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28
몬스터×몬스터: 외전 편 (9)
“인포네트에 포착된 바로, 허공대륙은 더 이상 황제의 권위가 서지 못하고 귀족들이 왕국으로 독립해 영토 전쟁 중이라는 듯하오. 칠대마경의 세상에 대해서는 홀랑 잊은 채로 말이오.”
“……나 자려고 할 때랑 완전히 다른 분위기잖아?”
카엘은 기막혀서 한숨도 못 쉬겠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적색 뱀이 ‘그랬나?’ 하고 쉬잇거리며 딴전을 피웠고, 주황색 뱀은 하던 말을 이었다.
“그 전환의 계기가 된 것이 황제 쪽에서 강제로 지상과의, 언더섀도우와의 문을 닫아 봉쇄한 일이었소. 자세한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뱀파이어의 새로운 혈족, 인간을 중심으로 한 언데드 헌터가 주가 되어 혈족의 이름을 내세우고 뱀파이어 지파와 분쟁을 한다는 것이 큰 자극인 것은 맞는 듯하오. 어쩌면…… 혈족의 이름을 내세운 이가 언더섀도우에서 허공대륙으로 올라와 자신을, 황제의 일가를 도륙할 수도 있다고 여겼을 수도 있소.”
“죄를 짓고 그 열매를 탐했지만 벌은 절대로 안 받겠다는 이야기네. 한심하기는……. 그래서 그 인간 중심의 혈족에서는 그런 일에 대해서 알아?”
혀를 차며 카엘이 짚어 물었다.
적색 뱀이 시잇거리며 키득키득 웃는 시늉을 했고, 주황색 뱀은 고개부터 젓는 모습으로 답한다.
“전혀 모르는 듯하오. 어쩌면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소만, 봉쇄된 길을 열고 언더섀도우의 위로 간다는 낌새는 전혀 없소이다. 어쨌든 언더섀도우의 일은 그 안에서 끝내려는 것일 수도 있고…… 덕분에 그쪽 변화가 세상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적소.”
“적어? 아예 없지는 않다는 말이네?”
카엘이 미묘한 말투를 느꼈다는 듯이 물었다.
적색 뱀이 냉큼 끼어들어 이에 답한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모험가들! 자신의 실력에 기고만장한 용병들을 마석(魔石)으로 유혹하거든! 처음에는 닥치는 대로, 지금은 꽤나 엄선한 실력자가 꾸준히 언더섀도우로 잠입하고 있지! 사실 이게 요즘 제일 흥미롭기는 해!”
“뱀파이어 열두 지파가 그런 인력 수급에 구체적인 관심을 보이지는 않는 분위기오만, 거기에 자극받아서 언더섀도우 밖으로 활동을 넓힐 가능성은 커지고 있소. 어쩌면 과거 악마종과의 전쟁 시절처럼 파견대가 꾸려질 수도 있잖을까 싶소.”
흥미를 죽이는 말투로 주황색 뱀이 말하고 있었다.
가만히 듣던 카엘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뱁파이어들은 이 세계에서 잘난 척하기가 굉장히 힘들어서 숨었던 거잖아? 그새 뇌를 세탁이라도 했다는 거야? 무슨 기억상실이라도 생겼대? 그림자 아래의 일은 그림자 아래에서 해결한다면서 맹세까지 했잖아?”
적색 뱀이 쉬잇, 하고 혀를 날름, 하며 그 웃음에 동참하는 시늉과 함께 말한다.
“열세 번째 지파가 인간에게 털리고 아홉 지파의 우두머리가 갈려 나갔으니까 제정신이기 힘들어진 거지! 오래된 기억의 자취를 간직해 봐야 어차피 털리는 거 세상 변한 김에 나올 수도 있다…… 그런 이야기야. 아직은 옛날처럼 정찰이란 명목으로 추방하는 정도지만, 그 추방된 녀석들이 제법 대륙에서 자리를 잡는 시늉을 하며 으스대니까 말이지! 캬시싯!”
“……야, 그 웃음 고쳐. 너무 이상해.”
이야기의 내용에 카엘은 눈을 살짝 찌푸렸지만 그보다는 적색 뱀이 말끝에 붙인 묘한 웃음, 숨소리부터 지적하고 있었다.
시싯거리며 적색 뱀이 성난 시늉을 하는 사이, 주황색 뱀이 다시 말문을 연다.
“언더섀도우의 세력이 외부에서 온 자들에 의해 개편당하는 형편이니 어쩔 수 없이 바깥세상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요. 과거에 통하던 힘, 지식이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이 격파당하니 말이오. 게다가 세력을 형성해서 그들을 위협하는 인간이 멈출 줄을 모르니 궁지에 몰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 과거에 선택하지 않았던, 얻지 못했던 새로운 수단을 모색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오.”
“인간이면서 혈족의 흉내를 내는 녀석이 그렇게 강한 거야?”
카엘은 살짝 웃음을 거두면서 물었다.
언더섀도우를 주도했던 뱀파이어, 영생을 보장받고 웬만해서는 죽을 일도 없이 안전한 영역을 확보한 그 혈족이 험한 꼴 겪었다고 바로 다른 힘을 추구할 리는 없었다. 자신들의 힘에 대한 지독한 신앙으로 뭉친 피의 일족이 굳이 다른 힘까지 원한다면, 그 상황을 만든 녀석이 정말 장난 아니게 심각한 위협이란 뜻.
적색 뱀이 킥킥거리며 바로 대꾸한다.
“흉내가 아니야, 카엘. 녀석은 인간이면서도 필요에 따라서는 진짜 혈족의 능력을 발휘하고 혈족의 몸을 사용하니까. 언데드 헌터라 불리면서 몬스터 로드의 본성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아니라고. 뭐랄까…… 아! 그놈은 춤추는 산맥에서 유학하고 몬스터 로드의 본성을 완전히 일깨운 채로 언더섀도우로 귀환했다고 하면…… 음, 그러면 거의 정확하겠네! 맞지?”
주황색 뱀이 확인하듯 묻는 말꼬리에 작은 머리를 끄덕이며 보탠다.
“몬스터 로드로서 뱀파이어의 피를 활용한다, 기본적으로는 이전에 카엘 그대가 궁리해 놓은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뱀파이어 일족에게는 자극적이었겠지만, 그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갔소. 언데드 헌터라 불리는 이들에게 자신의 피를 분배하고 새로운 혈족을 만들어 냈다고 선언했고, 거기에 가장 먼저 불만을 드러낸 십삼지파의 하나를 완전히 파괴한 거요. 그리고 혈족 간에 유지되던 균형을 계속해서 자극하며 세력을 거침없이 확장하고, 싸움을 멈추지 않았소. 그러면서도 언더섀도우에 이제까지 없던 인간의 도시까지 건설 중이지. 그 도시에 외부에서 온 인간들이 가담하면서 그들이 유출하는 정보는 언더섀도우 바깥쪽에 굉장한 자극을 주고 있지. 어느 수준 이하로는 정보가 새지 않지만, 언더섀도우의 자원을 획득해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이들에게는 거의 전부 알려진 채요.”
“머리가 보통 좋은 게 아니구만. 하지만 그건 나 잠들기 전에 예상한 상황 중의 하나잖아. 나중에 가서 볼 때 좀 더 살펴보기로 하고…… 어디 보자…….”
카엘은 점점 구체적으로 들어가려는 언더섀도우의 일을 한쪽으로 밀어 놓듯이 말했다. 눈길을 검은 산맥의 풍경 너머를 보려는 듯이 돌린 그에게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짚는 듯한 말이 나온다.
“사룡의 봉인이 사라졌으면, 모래왕이 풀려나려고 뭔 짓을 할 테지. 하지만 그건 조건이 붙어서 시간이 걸릴 테고…… 사육자의 둥지에서 벗어난 몬스터 떼가 브로큰 킹덤으로 몰려갈 텐데…… 신목의 그루터기 상태는 어떻지?”
“어? 거기…….”
적색 뱀이 냉큼 답할 것처럼 말문을 열다가 쉬쉿거리며 웃음을 참는 시늉으로 말을 흐려 버렸다. 주황색 뱀이 혀를 차듯이 날름거리며 흐려진 말을 대신하듯 뒤를 잇는다.
“도시가 세워졌소.”
“네? 뭐라고요?”
카엘은 반쯤 장난 섞인 말투로, 하지만 진짜 자기가 제대로 들은 거 맞냐는 듯이 주황색 뱀과 적색 뱀을 둘러보며 되물었다.
“쉬핫, 키스슷! 알드바인, 화이트 레이크의 안개를 품은 호반의 도시!”
적색 뱀이 자랑하듯 말했다.
“상아탑의 마법사와 헌터가 힘을 합해서 이뤄낸 도시로 자리 잡았소. 아마…… 거의 백여 년이 넘었을 거요.”
주황생 뱀이 점잖게 보탰다.
카엘은 뒷머리를 박박 긁으면서, 현기증 난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야, 거기 근성 변태 소리 들으면서 대마법사까지 된 마녀도 포기한 곳이잖아. 머나먼 옛날의 성스러운 도시는 추억에 파묻겠다고 근성 마녀까지 포기한 곳에 대체 무슨 수로 도시를 세운 거야?”
적색 뱀이 냉큼 대꾸를 시작한다.
“우선 경계 도시 둘을 꾸며 놨지! 어떤 형태의 범람이라도 유도할 수 있는, 라비엔보다 안쪽으로 양방향 전진기지 같은 경계 도시 둘을 건립했어. 주도면밀하게 말이야!”
주황색 뱀이 연이어 말한다.
“경계 도시도 의도된 것은 아니었소. 사육자가 방출할 몬스터의 범람을 미리 알아내기 위해서, 상아탑에서 한동안 궁리한 끝에 경보를 알려줄 수 있는 첨봉으로 거점을 꾸민 것뿐이었다 해야겠지. 거점이 완성된 후, 알드바인이 그 경보를 중계할 틈새에서 자리매김한 거고. 하지만 그 자리를 차지한 마법사가 거기에 아예 상아탑을…….”
“꽂아 버렸지! 갈기산맥의 끝자락에, 그루터기의 영역까지 포함해서! 시이잇!”
불쑥 끼어들며 적색 뱀이 떠들었다.
“기록은 정확하지 않소만, 그 일에 엘더 헌터 쪽에서도 상당히 협력한 듯하오. 사육자로부터 시작되는 범람은 예고된 것이라 마찬가지이니 어떻게든 경보를 위한 거점이 필요하다 여긴 탓에 말이오.”
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듣다 보니 단순하지 않은 여러 가지 일이 겹치고 얽힌 모양새였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지만, 예상한 것보다 결과가 꽤 좋게 나온 듯해서 마음에 들기도 했다.
“뭐, 춤추는 산맥이니까. 그래, 다른 마경에 특이한 일은 없고?”
다시 화제를 옮기는 카엘의 물음이었다.
적색 뱀이 ‘뭐가 있었나?’ 하며 갸웃하는 시늉을 했고, 주황색 뱀은 차분하게 이야기를 꺼낸다.
“소용돌이 군도 쪽에…… 마하박티의 경전을 기반으로 한 신전이 들어섰소. 그런데 그게 아무래도 카엘, 그대의 영향 탓인 듯하오.”
“……왜 내 탓인데?”
카엘은 굉장히 떫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적색 뱀이 ‘아! 맞아!’ 하면서 냉큼 가로채듯이 대답한다.
“메듀시아! 그 뱀 처녀 감금하려고 코끼리 대가리랑 뱀 몸뚱이 전사랑, 미친 원숭이 한 마리 소환했잖아! 소용돌이 군도에서, 혼돈의 영향력을 최대한 덜 받도록 아주 안전하게 말이야. 그때 그 소환식을 엿본 녀석들이 매개체로 사용했던 마하박티의 경전을 긁어모아서 복원했어. 그리고 바로 신전을 꾸몄지.”
“그게 언제 적 일인데! 내가 잠들 때까지 아무 일 없었잖아! 왜 나 잠든 사이에 생긴 일이 그 탓이냐?”
못마땅한 기색 가득한 얼굴로 카엘이 으르렁거렸다.
“내가 알 게 뭐야!”
적색 뱀은 시침 떼며 킬킬거리는 대꾸를 했다.
주황색 뱀이 살짝 혀를 뾰족하게 내밀어 적색 뱀을 쿡 찌르고 나서 대답한다.
“요점을 흐리지 마라! 카엘, 그 소환에 사용되고 남은 파편은 그때 주변에서 엿보던 이들이 티끌인 채로 수거해서 모아 뒀소. 그리고 수십 년, 수백 년의 세월이 흘러 여러 사람이 그 잔해를 거쳐 가는 사이에 아무 일 없었소. 하지만 어느 날 그 잔해에 닿은 한 사람, 압도적인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지녔기에 성자 소리 듣던 이가 거기서 마하박티의 경전을 복원해 버렸소이다. 더불어…… 그대의 마법이 지닌 특이성에 영향을 받기도 했지. 때문에 그로서는 신전을 세워 마하박티의 신화를 기릴 수밖에 없게 되었소. 그냥 그렇게 된 것이오, 다만…….”
“다만? 왜 다만이 붙어? 신전 세워지고 끝 아니야? 뭐가 또 있는데?”
카엘이 불편한 낯빛으로 물었다.
적색 뱀이 냉큼 끼어들어 말한다.
“신들이 싫다고 신전까지 거북하게 여기는 거 좀 그만해라! 뭔 애도 아니고, 딱히 너한테 간섭도 않는 신들인데 왜 그리 불편해해?”
주황색 뱀이 스읏거리며 이 말을 지우고 치우듯이 혀를 날름하고는 카엘에게 침착하게 말한다.
“아수라, 이곳에서는 아슈라라 불리는 신을 가장 먼저 섬기는 신전이 돼 버렸소. 그 바람에 신전 분위기가…….”
“그만해!”
카엘은 기겁한 표정으로 한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 외면하겠다는 듯이 짧게 외쳤다.
그 기분 안다는 듯이 주황색 뱀이 살짝 말을 늦추는 사이, 적색 뱀은 신난다는 듯이 더 큰 소리로 말한다.
“쩌는 투기장이야! 입장하려면 무장부터 해야 하고, 헌금하고 기도하려면 결투를 세 번이나 해야 한다던가? 키시싯! 카엘, 이 세상에 새로운 투신(鬪神)을 소개한 꼴이 되었어! 아슈라가 굉장히 기뻐서 너 가면 바로 성물(聖物)이라도 내려 줄 지경이라니까!”
“젠장.”
반쯤 절망했다는 듯, 반쯤 포기했다는 듯이 카엘이 웅얼거렸다.
주황색 뱀이 덤덤하고 차분한 말투를 꾸며, 살짝 위로하듯 말한다.
“새로운 신전이고, 교단이 딱히 조직적인 것도 아니라서 아직 소용돌이 군도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소. 발할리아 신전에서 발키리 파견했을 때처럼 되지는 않을 것 같소. 특별히 신전의 세력을 확장하고 싶어 하는 움직임도 없으니까, 강림이나 신탁은 염려하지 않아도 될 거요, 아마도…….”
“그래, 아마도! 그 아마도를 피해서 소용돌이 군도는 몇백 년 뒤에 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잖아! 어우, 진짜…… 그 얘기는 넘기고! 메듀시아는 별일 없는 거지? 다른 녀석들도…… 어이, 그 별일 있다는 눈짓은 뭐냐?”
카엘이 이마를 벅벅 문지르면서 한숨을 섞어 말하다가 눈을 부릅뜨고 두 마리 뱀을 다그쳤다.
적색 뱀은 혀만 날름거리고 홱 눈길을 돌려 이를 외면했고, 주황색 뱀은 침착하게 고개를 세우며 대답한다.
“수문장 석상이 부서졌소. 안쪽으로 누군가 들어갔다는 거지. 게다가…… 상층부에 길 찾기를 훼방 놓으려 배치해 놨던 차원 늪 몬스터가 사라졌소.”
“그 뭔……! 그놈 사라지면 안 되잖아! 그놈한테 매달아 둔 물건이 한둘이 아닌데! 설마 그 물건 전부? 아니라고 해! 그 놈 없어질 일 없어서 매달아 둔 물건들! 그걸 다시 장만하라고? 으아앗! 야, 아니라고 해! 정말 차원 늪 대가리가 어떻게 된 거야? 대체 어떻게? 뭣 때문에?”
아래에 내리깔린 구름 위로 카엘의 비명이 번지듯 터져 나왔다.
하지만 두 마리 뱀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