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2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19)
“할머니? 할멈? 그렇게 불러야…… 켁!”
―장난치고 싶냐?
키유나가 갑작스럽게 투란의 뺨을 꼬집었고, 드라고니아는 황당해하며 핀잔했다.
투란은 웅얼거림을 멈추면서 키유나를 바라봤고, 키유나는 자신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왜?’
―흐흠?
상황은 조금 기묘했다.
마치 자신의 손이 왜 그리 움직였는가를 고민하는 듯한 마녀의 모습.
갑작스럽게 아주 친근한 동네 꼬마의 장난스러운 말을 야단치듯이 내민 소녀의 손이 자연스럽게 투란의 뺨을 잡고 꼬집어 버린 상태.
그런데 정작 그 손짓을 한 소녀, 마녀 키유나는 자신의 행동에 꼬집힌 투란보다 더 놀란 듯하다?
어느덧 둥그렇게, 사람 키보다 더 높이 쌓인 담장 너머로 모래 티끌이 안개처럼 치솟았다가 밀려오며 사막이 녹원에 관심을 기울이고 넘보는 듯한 풍경을 드리웠다. 녹원은 담장에 보호받는 연못의 물결을 흔들며 잔잔하게 넘어오는 모래의 색채를 모두 집어삼키려는 듯이 보였다.
그 풍경 속에서 멍하던 키유나가 손을 내렸다.
투란이 갸웃하며 키유나를 바라봤다.
소녀의 입술이 달싹였고, 키유나는 변명하듯 말한다.
“꼬맹이, 투란이란 꼬마를 만났어.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사막의 마을을 처음 봤을 때 그 마을에서 가장 작고 어린 아이였어. 유랑하는 마을이었고 사막 밖에서 온 나를 동반자로 받아 줬어. 그래서 오래 함께했어. 그 꼬마가 커서 어른이 되고, 아이의 아빠가 될 때까지. 그래도 여전히 내게는 꼬마로 보인다고 놀렸는데…… 그때 투란이 말했지, 난 할머니가 된 거냐고. 그래서 꼬맹이에게 하던 대로 볼을 꼬집어 줬어.”
“음, 키유나? 그 투란이 나랑 닮았어?”
조심스럽게 투란이 물었다.
“아니, 전혀.”
입가를 실룩이면서, 자신이 그러는 줄도 모르는 채로 키유나가 대답하고 있었다.
―정신이 나갔는데? 원래 그랬으니 사룡을 잡았다고 좋아질 리가 없기는 하군.
드라고니아가 냉정하게 키유나를, 마녀의 상태를 평가했다.
투란은 그 상태를 이용하듯 재빨리 묻는 말을 잇고 있었다.
“나랑 닮았으면 그림자 속에서 툭툭 뭐가 튀어나오는 거냐고 굉장히 물어봤을 텐데…… 닮지 않았다니, 그런 일은 없었겠네?”
이 순간 투란이 슬그머니 흉내 내는 말투는 마을 애들 꼬드길 때 샤오 할배가 써먹던 빙빙 돌려 물을 때의 잔꾀가 가득 담겨 있었다.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약간 혹은 많이 정신 상태가 이상해진 탓인가, 키유나는 바로 대답을 하고 있었다.
“어릴 때는 물어봤어. 그때는 조금 닮았을지도 몰라.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는 아무도 내가 물려받은 계약에 대해 묻지 않았어. 어른이 되면서 자제심이 생겼든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게 된 걸 거야. 사막에 자리 잡고 떠도는 마녀는 내가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고 멀리서 찾아온 마녀는 늘 있었으니까.”
“늘?”
“늘. 자리가 비워질 것 같으면…… 사막은 계약의 마녀가 사라질 것 같으면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다른 곳에서 새로운 마녀를 부르니까, 늘 있었어. 나는…… 그 부름을 받고 여기 왔어. 여기 와서 알았어, 단숨에 알지는 못했지만 몇 년에 걸쳐서 알게 되었어. 여기가 내게 고향이 될 곳이라고…….”
키유나의 말이 잦아들다가 멈췄다.
투란은 가만히 입을 다물고 키유나의 숨소리를 세듯이 기다렸다.
담장을 넘어온 모래바람이 티끌을 살짝 뿌렸지만, 연못이 찰랑이며 피워 내는 안개가 이를 삼키고 담장 안을 채우며 내리누르고 있었다. 모래의 영향력을 담장을 세운 녹원이 스스로 억누르는 듯한 광경이었고, 누가 봐도 신비롭다 여길 풍경이었다.
그 풍경을 차분히, 느릿느릿 둘러보며 키유나가 말을 잇는다.
“그러니까 죽어서 모래 망령이 된다 해도 당연하다고.”
투란은 늦게 울려 퍼진 목소리에 마력이 깃든 듯한 낌새를 느꼈다.
키유나가 자신의 각오를, 자신의 다짐을 되풀이하며 맹세한다고 여겨지는 분위기.
그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마법이라도 걸고 있는 듯한 마녀의 모습이라 할 수도 있어 보였다.
―그 집착 때문에 미친 건가?
드라고니아는 짧게 키유나의 태도를 평했다.
‘미쳤다기보다는…… 후회하는 거잖아. 역시 내 말을 안듣고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는 거네.’
나오려는 한숨을 참으면서 투란은 소리 없이 툴툴거렸다.
키유나는 이런 투란의 모습을 보지 않는 듯, 혹은 갑작스럽게는 연못이 소용돌이치는 광경에 눈길을 빼앗긴 듯 한 걸음 딛고 있었다.
투란 또한 그 갑작스러움에 흠칫하며 눈길을 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드라고니아는 이 상황에 대해 빠르고 냉정하게 판단한 듯 말한다.
―정령이다! 뭔 짓을 하는 거지, 모래왕은?
연못의 소용돌이가 회오리처럼 치솟았고, 기둥처럼 서서 맴돌았다.
그런데 그 물결 속에 뭉쳐진 모래 티끌이 짙고 누런빛을 띠면서 물결로 이뤄진 회오리를 물들고 번져 나오더니 그대로 모래 기둥처럼 변해 버리잖는가.
투란은 그 광경에 왜 드라고니아가 모래왕을 언급했는가 바로 알 수 있었다.
물속에서 튀어나온 모래 기둥이라니…….
키유나가 그 기둥을 보다가 더듬거리는 말투로 중얼거린다.
“사막의…… 왕?”
작은 그 목소리에 곧바로 웅장하게 녹원을 흔들며 퍼지는 소리가 대꾸한다.
“약속의 징조가 이뤄졌노라, 하지만 아직 저주는 끝나지 않았다. 마녀여, 너의 사명은 죽어서 모래왕의 권속에게 휩쓸려 망령이 되는 것이 아니다. 천상의 수호자는 빛의 사명을 해제하고, 이 땅을 내게서 되찾기 위한 것. 마녀여, 사명을 포기하겠는가? 바람과 함께 이 대지를 가두고 모래왕의 축복을 왜곡하는 자에게 복종하려 하는가? 이제까지 어떤 마녀도 하지 않은 사명에 대한 배신을 하려 하는가?”
말과 함께 뒤틀리며 소용돌이치는 형상을 갖춘 모래 기둥에서 날카롭고 긴 창이 툭툭 튀어나오며 휘어진 채로 키유나를 겨냥하고 있었다.
―죽이려는 것 같은데!
드라고니아가 곧바로, 길게 뻗어 나와 촉수처럼 휘어진 채로 키유나를 겨냥한 채로 그 안에 담긴 살의를 거침없이 뿜어내는 여러 가닥의 창이 장난이 아니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그사이에 투란은 ‘아? 아!’라고 신음하는 듯한 소리를 내며 주변 담장을 둘러봤다. 뭔가 옛날 마법인가 했더니, 이 녹원을 감싼 저 담장을 모래왕이 만들었다고 겨우 알아차린 셈이었다.
그리고 뭣 때문인가 키유나를 죽이겠다고 협박 중인 것도 명백해졌다!
‘우와, 뭔 왕이란 녀석이 성격이 이렇게 가벼워!’
앞서 봤던 그 거대한 광경을 꽉 메우고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샘을 뚫고 올라와 쪼그마한 소녀 앞에 굵은 창을, 잔뜩 괴상한 분위기를 품은 창을 십여 가닥이나 들이대면서 하는 말이 저게 뭔가!
한데 키유나는 그런 모래의 창 다발을 향해, 마구 튀어나와 휘어진 채로 자신을 겨냥하는 날카로운 창끝을 향해 다가가면서 묻고 있었다. 조금 떨리는 목소리이기는 했지만 협박받아서 겁먹은 것과는 아주 다른, 분노가 얽힌 외침이었다.
“모래왕! 당신, 진짜 있었군! 정말로 모래 망령이 되는 저주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 있었어! 정말이었어!”
“에? 키유나?”
투란이 너무 과격한 마녀, 소녀의 태도에 당황해서 허둥지둥한 소리로 부르고 말았다. 지금 그냥 모래 창도 아니고, 정령이 일으킨 강력한 모래 창…… 그것도 그냥 정령도 아닌 강력한 힘으로 왕이라 불릴 지경인 거대한 정령이 ‘널 죽이겠다!’라고 들이대는 상황인데 받을 빚이 잔뜩 있는 빚쟁이처럼 대들다니!
스스슥.
모래 창이 뒤틀리면서 모래 기둥으로 되돌아가는 회오리의 궤적이 되었다.
녹원을 채우는 모래왕의 말소리가 다시 퍼져 나온다.
“모래왕은 늘 있었다. 성궤가 계약을 증명하니, 계약의 시간 동안에 이 대지에 계약자가 원하는 축복을 퍼뜨리며 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배덕과 용의 저주가 뒤엉키며 모래왕의 축복은 이제 저주가 되어 있지. 빛의 사명이 이 땅을 수호하며 침략을 저주하는 대신, 바람의 미궁과 함께 이 땅을 폐쇄하고 태어난 자들을 가둬 망령의 운명을 머금게 해 버린 것처럼. 오랜 약속을 잇는 마녀여, 사룡의 봉인이 파괴된 지금 그대는 천상의 수호자에게 부여된 의무를 행할 때가 되었다. 그 의무를 거부하겠다 하면, 모래왕은 그대를 죽이고 새로운 마녀가 천상의 수호자를 계승받도록 해야 한다. 어찌하겠는가? 죽어서 망령이 될 수 없는 마녀여, 선택할…….”
“워어어어! 자아아암까아아안! 키유나, 잠깐! 모래왕 기다려 줘! 우리 잠깐 얘기 좀 하고 대답해 줄게! 정말로 잠깐이면 되니까, 기다려 줘!”
투란이 버럭 소리를 치면서 바로 키유나의 허리를 두 손으로 붙잡아 모래왕에게 향했던 눈길을 돌려놨다. 그래도 성난 듯이 고개를 돌리려 하는 키유나였지만 투란은 더욱 다급하게 버럭버럭 외치는 말투, 낮게 으르렁거리듯이 떠들어 그 관심을 끌고 있었다.
“키유나! 지금 모래왕이랑 싸우려고? 미쳤어도 그건 아니지! 쟤는 샌드드래곤보다 더한 놈이라고! 지금 싸울 때가 아냐! 난 아직 사막에서 길 찾기 똑바로 할 자신이 없단 말이야! 나랑 약속했잖아! 그것부터 가르쳐 주고…….”
이리 떠드는 사이, 투란의 뇌리에는 드라고니아가 쩌렁쩌렁 질러 대는 말이 울려 퍼지는 중이었다.
―그게 설득이냐! 야, 이 미친놈아! 아무리 미친 마녀라고 그런 말 듣고 납득하겠냐! 정신 나간 소리 하지 말고, 셀레스티얼 가드를 계승하며 맺은 약속을 깰 거냐고 물어! 모래왕이 묻는 것도 그 얘기야! 거기 보태서 모래왕을 해방시키기 위해 힘이 필요하다는 말도 더하고! 그편이라면 마녀가 미쳤어도 당장 싸울 생각은 못 할 거다! 얼른!
머릿골이 반쯤 뒤틀리는 강렬한 제안은 결국 투란이 하던 이야기까지 비비 꼬이며 뒤트는 데 성공했다.
“약속을 지켜야잖아! 마녀가 계승한다는 약속, 쟤도 키유나가 약속 지키냐고 묻고 있는 거잖아! 모래 망령인가 뭔가 치워 버리려면, 기둥 노릇하는 쟤를 어떻게 해 줘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내가 지금 뭔 소리 하는지 알겠어?”
이리저리 쏟아 내는 말을 하다가 투란은 문득 ‘내가 뭐라는 거지?’ 하고 갸웃하는 기분에 바로 키유나에게 책임을 떠넘기듯 묻고 멈춰야 했다. 자신이 뭔 말을 하는가는 드라고니아 때문에 헷갈려서 모르겠지만, 마녀인 키유나라면 대충 상황 봐서 뭔 이야기인가 알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속셈도 순식간에 투란의 마음을 스쳐 갔다.
그 기대에 호응한 듯, 키유나가 눈을 깜박이다가 느릿느릿 투란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를 울려 내기 시작했다.
“모래 망령을…… 해방한다고? 여태껏…… 어떤 마녀도…… 용의 저주를, 샌드드래곤의 봉인을 어쩌지 못해서…… 손도 대지 못한…… 이제는 손댈 수 있어. 정말로…… 모래 망령을 해방할 수 있어!”
키유나의 손이 바로 투란의 손을 밀어냈다.
더듬거리다가 점차 강렬해지는 키유나의 눈길에 투란은 언제 손을 뺄까 하던 중이었기에 냉큼 손을 떼며 한 걸음 물러서 줬다. 허리를 풀려난 키유나가 바로 돌아서며 다시 모래왕을, 모래왕이 드러낸 모래 기둥을 바라보며 외친다.
“희망은 이뤄지는 거야? 모래왕, 말해! 사막의 저주를 해제할 수 있어? 정말로? 정말로 내가 할 수 있는 거야?”
윙윙거리는 말소리가 부드럽게, 담장을 두드리며 밀려오는 모래바람을 거꾸로 밀어내면서 화창한 하늘을 드러내는 듯한 파동을 담은 채로 녹원을 채우고 담장 너머로 퍼져 나가며 마녀의 물음에 답한다.
“징조를 보라, 예언의 한 가지는 이뤄졌잖은가? 이제 모래왕과 약속한 자가 진실한 이름을 되찾고 휘광의 성궤를…… 해결할 날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마녀여, 그대가 약속을 지켜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니…… 사명을 기억하고 받아들여라. 이제는 맹약과 함께 죽을 때가 아닐지니…….”
투라은 가슴 한구석이 뜨끔하는 것을 느꼈지만, 동시에 모래왕이 생각보다 부드럽고 다정하게 마녀를…… 키유나를 설득하려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 거대한 모습을 내세워서 압박하며 투란을 일방적으로 윽박지르듯 하다가 강제로 약속을 하게 한 것이랑은 매우 다른 묘한 분위기가 아닌가.
―강제는 아니었지. 내가 나불거려서 속인 것뿐이지.
드라고니아가 작게 속삭였다.
‘닥쳐!’
투란은 슬그머니 모래 기둥과 키유나의 틈새를 엿보면서, 이제 어떤 분위기인가를 가늠하면서 으르렁거렸다.
그사이에 키유나가 무너지듯이 주저앉았다.
살짝 밀려와 발아래를 채우듯이 찰랑거리는 물결이 키유나의 몸을 받쳐 주면서 첨벙거리는 소리를 작고 짧게 울렸다. 그 여운 위로 키유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져 나오는데, 어딘가 울먹이는 낌새가 섞여 있었다.
“왜…… 왜 이제 와서…… 어째서…… 왜 이제…….”
투란은 뭐라 해야 할지 난감해서 입을 꽉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드라고니아는 이 상황에서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는 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알 수가 없구먼. 도대체 이 마녀가 무슨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거지? 사막에서 길 찾기를 알려 주란 것도 아닐 테고…… 모래왕, 대체 무슨 일에 엮여서 이렇게 주변 상황이 너저분한 거야?
투란이 대꾸할 말은 아니었고, 모래왕에게 전해진 말도 아니었다.
다만 모래왕은 하던 말을 맺겠다는 듯이 다시 마녀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마녀여…… 이 사막에 깃든 망령의 희망을 저버리지 말라. 계승된 약속을 지켜야 할 때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