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3)
‘봉마(封魔)의 오의(奧義)’라고 하는 거야. 원래 이 비술에 붙여진 이름이지. 투란, 넌 이제 ‘봉마의 오의’를 갖춘 오러를 끄집어낼 수 있어.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불꽃을 삼킨 너만의 심상을 잊지 마. 그 심상이 투란을 제대로 된 오러 윌더로 이끌어 갈 거야. 기뻐해, 투란. 넌 이제 세상에서 세 번째로 오러를 이용해 ‘봉마의 오의’를 구현하는 자가 된 거야!
투란은 기쁘기보다는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기막힌 심정이었다.
이게 대체 뭔가 생각조차 제대로 되지 않을 지경이니, 기쁨 따위는 전혀 챙길 여유가 없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투란의 눈동자 속에 이글거리는 불꽃의 무늬가 맴돌았다.
“힉!”
움찔하는 소리가 저절로 딸꾹질처럼 새 나왔고, 투란은 다른 누구도 볼 수 없는 키린의 편지를 깨닫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변의 모든 불씨를 삼킨 지금, 투란이 읽는 편지는 오직 그의 눈동자에만 비치는 것이다.
지금 그 편지의 글귀가 윽박지르고 있었다.
기쁘지? 기쁨!
“기, 기, 기쁨!”
이글거리고 일렁이는 글자를 읽지 않을 경우에 대한,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선명하게 속을 파고드는 예감이 투란으로 하여금 황급히 소리 내 읽게 했다. 그러자 글자가 다음으로 넘어갔다.
투란, 오러를 활용하는 몬스터 로드란 상급의 몬스터 로드야. 하지만 상급의 몬스터 로드 중에는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오러를 자신의 의지로 다루지 않아. 그래서 몬스터 로드가 오러를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어. 하지만 넌 이제 그걸 알아. 그러니까 투란 자신만의 기술을 만들어 봐. 몬스터의 본능에 맞춰 오러를 이끌어 내든, 사람으로서 무투법의 기술로 오러를 쓰든, 그건 이제 네 마음대로야. 그리고…… 음, 이쯤 떠들고 있었으면 일어날까 했는데 여전히 안 일어나니 슬슬 나도 심술부리고 싶어진다!
“어, 엥?”
글자를 읽던 투란은 당황하고 말았다.
키린이 불꽃으로 문자를 남긴 방식은 손으로 쓰거나 그린 것이 아니라, 입으로 떠든 것을 불꽃이 문자로 기억한 것인가?
‘대체 어떻게……?’
황당해하면서도 투란은 키린이라면 그럴 수 있잖을까 하고 납득하기도 했다.
일단 몬스터 로드로서 오러 윌더가 되기 위해 필요한 기초는 다 새겨 줬으니까 편지는 이 정도에서 그칠게. 아, 맞다. 사람이 기절했다 깨어나고 나면 왜 기절했는가 기억을 날려 먹는 일도 있다고 하는데, 투란 넌 어때? 기억해, 기억나지 않아?
투란은 눈에 비치는 두 개의 글귀가 번갈아 일렁이는 꼴을 보며 즉각 대답을 골랐다.
“기억 못해요! 못한다고! 기억 안 나!”
제대로 읽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선택은 제대로 된 모양이었다.
불꽃의 글자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면서 다음 글귀를 그려내고 있었다.
흠, 기억이 안 나다니 아깝다. 드라고니아를 삼키는 과정은 꽤 근사했을 텐데 말이야. 맞아, 투란. 혹시 놀라고 있다면, 그럴 필요 없어. 틀림없거든. 그래, 내가 너에게 준 몬스터, 그거 드라고니아야. 꽤 난폭하고 사나운 데다가 나한테는 제대로 말도 안 하려고 하는 못된 놈이지. 하지만 너한테는 꽤 할 말이 많은 놈이야. 너랑 만나고 나서 정말 수다스러워졌거든. 내가 아주 멋진 푸른 섬광의 돌을 삼켰으니, 너한테도 그렇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주고 싶었어. 좋지?
“무, 무, 무, 무슨 소리를…… 조, 좋을 리가!”
투란의 입이 저절로 떨리면서 말이 더듬거리는 소리로 나왔다.
갑자기 다시 절벽에서 툭 떠밀려 떨어지는 듯한 충격이 덮치고 있었으니, 이 경악과 바들거리는 입매, 몸짓은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드라고니아라고!
투란의 모습에는 아랑곳없이 불꽃이 다음 글귀로 이어졌다.
그럼 투란, 첫 번째 편지는 이 정도로 끝낼게. 드라고니아랑 사이좋게 지내 봐. 다음 편지는 투란이 산맥에서 살아 나올 때가 되면 투란의 오러 속에서 깨어날 거야. 멋지지? 하하핫! 투란, 강해져서 나와야 해. 우린 몬스터 로드잖아. 약한 꼴 보이지 말고, 멋지게 강해져서…… 다시 만나자.
“키, 키린!”
흐려지면서, 희미하게 불꽃의 잔영이 되어 사라지는 글자를 보며 투란은 손으로 허공을 더듬으면서 이 자리에 있을 리가 없는 괴물 왕자를 불렀다.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멍하니, 투란은 잠시 아늑하게 정신 줄이 날아간 듯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이 뭔지, 도무지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괴물 왕자님께서는 대체 드라고니아를 뭐라 생각하고 투란에게 넘기셨을까!
에테온의 왕궁을 반파(半破)했다느니 나라를 멸망시킬 뻔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엄청나게 과장되었느니 하면서 허풍이라 하기도 하니 그렇다 쳐도, 나라 하나를 통째로 박살 낼 정도로 위력 있는 몬스터가 드라고니아라는 점에는 아무도 뭐라 하지 못했다.
키린, 괴물 왕자가 막았기에 왕궁이 파괴되지 않았으며 나라가 망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야기의 주된 줄거리니까.
애초에 키린이 막아섰기에 그런 피해가 없었다는 것이 이야기꾼들의 과장과 허풍을 막아 내는 진실이라 하잖던가!
‘그런 걸 대체 왜 나한테 줘! 아니, 그런 걸 삼키고 내가 멀쩡할 리가…… 어?’
잠깐 투란의 생각이 멈췄다.
키린은 이 자리에 없고, 떠난 것은 그가 기절한 다음이라 했다.
즉 드라고니아의 전이는 이미 끝난 상황!
“어라?”
투란은 자신의 팔다리를 보면서 아무 이상 없는 것을 느꼈다.
몸에서 은은하고 또렷하게 뿜어져 나오는 두꺼운 오러의 물결이 선명하기만 했다. 불꽃의 창, 그 기둥 같은 오의인가 뭔가를 삼킨 후에도 오러의 물결은 그의 몸을 휘감고 지키며 큰 물방울처럼 방벽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벽을 향해 뭔가 독한 바람 같은 것이 계속 닿는 중이었다.
바스락, 푸푹.
땅속을 기면서 뭔가 다가오려 하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은 투란이 방출하고 있는 오러의 물결, 그 영역을 침범하지 못했다. 그저 땅속으로 다가오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을 뿐이었다.
투란의 발끝이 슬쩍 땅을 짚었다.
땅속에서 바로 두꺼운 가죽, 각질을 덮은 듯한 꼴로 굵고 큰 도마뱀이 불쑥 튀어나왔다.
‘흙도마뱀!’
그게 뭔가, 보는 순간 투란은 알아차렸다.
흙도마뱀이 네발로 땅을 박차며 그를 덮치려 했다.
퍼억, 화륵!
반사적으로 투란의 주먹이 내질러졌고, 불길이 주먹과 팔뚝을 휘감으며 흙도마뱀을 관통해 뻗었다.
“얼레?”
물결 같은 오러의 색채가 짙어졌고, 흙도마뱀은 구워진 꼴로 축 늘어졌다.
잠깐 투란은 멍한 눈길로 이 상황을 되새겨야 했다.
애초에 오러의 물결 속을 파고들지 못했던 흙도마뱀이다.
하지만 투란이 슬쩍 틈을 보였고, 얼른 뛰어들게 해 줬다.
그리고 사정 보지 않고 ‘구워’ 버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한 짓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고, 그 반사적인 행동의 목적을 투란의 입에 고인 침이 알려 줬다.
생각 없이 투란은 이 흙도마뱀을 먹잇감으로 사냥해 버린 것이다.
“헤에?”
오러의 물결 위로 둥실대는 흙도마뱀을 두 손으로 움켜쥐면서, 투란의 두 손이 껍질을 벗기고 속을 파내며 이모저모로 살펴봤다. 꽤 잘 구워진 듯했다.
오러의 불꽃이 한 방에 굽고, 오러의 물결이 이를 포획한 상황이었다.
투란은 키린이 자신에게 뭘 강제로 주입했는가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꼬륵거리는 위장의 상태도!
투란은 흙도마뱀의 고기를 찢어 입에 넣었다.
“으엑, 맛없어!”
하지만 키린이 구웠을 때랑 다르게 탄 맛이 너무 진하고 독한 것을 느끼며 울상을 지어야 했다. 냄새는 그럴듯했는데 너무 세게 구워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먹던 것을 뱉어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며칠이나 기절한 탓인지, 맛과 무관하게 입이 계속 흙도마뱀의 고기를 씹고 삼키는 중이었다.
스슷, 스르르.
오러의 물결이 찰랑이는 느낌과 함께 오그라들었다.
투란의 몸을 중심으로 2, 3미터의 영역을 차지했던 커다란 물방울이 작아지고 있었다. 얼마 후에는 딱 투란의 살갗 위를 맴돌 정도의 물결만 남고 모두 사라졌다.
투란은 그렇게 뿜어져 나가던 오러가 모두 자기 안을 채우며 맴돌고, 몸을 지켜 주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신기하고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하면서 당연하다는 느낌도 있었다.
한편으로 주변을 향한 감각은 이전과 다르게 예민했다.
“아하하…….”
실실 새는 웃음이 입가에서 나왔다.
이 깊은 곳에 들어온 상급의 몬스터 로드는 이렇게 오러를 끌어내 자신을 지키고 몬스터를 삼킬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투란 자신처럼 문장에 대고 이상한 거 빌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탓이었다.
웃음의 뒤를 이어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미 저질러 버렸는데 어쩔 것인가?
“좋아, 강해지자!”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두드리면서 투란은 기분을 바꾸기로 했다.
하지만 기분을 바꾸려고 하자 바로 떠오른 것은 파란 돌이었다.
키린은 조금 남기거나 하지 않고 투란이 싸 온 파란 돌들을 다 삼켰다!
푸른 섬광을 뿜어내는 몬스터 로드라면 정말 강해 보일 텐데…….
“우, 씨…… 심술쟁이!”
그 대신에 준 것이 드라고니아라니…….
흠칫, 투란은 잠깐 자신이 뭘 잊고 있었나 깨달아야 했다.
바로 앞에서 꼬물거리는 흙도마뱀을 처먹느라 혹은 생각하기가 꺼려져서 일부러 피했던 것이다.
키린이 파란 돌 대신 준 몬스터.
한데 투란은 오러를 갈무리하면서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뭔가 강력한, 다루기 힘든 몬스터를 삼킨 몬스터 로드에게 찾아온다는 끔찍한 일이 하나도 벌어지지 않은 것이다.
드라고니아의 폭동이든 광란이든 일어날 법했는데, 손발 어디에도, 등짝이나 몸 어디에도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조각조차 느낄 수가 없었다.
이야기에 따르면 날개와 비늘만으로도 다른 몬스터를 압도하는 체격을 자랑한다고 했는데…….
“아! 그렇구나!”
돌연 찾아온 새로운 깨침이 투란을 납득시켰다.
받는 순간 기절할 정도로 강력한 몬스터, 그런 것을 품고 날뛰지 않았다면 답은 한 가지뿐! 받고 기절하면서, 그냥 없애 버린 것이다.
투란이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 드라고니아, 이를 몬스터 엠블럼 저 깊은 곳의 검은 심연에 담가 없애 버렸다면 이렇게 멀쩡한 상태인 것이 아주 당연하지 않은가.
“하아, 아깝기는 하지만…… 흐흠, 위험하면 본능적으로 제거한다! 에헤헤, 나도 제법 몬스터 로드가 된 것 같은데.”
실실 웃음을 흘리면서, 파란 돌을 삼키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놀고 있네.
순간, 지독하게 차갑고 비뚤어진 말이 투란의 뇌리를 푹 찔렀다.
투란은 이 소리 없는 말이 자신의 문장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 것을 분명히 느꼈다.
“누, 누구야?”
서늘해진 느낌을 그대로 담아, 투란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주변에 뭐가 있어 한 말이 아닌 것은 알지만, 어쩔 수 없는 본능에 따른 몸짓이었다.
이런 투란을 향해 깊은 한숨을 쉬는 듯한, 여전히 차갑고 독한 느낌의 말이 스며든다.
—하아…… 정말 기억을 못한단 말이냐? 몬스터 로드라면서!
“설……마?”
꼴깍, 침을 넘기면서 투란은 풀썩 엉덩이를 땅에 떨구며 주저앉고 말았다.
살갗을 덮은 오러의 물결이 조금 부풀어 오르며 그를 덮어 주는 껍질이 되었다.
하지만 이 오러의 방호 태세는 그의 마음을 울리는 소리를 막아 주지 않았다. 그래서 투란은 들어야 했다.
—기억나게 해 주지. 우리가 어떻게 하나가 되었나.
차고, 독하고, 많이 성질난 누군가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