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2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16)
Chapter 184. 사룡(砂龍)의 꿈, 마녀의 추억
―까불지 마라, 퀘이커.
‘퀘이……커?’
낯선 이름으로 누군가 부르고 있었다.
내려다보니 손가락처럼 작은 사람이 보였다.
그 사람이 정상적인 체격이란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내려다보고 있는 자신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곳에서, 거대한 체격을 갖춘 탓에 사람이 작게 보일 뿐이다.
‘아…… 사룡!’
문득 투란은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은 지금 사룡의 기억을 경험하고 있다.
그 몸의 감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사룡으로서 기억을 더듬고 있는 중!
그러면서도 자신이 누군가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상태.
투란은 사룡이면서, 더스크라이더로서 누군가를 마주하는 중이었고 동시에 그런 과거를 돌아보는 몬스터 로드인 자신을 아는 채였다.
‘퀘이커라니, 뭔 이야기야?’
문득 작은 사람이 뭘 하려는 것을, 뭘 했던 것을 알아차리면서 투란은 갸웃했다.
사룡은 그 작은 사람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할 수 있는가 상관하지 않는 태도였다.
무엇이 오든 더스크라이더라 불리는 사룡, 용의 이름을 허락받은 용의 화신에게 아무런 피해도 입힐 수가 없다고…… 실로 본능적인 오만에서 나오는 여유로운 자세인 셈이었다.
그 때문인가, 투란은 작은 사람이 말하는 그다음 말이 무엇인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처음 무슨 말인가 귀를 기울인 호기심이 사룡에게서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사룡 더스크라이더는 더 이상 작은 사람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강력한 시각으로 인해 시야의 한구석에 비치니 그냥 내버려 둘 뿐이었다.
그런 채로 사룡은 자신의 위업을 다시 한번 둘러보면서…… 누런빛으로 변해 버린 세상을 감상하면서 조금 더 그 영역을 넓히겠다는 본능적인 충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충동이야말로 사룡이 마땅히 지녀야 할 것이라고 여기는 듯.
‘야, 그건…….’
작아 보이지만 멀쩡한 사람이란 것을 알았기에, 투란 자신도 저리 서 있으면 딱 저 모양으로 보일 것이라 알기에 사룡의 무관심한 태도가 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잔소리가 불쑥 떠올랐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억이 바뀌는 일이 있을 리가 없잖은가.
어쩔 수 없이 대체 왜 이런 기억을 되새기는가 갸웃하며 투란이 한 걸음 물러선 마음가짐으로 상황을 지켜보는데…….
저 작은 사람이 다시 한번 사룡을, ‘퀘이커’라 불렀다.
그리고 그다음에 벌어진 일은 사룡에게는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기억으로, 그 과거를 지켜보는 투란조차 잊기 힘들 정도로 충격적인 사태로 이어지고 있었다.
작은 사람의 그림자가 펄럭이면서, 언뜻 투란에게는 키유나의 셀레스티얼 가드인가 싶은 분위기를 느끼게 하면서 그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것은 누더기처럼 구멍이 숭숭 뚫리고 낡은 망토를 두른 인형(人形)…… 그 망토 속에 걸친 갑주는 뿔과 송곳, 날개를 지닌 악마의 형상으로 제작된 것이었고 두 손에 꽉 쥐고 있는 대검은 날개를 펼친 드래곤이 칭칭 감긴 듯한 생김새임에도 두껍고 폭이 넓으며 긴 칼날이 선명하게 드러난 채였다.
그 기괴한 그림자는 곧바로 투란의 눈가로…… 사룡의 눈길을 끌어서 시야 한복판으로 옮겨지는 듯하다가 어두운 벼락처럼 사라졌다.
그 순간, 사룡의 시야가 기울어졌다.
새카맣게 흐려진 자리만 남긴 채 그 그림자가 사라진 순간, 사룡의 목이 깨끗하게 절단된 것을 투란은 바로 알 수밖에 없었다. 시야의 변화에 함께 사룡이 자신의 목이 절단된 것을 분명하게 느꼈고, 이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점화시키는 열쇠가 돼 버렸으니까.
그리고 다시 한번 어두운 벼락이 기울어지면서 빙빙 도는 세상 풍경이 사룡의 시야에 포착되었을 때, 기다란 사룡의 목은 한번 더 토막 나고 있었다. 워낙 긴 목이니 몇 번 더 토막을 쳐도 토막마다 커다란 바위기둥처럼 보일 듯했다. 하지만 어두운 벼락은 한번 더 잘라 낸 그 목을 꿰고 있을 뿐인데.
‘어?’
문득 투란은 토막 난 사룡의 목, 그 뒤틀린 채로 허공에서 꿈틀거리는 토막이 봉인의 석주와 닮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대검에 꿰인 거대한 목줄의 토막은 금방 작은 사람 곁으로 옮겨졌다.
악마의 형상을 새겨 넣은 독특한 갑주의 인형은 다시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며 사라졌다. 인형이 남긴 것은 옮겨진 사룡의 목, 토막 난 기둥 같은 덩어리뿐이었고…… 작은 사람 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렇게 목이 잘려 지상에 머리를 떨구고 몸이 무너지며 날개를 늘어뜨리며 쓰러지는 사룡으로 채워졌다.
‘진짜?’
대답이 나올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투란은 저절로 이런 물음이 마음을 꽉 채우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도대체 저 악마 갑옷 입은 인형이 뭐길래 그 칼질 한 방에 사룡이 참수(斬首)당하고 긴 목이 한번 더 토막 난단 말인가!
대체 이 작은 사람은 누구길래 저런 무지막지한 인형을 부린단 말인가!
그 앞에 섰다가는 투란도 목이 바로 뎅겅 잘리고 나서, 잘린 머리를 바닥에 떨군 채로 ‘누구냐, 너?’ 하는 기분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을 듯하잖나!
이렇게 당황스러워하는 투란처럼 사룡도 보고 있었다.
몸에서 끊어진 머리인 채였지만, 아직 사룡은 사물을 인식하며 상황을 볼 수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몬스터답게 끈질긴 생명력이라 해야 할지, 짐승도 가끔 머리 끊어진 채로 눈알 굴리기도 하니 당연하다 해야 할지…… 저절로 새어 나오려는 잡념을 떨쳐 내면서 투란은 그저 이어지는 사룡의 기억에 더 집중하려 했다.
그 노력의 보상인 듯, 사룡은 머리가 떨어진 채로 작은 사람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가 하는 짓을 아주 잘 지켜보며 기억하고 있었다.
“퀘이커, 제대로 된 드래곤 어웨이큰도 아닌 주제에 강대한 힘을 휘두른 대가를 치를 때가 왔다. 어차피 생각 없이 본능대로 사는 녀석이니까 이런다고 반성할 일은 없겠지만…… 그 본능을 억제당하면서 감금된 채로 굶주리는 고통은 느낄 수 있잖아.”
냉소적이며 신랄한 말이었다.
그 말끝에 이어진 소리는 사룡이 기억하지만 투란으로서는 무슨 말인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다만 그 소리와 함께 토막 난 채로 기둥 모양으로 놓인 목, 머리와 몸통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그 목이 부들부들 떨면서 주변으로 격렬하고 기괴한 파동을 퍼뜨린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사룡이 그 이변(異變)를 느꼈고, 어둠이 주변을 맴돌며 더스크라이더가 그 힘을 발휘하는 듯한 상황이 펼쳐졌다.
투란은 이어진 그 상황에 화들짝 놀랐다.
‘어? 으아앗!’
사룡의 날개가 끌어당겨지며 일그러졌다.
그 날개의 중심인 몸통 또한 이끌리며 일그러졌다.
일그러진 형상은 소용돌이처럼 나선의 궤적을 남기며 토막 난 목으로…… 덩그러니 놓인 바위 기둥처럼 돼 버린 그 목으로 끌려들어 갔다.
피와 비늘, 살과 뼈의 단면(斷面)을 드러내던 목이 어둠과 모래 티끌에 휘감기며 바위의 질감을 머금는 변화를 일으켰다. 그 변화의 마지막, 끝까지 남아 있던 중심인 듯 보이던 피와 살, 비늘의 반점을 향해 사룡의 머리가 끌려들어 갔다.
시야가 뒤틀렸고, 세상이 맴돌며 소용돌이치는 듯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사룡은 한 덩어리의 돌기둥이 된 채로 덩그러니 놓인 상황을 한 박자 늦게 자각했다.
혼란과 당혹, 기묘하게 이어지는 감금의 고통…….
사룡의 기억은 그 뒤로 길게 이어진 세월을 살짝 비쳤고, 꿈이 끝났다.
우드득.
투란은 돌기둥 속에서 사룡의 무늬가 꿈틀거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꿈은 끝났고 다시 문장의 풍경에 정신을 집중한 상황.
“그거 깨지는 거 아니냐?”
불쑥 드라고니아가 묻는 말이었다.
투란은 ‘엥?’ 하다가 그 말이 일리가 있다는 것을 퍼뜩 깨달았다.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사룡이, 더스크라이더가 돌기둥 속에서 몸을 움직이며 진짜 형상을 드러내고 싶어 하고 있었다.
현실이라면 그 작은 사람이 만든 봉인의 술식에 갇혀서 제대로 그 형상을 드러낼 리가 없는데, 정수만으로 온전한 형상을 드러낼 수 있는 문장 속이니 마음껏 그 자태를 뽐내고 싶다는 기분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는 투란에게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돌기둥 꼴로 문장 속에 들어선 것만으로도 아주 괴상한 일인데, 이게 지금 문장 속에서 오랜 봉인에서 해방되고 싶다고 꿈틀거리고 있다니!
그렇다면 투란이 한껏 덩치를 키워서 열심히 싸웠던 더스크라이더는 대체 뭔가? 그 사룡은 뭐 하는 놈이었기에 키유나가 자신 때문에 해방되었다고 하며 쫓고 있었단 말인가?
“대체 무슨 일이냐고, 이거!”
저절로 울화가 담긴 외침이 쩌렁쩌렁 터져 나갔다.
별빛 무리가 찰랑거리면서 반짝반짝하는 틈새로 드라고니아의 한숨을 닮은 말이 흘러나온다.
“이제 이해가 안 가고 납득이 안 되는 일이 얼마나 짜증 나는가 좀 알겠냐? 어차피 그런 상황이야. 생각은 나중에 하고, 그놈…… 사룡을 품는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저 아래로 떨굴 것인가부터 결정하지?”
“크으읏! 젠장할!”
투란은 한번 더 성난 소리부터 흘렸다.
마음은 이 상황을 깊이 좀 생각해 보자고, 엿본 기억의 꿈을 드라고니아에게도 알려 주고 함께 의논해 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더스크라이더는, 사룡은 이미 돌기둥의 형체를 뒤틀면서 모래 티끌을 뿌릴 낌새가 역력했다. 그야말로 이제 해방될 수 있으니 한껏 그 자태를 드러낼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강렬한 본능!
이 본능을 억압하려 들려 한다면 투란은 반항적인 사룡을 억누르고 감금하는 짓에만 상당히 정신을 소모하고 집중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이 본능을 적절하게 풀어 주고 다루려 한다면, 사룡은 완전히 투란의 몬스터가 될 터!
“얕보지 마라. 도망치는 놈을 때려잡아 삼켰다고 해서 완전히 굴복시킨 것으로 착각하면 안 돼. 용의 화신이라 불린 녀석이야. 어떤 복잡한 정신 구조, 의식 상태를 숨기고 있을지 모른다고.”
드라고니아가 어렴풋이 투란의 갈등을 알아차린 듯이 말하고 있었다.
“얕볼 리가 있냐. 단지…….”
대꾸하다가 투란은 말을 흐리고 멈췄다.
아래로, 심연의 각인이 만들어 낸 저 아래로 처박을 것이라면 이렇게 갈팡질팡하면서 고민할 까닭이 있을까?
투란은 자신이 성난 까닭을 깨달았다.
‘갖고 싶다…….’
힘들게 싸워서 삼킨 몬스터였다.
그 정수를 봉인의 석주까지 마다 않고, 그 수상한 상황을 무시하며 삼켰다.
그러니 당연하게 갖고 싶다!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부분 또한 분명했다.
꿈을 통해 엿본 사룡, 봉인당할 때의 더스크라이더는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꽤 복잡한 녀석이었다. 긴 세월 동안 자신이 납득하지 못한 부분을 간직하고 있다가 대뜸 투란에게 보여 줄 정도의 ‘의지’를 지닌 놈이었다.
드레이크 때처럼 한꺼번에 그 지난 세월을 풀어놓으며 투란을 흔들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은 그런 ‘의지’의 작용.
달리 생각하면 투란에게 가장 큰 의문에 대해 물으면서 다른 부분은 감출 줄도 안다는 것.
‘드라고니아처럼 마법을 부리지는 않아도 비슷한 짓을 하는 놈.’
몬스터 에센스로서 문장에 삼켜지고 투란의 마음속에 들어선 상황에서도 ‘의지’를 지니고 자신을 감출 수 있는 능력.
이런 것을 하나 더, 이미 있는 드라고니아에다가 하나 더 추가해서 문장에 담아 둬도 괜찮을까?
과연 정신을 온전하게 보전할 수 있을까?
살짝 고민하던 투란은 문득 쉬잇쉬잇 하는 묘한 울림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치 가슴속에서 피어나듯, 마음을 울리듯이 스며 나온 울림은 자연스럽게 풍경을 울리면서 투란의 생각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투란에게 스며드는 물음.
―뭐가 겁나지?
누구냐고 되물을 필요는 없었다.
그 물음이 마음에 차오르는 순간, 투란은 지금까지 자신이 삼킨 몬스터 모두가 활발하게 ‘천칭’의 풍경 속을 거닐면서 말을 걸어온다고 느꼈으니까.
그 모두가 투란에게 웃는 듯했다.
투란이 이미 싸워 이긴 사룡이 아니냐고, 더스크라이더고 뭐고 도망치다가 돌기둥 속에 숨으려 하다가 삼켜진 놈 아니냐고!
드라고니아는 그 속에서 납득 못 할 상황에 대해 꽤 경계하는 마음을 유난스럽게 돌출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 바탕은 똑같았다.
똑같았기에 투란에게 마음을 정하라고 노골적으로 말한 것이다.
어느 쪽을 권하지 않으면서 오롯하게 투란에게 결정하라고.
다만 그 위험성을 무시하지 말고 마음에 깊이 새겨 두라고 경고할 뿐이었다.
피식, 한숨처럼 웃음을 흘리면서 투란은 마음을 정했다.
“사고 치지 않게 잘 관리하다가, 사고 칠 것 같으면 그때 없애 버리자.”
가만히 금이 가는 돌기둥, 당당하게 문장의 풍경 속에 그 형체를 고스란히 드러낸 봉인의 석주 속에서 움직이는 무늬 상태를 벗어나려 하는 더스크라이더를 향한 선전포고처럼 투란이 말했다.
그리고 바로 금이 가며 갈라지는 돌기둥을 저 아래로 밀어 버렸다.
어찌 되었든 ‘천칭’ 위에 두고 볼 놈은 아니니까!
‘천칭’의 기둥을 타고 돌기둥이 으스러지면서 떨어져 내려갔다.
암녹색의 날개가 우아하게 펼쳐지며 돌기둥의 파편 사이로 솟아났다.
화아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