은 거인이 그 형상을 더욱 압축하면서 돌기둥 위에 손바닥을 내리찍었다.
손의 크기는 돌기둥을 잡아 뽑기 적당한 정도가 되었고, 작은 거인의 형체는 불끈불끈하며 무쇠뿔 오우거와 닮게 변했다.
―투란, 뽑아낸다고 어찌 되는…… 응?
경고하려던 드라고니아가 멈칫하다가 놀랐다.
사룡의 마력이 흘러들며 복구되는 돌기둥, 그 위로 시커먼 잉크가 번져 가는데 잉크 속에서 붉은 고리가…… 핏빛의 붉은 고리가 한가득 맴돌며 채워져 있었다.
동시에 그물 덮개 너머, 저 위를 숙여 덮는 거인의 여러 팔이 움직이며 아직 남은 사룡의 잔해를 품에 끌어안으며 포효했다.
워어엉!
그 포효와 더불어 거대한 거인의 몸 곳곳에서 핏빛의 고리 무늬가 떠올랐다.
그 무늬 주변으로 펄럭이며 얇게 저며져 내린 듯한 검은 장막이 열렸고, 사룡이 흘린 피와 살, 비늘의 파편이 가득 담긴 것이 드러났다. 뛰고 달리며 쥐어패서 끌어낸 사룡의 잔해가 거인의 몸 곳곳에 파묻히며 덮혀 있었다고, 그것을 한 겹의 장막으로 가리고 있었다고 알려 주는 광경이었다.
거기에 아직 완전히 바스러지지 못한 사룡의 잔해를 끌어안은 품속에서도 핏빛의 고리가 맺혔으니…….
‘어디 숨든! 다 삼켜 주마!’
강렬한 다짐과 함께 투란이 사룡의 정수를 삼키기 시작했다.
피와 살, 비늘로부터 시작해서 흩어져 뭉치는 독특한 마력에 이르기까지 사룡이 지닌 정수가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과 뒤엉켜 갔다.
봉인의 석주가 부르르 떨렸고, 저항하는 듯한 진동을 흘렸다.
사룡의 마력이 더욱 거세게 모여들고, 그나마 남아 있던 사룡의 잔해가 부스스하니 그대로 으스러졌다. 그대로 바람결을 따라, 격동의 여파를 따라 흩어질 듯한 잔해였지만 거인의 몸에서 뿌려지는 재와 범벅이 된 잉크의 파문에 휩쓸리며 그대로 핏빛 고리와 엉길 뿐이었다.
봉인의 석주, 돌기둥으로 모여드는 마력 또한 한층 더 선명해져 가는 핏빛 고리와 엮이며 더욱 짙은 무늬를 꾸미는 데 도움을 주는 듯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돌기둥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투란이 사룡의 잔해, 피와 살, 비늘이 모두 사라진 것을 알아차릴 때였다.
돌기둥에 맴도는 사룡의 힘, 순수한 마력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룡의 정수가 담긴 탓에 몬스터 엠블럼의 마력이 반응하는 그 힘만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힘을 머금으며 복구되던 돌기둥이 오그라들며 푹푹 꺼지며 패어 들고 있었다.
동시에 투란은 돌기둥이, 이 봉인의 석주가 문장의 풍경 속에 그 형체를 갖추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마치 사룡의 마지막 남긴 형상이 이 돌기둥, 봉인의 석주라는 것처럼.
‘유골(遺骨)?’
의아함이 자연스럽게 투란의 마음에 깃들었다.
그 순간 투란은 ‘답’을 알아차렸다.
우드드득, 끼드득.
봉인의 석주, 돌기둥이 한없이 오그라들며 작은 거인…… 시커멓게 물든 무쇠뿔 오우거의 손아귀 속에 돌멩이처럼 쥐어지다가 사라졌다.
우르릉.
허공에서 잔잔한 천둥이 울렸다.
사룡이 일으켜서 거인이 끌고 왔던 격동이 잦아들며 사라져 가는 마지막 여운이었다.
시커먼 그림자를 드리우던 모래 구름이 더 이상 부유할 힘을 잃은 듯,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후우욱, 우우웅.
작은 거인이 올려다보는 거대한 거인이 긴 숨을 내쉬면서 일으킨 돌풍이 녹원의 위를 한껏 휩쓸고 지나갔다.
몬스터의 형상을 거둬들이면서 투란은 문장의 풍경에 마음을 집중했다.
삼킨 것은 사룡의 정수인데, 정작 돌기둥이 생겨나는 광경을 향해.
* * *
‘천칭’의 정상에는 몇 미터 되지 않은 작은 돌기둥이 울퉁불퉁하고 길쭉한 바위처럼 생겨나서 투명한 거품에 휩싸여 놓여 있었다. 일부러 정성껏 깎지 않았다는 티를 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느 절벽 한 귀퉁이가 깨져 떨어지다 보니 굵고 긴 모양이 기둥 흉내를 냈다는 듯한 모양이 또렷했다.
그 바위의 널찍한 표면에 그림자가 새겨져 있었다.
얕게 파인 채로, 완연히 다른 색감으로 무엇인가를 그리고 새겨 넣은 형태.
긴 머리와 꼬리, 활짝 날개를 펼친 것이 두 다리를 드러낸 모양.
주변으로 뭉클거리는 묘한 구름, 안개 더미를 뿜어내는 듯한 낌새도 은은하게 그려진 채였다.
‘사룡, 더스크라이더.’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이 돌기둥, 봉인의 석주는 진짜 유골이었다.
다른 무엇인가가 아닌 사룡 더스크라이더의 유골이었다.
무슨 짓을 어떻게 했는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사룡 더스크라이더를 봉인하는 데 쓰인 소재는 다름 아닌 사룡 자신의 뼈였던 것.
자신의 꼬리를 문 뱀처럼 사룡은 자신의 마력에 물린 채로 돌기둥 모양만 남기고 사라진 것!
‘더스크라이더, 사룡 너한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문득 떠오르는 의문을 투란은 자제할 수가 없었다.
호기심이 없더라도 이 지경으로 꼬인 상황에 대해서는 저절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의문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이런 투란에게 사룡 더스크라이더의 유골, 바위처럼 보이는 뼛속에 새겨진 무늬가 바로 꿈틀거리면서 응답해 왔다.
“엥?”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에 투란은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응답은 언어의 형태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엿보는 아련한 꿈처럼, 투란은 사룡의 기억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