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29
몬스터×몬스터: 외전 편 (10)
결국 카엘은 더 높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한숨을 짓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서 단절된 채로 한참 자고 있을 때 벌어진 일이고, 인포네트를 통해 제대로 된 정보 수집조차 이뤄지지 못하는 곳에서 터진 일이었다. 더 이상 징징거려 봐야 소용없으니 일단 참기로 한 것이다!
“수룡이나 화룡은?”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에 카엘이 불쑥 묻는 말이었다.
적색 뱀이 곧바로 핀잔하듯이 말한다.
“화룡이라니, 그 녀석 무슨 꼴인가 알면서 물어? 설마 아직 잠이 덜 깨서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중이야?”
카엘이 낯을 구기고 손끝으로 적색 뱀의 미간을 누르며 으르렁거린다.
“변화가 있냐고 묻는 거잖아, 변화가!”
시싯거리며 적색 뱀이 아프다는 시늉을 하는 사이, 주황색 뱀이 대답한다.
“수룡 크리스털 가드는 봉인된 그대로 특별한 일이 없소. 애초에 사룡이랑 특성도 다르고, 날뛰는 성향도 아니기는 하지만…… 어찌 보면 오히려 지금의 상태를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오. 반면에 화룡 스타 파이어는…… 어중간한 채로 춤추는 산맥 깊은 곳에 숨어서 분을 삭이며 시간만 보내고 있소. 룬 벨카인에게 호되게 당한 탓이라고 생각되…….”
“잠깐, 카엘이 녀석한테 무슨 짓을 했다고?”
카엘이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며 하는 말은 주황색 뱀에게 한숨 쉬는 듯한 소리를 내게 했다.
“잠들기 전에 스타 파이어를 견제한다는 말은 들었잖소? 카엘 룬 벨카인은 그 일을 하고 있었소. 때문에 스타 파이어는 브로큰 킹덤에 커다란 구덩이를 하나 만든 것 말고는 더 이상 아무것도 못 하고 계속 숨어지내야 하는 형편이지.”
“아, 거기 도시 만들어 놓은 모양이야! 인간들이란, 구멍만 파놓으면 들어가 채우는 꼴이 참 대단한 습성이야.”
적색 뱀이 키득거리며 재빨리 보태고 있었다.
카엘은 혀를 찼다.
“쯧, 그냥 봉인하게 도우라니까 말 안 듣더니 계속 얽매인 꼴이냐.”
주황색 뱀이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얽매였다고 하기는 어렵소. 룬 벨카인이 한번 들이닥쳐서 휘저어 놓으면 스타 파이어는 거의 백 년 이상 움직일 수 없는 꼴이 되니 말이오. 약속한 대로 인포네트의 스톤 코어를 항상 그 주변에 남겨 두기도 해서 스타 파이어의 행적은 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소.”
“……악취미잖아. 때 되면 한 번씩 찾아가 어딜 분질러 놓느니 차라리 그냥 죽여 버리든가. 잊을 만한 때도 됐잖아.”
카엘이 한숨을 쉬었다.
“남 얘기야? 너도 8천 년…… 그냥 1만 년이라고 해도 좋을 시간을 이 세상에서 보냈지만 정착할 마음은 전혀 없잖아? 카엘, 벨카인도 역시 너처럼 잊을 수가 없는 거야.”
쉿쉿거리며 혀를 차는 시늉을 한 적색 뱀이 카엘을 놀리듯 말했다.
통, 카엘의 손끝이 적색 뱀의 미간을 튀겼다.
“죽고 사는 문제랑 다른 세계에 툭 떨궈진 거랑은 전혀 다른 문제거든! 기억조차 온전히 되찾지 못하는 곳에 대체 어떻게 정착을 하냐?”
“시잇! 마음을 비우면…….”
적색 뱀이 고개를 까닥이면서 말을 이으려는 것을, 카엘이 두 손가락으로 그 머리를 집게처럼 위아래로 잡아 입을 다물게 했다. 그리고 바로 주황색 뱀을 향해 묻는 말을 꺼낸다.
“잠든 동안의 일, 기록석으로 정리해 놓기는 했지?”
“물론. 하지만 깨어나고 사흘 정도는 기록석을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소이다. 그 점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기는 하오?”
“응, 바로 쓸 생각은 없어. 일단 그럭저럭 특이한 일은 다 들은 셈이지? 뭐 다른 거 있어? 쥴이 또 왕국을 멸망시켰다든가, 그런 일 없지?”
목을 좌우로 까닥여 슬슬 몸을 푸는 시늉을 하면서 카엘이 물었다.
적색 뱀이 날름 가로채듯 대답한다.
“왕국을 멸망시키는 취미야 없지! 하지만 요즘 몇십 년 동안 엉뚱한 사람 붙잡고 몬스터 로드로 전향시키는 악취미가 생겼어. 성격 좀 특이하게 보이면 본인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사고 치는 쪽이야! 이게 다 누구 탓이려나?”
“허락도 받지 않고?”
카엘이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주황색 뱀이 이야기를 보탠다.
“이미 말했잖소, 괴물왕이 쥴의 수작에 넘어가 몬스터 로드가 된 경우라고. 쥴은 그 일을 계기로 그대가 찾는 인재를 포섭하는 데 그게 괜찮은 방법이라고 여긴 모양이오. 크게 성과가 없었으면 두어 번 하다가 멈췄을 만도 한데, 괴물왕의 뒤를 이은 두어 번이 예상보다 큰 결과를 낳고 말았소. 그래서 쥴은 방법을 바꿔 버렸소이다. 스스로 운명의 사도가 되어 원치 않는 이들에게 새로운 운명을 선물한다는 식으로 말이오. 물론 그런 일을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은 그대에게 떠넘기는 마음가짐인지라, 전혀 죄책감도 없는 상태이오.”
“망할 놈이! 대체 언제 철 들려고 그래!”
카엘은 이마를 꾹꾹 누르면서 황당한 기분을,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억누르는 시늉을 했다.
적색 뱀이 키힛거리는 묘한 소리와 함께 바로 카엘에게 핀잔한다.
“쥴이 철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니잖아? 걔는 근본적으로 인간 불신 상태라고. 드래곤이 세계를 파괴하겠다면 기꺼이 그 선봉이 되겠다잖아. 더군다나 마법사를 극단적으로 불신할 만한 사연도 넉넉한데 네 부탁을 얌전히 들어주겠냐? 아마 저질러 놓고 네 탓 하는 쪽을 즐길걸.”
“이제 그만 잊을 때도 됐잖아. 몇백 년 동안 그러기도 지겨울 텐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카엘이 중얼거렸다.
주황색 뱀이 차분하게 다시 말문을 연다.
“스스로 납득할 만한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래서 믿을 수 있다면 쥴의 그 버릇도 고쳐질 것이오. 쥴이 지금 하는 일은 그러기 위한…… 청산 과정이나 다름없다 봐도 좋다 여겨지오. 쥴이 몬스터 로드로 만드는 이들은 사실 옛날 그를 배신했던 왕국의 후예들이니 말이오.”
“엥? 선조의 잘못에 대해 후손에게 책임을 묻는 거야? 생각보다 더 고약하잖아!”
한숨도 안나온다는 듯이 카엘이 중얼거렸다.
적색 뱀이 냉큼 변론하는 말투로 이에 대꾸한다.
“그건 카엘 네가 이 세상의 사고방식이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이쪽에서는 조상의 공적을 후손이 나눠 갖는 만큼, 조상의 죄업을 후손이 물려받는 것도 당연하다 여긴다고! 그러니까 아예 조상이 누군지 모르게 하겠다고 길가에 애를 내버리는 일도 당연히 여기잖아, 귀족들이 빠져나갈 수 없는 책임을 걸머지게 되면 말이야.”
“……적응 안 된다, 그건 여전히 적응 못 하겠어.”
결국 카엘은 한숨을 쉬고 말았다.
두 마리 뱀이 잠시 침묵했다.
카엘이 적응 못 하겠다고 한 것은 단순히 어느 지방의 풍속이 너무 낯설어 참을 수 없다는 것과 꽤 다른 말이었다. 조상의 책임을 후손에게 묻는 것을 못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말도 아니었다.
애초에 다른 차원의 세계니 뭐니 해도 결국 카엘 역시 인간이란 점에 있어서는 공유 가능한 부분이 아주 많으니까.
문제는 카엘의 기억이 매우 모호하다는 점이었다.
때로는 꿈으로, 때로는 돌연히 솟구치는 추억으로 떠오르지만 그 시작과 끝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상태.
게다가 그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카엘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었다.
“역시 드래곤이 쥐고 있는 걸 되찾기 전에는 안 되는 건가?”
금방 자신의 기분을 떨쳐 내겠다는 듯, 피식 웃음과 함께 카엘이 중얼거렸다.
주황색 뱀이 재빠르게 이에 호응하듯 말한다.
“꼭 그렇지는 않소. 시간이 흐를수록 세월이 쌓일수록 카엘, 그대의 힘은 강성해지고 있으니 때가 오면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오. 드래곤이라도 그때가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소!”
적색 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살짝 놀리는 듯, 비웃는 듯한 말투로 보탠다,
“막지는 못하지만 늦추고는 있지. 뭐, 애초에 이쪽 세상에 먼저 와서 선점하는 꼴이었으니 우리도 어쩔 수 없었고. 하지만 카엘, 조급해하지 말라고. 시간은 드래곤이 아니라 네 편이니까. 자, 찝찝하고 답답한 얘기는 끝! 이제 몸도 충분히 회복된 거지? 그러면 구름 내려다보며 나불거리는 짓 그만하고 가자! 가면서 세상맛 좀 보고 즐기면서 이변이 뭔가 호들갑 떨어 보자고!”
시작과 달리 어느 틈엔가 놀러 갈 기분에 젖어 들면서 신난다는 듯이 떠드는 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쓴웃음과 함께 카엘이 툭툭 적색 뱀을 때리듯이 손끝으로 밀면서 주황색 뱀을 향해 말한다.
“이놈, 대체 무슨 역할에 빠져 있는 거야? 당분간 바꿀 생각 없나? 너도 너무 점잖은데, 좀 평이하게 못 해?”
시이잇, 주황색 뱀이 혀를 날름하며 도도하게 대꾸한다.
“앞으로 삼사 년? 그 정도면 저절로 바꾸게 될 것이오. 당분간은 카엘, 그대가 그냥 그러려니 넘겨 주시오. 긴 세월을 하나의 세계에 감금되다시피 한 처지이니 이 정도 유희는 괜찮지 않소?”
“나보고 적응하라면서 너희는 적응 못해?”
놀리는 듯 카엘이 말했다.
적색 뱀이 바로 시익거리며 성난 시늉의 울림과 함께 대꾸한다.
“너랑 우리랑은 다르잖아! 우린 원래 차원과 차원을 넘는…….”
“신목 그루터기, 그 도시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 아, 알드바인인가? 거기부터 가 보자고. 사육자의 영향력을 살피기 적당하잖아. 음, 거기 위치가 어찌 되더라.”
투덜거림을 뚝 자르면서 카엘이 미간에 손끝을 얹고 기억을 더듬는 척했다.
카엘의 주변으로 하얀 안개가 맺혔고, 구름처럼 카엘이 머무는 정상을 휘감았다.
멀리 보이는 풍경, 구름을 내려다보는 곳에서 새로 맺힌 구름이 빙그르 돌다가 흔들리는 움직임 속에서 촛불이 꺼지듯이 사라졌다.
마력의 벽이 사라지자마자 바람이 휩쓸듯이 몰려왔다. 원래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는 듯, 이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오만한 짓 따위는 아무도 한 적이 없다는 듯, 빈자리는 세찬 천공(天空)의 바람이 대신 차지하고 있었다.
새하얀 안개가 얽힌 채로 물 위를 둥실거리며 떠다니는 광대한 호수.
그 호수를 끼고 세워진 도시가 남쪽을 향해 드리운 성벽을 바라보는 물결 틈새에 거품이 피어올랐다.
거품은 아예 방울이 되어 치솟았고, 툭 터지면서 새로운 안개를 흘려 냈다.
그 안개 속에서, 호수의 잔잔한 수면을 진흙이 고인 땅을 밟듯이 밟고 선 채로 카엘이 우뚝 섰다.
알드바인, 도시의 풍경을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주욱 둘러보고 카엘은 조금 놀랐다는 듯이 말한다.
“100년도 안 된 거 아니었나? 이런 곳에 저런 규모의 도시라니…… 기대했다면 바로 그 기대를 훌쩍 뛰어넘잖아!”
적색 뱀이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대꾸한다.
“그렇지? 역시 인포네트로 받는 정보랑 직접 보는 거랑 완전히 다르지?”
주황색 뱀은 이 말을 바로 부정하듯 이어 말하고 있었다.
“인포네트의 정보는 충분하오.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왔다면 이 도시의 규모, 인구, 현재 이곳을 이끄는 상아탑의 규모도 파악한 채였을 것이오.”
“이잇! 그 인포네트, 드라코눔 애들이 쓰는 프로브만도 못하잖아!”
질 수 없다는 듯이 적색 뱀이 으르렁거렸다.
“프로브의 한계를 초월하고 불필요한 정보를 완벽하게 걸러낸 다음에 안정적인 정보를 추출하기까지 하는데, 뭐가 못하다는 것인가? 그건 언어도단(言語道斷)이외다!”
카엘은 둘이 엮인 지팡이를 가볍게 휘저었다.
“둘 다 그만! 그만 떠들고, 내 말에 답해! 저거 뭐냐?”
세차게 흔들려서 머리가 어지럽다는 시늉을 하며 적색 뱀이 되묻는다.
“뭐가 뭐야? 저거라니, 어떤 거?”
주황색 뱀이 빼꼼히 고개를 치켜들면서, 카엘이 들어 겨누는 지팡이 끝을 따라 눈길을 보낸다.
“여관이잖소? 퍼브와 겸해서 꾸며진 모양이니, 주점이라 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닐 듯하오만?”
“내 말은, 그 여관이란 것이 대체 어째서, 왜, 무엇 때문에 신목의 그루터기를 파먹은 꼴이냐는 거야!”
카엘이 으르렁거렸다.
두 마리 뱀이 잠시 침묵하며 가만히 지팡이가 겨냥한 끝의 풍경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간판을 내걸고, 한 귀퉁이에는 깡깡거리는 망치 소리가 나는 대장간도 달려 있고 그 위편 지붕 자리에는 묘한 새장을 닮은 작고 네모난 방 한 칸 같은 물건까지 늘어뜨린 조금 희귀한 형태로 변해 버린 거대한 신목의 그루터기가 있었다.
아무리 봐도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거대한 나무를 건축물 대용으로 이용한 몰골.
“게다가 마법으로 지은 거잖아, 저거! 여기 상아탑 녀석들,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신목을 어떻게 쓰는지 전혀 모르는 거냐?”
카엘이 한 번 더 으르렁거렸다.
두 마리 뱀이 슬그머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말문을 다시 연다.
“그러게, 하지만 모르는 쪽이 맞지 않을까?”
“금기로 정한 지식이라면, 상아탑의 최정상…… 최상급 마도사의 격을 갖춘 자가 오래된 기록을 한참 뒤져야 겨우 알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다 보이오.”
카엘은 물 위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아, 진짜! 이 자식들, 대체 여기 왜 도시를 건설한 거냐고!”
물결이 흔들거렸고 당장이라도 그 위에 비정상적으로 앉아 빠지지 않는 이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듯했지만, 대마도사 카엘은 당연하다는 듯이 빠지지 않았다.
때문에 화이트 레이크는 모처럼 찾아온 손님을 달래듯이 가만히 물결을 흔들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대마도사를 지켜보듯, 그 새로운 도약을 기대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