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3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27)
입만 벙긋거리는 채로 투란은 맹렬하게 의문을 떠올렸다.
‘이게 뭐야?’
―마법……이기는 한데, 요술에 가깝군. 흠, 프로브로도 할 수 있기는 하다만 가디언으로 저럴 줄은 몰랐네.
드라고니아는 어이없어하는 낌새를 풍기면서 대답을 중얼거렸다.
그사이에 키유나가 참았던 듯한 숨을 토하면서 말을 잇고 있었다.
“잊지 않으려고 고스란히 기억해 둔 말이야. 내가 어떻게 저 대삼림의 일족과 관련이 될 수 있는가,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때는 더 이상했으니까. 다만…… 나는 사룡좌의 재앙을 겪었고, 사막의 삶을 배웠어. 마녀로서 배워야 할 많은 것을…… 정말로 오르카 주술사가 말한 것처럼 배웠지. 그러니까 아마…… 대마법사를 만나기 위해서, 사막의 저주를 풀기 위해서 투란과 함께 가는 것도 예언대로일 거야. 사룡좌를 쓰러뜨렸으니까, 길잡이 해 준 오르카의 말처럼 위대하잖아. 그러니까 투란…… 귀찮더라도 내가 함께 가게 해 줘.”
“어?”
갑작스럽게 또렷한 눈동자를 빛내며 키유나가 한 말이 투란을 당황스럽게 했다.
이미 함께 가기로 했는데 새삼 무슨 말인가.
하지만 동시에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키유나는 투란의 여러 가지 딴생각, 간혹 드라고니아가 짚으며 놀리던 생각과 기분까지 제대로 알아차리고 저 말을 한다는 것.
쓴웃음과 함께 투란이 살짝 더듬듯이 대답을 했다.
“알았어. 위대한 거는 나랑 상관없겠지만, 어쨌든 알드바인으로 가서 대마법사를 만나게 해 줄게. 어, 근데…… 귀찮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단지 내가 키유나를 잘 지켜 주기가 어려워서…… 뭐랄까, 함께 가는 길이 좀 까다롭다고 생각할 뿐이야. 쓸데없는 걱정인가? 하하…….”
―제대로 봤네, 아주 쓸모 있는 걱정이었어!
드라고니아는 사정없이, 아주 냉정하게 키유나의 편을 들고 있었다.
‘시끄러워!’
냉큼, 짧게 반발하면서 투란은 열심히 웃는 표정을 지었다.
덕분에 살짝 바보같이 헤죽거리는 꼴이 된 투란의 낯을 보면서도 키유나는 전혀 동요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곧바로 몸을 누이고 있었다. 뭔가 할 말 다 했으니까 이제는 어제부터 모자랐던 잠을 전부 채우겠다는 것처럼, 누운 키유나는 금방 새근거리는 고른 숨소리와 함께 잠들고 있었다.
맹하니 그 모습을 보다가 투란은 조용히 한숨을 쉬고 말았다.
‘이제 보니…….’
어제부터 오늘까지 틈나는 대로 긴 이야기를 했던 까닭이 투란의 낌새를 엿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투란이 귀찮다고 훌렁 혼자 떠날 일을 피하기 위해서, 키유나 나름대로 투란과 친분을 쌓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해 주면서 함께 다녀도 귀찮게 하지 않을 만큼 여행의 경험이 있다고 알려 준 셈이었다.
‘내가 그렇게 못 믿게 생겼나?’
갸웃하면서 투란은 후욱 숨을 몰아 내쉬고 혀를 찼다.
어쨌든 모래왕이랑 엮였으니 키유나를 홀시딘에게 데려다줄 작정이었는데, 이렇게 미리 떼어 놓고 도망칠 일을 걱정할 줄이야.
―멍청한 생각이다. 저 마녀는 만약의 경우까지 염두에 둔 거야. 자신의 이야기를 그만큼 했으니까, 투란 너에게서도 그만큼의 이야기를 받아 내려 할 거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떨어질 경우라도 널 다시 만날 곳을 알기 위해서 말이야. 아, 이미 알아냈다고 봐야 하나? 알드바인으로 갈 거라고 했으니까, 음…….
혀를 차는 듯한 말투로 핀잔하듯 말하는 드라고니아였다.
‘쳇.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 그냥 쌓인 일이 많고 답답하면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할 수도 있는 거라고. 낯선 사람이라도 말이지. 음, 그보다…… 홀시딘에게 미리 연락해 둬야 하나? 여기 벗어나면 그냥저냥 연락이 될 거잖아. 미리 마녀랑 간다고 말해 둘까?’
투란은 멀리 절벽 너머를 보는 시늉을 하면서 한번 더 갸웃했다.
뜬금없이 여행하다 보니 모래왕도 만나고 마녀도 만나서 일이 생겼다고 데려가면, 과연 알드바인의 상아탑 마법사인 홀시딘이 그럴 수도 있다고 껄껄 웃고 넘길까?
투란이 살짝 기대하는 마음을 품는 순간.
―그런 일은 절대 없을걸?
곧바로 냉소를 넘어서 한심하다는 듯한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응? 왜?’
어느새 드리워졌던 밤하늘의 구름이 걷히는 중이었고 달과 별 아래에 절벽의 풍경을 대부분 메우던 그림자가 그 안에 감췄던 성벽의 무늬를 노출하고 있었다. 과연 무엇 때문에 모래왕은 저것을 ‘죽지 못한 자들의 성’이라고 했고, 키유나는 ‘죽지 않는 자들의 고성’이라고 했는가 문득 그 부르는 방식의 차이가 있는가를 떠올리다가 투란은 ‘마녀’에 대해 상아탑이 무슨 특별한 생각이라도 있다는 듯이 말하는 드라고니아에게 반문했다.
―상아탑에서 마녀는 마법사와 확실히 구별되는 존재로 받아들인다. 드라코눔도 마찬가지이지. 단순히 마법을 쓰는 여성, 마력을 지닌 여성이란 의미로서 마녀라 부르는 것이 아니야. 자연적인 마력, 세계의 섭리 안에 명백하게 자리 잡은 마력을 타고난 여성이기에 마녀…… 위치(Witch)라고 분류해 놓은 것이지. 남자가 그런 마력을 타고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지만, 그래도 천 명의 마녀가 태어나면 천한 번째는 남성일 때가 있고 그럴 경우에는 워록(Warlock)이라고 분류한다. 투란, 괜히 할 일 없어서 그렇게 분류하는 거 아니거든?
길게 이어질 듯한 이야기에 투란은 벌렁 누웠고, 밤하늘의 달과 별빛을 눈동자에 담으면서 하품하는 시늉을 했다. 드라고니아가 곧바로 이런 태도를 짚으면서 다시 이야기를 잇는다.
―마력을 지니게 되는 상황, 특징은 다양하다만 워록과 위치의 마력은 순수하게 세계의 섭리 속에서 타고난다는 점에서 굉장히 특별해. 더군다나 셀레스티얼 가드까지 계약한 키유나라면, 홀시딘이 미리 알면 알드바인에 아예 들어오지 말라고 할 수도 있어.
‘어? 야, 그건 또 무슨 이야기야?’
절벽 위의 성채가 삐죽거리며 드리운 첨탑을 흘깃하는 채로 투란이 물었다.
살짝 피식거리는 말투로 드라고니아의 대답이 바로 나온다.
―옛날에, 브로큰 킹덤이란 말이 처음 나왔을 무렵에 세상을 떠돌던 일곱 마녀가 겨우 첫걸음을 떼는 중이던 상아탑에 찾아와서 홀랑 털어간 적이 있거든. 거기 재미가 들렸는가, 그 뒤로도 십 년에 한 번? 거의 삼십 년 동안 몇 번을 더 들러서 상아탑의 재물, 마도구 따위를 약탈했다더군. 얼마나 심각한 일이었는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 뒤로 지나가는 마녀라든가 찾아오는 마녀랑은 사이가 좋지 못한 전통이 생겨 버렸다는 말이야. 정말 그 신분이 확실하고 성격이 증명된 마녀가 아니면 상아탑 근처에서 눈에 띄기만 해도 일단 싸울 준비부터 하는 전통이 말이야.
‘그 미친 소리가 진짜야?’
황당해서 투란은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드라고니아가 키득거리는 낌새로 대꾸하며 이야기를 잇는다.
―드라코눔의 기록에 따르면, 일곱 마녀 이후에도 성격 나쁜 마녀 몇몇이랑 몇 세대에 걸쳐서 좋지 못한 사연이 있었던 모양이야. 덕분에 상아탑에서는 자연적인 섭리의 마력을 다루는 쪽을 굉장히 싫어하게 되었다고까지 할 지경이지.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정령술을 복원하려 애쓰니, 뭔가 앞뒤 헷갈리기는 하지만 말이야. 뭐, 드라코눔의 아칸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야말로 인간의 다채로운 이중성을 상아탑의 마법사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증거라고나 할까?
‘뭔지 모르겠지만, 미리 말해도 홀시딘이 울화통을 터뜨린다는 말인 거지? 으흠, 그러면 어떻게 하나.’
벅벅, 볼을 긁적이면서 달빛 아래 더욱 훤해진 절벽 위 성벽 무늬 사이로 어슬렁거리는 기묘한 형체들을 가느다란 눈길로 확인하며 투란이 툴툴거렸다.
드라고니아는 그런 투란의 눈길을 따라가듯이 화제를 돌리고 있었다.
―당장 걱정할 일은 아니니까, 그보다는 정말 저 고대의 마법이 뒤틀린 곳을 들어가 볼 거냐? 프로브나 옵저버로 적당히 둘러보고, 그걸로 확인할 수 없는 곳은 일단 그냥 넘기고 나중에 홀시딘의 도움을 받아서 살피는 쪽이 낫잖아?
‘그러려면 키유나랑 홀시딘이 제대로 얘기할 수 있도록 해야잖아. 당장 걱정해 둬야겠네. 그러니까…… 아, 홀시딘이 키유나를 지키도록 할 수 있어!’
갑자기 스쳐 나온 생각에 투란이 살짝 눈을 감고 히죽 웃었다.
―뭐? 그게 뭔…… 어? 아니, 그건…… 그렇게 될 수도 있겠네?
어리둥절하던 드라고니아가 툭 튀어나온 투란의 생각을 알자마자 어이없어하면서도 기특하다는 듯이 긍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곧바로 딴지를 하나 걸기도 했다.
―하지만 키유나에게 그만한 금전이 없잖아? 그건 어쩔 거냐? 대신 내주려고? 그 많은 금전을?
‘일단 내주고, 키유나가 벌어서 갚으면 될 일 아닌가? 능력 있잖아, 엄청난 가디언도 거느리고 있으니까. 몬스터를 잡든, 마녀의 비술을 팔든 어떻게 되잖겠어?’
투란은 흠칫하다가 곧바로 웅얼거리는 말을 했다.
―인색한 놈.
드라고니아가 곧바로 투란을 핀잔했다.
금전만 충분하다면 상아탑이 즉결 처분하기로 되어 있는 황금매의 몬스터 로드조차도 로열 클래스를 통해 보호받을 수 있었다. 그저 전통적으로 사이가 나쁠 뿐, 성격과 신분만 확인할 수 있다면 별문제가 없다는 마녀가 보호받지 못할 리가 없다.한데 투란은 자신이 툭 떠올린 이 발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금전을 기부할 생각까지는 없다!
―금 낳는 항아리에, 금화 주머니까지 있는 녀석이 너무 인색하잖아!
한마디로 모자란다는 것처럼 드라고니아가 핀잔에 보태듯 투덜거렸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주머니 못 받았어! 으아, 언제 찾으러 가냐. 흐으…….’
투란은 살짝 눈을 감고 저편을 가늠하며 징징거리는 시늉을 섞어 소리 없이 말했다. 그리고 부스스한 태도로 일어나기도 했다. 모닥불이 일렁이며 완전히 일어서는 투란의 그림자를 사막의 누런 모래 위로 드리웠다.
드라고니아는 왜 이러느냐고 묻지 않았다.
절벽 위 성채에서 뭔가 툭툭 떨궜고, 그것이 이미 모래 위에 꽂혔기 때문이었다.
―짐승이라고 해야 하는지, 짐승 껍질을 쓴 죽은 트롤이라고 해야 할지…… 이것저것 조금씩 섞인 괴상한 놈이 둘, 아니 셋인가? 금방 여기 올 것 같다만 어쩔 거야? 또 불을 뿜을 거냐? 이번에는 불도 웬만큼 버텨 낼 것 같은데?
차분하게 관측하며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모래에서 허우적거리던 몰골들이 일어섰고 그 수는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헤아리기 애매했다. 둘이 뭉쳤다 갈라서면 셋이었고, 셋 중 둘이 다시 한 덩이가 되기도 했으니까. 그러다가 다시 하나로 뭉치고 둘로 갈라지고…… 기묘한 몰골은 그렇게 모래 위에 질질 끌리고 뒤뚱거리며 허우적대는 채로 모닥불을 향해, 투란과 키유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뭐, 꼭 똑같은 방법만 쓸 필요는 없지. 게다가 내가 상대할 필요도 없고.’
투란은 키유나를 흘깃하며 대꾸했다.
―음? 마녀를 깨우려고?
‘아니, 기왕 용의 가호니 뭐니 해서 들통난 거…… 본격적으로 드라코눔의 비전 정령술을 보여 줘도 괜찮잖아. 정령의 가호가 내가 얻은 드라코눔의 비술이라고 둘러댈 핑계를 만드는 거지. 다른 마법을 막 쓰는 것보다는 이편이 더 그럴듯하다며?’
―분명히 그런 측면이 있기는 해. 몬스터 로드라도 정령과의 계약, 운영은 가능하니까. 그런 선례가 희귀하지만 덕분에 더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니까. 정령을 기반으로 프로브를 운영할 수도 있고…… 뭐, 이모저모로 둘러대기 편하긴 하다.
‘그래, 그러니까…… 이렇게 가자.’
투란은 모닥불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파이로, 불꽃의 정령수가 곧바로 반응하며 흔들거리는 모닥불의 한 귀퉁이를 파내며 치솟았다. 치솟아 둥실거리고 둥글거리는 불덩이가 된 파이로가 투란의 손 위로 옮겨 가며 꿈틀거리니 손의 그림자가 바닥에 크게 드리워졌다. 광원(光源)이 갈라선 탓에 그림자는 흐릿했지만, 그 위로 다시 투란이 발을 얹는 순간에 시커먼 칠흑빛으로 변해 버렸다.
“그럼, 다녀와라.”
가벼운 투란의 속삭임.
불덩이가 저편으로 흔들거리며 투석기에서 쏘아진 돌처럼 날아갔다.
그 불덩이를 따라 칠흑빛 그림자도 함께 질주했다.
투란은 가만히 그림자를 느꼈다.
셰이아, 그림자 속에 투란의 마력을 품은 정령수는 곧바로 마력의 그물을 자아내기 시작했고 파이로의 아래편을 채우듯이 저편으로 흘러가며 확장했다. 파이로의 불길이 허공을 메우고 셰이아의 그림자가 바닥을 채우며 영역을 만드는 채로 함께 나아가는 광경이었다.
절벽에서 떨어져 내린 둘 혹은 셋일 수 있는 괴기한 형체와 두 정령수가 밀고 오는 영역과 금방 뒤엉켰다.
‘지금!’
투란은 셰이아에게 실어 보낸 마력에 곧바로 강렬한 의지를 담았다.
세상을 울리는 맹렬한 의지, 몬스터 엠블럼 ‘천칭’의 가장 깊은 곳에서 느긋하게 봉인의 파편을 이끌고 날고 있는 녀석의 특성을 부여했다.
불과 그림자가 뒤엉킨 울타리가 사막의 한구석에 수십 미터의 영역을 만들며 펼쳐졌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섬뜩한 음향이 금방 광막한 사막으로 메아리칠 곳을 찾아가든 터져 나왔다.
오드득, 콰드득…… 빠득.
뼈와 살이 으깨지고 뭉개지다가 사라진 듯, 섬뜩한 소리도 금방 사라졌다.
말살(抹殺)을 확인하던 투란은 낯을 살짝 구겼다.
뭔가 미묘하게 마력의 그물을 흔들며 새어 나간 것이 있었다.
다시 저 절벽 위로 성채 쪽으로 쏘아지듯 새어 나간 것…… 마력도 아니고 뭔가 형체를 갖춘 것도 아닌…….
‘유령은 싫다니까!’
―영핵을 회수한 모양이군.
투란의 으르렁거림에 드라고니아는 고대의 성채를 가늠하며 감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