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27
몬스터×몬스터: 외전 편 (8)
“여행을 좀 해야겠군. 데릭 상회는 멀쩡하지?”
카엘이 잠깐 생각한 결과를 말했다.
적색 뱀이 재빨리 대꾸한다.
“번창하고 있지!”
주황색 뱀도 보태는 말을 꺼낸다.
“지점을 늘렸고 활동 영역도 늘어난 상태이오.”
둘이 하는 말에 카엘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호오? 대를 이어 겁쟁이 노릇 하던 것을 관둔 거야? 안전한 가게에서 벗어났다니, 데릭의 혈통 중에서도 모험가가 태어나긴 했나 보네?”
“응?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여전히 가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소. 기대한 모험가는 아니지.”
두 마리 뱀이 서로를 흘깃한 다음에 미묘하게 고개를 젓는 시늉을 하며 연이어 카엘의 기대를 밀어내는 대답을 했다.
카엘은 그 모습을 따라 하듯 갸웃하면서 중얼거림을 토해낸다.
“모험가는 아닌데 활동 영역이 늘어나? 무슨 재주인가 궁금하네. 어쨌든 여행 장비를 찾는 핑계로 둘러보면 되겠지. 군화랑 단창, 어느 쪽이 더 가까운 데릭네 가게에 있어?”
“……어, 그거 말인데.”
“없소이다. 카엘, 그대가 맡긴 장비 도구가 모두 팔렸소이다.”
쉬이잇.
두 마리 뱀의 대답은 카엘에게 멍한 표정을 짓게 했다.
“팔렸다고?”
잠시 후에 나온 어이없어하는 되물음.
“팔라고 맡겨 둔 거잖아?”
적색 뱀의 뚱한 대답이었다.
“그 또한 이 세기에 벌어진 흥미로운 변화라고 해야겠지. 그대를 깨울 이변이라고까지는 못 하겠지만…….”
주황색 뱀이 조금 장황하게 말했다.
어느 쪽이든 ‘정말 팔렸어!’라는 대답이었고, 카엘은 어처구니없어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현실인가?’라는 되뇜부터 흘리고 추측하기 시작했다.
“하이로드, 얘네가 흐르는 금맥을 부지런히 파낸 거 아냐? 그게 아니면 상아탑 녀석들이 상회의 장막을 꿰뚫고 들어갔나?”
두 마리 뱀이 바로 이 추측을 부정해 버린다.
“음, 상상력이 부족하군!”
“흐르는 금맥에 가끔 들르기는 하는 모양이지만, 데릭 상회에서 특별히 뭘 구입하는 경우는 전혀 없었소. 상회의 장막은 건재하고 상아탑 쪽에서는 몇몇 마법사가 개인적으로 호기심을 드러냈을 뿐이오.”
살짝 눈가를 찌푸리면서 카엘이 말한다.
“그럼, 뭐야…… 설마 우연히 금전 몇만 닢이 담긴 매직 포켓을 낀 철없는 녀석이 상회에 들렀다가 혹해서 싹 쓸어 가기라도 했어? 응? 뭐야,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고!”
억지소리처럼 늘어놓다가 두 마리 뱀이 ‘오옷!’, ‘과연 대마도사!’라면서 고개를 팍팍 끄덕이는 꼴에 카엘은 기막힌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연이어 살갗에 닿는 바람이 살짝 무거워진 기분이 카엘의 눈길을 돌리게 했다.
시야의 한구석에 매달려 있던 구름, 층을 이루었던 구름이 펼쳐지며 검게 물들고 하계(下界)를 향해 비를 뿌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세상 참…… 새로워지긴 했나 보네. 다른 일은? 그 수준으로 이변에 가까운 일이 또 있다는 거지?”
팔라고 했지만 반쯤은 설마 팔리겠는가 하면서 넘겨 버렸던 장비를 떠올리면서 카엘이 물었다.
이제는 호기심이 피어날 수밖에 없었다.
데릭 상회에 그런 일이 있었다면, 세상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수준으로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을 테니까.
적색 뱀이 쉬잇거리면서 이야기 하나를 골라낸 듯 말한다.
“예전에 도적왕이 지닌 비보, 그 도적의 비보를 이용해서 신분위조를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떠든 적 있잖아. 기억나지? 그때 가까이 있던 음유시인 녀석이 그걸 노래로 만들어 퍼뜨리기도 해서 당황…… 아니, 어이없어 웃었던 일 말이야.”
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분을 정한 왕국의 규범, 그 규범을 지키기 위한 왕가의 마법은 꽤 정교하고 대단했다. 하지만 도적의 왕이라 불린 녀석이 지녔던 비보, 그것 또한 굉장했다. 그런 둘이 마주쳐 정면 대결을 펼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다분히 흥미로 한 가정이었는데, 그 이야기를 나눌 때 가까이 있었던 음유시인 하나가 그걸 노래로 꾸며서 세상에 퍼뜨려 버렸다. 한창 도적왕이 여기저기서 날뛸 무렵이라 참 빠르게 잘 퍼져 나가서 어이없어하기도 했다.
궁정 마법사들은 그 이야기에 담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창 바쁜 일정을 보내야 했다는 말도 나중에 들었다. 그랬는데…….
“그 이야기를 허투루 여기지 않은 자가 등장해 버렸소. 워낙 오래된 이야기라 동네 아이들 사이에까지 퍼지기는 했지만, 심각하게 연구할 일이라 여기는 이는 전혀 없었는데 말이오. 그는 에테온의 패왕이 되었고, 춤추는 산맥에 완전히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냈소이다. 본인이 직접 그랬고, 그에 자극받은 다른 이들이 스스로 변화하기도 했소.”
주황색 뱀은 침착하고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하나 듣는 카엘에게는 낯빛을 점차 달아오르게 하는 자극적인 내용이었다.
“자극받은? 어떤 일이 있었지?”
적색 뱀이 으스대듯 슬쩍 끼어들어 말한다.
“괴물왕부터? 아니면 부적의 오의(奧義)부터? 어떤 것부터 들을래?”
“괴물왕? 로드 오브 몬스터?”
카엘이 갸웃하며 되뇌었다.
주황색 뱀이 하던 이야기를 잇듯이 대답을 섞어 말한다.
“몬스터 로드의 별명이 괴물왕이오. 로드 오브 몬스터랑은 상관없소이다. 신전의 봉인술로 문장을 봉인당한 채로 발목이 잘려 나가는 수모를 겪은 바로크 출신의 몬스터 로드였지. 특이한 점이라면 쥴의 수작에 걸려 몬스터 로드가 된 경우니까 대단하게 될 자질은 시작부터 인정받고 넘어간 셈이오만, 그 일은 아무도 모르오. 하나 그가 제 기량을 떨쳐 보였을때, 상식적으로 알려진 수준을 넘어섰을 때…… 아, 잘려 나간 발목을 회복한 이야기요. 상급 몬스터 로드의 비전 중에서도 제법 고급이라고 꼽히는 지식을 그는 자신의 의지와 투지, 빈약한 정보를 기반으로 한 도전으로 획득했소이다. 정말 독자적인 방식이라 새로운 비전으로 자리매김할 정도였지. 그리고 그림 폴의 몬스터 로드까지 설득해서, 춤추는 산맥의 안쪽에 도시를 세웠소. 위키드 존이라 불리던 특별한 영역의 조짐을 보이기는 했지만, 괴물왕과 손잡은 그림 폴의 도시는 이를 단숨에 집어삼켰지.”
“헤에, 대단한데! 그런데 따로 그림 폴의 몬스터 로드를 섭외했다니, 그림 폴의 자질은 없었던 건가?”
카엘은 한층 더 흥미롭다는 듯이 물었다.
적색 뱀이 투덜거리듯 대답한다.
“애초에 몬스터 엠블럼에 그딴 제약을 건다는 게 웃기는 짓이지! 특별한 자질이나 계기가 없으면 쓸 수 없는 비전이라니, 몬스터 로드를 만들어 낸 이들한테는 엄청난 모욕이라고!”
“비전이라는 취지에는 아주 적합한 제약이다. 하물며 무작정 걸어 놓은 제약도 아니고 문장을 소유한 자가 자멸하는 것을 막기 위한 보호조치잖은가? 거기에 대해서 안다면 오히려 고마워하지 원망할 이는 없을 것이다.”
주황색 뱀이 살래살래 고개를 저으며 평온하게 반박하고 있었다.
카엘은 슬쩍 지팡이를 잡고 흔들며 말한다.
“둘 다 논쟁은 뒤로 미뤄. 지금은 내가 이야기를 듣는 때라고. 논쟁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려고 하지 마. 요점만 빠르게, 간결하게 가자고. 일단…… 괴물왕과 사육자, 사룡은 얽히나?”
“아니.”
“그렇지 않소이다.”
대답이 나오자마자 카엘은 지팡이를 놓으며 말한다.
“그러면 그쪽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부적의 오의는 뭐야? 무슨 부적에 대한 정보가 새 나갔다는 거야?”
“어, 몬스터 엠블럼과 관련된 거야.”
“바로크 왕국에서 에테온 왕국의 새로운 풍조에 반쯤 보태고 반쯤 견제하는 의미로 풀어놓은 비전이오. 그 비전이 세상에 퍼지면서 몬스터 로드가 자신의 엠블럼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부적을 사용하는 것이 지금은 상식이 되었소.”
꼿꼿하게 홀로 선 지팡이를 감은 두 마리 뱀이 몸을 꿈틀거리며 균형 잡는 시늉과 함께 말하고 있었다.
카엘은 일단 웃었다.
“그것참…… 공포와 경외의 대상에서 친근한 이웃이 된 거냐?”
적색 뱀이 갸웃하다가 주황색 뱀을 겨냥하듯 노려보며 먼저 대꾸한다.
“친근한 이웃까지는 아니고, 꼴 보기 싫지만 참아 줄 수 있는 옆집 사람? 그 정도라고 보는데…….”
살그머니 잦아드는 소리를 기다렸다는 듯, 주황색 뱀은 가만히 카엘과 눈을 마주치면서 말한다.
“짐작하겠지만, 이런 상황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오. 스스로 문장을 제어하는 능력이 많이 모자란 경우가 늘어났으니 말이오. 한편으로는 신전의 봉인술에 대항하는 수단이 된 탓에 여러 신전이 더욱 몬스터 로드를 견제하려는 경향도 생겨났소. 반면에 마법사들의 경우는 좀 더 우호적으로 몬스터 로드를 대하게 되었고. 이 변화의 중심은…… 역시 괴물 왕자라고 해야겠소이다.”
“응? 왕자? 아까 그 괴물왕이랑 다른 사람?”
카엘이 짙은 흥미를 담아 물었다.
“양자야, 몬스터 로드이기는 해.”
“괴물왕이 거둔 양자요. 하지만 그것만으로 괴물 왕자라 불리는 것은 아니오. 실제로 아까 말했던 패왕의 아들이기도 하니까.”
적색 뱀의 툭 끼어드는 짧은 말, 주황색 뱀이 이를 조금 보태 설명하는 긴말이 연이었다.
카엘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긁적이며 이 괴상한 이야기를 짤막하게 평했다.
“그건 대체 무슨 족보냐? 얼마나 해괴한 상황이었길래 왕자가 몬스터 로드가 되는 일이 생겼어?”
“응, 여러 가지 해괴한 상황이지.”
“피치 못할 사연이 얽히고설킨 결과요. 세상에 큰 변화를 몰고 온 일이니, 어찌 보면 당연히 그 정도로 복잡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 어쨌든 춤추는 산맥에서 시작된 그 풍조는 수십 년 동안 퍼져 나갔고, 이제는 대륙 평원을 넘어서 불꽃 산맥의 작은 제국에 닿을 지경이 되었소.”
재미있어하는 적색 뱀의 대꾸에 이어 나온 주황색 뱀의 조금 섬세한 설명이 카엘의 낯을 확 구기게 했다.
“그 난쟁이 똥자루 녀석들, 제국이란 호칭을 끝내 포기 안 한 거야? 그럼 대륙 평원 쪽이랑 한판 붙어야 했을 텐데?”
“캬스스슷! 강철과 불꽃의 제국! 아예 그렇게 국명을 정해 버렸지. 결국 치고받고 한창 싸우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쟁까지는 안 갔어. 으르렁거리는 정도로 현상 유지, 끝내 전쟁은 피하더라고. 카엘, 보람찬 업적을 이룬 셈이야.”
적색 뱀이 낄낄거리면서 놀리듯이 평했다.
주황색 뱀은 살짝 그 꼴을 쏘아봐 준 다음에 카엘을 향해 진지하게 말한다.
“카엘, 그대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소. 호칭 따위를 두고 전쟁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양측 수뇌부가 철저하게 이해했기에, 몇 번의 결투와 소규모 전투 정도는 있었지만 그대의 경고를 무시하는 수준의 전쟁은 없었으니 말이오. 이건 정말로 그대의 위업이오.”
“야, 정말로 제국이라고 참칭(僭稱)하게 내버려 뒀다고?”
카엘은 납득이 가지 않아 다시 물었다.
적색 뱀이 이번에도 키득거리는 말투로 답한다.
“나라 이름이 ‘강철과 불꽃의 제국’인 왕국이라고 대놓고 말하니까 재밌잖아?”
“……그런 말이 통했다고?”
카엘이 어이없어, 허탈한 듯이 되물었다.
주황색 뱀은 혀를 길게 내밀어 허공을 짚으면서 침착하게 대답한다.
“양쪽 모두, 그 정도라면 전쟁을 피하고 작은 전투와 결투로 싸울 수 있다고 판단했던 모양이오. 대마도사의 경고 범위 안이라고 말이지. 그대도 그 정도로는 끼어들 생각이 없으니, 어찌 보면 그들이 카엘 디아크에 대해 꽤 잘 파악하고 있다 봐야 하잖겠소?”
“하아! 한심하지만…… 넘어가자. 아니, 잠깐. 그 소란을 내려다보는 녀석들은? 구름 위에서 구경하며 가만히 있던가?”
“구름 위 녀석들은…… 으음, 이것도 이변이려나?”
적색 뱀이 갸웃하며 생각하는 척했다.
주황색 뱀은 쉬잇, 하면서 못마땅하게 여기는 눈길부터 쏘아 주고는 카엘을 향해 말한다.
“언더섀도우의 길이 봉쇄되면서 그들은 아예 단절을 선택했소. 더 이상 자신들의 허공대륙(虛空大陸)은 아래쪽 세상과 하나의 세계가 아니라고, 다른 길까지 모두 폐쇄해 버렸소이다.”
“무슨…… 잠깐, 언더섀도우는 왜 봉쇄된 거야?
어처구니없어하다가 눈살을 찌푸리며 카엘이 짚어 물었다.
적색 뱀이 재빠르게 답한다.
“뱀파이어 십삼지파(十三支派) 중 하나가 털렸거든! 순수 뱀파이어 열두 패거리랑 인간 세력을 중심으로 한 지파 하나가 남은 꼴이 되었지! 그리고 그 인간 세력은 누군가의 제물이 되어 그림자 아래를 채우는 과일이 되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면서 굉장히 분개한 상태고!”
“그 일에는 룬 벨카인이 조금 개입되어 있소만, 직접적인 개입은 아니었소. 그에게 구원받았던 소년이 성장해서 저지른 일인데, 그 일의 계기는 에테온의 패왕이었다고 하니 말이오.”
주황색 뱀이 잇는 말에 카엘은 두통이 난다는 듯이 이마를 문질렀다.
“망할 것들이…… 선조가 저지른 잘못을 고칠 생각은 안 하고 그냥 자기네만 편히 살자고 작정했나…….”
“그런 생각은 아예 없을걸. 애초에 자기네가 사는 대륙 아래라든가, 구름 경계 너머에 세상이 있다는 것까지 잊어버렸으니 말이야. 조촐하게 세상의 끝에는 구름 벽이 있어요, 하면서 자기네끼리 대갈빡 터지게 싸우며 지내는 중이거든.”
적색 뱀이 키득거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