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3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23)
‘야, 이 정도면 보통 새 이름 붙인다고 하지 않았어?’
투란은 지겹다 여길 정도로 뇌리를 울렸던 이야기 중 한 토막을 꺼내 물었다.
고즈넉한 사막의 밤 풍경 속에서, 동행인 마녀는 시체처럼 잠든 소녀의 몰골을 하고 있었으니 잠이 오지 않는 투란으로서는 마음속에 품은 드라고니아를 향해 대화를 하는 수밖에 없다는 듯.
―새 이름을 붙이고, 드라코눔의 전당(殿堂)에 등록을 하지. 그것이 드라코눔의 전통이다만, 그럴 수가 없잖아.
드라고니아의 대답에는 스스로도 살짝 애석해하는 분위기가 어려 있었다.
그 기분을 살짝 맛보면서 투란이 피식 웃었다.
‘나중에 드라코눔에 갈 일 있으면 그 등록인가 뭔가를 하면 되는 거고, 이름은 지금 붙여도 되잖아? 계속 프로브라고 할 거야? 이전 것, 새것 이런 식으로? 아니면 이전 것은 아빠 프로브, 새것은 아들이나 딸 프로브? 헷갈리게 하지 말고 확실하게 지금 정해 놓으라고. 아, 그러고 보니 키워드였나? 그것도 심어 둬야 했을 텐데? 그러면 이미 이름 정한 거 아냐?’
이제까지 길게 떠드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번에는 아예 자신이 역습을 하겠다는 듯이 길게 늘어놓는 말이었다.
―키워드는 임시로 붙여 놓기는 했다만…….
조금 머뭇거리는 낌새로 드라고니아가 웅얼거리듯 말하고 있었다.
그 낌새가 투란을 갸웃하게 했다.
‘응? 너, 지금 부끄럼 타는 거냐? 왜?’
저절로 놀리는 듯한 말투가 된 탓인가, 드라고니아가 재빨리 말을 이으면서 못 들은 척했다.
―드라코눔에서 처음 프로브를 시연했을 때, 순수한 탐색 목적인 것을 보며 대마도사 카엘이 한 말이 있다. 차라리 옵저버라고 하는 편이 어울리겠다고 말이야. 드라코눔을 한참 도와줄 때라 선조 아칸들은 뭐라 제대로 물을 겨를이 없었지만, 카엘은 건축 기능이 없는데 무슨 프로브냐며 투덜거렸다는 기록은 확실히 남겼지. 아무튼, 대마도사 카엘에게 관측, 통찰의 기능을 극대화한 도구는 옵저버라 불린다는 것만은 확실했어. 하지만 역대 아칸들은 프로브의 기능이 장애를 일으키거나 제대로 탐색이 이뤄지지 않는 곳은 드라코눔의 마법이 무효화되는 영역이라 판단하고 다른 수단을 모색했다. 대부분 강력한 우리의 몸과 그에 어울리는 튼튼한 장비를 두르고 직접 탐색한다는 것으로 결론 났다만, 어쨌든 그로 인해 딱히 프로브를 개량할 필요가 없었지.
‘음, 몸으로 때운다라…… 왠지 내 취향인데?’
투란이 슬쩍 보태 말했다.
이를 한번 더 못 들은 척하며 드라고니아가 이야기를 잇는다.
―나는, 네 덕분에 반드시 프로브를 개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리고 지금 나온 결과는 옵저버란 이름에 걸맞다고 생각하지! 그러니까 새로운 프로브의 키워드는 옵저버, 한 쌍으로 이뤄진 마법의 구성체야. 알겠냐?
‘네 몸을 내가 쓸 수 있으면 별 필요도 없었다는 말인 것 같은데?’
투란은 살짝 비뚤거리는 말투로 웅얼거렸다.
혀를 차고 한숨을 쉬는 낌새로 드라고니아가 냉혹하게 대꾸한다.
―이 사막에 드라코눔의 일족이 아예 들어오지 않는다는 얘기, 분명히 했을 텐데? 지도도 없고 탐색도 하지 않고 오로지 살아 나온 자들의 경험담만 기록한다고 말이야. 여기는 우리 일족의 몸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곳이라고 예전에 결론 난 곳이란 말이다! 옵저버를 구성해 낸 것을 고맙게 여겨!
‘응, 고마워. 그러니까 키유나 버려도 된다고 말하고 싶은 거지? 그렇게 날 은근히 유혹한 거지?’
―누가! 셀레스티얼 가드의 마녀랑 좋지 못한 관계를 맺으면 안 된다고 경고하려 했던 거야! 멋대로 앙심을 품을 일은 만들지 말라고!
‘뭐? 야, 그런 얘기를 지금 하냐? 그 말부터 했어야잖아!’
―버려두고 안 간다며? 그럼 들을 필요가 없었지.
‘우와, 너 정말…… 응? 지금 뭐냐?’
지긋이 사막의 풍경을 보는 시늉을 하면서 한참 툭탁거리는 대화를 이어 가던 투란이 낯을 구기면서 바로 일어나 앉았다.
새로운 프로브, 새로운 키워드 옵저버를 부여받은 마법구성체가 탐색하고 경계하는 뒤편이 아니었다. 딱 투란이 바라보는 정면, 멀리서 희미하게나마 절벽의 성채가 어른거리는 그쪽에서 고요한 풍경을 깨뜨리는 것이 튀어오르고 있었다.
‘몬스터? 몬스터지? 몬스터 맞지?’
―보채지 말고 기다려 봐!
당장이라도 가 볼까 말까를 궁리하면서 투란은 키유나 쪽을 곁눈질했고, 드라고니아는 옵저버의 탐색 방향을 바꿔 소란이 일어난 쪽으로 돌격시키며 핀잔했다.
‘우왓?’
느닷없이 눈과 귀에 보이고 들리는 저편의 풍경을 느끼며 투란은 과연 드라고니아가 자랑할 만하다고, 이 새로운 프로브, 옵저버에게 새 이름을 붙이면서 자부심을 느낄 만하다고 느꼈다.
그저 보고 듣는 정도가 아니라 그쪽에서 벌어지는 일의 여파가 살갗에 닿는 것처럼, 그 주변에 서 있는 것처럼 알 수 있었다. 분명히 이전에도 온갖 감각을 다루는 프로브였지만 이런 식으로 거리를 둔 경우에는 우선 시각과 청각을 중심으로, 은폐된 프로브의 형상이 직접 닿는 범위 위주로만 촉각 계열의 정보를 전해 왔다. 한데 지금은 그야말로 투란이 그 앞에 서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것을 모조리 느끼게 해 주는 데다가, 저편이 아닌 이쪽에 선 자신의 현 상태까지 냉정하게 파악하며 비교해서 알려 주고 있었다.
여기 있다가 저쪽에 가면 겪을 일을 미리 알려 주며 그 차이까지 분명하게 미리 파악해 두는 것. 이전처럼 양쪽의 정보를 투란이 스스로 취합해서 추측하는 것과는 완연히 달랐다.
‘훨씬 편하잖아!’
살짝 투란이 기뻐하니 드라고니아는 한숨으로 대답한다.
―게으른 네 녀석을 충분히 고려했으니까. 이전에도 조금만 깊이 생각했으면…….
‘샌드 리저드인 거야? 아니, 모래 상어를 타고 있으니 다른 품종인가?’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한숨을 저 멀리로 싹 치워 버리듯이 저편의 풍경에 몰입하는 시늉을 했다. 이는 드라고니아에게도 더 이상 핀잔하고 말다툼할 때가 아닌 바를 충분히 알려 준 모양이었다.
―샌드 리저드가 맞고, 모래 상어도 맞아. 그리고 굵고 큰 놈은…… 이 사막에 적응한 웜이 맞는 모양이다. 모래 벌레라면 딱 맞을 듯하군.
‘모래 상어랑 모래 벌레를, 모래 리저드가 타고 다닌다고?’
어딘가 우스운 기분을 느끼면서 투란이 키득거리듯이 물었다.
드라고니아가 잠시 잊었던 것을 되찾았다는 듯이 바로 핀잔한다.
―장난칠 때가 아냐! 샌드 리저드를 중심으로 이 사막의 몬스터, 마물이 뭉칠 수 있다는 증거라고! 저렇게 이종(異種)의 몬스터를 탈것으로 이용할 지경이라면 분명히 어느 정도 지능과 자아를 갖췄다고 봐야 하지. 그러니 저건…….
‘그런 건 삼켜 봐야 알지! 미리부터 겁먹을 필요 없어! 이전의 내가 아냐! 사룡을 삼켜도 멀쩡한걸!’
경고를 뚝 자르면서 투란이 저리로 당장 튈까 하며 슬쩍 다시 키유나를 봤다.
소녀의 눈길이 곧바로 투란과 마주쳤다.
시체라도 된 것처럼 잠든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어느 틈에 키유나는 그림자에 몸을 기대고 앉은 모습이었다. 엉성한 가죽 천막의 그늘 아래에서, 밤의 풍경과 묘하게 어우러지는 머리카락을 살랑이면서 키유나가 똑바로 투란을 보는 채로 묻는 말을 꺼낸다.
“저리로 가 보려고?”
“위험해?”
투란은 짧게 되물었다.
키유나가 차분히 투란을 바라보며 말한다.
“투란이라면 괜찮을 거야. 하지만 용이 가호하는 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있잖아? 왜 가려고 하지?”
“어, 뭐?”
잠깐 투란은 눈을 깜박이다가 키유나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말았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정확하게 그 의미를 이해한 모양이었다.
―젠장, 이 마녀 눈치채고 있었나!
투란이 다시 제대로 무슨 말인가 물어야 하나 싶어 키유나를 보며 입술을 달싹거리려는 찰나, 키유나가 먼저 대답을 한다.
“용의 의지, 그 의지를 담은 눈과 귀는 매의 눈이나 늑대의 귀보다 정교하고 예민하다고 했어. 투란은…… 그걸 쓸 줄 알잖아? 이제는 그 눈과 귀로 이 사막의 환영도 걷어 내고 볼 수 있잖아? 그런데 왜 저 소란 가까이 가 보려고 해?”
투란은 다시 눈만 깜박였다.
하지만 마음속은 매우 바쁜 채였다.
‘프로브 이야기지?’
―그래, 마법 구성을 어떻게 알아차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 하긴…….’
문득 닿은 생각이 바로 투란의 입에서 불쑥 한마디를 튀어나오게 한다.
“쿤토르랑 아는 사이야?”
이번에는 키유나가 의아한 듯이 눈을 깜박였다.
투란은 살짝 쓴웃음을 짓는 시늉을 하며 키유나에게 설명하듯 말한다.
“이전에 만난 오르카인데, 지금 키유나랑 비슷한 얘기를 했어. 뭐, 아무래도 내가 품은 어떤 몬스터 때문에 생긴 능력 때문인 것 같기는 한데…… 키유나,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줘. 저 녀석들 상태를 조금 더 가까이서 봐 둬야 할 것 같거든. 그 가호인가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고 말이야.”
키유나의 눈살이 미묘하게 찌푸려졌다.
드라고니아는 지금 투란의 말에 굉장히 감탄했다.
―제법이네? 거짓말은 하지 않고 그렇게 둘러대다니!
마음에 울리는 말은 싹 무시한 채로 투란은 가만히 키유나만 바라봤다.
절대로 켕기는 일 따위는 없다는 듯, 지긋이 눈을 마주쳐오는 투란에게 키유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알았어. 다녀와.”
바로 투란이 몸을 일으키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밟는 모래가 키유나에게 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딛던 몇 걸음이 지나고 나기가 무섭게 투란의 몸은 투석기에서 쏘아진 바위처럼 튀어 올랐다.
키유나는 가만히 밤의 모래 위로 기묘한 자취를 남기며 내달리는 투란을 지켜봤다.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키유나의 몸을 보듬은 채로 키유나와 함께했다. 그리고 저 먼 곳에서는…….
모래로 된 리저드가 모래로 된 칼을 들고, 모래로 된 갑주를 걸친 채로 모래 속을 넘나드는 기형(奇形)의 상어를 탄 채로 날뛰고 있었다. 한두 마리가 아닌 수십 마리의 이런 샌드 리저드의 중심에는 몇십 미터는 가볍게 넘을 듯한 크기와 어울리지 않는 조촐한 애벌레의 모습을 한 괴수가 모래에 덮인 채로 모래를 휘몰아치며 꿀렁꿀렁 철렁철렁 하는 광경을 만들어 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모래 벌레의 위에는 위엄을 뿜어내지만, 네 발로 찰싹 달라붙은 듯한 괴상한 자세를 한 샌드 리저드가 있는데…… 그 모습이 다른 샌드 리저드와 꽤 달라 보였다. 다른 샌드 리저드가 칼과 갑옷을 갖췄다면, 모래 벌레 위의 한 마리는 수상할 정도로 넓게 펼쳐진 망토를 휘날리는 채였으니 어떻게 봐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그 체격은 모래 상어를 탄 녀석들과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컸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모래 벌레 정도 돼야 그 몸을 버틸 듯한 모습인 셈.
‘저건 뭐고, 저건 또 뭐야?’
투란은 샌드 리저드이면서도 색다른 모래 벌레 위의 한 마리와 함께, 샌드 리저드가 모여 꾸미고 있는 듯한 기묘한 군단에 맞서는 또 다른 마물들에 대해 의아함을 치울 수가 없었다.
한쪽이 모래를 뒤집어쓴 형태라면, 그에 맞서는 한쪽은…… 부패(腐敗)와 부식(腐蝕)으로 그냥 먼지가 되어 흩날려야 할 형체인데 어찌 저렇게 잘 움직이는가 납득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언데드라고 한다만, 뭘 그리 이상하게 봐? 몬스터잖아, 이치를 따지고 싶냐?
드라고니아의 대꾸는 그냥 놀리려는 말이었다.
투란은 괴상한 전장이 내려다보이는, 저 난투에 휘말리지 않는 한쪽 모래 언덕에 자세를 낮추고 앉아 낯을 구기면서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누가 데드워커인 거 따지냐! 저 썩은 방패, 창, 갑옷! 샌드 리저드도 그렇지만, 저 녀석들도 무슨 군단 같잖아! 이전에 본 데드워커는 몬스터가 죽어서 된 거잖아. 근데 저건 뭐냐고.’
―글쎄, 저기 보이는 성채에 원래 머물던 언데드는 저 녀석들이 맞을 것 같은데? 하도 오래된 전설이라 애매하다만, 저 성채가 저런 몰골이 되기 전에는 병사들로 꽉 차 있던 요새라고 들은 듯하니까. 달리 생각할 거리도 애매하군. 가까이 다가온 자를 죽여서 저리 자신의 병사로 만든다, 그게 맞을 것 같은데?
‘들어서면 데드워커라…….’
투란은 흘깃 절벽 쪽을 보며 낯을 조금 더 구겼다.
난투가 벌어진 전장에 가까이 왔기에 더 잘 보이는 절벽에서는 여전히 뭔가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것이 모래 속으로 그대로 빨려들어 가니, 이쪽 싸움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어 보이기는 하는데…… 애초에 이 난투가 모래 속에서 시작된 듯하니 진짜 영향이 없다고 확신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저렇게 모래 속에 떨어진 녀석들이 리저드의 보금자리를 건드려서 이렇게 된 것일 수도 있잖은가.
‘모래 속, 뭐가 있지?’
―음? 흐음…… 아, 투란. 이제 보니…… 모래 속에는 바람의 미로가 아무런 영향을 못 끼치는구나. 모래왕의 영역이라 빛의 정령도 환영을 드리우지 못한 것 같은데? 방향 잡으려고 위만 보지 말고 아래도 봤으면 더 빨리 이 사막에서 아무런 충돌 없이 벗어날 수 있었겠어.
‘이 자식이!’
갑작스러운 말에 투란이 멍하다가 울컥했다.
도저히 지금 들어서 기분 좋은 말도, 지금 상황에서 나올 말도 아니잖은가!
이런 투란을 대신하듯, 몬스터의 군세가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끼이이이!
캬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