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3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21)
Chapter 185. 대사막의 경계
‘음, 잘 둘러댄 거 맞나?’
투란은 갸웃했다.
햇살은 여전히 지독했지만 한번 걸러진 채로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중이라서 선선한 그늘 아래나 마찬가지였다. 밝기를 유지한 채로 그렇게 햇살을 걸러 내는 일은 키유나의 셀레스티얼 가드가 맡고 있었다.
이 일이 처음 투란에게 기묘하게 느껴진 것은 어떻게 투명한 막이 햇살의 뜨거움과 지독스러움을 걸러 내고 밝기를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이었지만, 마법이라고 얼렁뚱땅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때문에 투란의 관심은 키유나가 자신의 둘러대는 말을 믿었는가, 아닌가 하는 일에 쏠려 있었다. 함께 사막을 걷는 처지가 되었으니 한층 더 그 관심은 짙어질 수밖에 없었다.
―대마법사란 말에 홀랑 넘어간 것 맞다니까.
드라고니아는 이렇게 투란이 관심 두고 걱정하는 바를 쓸데없다며 핀잔했다.
‘그러니까 정말 막 나오는 대로 한 말인데 어떻게 설득된 건가 이상하다고.’
투란은 가만히 앞장서는 중인 키유나의 살랑이는 머리카락을 살피며 투덜거렸다.
현재 키유나의 차림새는 이전과 매우 달랐다.
긴 머리카락에 가려진 등과 허리로는 튼튼한 가죽 코르셋이 감은 꼴이었고, 그 아래쪽으로도 몬스터 헌터를 위해 제련된 가죽 바지의 모양이 채워져 있었다. 종아리까지 감긴 장화 역시 가죽이었고, 굽과 바닥을 덧댄 튼튼한 모양이었다. 더불어 코르셋 위로도 견갑을 덧댄 듯한 짧은 외투가 긴 소매를 늘어뜨린 채로 손목 가까이까지 덮고 있었다.
어디 가더라도 여리고 가느다란 느낌의 소녀가 몬스터 사냥까지 나설 수 있는 사람이라고 과시하는 듯한 분위기가 넘쳐나는 모습이었다. 특히나 등 쪽의 코르셋, 허리춤에 교차해 걸린 단도 두 자루가 그런 분위기를 더욱 진지하게 꾸며 주는 상황.
그 모습을 꾸며 주면서 투란은 장검이라든가, 활이라도 얹은 배낭까지 짊어지게 해 줄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여분의 배낭을 만들어 낸다든가 나올 곳이 없는 배낭 안에서 장검, 활 따위를 꺼내는 꼴을 보여 주기가 곤란해서 단도 두 자루로 참았다. 가죽이야 몬스터 로드의 기묘한 능력으로 얼마든지 꾸며 낼 수 있다 말할 수 있지만, 무장 생성의 마법이라든가 블랙레온까지 보여 주기에는 아직 키유나에 대해 완전히 마음 놓을 수가 없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역시 지금 키유나를 꾸며 놓은 차림새는 어느 정도 투란의 마음에 드는 수준이기는 했다. 처음 봤을 때의 헐벗은 꼴은 누가 보더라도 지나치게 충격적이고 어디에서도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이런 투란의 다양한 감상과 다르게 정작 키유나 본인은 차림새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마녀의 관심은 오롯하게 모래왕의 이야기에 집중된 채였다.
모래 망령이 해방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사막에 드리워지려 하는 언데드의 성채가 그 해방을 영원히 불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것.
키유나는 그 이야기에 바로 행동하려 했고, 투란이 여행을 위해 필요하다 말하니 따지지도 않고 저 차림새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사실 키유나가 투란의 말을 받아들일 까닭이 없었다.
투란이 한 말이 쓸모 있게 되는 곳은 이 사막이 아니라 사막을 벗어난 다음부터니까. 그러나 모래왕의 경고와 함께 키유나는 다른 일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어차피 쓸모가 있다면 굳이 그 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처럼 투란의 말을 받아들였다.
투란으로서는 역시 키유나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야 하는 태도!
거기에 키유나를 당장 움직이게 했던 모래왕의 경고, 이야기를 더하면 지금 상황은 투란이 바쁘게 이것저것 궁리할 때였다.
그러나 사막을 걸으면서 투란이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란…….
‘홀시딘 이야기 괜히 꺼냈나?’
모래왕의 말에 발끈해서 대꾸하다가 흘린 말에 대한 뒤늦은 후회였다.
갑작스럽게 톡 튀어나와 ‘죽지 못한 자들의 성채’란 말만 내던지고 해결책은 전혀 꺼내지 않고 모래왕은 다시 사라져 버렸다.
그 꼴이 황당하고 어이없어서 투란이 되는대로 허공을 향해, 모래왕이 사라진 자리를 향해 외친 소리.
“그런 걸 대체 어떻게 하라고! 그런 이상한 일은 마법사, 그냥도 아니고 진짜 대마법사에게 말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무리 아는 대마법사가 있다 해도 이 사막에서 뭘 어쩌라고! 뭘 해야 하나 말이라도 해 주고 가야지! 그렇게 위협만 하고 가면 어쩌란 말이야!”
키유나는 그 넋두리에서 정확하게 ‘아는 대마법사’란 말을 짚어 냈다.
정말로 투란이 아는 ‘대마법사’가 있다는 것을 아주 쉽게 받아들이고는 그 도움을 얻어야 한다고 당당하게 선언까지 했다!
그 대마법사에게 가는 길에 언데드의 성채 상태까지 파악하자는 것이 키유나가 오롯하게 관심을 두고 지금 앞장서는 까닭.
―뭘 계속 고민하는 거냐? 그럴 시간 있으면 길 찾기 연습이나 해. 계속 마녀의 엉덩이만 보고 따라갈 거냐?
드라고니아가 결국 투란의 태도를 더 못 참겠다는 듯이 잔소리했다.
투란은 뚱한 표정으로 살랑거리는 키유나의 머리카락을 보며 소리 없이 대꾸한다.
‘엉덩이 안 보거든? 머리카락 보거든!’
말은 이리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반성하기도 하는 투란이었다.
이미 흘러간 상황, 벌써 정해진 목표를 놔두고 괜히 딴생각하는 자신의 꼴이 우습고 멍청하다는 것은 분명하니까.
그래서 살짝 의욕을 내서 투란은 주변을 훑어봤고, 바로 다시 키유나의 살랑거리는 머리카락을 눈으로 좇는 꼴이 되었다. 그에 대한 변명은 저절로 투란의 뇌리를 채우고 있었다.
‘누렇잖아! 모래잖아! 햇살이잖아!’
이 마법에 걸린 사막은 다른 풍경을 보여 줄 낌새가 없었다.
멀리서 모래 티끌을 끌어모아 휘날리는 바람결이라든가, 언덕처럼 불룩 솟아 있다가 스르륵 무너져 내리는 모래 더미라든가, 갑작스럽게 물결 흉내 내듯 소용돌이치며 구멍이 났다가 금방 메워지는 꼴이라든가…… 드문드문하면서 끊이지 않는 모든 광경이 마냥 똑같아 보일 뿐이었다.
다시 보든 몇 번을 보든, 뭐 하나 모래의 누런빛과 뜨겁고 지독한 햇살 속에서 꾸물거릴 뿐이며 다른 색채, 다른 모양은 보이질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키유나의 길 찾는 능력 덕분인가 저물지 않는 해가 저물어 가는 길을 걷는 중이고 간혹 갑작스럽게 햇살이 사라지면서 밤하늘이 펼쳐질 때가 있다는 점.
그 또한 갑작스러워서 투란에게는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다.
그리고 그런 때가 되면 키유나는 멈추고 앉았다.
처음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가 투란이 ‘왜?’라고 멈출 때마다 물으니 이제는 키유나도 그 까닭을 말해 주고 있었다.
덕분에 투란은 이 사막의 기묘한 특징을 하나씩 배우고 있었다.
그 첫 번째가 일단 이 사막은 밤의 풍경과 만나면 쉬어야 한다는 것.
낮의 풍경에도 모래 아래에서 움직이는 녀석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고는 하지만, 밤의 풍경을 맞이하면 모래 아래에서는 움직이지 못하는 녀석들이 튀어나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한낮의 풍경은 감각을 잔뜩 혼란시키고 헤매게 하지만, 한밤의 풍경에서는 그 효과가 확 줄어든다는 점도 있었다. 때문에 사막에 서식하는 짐승들은 밤의 풍경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보통이었고, 밤은 그런 짐승들이 서로 사냥하는 시간이면서 그 짐승들을 사냥하려는 사막의 몬스터까지 난동을 부렸다.
키유나가 밤에 멈추고 낮에 움직이는 까닭은 그런 밤의 생태와 충돌하지 않으려는 때문이기도 했다. 동시에 햇살을 피해 움직인 만큼 휴식도 필요한 부분도 있는 듯, 쉬자고 할 때 키유나의 모습은 그야말로 죽어서 사막에 늘어진 시체가 아닌가 싶을 지경이기도 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투란이 이 사막에 대해 알게 된 특징은 몬스터보다 마수나 맹수가 더 종류가 많다는 것.
이는 쿤토르와 여행했던 때와 비슷한 경우였다.
투란에게는 이 사막이 아무리 괴기스러운 마법에 걸렸다 해도 역시 춤추는 산맥과는 다른 곳이라는 깨우침을 주는 일이었다.
정상적인 세상에서는 몬스터보다 맹수에 대해 더 걱정해야 한다는, 말로만 듣던 이야기가 이 사막과 대삼림 쪽에는 그대로 적용된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거기에 또 다른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지루해! 답답해!’
무엇보다 투란이 느끼는 바는 단조로운 풍경이 주는 지긋지긋한 답답함이었다.
하도 답답해서 이쯤에서 몬스터 한두 마리가 나와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춤추는 산맥에서 그런 소리 하면 바로 몬스터한테 줄 미끼로 정해질 수 있는 위험한 생각이었지만…… 이곳에서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런 투란을 향해 드라고니아가 사막을 벗어나는 여정이 대강 사나흘 정도 되었나 싶을 때 불쑥 말했다.
―아, 거의 완성된 것 같군.
‘응? 뭐가?’
너무 갑작스러운 말에 투란이 멀뚱히 키유나의 얼굴을 보는 채로, 그래도 입술은 꽉 다물고 소리 없이 되물었다. 마침 키유나도 돌아보며 투란을 향해 말문을 열고 있었다.
“어두워질 거야, 이제 눈보라 치는 산맥에 닿을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 그러니 여기서 일단 쉬어야 해.”
사나흘의 시간 동안 익숙해진 덕분인가 왜 멈췄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 그래?”
물론 투란이 주변을 둘러봤지만, 역시나 밝은 햇살과 사방에 휑하니 뚫린 모래 가득한 풍경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바로 본 바에 대해서 뭐라 갸웃하기도 전에 키유나가 선 자리로부터 햇살이 사라지며 어둠이 몰려들었다.
갑작스럽게 풍경이 밤이 된 것은 투란을 움찔하게 했다.
이 사나흘 동안 제대로 하루가 지났는가는 애매했어도 해가 저물고 밤이 되는 광경은 제법 그럴듯하게 볼 수 있었다. 한데 지금은 갑작스럽게 낮이 밤으로 바뀌고 있다니?
“경계 지역이야. 사막과 외부가 가까워지면, 갑작스럽게 외부의 영향력이 강하게 드러날 때가 있어. 그리고 지금 사막 밖은 밤이거든.”
키유나가 담담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반쯤 그럴듯하다고 납득하려 투란이 열심히 생각했지만, 결론은 역시 ‘아, 마법의 사막이니까.’라는 마법 주문처럼 되뇜으로 끝날 뿐이었다.
그런 투란을 향해 매우 한심하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말한다.
―마법이 강제로 무효화되는 영역이란 말이다! 그냥 그러려니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사막의 마법이 효과를 잃는 곳이라면, 다른 마법과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일 수도 있고 사막을 채운 마법의 범위가 끝나는 곳일 수도 있어! 상황에 따라서는 몬스터 로드가 그 힘을 발휘 못 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단 말이다! 긴장해!
‘으어? 어째서? 힘을 못 쓴다니?’
흠칫 놀라서 투란은 재빨리 키유나에게서 돌아서며 밤의 풍경이 된 주변을 보는 시늉을 했다.
―성물(聖物)이 그런 효과를 발휘할 때도 있고, 누군가 성역(聖域)을 꾸몄을 때도 있지. 그와는 정반대로 마법사가 강력한 마법을 두르고 침투해와서 주변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고, 이 경우에는 몬스터 로드가 영향은 받지 않겠지만 첫 번째 경우라면 심각해지잖아. 그냥 그러려니 하지 말고, 이게 어떤 현상인가 기억해 두고 너도 거기 휩쓸릴 때를 가정하고 그럴 경우에는 어쩔까 미리 생각을 해 둬.
‘아까 뭐가 완성되었다고 한 거야?’
연이은 잔소리에 투란이 냉큼 말을 돌리려는 질문을 했다.
이 시도가 잔소리하던 드라고니아에게 바로 통한 모양이었다.
―프로브. 이제 빛의 정령과 바람의 미로가 만들어 낸 사막의 환영에 시달리지 않는 프로브를 구성할 수 있어. 이런 업적은 드라코눔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데…… 마법에 대해 얼렁뚱땅 넘길 궁리만 가득한 너만 쓸 수 있다니!
한탄도 살짝 짙게 섞인 말이었지만 투란은 쓴웃음과 함께 이 이야기를 조금 더 하기로 했다.
‘야, 엄청나게 늦은 거 아냐? 벌써 며칠째인지…… 기억도 안 나네.’
금방 만들 것처럼 말했지만 드라고니아는 프로브의 구성을 쉽게 바꾸지 못했고 투란이 키유나의 뒤만 졸졸 따르는 꼴을 지켜만 봐야 했다.
―그건 네가 몰래 실험하자고 해서 그런 거지! 마녀의 눈치 보지 않고 바로바로 새로운 시도를 했다면 길어도 이틀을 넘기지는 않았을 거다.
‘그렇다 치고, 마법의 영역이 무효화되네 어쩌네 하는 상황인데 통할 것 같아?’
―통한다. 지금 윌라이트의 마력은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으니까. 그런데 지금 마녀가 널 뚫어져라 보는데 바로 만들라고?
‘응? 키유나가 날?’
투란은 멀리 보던 몸짓과 눈길을 돌려 키유나를 바라봤다.
밤이니 하던 대로 바로 드러누워 시체처럼 쉬려나 했는데, 지금 키유나는 물끄러미 투란을 바라보고 있었다.
“키유나, 무슨 할 말이 있어?”
조금 맹하니 투란이 묻는 말을 꺼냈다.
곧바로 키유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죽지 못한 자들의 성채, 거기 들어가 보고 싶어.”
“어? 뭐? 왜?”
투란은 당황스러운 대꾸를 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