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3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26)
Chapter 186. 고대의 요새
“용의 일족, 간단히 용족이라고 부르기도 해. 간혹 용의 혈족이라고 해서 짐승에 가까운 경우도 함께 용족이라 부를 때도 있지만, 드라코눔에서 용족이라고 하면 지성과 마법을 갖춘 용의 일족, 드라고니아라고 부르는 이들을 말할 때야. 드라코눔을 여행하다 보면 그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되지.”
모닥불이 그림자를 흔드는 풍경 속에서 키유나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모닥불 곁에서 함께 앉은 채였지만 투란은 키유나가 자신을 향해 말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뭔가 중얼거리고 싶어서 저러는 것인가 알 수가 없었다.
‘며칠째 저러는 거지?’
대충 사나흘은 된 기분으로 투란이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딱 이틀째다만?
드라고니아가 ‘이젠 하나둘도 못 세나?’ 하는 낌새를 가득 담아서 투란의 잡념에 바로 대꾸했다.
‘헥! 며칠 지난 거 아니야?’
투란이 흠칫했다.
사막의 경계를 벗어나기 직전, 거의 사막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다고 할 때였다.
기괴한 언데드를 부어 내던 절벽의 그늘과 가까운 곳에 모닥불을 피우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키유나가 이야기를 한다고 여겼던 투란에게는 뭔가 더 많은 밤을 지새운 기분이 가득했다.
한데 이제 겨우 두 번째 밤이라니!
―낮과 밤을 오랜만에 겪어서 헷갈리냐?
드라고니아가 피식 웃는 것처럼 말했다.
사막의 경계에 가까울수록 사막 깊은 곳에서 겪던 일은 줄어들었다. 사막 깊은 곳의 수상함을 감추기 위해서 낮은 낮이고 밤은 밤이며, 해가 떠도 해가 지는 풍경을 돌려주는 것처럼.
‘아니, 그냥……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고!’
투란이 투덜거렸다.
뭔가 망가진 것처럼 키유나는 투란에게 대답을 구하는 말은 하지 않았고 그저 이 사막에서 만났던 투란과 카엘, 아란, 그란 등등의 많은 사람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화염으로 투란이 언데드 무리를 재로 만들어 흩어 버린 다음, 프로브를 새롭게 만든 옵저버를 눈치챈 듯한 키유나에게 어떻게 둘러대야 할까 고민했는데 정작 이야기는 투란이 아닌 키유나가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나마 낮에는 이동하느라 멈췄는데 밤이 되니 다시 키유나가 이야기를 퍼내는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딱히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였고 사막이란 환경에 뭔가 도움이 되는 정보를 담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키유나가 이때까지 만났던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며 살아갔는가에 대한 것일 뿐이었다.
배고픔을 어떻게 버텨 내고 샘이 있는 녹원까지 서로 달래면서 이동했는가 하는 것, 작은 샘뿐인 녹원에 한꺼번에 몰린 탓에 누가 먼저 샘을 이용하느냐를 놓고 거의 싸울 뻔하다가 멈췄다는 것이라든가…….
투란으로서는 맹하니 듣고 맹하니 흘려 내며 듣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좀 괜찮다 싶은 것이 지금 나오고 있는 드라코눔을 여행한 이야기이기는 한데…… 어째서인가 키유나는 드라코눔의 마법, 기술과 그 일족의 강력한 모습에 대해서 주로 말하고 있었다.
마녀의 관점에서 본 드라코눔이 어떤가에 대해 드라고니아는 꽤 흥미로운 듯했지만, 투란은 왠지 들을수록 드라고니아의 형상을 쓰지 못하고 겨우 드라고를…… 그래도 꽤 성장시킨 채인 드라고를 이용하는 것이 고작이란 점이 억울할 뿐이었다.
‘날개와 손발, 그 정도만 쓸 수 있어도 아주 편하고 강력할 텐데…….’
전부 드라고니아가 아닌 다른 몬스터의 형상으로 비슷하게 꾸밀 뿐이라니!
―내 몸뚱이는 너한테 별 의미 없어. 지금 네가 품은 다른 녀석들이 훨씬 쓸모가 많다는 거, 알면서 왜 그래?
달래는 것인지 꾸짖는 것인지 모를 모호한 말로 드라고니아가 핀잔했다.
조금 입술을 삐죽이는 채로 흘려넘기던 투란은 문득 키유나가 이어 가는 이야기에 흠칫했다.
“역시 놀랍지?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가디언을 제작할 뿐 아니라 사용하는 도구조차 지성을 부여할 줄은 상상도 못 한 일이었어. 그 시작은 대마도사가 했다고 하지만, 드라코눔의 고유 마법이 그 발상을 받아들여서 이제는 어느 대마도사라 해도 용의 가호란 말을 무시할 수가 없는 엄청난 아티팩트가 쌓였다고 하니까. 하지만 그런 곳에서도 마녀는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가 없었어. 무서워하거나 무시하는 대신에 너무 귀하게 여기고 너무 아껴 준다고나 할까? 그래도 드라코눔을 여행한 추억은 나쁘지 않았어. 낯설고 이상했지만.”
잠깐 숨을 돌리는 듯 말이 멈춘 순간, 투란이 바로 끼어들어 묻는다.
“키유나, 그러면 지금 갖고 있는 가디언도…… 드라코눔에서 얻은 거야?”
“아니야. 이미 말하지 않았어? 내 가디언은 이곳에서, 이 사막에 도달해서 나를 부른 마녀를 만나고 나서야 얻었다고.”
키유나가 가만히 투란을 바라보는 채로 말했다.
―나도 말한 것 같다만?
드라고니아가 불쑥 덧붙이고 있었다.
투란은 슬그머니 기억 한구석을 털어 내면서, 어느 정도 기억하지만 궁금한 것이 있을 뿐이란 것처럼 말한다.
“어? 어…… 그러면 드라코눔이랑 관계없이 이 사막의 마녀에게 물려받았을 뿐이란 말이지? 으흠…… 가디언은 하나만 써야 하나?”
키유나가 고개를 저으며 답한다.
“드라코눔의 가디언은 내가 물려받은 계약의 가디언과 달라. 얻을 수 있었다면 함께 쓸 수 있었겠지. 하지만 드라코눔의 가디언은 드라코눔을 수호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만들어져. 지나가는 마녀에게 선물하는 일도 없지만, 드라코눔에서도 개인적으로 가디언을 지닌 경우는 아마 없을 거야.”
―잘 알고 있군. 없어. 흉내 낸 마도구라면 있어도, 정식으로 제작된 가디언은 아칸의 관리하에 절대로 다른 곳으로 반출되지 않는다.
드라고니아의 덧붙이는 말은 왠지 엄격했다.
투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아들었다는 표정을 꾸미면서 절벽의 그림자로 눈길을 돌렸다가 삐죽하니 사막으로 돌출하며 기울어진 절벽을 거슬러 올라가는 눈길로 중얼거린다.
“있었으면 정찰병으로 따로 움직일 수 있었을 텐데, 음…….”
―옵저버나 프로브로 파악 못 하는 것을 정찰병을 쓰면 알 수 있다고?
드라고니아가 투란이 딴소리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아쉬워하는 낌새를 바로 알고 물었다.
‘자취를 감추고 움직이잖아, 기본적으로. 함정이나 뭐가 있다면 건드려 봐야 알 것 아냐.’
―일리가 있군. 하지만 가디언을 그런 함정에 밀어 넣는 용도로 생각하다니…… 함정을 찾아내서 해체하고 파괴하는 쪽이 더 어울리는데 말이야.
‘본 적이 없잖아? 키유나의 가디언과 굉장히 다르다고 하니 짐작도 안 된다.’
―그럴지도.
‘뭐야, 넌 그 가디언에 대해 그다지 알려 주려고 하지 않으면서 뭘 아쉬워하냐?’
―춤추는 산맥이나 이 사막, 오르카의 대삼림에서 전혀 쓸모없는 지식이니까 말하지 않았다만, 막상 오랜만에 떠올리니 하나 정도 대용품이라도 만들자고 할 걸 그랬나 싶다.
‘대용품? 가디언 비슷한 걸 만들 수 있다고?’
―프로브가 가디언 제작의 기초 지식과 기술을 기반으로 한 마법이다. 네 손을 빌려서는 제대로 만들 수 없지만, 적당히 미끼로 쓸 대용품이라면야…….
으쓱대는 드라고니아였다.
투란은 입술을 삐죽이면서 그냥 절벽을 올려다봤다.
그사이에 키유나가 모닥불을 바라보면서 다시 드라코눔을 여행했던 추억과 그 끝자락에 이 사막으로 들어왔을 때의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검은 바다를 건너면 바로 사막에 도달할 줄 알았어. 하지만 검은 바다를 건너 도달한 곳은 숲의 입구였어. 저 눈보라 치는 산 너머의 숲, 대삼림 쪽의 작은 항구였지. 사막의 북방 항구로 곧장 가는 배였는데, 그때 검은 바닷길을 해적들이 휘젓고 있었거든. 때문에 대삼림의 길을 통해서, 저 산맥의 끝자락을 지나서 사막의 항구로, 그쪽의 도시로 가는 길을 찾아야 했어. 그러다가 만났어, 오르카의 주술사를…… 예언을 다루면서 마녀를 기다렸다고 하는 주술사였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주술사였는데, 운명을 계승하는 마녀를 지켜봐야 해서 내가 가는 길목에 있었다고 했어.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오르카 주술사가 하는 말이 어느 쪽인가 전혀 알 수가 없었어. 음, 나에게는 굉장히 이상한 경험이었다고 말해 둘게. 그 주술사는 길목을 막은 대신에 숲과 산을 넘는 지름길로 이끌어 줬어. 내가…… 마녀가 눈보라 치는 산맥에서 길을 잃었다가 죽으면 굉장히 힘든 미래가 기다린다고. 그걸 막기 위한 길잡이로서 나섰다는 것 같았어. 그때였을 거야, 처음으로 예언이란 것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던 때가. 정말로 내가 올 줄 알았을까? 정말로 내 미래를 엿봤을까? 만나고 헤어지는 동안에 전혀 알 수 없었지. 하지만…… 사막에 머물고 살면서 알았어. 그 오르카 주술사는 진짜 내 미래를 엿봤다고 말이야.”
“허얼!”
멍하니 듣던 투란은 잠시 말을 멈춘 키유나와 눈길이 마주치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숨을 토해 내면 놀란 소리를 내고 말았다.
어째서 이야기가 갑자기 옆길로 새서 오르카에 이르렀고, 갑작스럽게 예언이 어쩌고 하는 말이 나오다니…… 쿤토르가 콧김을 씩씩거리던 일이 바로 투란의 뇌리에 톡 튀어나오면서 ‘너, 왕이 되어라!’라고 으르렁거리는 듯하잖나!
“그…… 그래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안다고?”
벙긋벙긋 버벅거리다가 투란은 이렇게 묻고 말았다.
드라고니아가 키유나보다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정신 나갈 줄 알고 있었나부터 물어봐야지! 사룡이 설쳐 댈 일을 미리 알았다면 그렇게 이상한 꼴로 사막을 헤매지 않고 피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어딘가 냉소적인 핀잔이었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단정 짓는 낌새가 가득했다.
투란이 이에 대해 뭐라 생각하기 전에 키유나의 대답이 이어지듯 나왔다.
“사룡좌의 재앙을 넘어서, 죽은 자들의 고성(古城)을 겪고 하얀 안개의 도시를 향해 갈 거라고 했어.”
“어? 하얀…… 알드바인이 있는 호수에 안개가 많기는 하지…….”
엉겁결에 웅얼거리고 마는 투란이었다.
키유나가 바로 그 웅얼거림을 낚아채듯이 말을 잇는다.
“그래…… 대마법사가 있고, 모래왕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가야 하는 도시가 그렇다는 말에 그 예언을 떠올렸어. 한참 잊고 있었는데…….”
잦아들고 흐려지는 뒷말을 투란은 이미 들은 것처럼 알 수 있었다.
드라고니아 또한 바로 알아차린 듯 중얼거린다.
―아, 그래서 기억해 낸 거로군. 알드바인에 대해서 주절주절 떠든 몇 마디 때문에 망각에 파묻혀 있던 예언을 겨우 기억해 낸 거야. 하아…….
‘야, 한숨은 왜 쉬는데?’
―쿤토르에 대해서, 오르카에 대해서 물었을 때도 가만히 있었잖아. 그걸 어제 이야기하다가 네가 말한 알드바인에 대한 말 때문에 기억해 내다니, 이 마녀 도대체 제정신 차릴 수 있는 거냐?
‘나한테 물어?’
―그래, 너도 모르지! 그러니 한숨이 저절로 나오잖아!
‘어, 그래. 한숨 쉬느라 고생 많다.’
툴툴거리는 생각을 흘려보내면서 투란은 키유나에게 더욱 쓸모 있는 것을 묻기로 했다.
“키유나, 그러면 혹시 죽은 자들에 대해서, 저 삐죽한 절벽 위를 차지한 옛날 성채에 대해서 따로 들은 말은 없어? 그냥 지나가는…… 겪어 본다는 말이 전부야?”
“예언은 수많은 갈림길을 더듬는다고 했어. 오르카 주술사에게 내가 물었거든,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짐작도 못 할 이야기라면, 꼭 직접 겪어야 알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미리 들어서 무슨 쓸모가 있냐고. 그랬더니 대답하더라고, 예언은 수많은 갈림길을 더듬고, 예언을 아는 자를 혼란스럽게 한다고. 예언은 운명을 정하는 말이 아니고, 그 운명을 선택하려는 자에게 한번 더 생각할 기회를 주려 할 뿐이라고. 그러니까 그때…… 내가 사막을 등지고 돌아선다면, 다시 드라코눔으로 되돌아간다면 많은 불행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해 주기도 했어. 대신…… 마녀로서 배우게 될 수많은 삶의 조각 또한 모두 놓칠 거라고 말하기도 했지. 고통과 함께 얻게 될 지혜의 파편에는 다시 닿을 수 없다고…… 그런데 웃기는 일이 뭔지 알아? 내가 가던 길을 돌아서면 대삼림의 오르카에게 굉장히 힘든 미래가 기다린다는 거야. 내가 길을 잃고 헤매다 죽는 것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미래가 말이야. 그렇다면 대체 왜 불행이니 뭐니 하며 고통스럽네 하는 이야기를 했을까? 오르카 주술사가 날 놀리려고 장난치나 했어. 그래서 물었더니 그러더라고…… 길잡이는 여행자에게 길을 찾아 주고 돕는 자이지, 그 여행자가 원치 않는 길로 몰아넣고 방해하는 자가 아니라고. 그러면서 한마디 더 한 것이…….”
잠깐 키유나의 말이 멈췄다.
투란은 귀를 쫑긋하며 대체 오르카 주술사, 길잡이라 자처했다는 녀석이 뭐라 했으려나 궁금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런 투란을 놀리듯, 살짝 장난치는 듯한 미묘한 표정으로 키유나가 다시 말을 잇는 순간이었다.
―마녀여, 그대의 운명은 오르카에 닿는다. 그대가 재앙을 버텨 내고 고성을 겪어 안개의 호수에서 왕과 함께하는 길은 오르카에 닿을 것이며, 오르카 일족은 그대가 인도하는 위대한 자에게 많은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다만 그 고난의 길은 마녀 스스로 선택해야 하며, 거짓 없는 삶을 통해서만 정화될 터이다. 가혹하고 끔찍한 진실일지라도, 달콤한 거짓으로 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소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윙윙거리며 울리는 소리는 마치 쿤토르의 말을 직접 듣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