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3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25)
‘와, 겨우 한 마리 빠졌다고 바로 패배야?’
모래를 장막처럼 두르고 재빠르게 물러서는 샌드 리저드 패거리를 보면서 투란이 혀를 차는 시늉을 했다.
―균형을 이루고 있던 난투였는데 네가 고른 녀석이 그중에서도 제법 잘 싸우던 한 마리였잖아. 어설프고 약해 보이는 놈 다 피해서 골라 놓고 영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냐?
드라고니아는 이 당연한 결과를 왜 예측 못 했느냐는 듯 타박했다.
‘쯔읏! 하나 빠졌더라도 다들 근성으로 한 녀석 몫을 더 쥐어짜 내면 될 것을! 아니, 일부러 물러선 건가?’
툴툴거리던 투란은 샌드 리저드 패거리가 모래 상어를 떠나서 모래 벌레 위로 옮겨 가는 광경을 보며 갸웃했다. 물러서는 모습에서 정해진 순서를 느낄 수 있었고, 잘 훈련된 군단병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대충 손을 맞춰 본 헌터라든가, 서로 알고 지내면서 손을 맞추게 된 경우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 분위기의 중심이 무엇인가는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모래 벌레 위에 버티고 있던 한 마리가 주변에 모여든 샌드 리저드 패거리의 중심에서 우뚝 일어섰고, 모래 벌레가 길게 위쪽으로 몸을 일으키며 강렬한 모래 장막이 속이 빈 기둥처럼 치솟았다.
샌드 리저드를 쫓아 녹슨 칼과 낡은 방패를 들이대며 달라붙으려던 데드워커의 무리가 순식간에 모래 벌레 주변에서 튕겨 나갔다.
모래 벌레를 중심으로 모래의 소용돌이가 일어났고, 모래 벌레와 샌드 리저드의 패거리를 모조리 삼켰다.
들썩거리는 모래의 흐름, 요동치는 모래 둔덕이 거기 무엇이 있었는가를 증명하기는 했지만 그조차 잦아들면 샌드 리저드의 흔적 따위는 전혀 찾을 길이 없는 상태가 될 것이 명확했다.
‘과연 저 지경이면 지나가다가 모를 수밖에 없네?’
투란은 살짝 감탄했다.
단순히 모래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정말 정교하게 잘 다룬다.
모래로 필요한 형태를 꾸미고, 필요한 힘을 부여하는 능력이라니…….
날카로움을 필요로 하는 칼날, 부드럽게 감싸 주는 갑주, 적을 솎아 밀어내는 장막에 이르기까지 실로 마법이라 할 수밖에 없는 재주였다.
때문에 투란은 기쁘게, 자신이 쥔 심장을 느긋하게 꺼내면서 잡아 둔 샌드 리저드의 정수를 긁어 삼키기 시작했다. 핏빛 고리가 검은 결정으로 덮인 투란의 손에서 피어났고 심장이 투명하게 변하며 으스러져 사라졌다. 나머지 샌드 리저드의 몸뚱이 또한 안쪽부터 으스러지며 투명한 티끌이 되어 지워져 갔다.
‘음, 모래가 흩어지질 않네?’
샌드 리저드의 살갗, 껍질에 닿아 있던 모래는 그 형체를 갖추게 한 몬스터의 정수가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유지된 채였다.
―모래 벌레 쪽의 모래는…… 이미 그냥 모래로 변해 버렸다만. 투란, 저 언데드 무리가 네 생명을 감지한 모양인데? 어쩔 거냐? 기다리다 싸울 거야?
샌드 리저드의 능력에 투란이 새삼 호기심을 느낄 때, 드라고니아가 그런 것을 체험하고 실험할 때가 아니라고 경고했다.
파삭, 형체를 유지하던 모래를 밟아 뭉개면서 그 저항력을 가늠하다가 투란은 멀리서 비척거리며 모래를 밟고 질질 끌리는 흔적을 남기는 채로 걸어오는 언데드 무리를 살펴봤다.
샌드 리저드의 우두머리가 패거리를 부리며 저 언데드 무리와 숫자를 맞춘 탓인가, 그 숫자는 모래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진 패거리와 비슷했다.
‘백은 넘어 보이지?’
―장난하냐? 사백쉰셋…… 둘이 되었군. 모래 속으로 파묻혀 사라지지 않고 지금 걸어오는 녀석들만 사백쉰둘이다. 전부 무장한 언데드이고, 그 무장도 가볍게 여길 것이 아니야. 대등하게 싸우다가 밀렸다고는 해도, 죽어 나간 쪽은 샌드 리저드 녀석들이었어. 모래랑 함께 시체까지 싹 거둬가 버려서 흔적은 없다만…….
‘음, 백은 넘는구나!’
투란은 긴 잔소리에 짧게 답했다.
죽지 못한 자들, 드라고니아가 매우 불쾌하고 껄끄러운 감장을 담아 ‘언데드’라 부르는 데드워커들은 투란이 보기에도 어딘가 불길했다. 그 불길한 기분은 투란에게 이제 호칭에 대한 가벼운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 줬다.
‘데드워커, 언데드…… 부르는 이름의 차이만 있는 거는 아니지? 보통은 그게 그거라고 대충 넘기지만 말이야.’
―보통은 대강 넘겨도 별 차이가 없는 상황이 대부분이지. 하지만 상아탑과 드라코눔의 공식적인 기술(記述)에는 분명히 다른 경우로 사용되는 이름이야. 몬스터 헌터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데드워커는 움직이는 실체를 파괴하는 것으로 바로 동인(動因)을 해제할 수 있는 경우. 언데드는 그 영핵(靈核)을 찾아내지 않으면 움직이는 실체는 그저 장난감이나 다름없는 경우지.
‘아, 그 차이였구나.’
―물론 그 영핵을 내포한 채로 움직이는 언데드도 있고, 그런 경우는 거의 데드워커랑 같으니까 호칭이 이렇든 저렇든 차별 없이 쓰는 거야.
‘그래, 그렇다면 저 녀석들은 영핵을 품은 놈들일까, 품지 않은 놈들일까?’
―어떤 쪽이든 모래밭에서 허우적대는 저 몰골을 짓이기는 것만으로 이 사막에서는 충분히 격퇴할 수 있을 것 같다만…… 너, 언데드 삼킬 궁리는 전혀 안 하는 것 같다? 저거 분명히 몬스터인데?
‘몸이 썩은 몰골로 저렇게 허우적대는 꼴이 되라고? 사양하겠어! 데드워커 흉내라면 내겐 이미 악마의 심장이 있다고 대답해 주지!’
후우욱, 숨을 깊이 들이쉬면서 투란이 몸서리치는 거부감을 확실히 쏟아 냈다.
드라고니아는 몬스터를 차별하는 투란이 어처구니없다는 낌새를 살짝 보였지만 언데드도 몬스터이니 얼른 삼키란 말 따위는 전혀 꺼내지 않았다. 놀리는 말조차 꺼낼 시늉을 하지 않았기에 온몸에 들이쉬는 숨구멍을 뚫으면서 투란이 묻는다.
‘몬스터 로드답게 삼켜서 지우라는 말 같은 거 안 해?’
코웃음 치는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바로 답한다.
―언데드를 우습게 보지 마라. 모래왕이 분명히 죽지 못한 자라고 했지? 모래 망령까지 잡아 가둘 수 있는 위험한 것이라고 말이야. 그렇다면 그 영핵이 원령(怨靈), 원한을 잔뜩 머금은 혼령(魂靈)일 수도 있어. 쉽게 말해서, 문장의 풍경 속에서 미쳐서 울부짖고 날뛰는 더러운 의식이 끼어들 수도 있다는 거지. 그 원한을 풀지 않으면 언데드의 역량 따위는 전혀 발휘하지 못하는, 몬스터 로드로서는 몬스터의 본능부터 해결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 수 있다고. 뭐, 너야 원래 유령이니 망령이니를 싫어하니 말릴 필요가 없다만…… 아니었다면 정말 진지하게 내가 먼저 말렸을걸.
‘응, 그렇구나. 고마운 얘기네. 그러면…….’
―그런데, 왜 온몸에 구멍을 내서 허파를 채우는 숨을 들이켜는 거냐? 무슨 짓을 하려고?
드라고니아가 점차 바람으로 채워진 풀무의 가죽 포대처럼 부푸는 투란을 향해 작작 좀 하란 듯이 물었다. 무슨 엉뚱한 짓을 하려는가 짐작이 안 되지만, 가능하면 하지 말라고 말리는 말이었다.
‘아, 저 녀석들 조금 더 가까이 오면…… 음, 대강 이백 미터? 그 안에 모조리 들어오면 알게 될 거야.’
히죽,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팔다리, 등, 가슴, 허벅지 곳곳에 쉬익쉬익 하며 격하게 숨을 들이쉬는 구멍을 더 뚫으면서…… 거의 속을 바람으로 채우듯이 점차 통통하게 부푸는 몸집을 꾸미면서 나오는 투란의 대답이었다.
드라고니아는 이제 더 말리지 않는다는 듯이 가만히 지켜봤다.
잠깐 사이에 투란은 더욱 부풀어서 체격이 위아래, 좌우로 4미터 정도 되면서 팔다리 구분이 사라질 듯한 괴기한 몰골이 되어 갔다.
그러는 동안에 오백에 가까운 언데드 무리가 허우적거리면서 질질 끄는 걸음에도 들고 있는 녹슨 칼과 방패, 썩어 문들어지는 몸을 이끌고 다가왔다.
―음, 마지막 하나까지 모두 이백 미터 안쪽이다. 가장 가까운 녀석은…… 20여 미터까지 다가왔다, 이제 뭘 하든 얼른 하지? 아니면 파이로를 부를까? 저 녀석들에게는 불길이…… 응? 너 뭔 짓을!
화아아아…….
느리게, 하지만 뜨겁게 투란의 입가에서 불길이 날름거리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투란의 두 손이 모랫바닥을 짚었고, 네발로 땅을 걷는 짐승과 같은 자세가 된 투란은 다가오는 언데드 무리를 향해 넓게 불길을 뿜어내는 모습이 되었다. 그러면서 투란의 입이 점차 커졌고 목을 지나 가슴까지 입꼬리가 늘어나며 커다랗게 벌려졌다.
그리고 마치 거대한 짐승의 머리만 덩그러니 놓인 채로 다가오는 언데드 무리를 향해 반원형에 가까운 불길을 쏟아 내는 괴이한 상황은 금방 이뤄졌다.
불길은 느렸지만 언데드 무리가 들고 있는 녹슨 칼과 방패를 벌겋게 달구고 금세 녹아내리게 했으며 그 썩어 문들어진 몸은 삽시간에 재도 남기지 못하게 지워 버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언데드 무리는 겁을 먹거나 피하는 태도, 움직임이 전혀 없이 투란을 향해 몰려들었고…… 결국 반원형의 모래 터가 달아오르며 이글거리는 채로 녹아 흐를 무렵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푸우핫!
마지막 숨결처럼 불줄기를 흘려 내고 이형(異形)의 거대한 머리가 오그라들면서 투란은 사람의 형상으로 되돌아왔다. 다만 머리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검은 결정과 가죽으로 둘러싼, 그림자가 튀어나와 움직이는 듯한 모양인 채로 사람의 몸집을 꾸미고 있었다.
“후우아아.”
거친 숨을 다시 한번 더 몰아 내쉬고 투란이 갸웃했다.
이글거리며 달아오른 것이 진실이었다고 외치듯이 그을린 흔적 사이로 살그머니 녹아 흐르는 꼴까지 보이는 모래 터…… 그 곳곳에서 기묘하게 허공을 담은 풍경이 미묘하게 흔들거리며 깨졌다가 원래 모습을 되찾는 광경이 보였다.
―너, 지금 사룡의 숨결을 사용한 거냐?
드라고니아 또한 그 깨진 풍경을 알아차린 듯 물었다.
격렬하고 강력한 사룡의 초월적인 파동, 그 압도적인 파문을 담은 숨결이라면 저런 식으로 보이게 하는 효과가 분명히 있으니까.
‘아닐걸? 드레이크를 좀 키운다 싶은 생각으로…… 음, 저 꼴 보니 사룡이 알아서 끼어들었다고 해야겠는걸? 딱히 방해하는 것도 아니고 들떠서 나선 것도 아니고…… 뭔가 내가 하려는 짓을 도왔다? 그런 느낌이잖아? 이건 뭐라고 해야 하나?’
―의도한 바를 충실히 따라 줬다고? 저 사룡이?
드라고니아가 어이없어 중얼거렸다.
투란도 조금 얼떨떨한 채로 다시 상황을 되짚어 봤다.
백여 미터에 이르는 거인의 형상을 더욱 확대해서 사용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투란은 여전히 어린 드레이크의 형상 속에서 불을 뿜어내는 숨결에 필요한 부분만 형성해서 사용할 궁리를 했다. 불길의 힘이라면 마그마 로드와 몰튼노트의 안쪽을 적당히 꾸미고 쥐어짜 내면 갖출 수 있었기에 드레이크의 형상은 순전히 불을 뿜어내는 모습, ‘드래곤 브레스’라 일컬어지는 모양만 갖추도록 끌어내면 될 뿐이었다.
결국 덩그러니 머리통만 굴러다니는 이도 저도 아닌 괴상한 몰골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원하던 대로 불을 뿜는 머리…… ‘드래곤 브레스’의 위용을 슬쩍 드러냈다고 투란은 으쓱할 수 있었다.
한데 그 과정에서 어린 드레이크의 숨통, 아직 덜 자라서 넓게 펼치기에는 조금 모자란 그 형상에 사룡의 형상이 끼어들었다. 자연스럽게 당연히 자라면 이렇게 될 거라고 알려 주는 것처럼.
더불어 사룡이 자랑하는 권능에 해당하는 힘도 살짝 끼어들어 발휘되었다.
본격적인 위력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지만, 그 미묘한 영향력만으로도 저런 일그러졌다 깨지고 원상회복되는 풍경의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어찌 보면 본연의 능력을 억누르면서 지금 투란이 원하는 바에 맞춰 주려고 사룡이 꽤 노력까지 해 준 셈.
‘설마 내가 그림 투아란이라고 착각하고 충실하게 따라 준 건가?’
―뭐? 설마 그럴…… 리가 있을 수도 있겠는데?
‘에? 그럴 수도 있어!’
―더스크라이더를 비롯해서 용의 이름을 부여받은 경우에는 그에 걸맞은 긍지? 그런 의식의 파편 또한 함께 부여받는다고 했으니까. 자신을 굴복시킨, 삼켜서 품은 너를 그림 투아란이라 여길 수도 있지. 다른 누군가가 그럴 수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면, 너를 그림 투아란으로 받아들인다면 너의 의지에 충실할 수 있어.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야.
투란은 뭐라 대꾸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너무 잘 따라 준 사룡의 도움에 피식거리며 한 말이었는데, 이렇게 열성적으로 드라고니아가 옹호를 해 주다니!
―달리 생각할 구석이 없잖아!
투란의 기묘한 기분을 알자마자 드라고니아는 바로 투덜거렸다.
풋, 작은 웃음과 함께 투란은 그을리고 녹는 모래 터를 등졌다.
얼굴부터 다시 온전한 살갗으로 돌아오는 채로, 차림새는 다시 몬스터 헌터의 모습을 갖추는 채로 투란은 기다리고 있을 키유나를 향해 느긋하게 걸어 나갔다.
투란의 등 뒤로 사막의 바람이 은은하면서도 짙게 불면서 언데드 무리가 지워진 모래 터를 덮어 갔다. 더 이상 사막과 어울리지 않는 풍경을 지워 버리려는 듯…….
‘음, 그러고 보니 키유나랑 함께 다니면서 이상하게 거창한 짓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괜히 덩치도 팍팍 키우고 말이야.’
―그 덩치로 상대했던 놈이 그만큼 컸잖아. 언데드 무리를 백 넘게 상대하기에는 적당한 드, 래, 곤, 브, 레, 스, 였고 말이지.
뭔가 삐친 것처럼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렸다.
투란은 킬킬거리며 웃는 시늉을 한 채로 바쁘게 움직이는 옵저버의 감각을 즐기면서 느긋하게 걸었다.
멀리서 사막에 그림자를 드리운 절벽이 그런 투란을 흘겨보는 듯, 밤하늘의 별빛에 성채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