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3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28)
‘지금 나 노려보는 것 같은데?’
투란은 어깨를 한 바퀴 돌리고 주무르면서 절벽 위를 쏘아보는 채로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확실히 주시당하는 것 같군.
드라고니아도 투란에게 공감했다.
절벽 위의 성채가 투란을 가늠하려 하는 분위기.
언데드 무리를 물리친 상황을 알아차리고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기괴한 언데드를 내려보내고 관찰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단순히 장소를 이동하는 성채가 아니라 뭔가를 지켜보고 가늠하며 상황에 대처하는, 최소한의 지능이라고 할 만한 것을 갖추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그저 조건 부여를 통한 반동 현상일 수도 있기는 하다만, 그렇게 여유롭게 생각하다가 당황하는 것보다는 그냥 낯설고 거대한 몬스터라고 보고 조심하는 쪽이 낫겠지.
드라고니아가 덧붙이는 말은 투란에게 쉽게 납득되었다.
‘그러면…… 성벽 안을 둘러보는 일이 몬스터 배 속을 산채로 구경한다는 꼴이 되는 건가? 유령도 나오고 시체도 나오는 배 속이라…… 마력 장벽을 새어 나간 꼴로 봐서는 프로브를 보내도 뭔가 시비 걸 것 같은데?’
―그럴 거다. 방금 전 상황을 통해 판단하자면 영핵을 이용해 언데드의 육신을 만들고 움직이다가 상황 나빠지면 영핵만 회수해서 개량한다고 봐야겠지. 그렇다면 프로브 같은 마법 구성체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유령과 마법이라…….’
모닥불가에 다시 앉으면서 투란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어째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뭉쳐서 가는 길 방해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표정까지 짓는 투란이었다.
―뭐, 그래도 덕분에 불쏘시개를 얻었잖아? 저렇게 보내 준 거 아니었으면 여기서 어떻게 태울 숯을 얻었겠어?
살짝 놀리듯이 드라고니아가 속삭였다.
누런빛 모래만 가득한 곳에서 모닥불을 피워 낼 수 있는 재료, 언데드의 잔해란 것을 되새겨 주는 말이었다. 더불어 지금 영핵이 빠져나간 잔해 역시 땔감으로 쓸 수 있다는 뜻이고.
쓴웃음과 함께 투란은 다시 절벽 위의 성채를 흘깃했다.
모래왕이 그 침범을 경계할 정도인 고대 마법의 성…….
‘몬스터 배 속으로 들어가 보는 꼴이 되려나? 들어가기 전에 저것이 뭐 하는 것인지, 조금 더 아는 일 없어? 저번에 깃발 보고 뭐 아는 시늉했잖아?’
투란의 물음에 드라고니아는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는 침묵이었고 어딘가 다듬은 듯한 대답은 금방 나오고 있었다.
―유니콘의 깃발을 사용하는 성채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래, 드라코눔의 기록에 그 깃발을 사용했던 군단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단 말이지. 그 깃발은 어느 왕국에 종속된 군단이 아니란 의미이고, 어느 곳에서라도 왕국…… 인간이 세운 고대 왕국의 편에 서서 몬스터와 싸우겠다고 맹세한 자들의 깃발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그들에게 지급된 마법 도구라든가, 그들이 사용하는 전투 장비는 고대 왕국에서 제공된 것이지만, 어느 나라에도 소속되지 않은 군단이었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움직이는 성채가 필요했고, 전성기라 불리던 시절의 고대 왕국에서는 그들을 위해 그런 성채를 몇 채나 완성했다는 거야. 대부분은 우리 일족이 이 세상에 닿기 전에 사라졌지만, 거대한 웜…… 아니, 뱀이라 하던가? 그런 모양으로 만들어졌던 탓에 뱀의 요새라고 불리던 하나만은 우리 일족도 직접 경험했다더군. 그 요새는 악마와의 전쟁을 거치면서 파괴되었고, 대마도사 카엘이 그 잔해를 수거했다고도 기록되어 있어. 그러니까 저건 그 뱀의 요새는 아니야. 하지만 뱀의 요새에도 걸려 있던 유니콘의 깃발이 걸려 있어. 저게 정말 고대의 성채가 변모해서 남아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쩌다 저렇게 생긴 것뿐인지…… 어떻게 된 까닭인가는 전혀 모르겠지만, 언데드이든 데드워커이든 저리 품고 이런 산맥에서 누군가를 쫓는다는 상황은 정말 납득할 수 없는 일이야.
‘납득하든 말든, 지금 내 느낌으로는 저게 날 쫓아서 사막의 경계를 넘보는 것 같거든. 그러니까 모래왕이 내게 저놈 곁을 지나가라고 시킨 것 같기도 하고. 그렇잖아?’
긴 이야기를 듣다가 투란이 불쑥 늘어놓는 말은 드라고니아에게서 조금 진지한 반응을 끌어낸 듯했다.
―그렇겠지, 아마도. 사룡과의 전투를 지켜봤다면 그냥 파괴하라고 부추기는 편이 더 그럴듯했을 수도 있겠다만, 모래왕이 너를 이용해서 지금 사막에 묶인 자신을 풀어내려면 그런 식으로 부추기는 것은 피했을 수도 있어. 아무튼 저게 지금 노리는 사냥감은 투란 너니까, 키유나를 데리고 들어가는 일은 되도록 피해라.
‘응? 함께 가지 말라고?’
―아니, 성안을 뒤지는 일에 데려갈 필요는 없잖아. 성 밖에서 지켜보라고 하는 편이 좋단 말이지. 마녀가 성 밖에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지원할 준비를 하고 있다면 너한테도 이모저모로 편리한 상황을 꾸밀 수 있으니까.
‘흠…… 지원이라…… 들어가기 전에 너랑 내가 잔뜩 준비해 놓는 정도로는 안 된다는 거야?’
―너 혼자일 때야 당연히 그렇게 했겠지. 하지만 마녀 눈치 보면서 따로 그런 준비를 하는 것도 좀 웃기잖아? 그냥 마녀의 기량에 기대는 편이 편하지.
투란은 키유나를 흘깃 바라봤다.
키유나가 고대의 일에 대해서 얼마나 알까 하는 궁금증이 살짝 투란의 뇌리를 스쳐 갔다. 하지만 한껏 마음 놓고 자는 중인데 깨워서 다그쳐 묻는 황당한 짓은 별로 할 생각이 없었다. 뭔가 알고 있다면 길게 이야기하는 동안에 먼저 말해 줬을 것이라는 묘한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기도 했고.
‘나도 숨길 것이 많다는 말이었냐?’
문득 떠오른 생각에 투란은 바로 묻고 있었다.
드라고니아가 피식 웃는 듯한 말투로 금방 대답한다.
―왜? 툭 털어놓고 싶어졌어? 용의 가호가 아니라 몬스터가 된 드라코눔의 아칸을 에테온 괴물 왕자 덕분에 문장에 품었다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냐?
‘전혀!’
피식거림이 짙어지다가 삐딱해져 가는 말투에 담긴 이야기를 투란은 단호하게, 세찬 한숨과 함께 부정했다. 이에 드라고니아가 그 말투를 고쳐 가며 다시 묻는다.
―그러고 보니, 넌 자신이 널리 알려지는 것을 꽤 잘 피하고 있었지. 키린이 시켜서 그런 것만이 아니었나? 자리 잡을 때까지 감추는 것이 아니라 자리 잡고 나서도 계속 많이 감추고 살 작정이었어?
투란이 빙긋, 입꼬리를 실룩이며 미소했다.
‘고무쇠 아저씨…… 고무쇠 얻었다고 자랑하던 몬스터 로드 아저씨가 샤오콴 마을까지 와야 했던 까닭이 바로 그 자랑질 때문이었어. 적당히 금전도 쌓고, 좋은 부적 얻어서 한적하고 안전한 곳에 보금자리 만들려던 꿈을 와장창 깨 먹은 거야.’
―흐흠?
‘강력한 몬스터 로드라면 어떻게 해서든 이용하려는 경우가 많아.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수단을 가리지 않고 강요하기도 하지. 뭐라더라…… 큰 힘을 지녔으니 그만큼 책임을 지라나?’
문득 오랜만 떠올린 고무쇠 아저씨, 그 목소리를 되새기면서 투란은 입꼬리를 뒤틀었다. 살짝 어렸던 미소가 함께 뒤틀리면서 투란의 마음속에 고무쇠 아저씨의 취한 목소리가 다시 떠올랐다.
―아주 미친 새끼들이야! 내가 고무쇠를 운 좋게 얻기는 했지. 하지만 그걸 길들이고 단련하는데 지들이 뭐 해 줬다고 당당하게 나한테 무슨 책임을 지라는 거냐고! 부적 사는데 동전 한 닢 보태 준 것도 없는 새끼들이! 아니, 보태 준 것만 없는 게 아니지! 그 개또라이 새끼들, 몬스터 로드라고 평소에는 마주 보기도 싫다고 지랄 떨던 것들이 그딴 수작을 벌여서 날 이리로 보내다니! 이게 다 너네 때문이잖아! 왜…….
‘음, 그 아저씨 동료들도 굉장히 억울해하면서도 미안해했지.’
―억울한데 미안해?
‘고무쇠 아저씨, 보금자리 튼 곳을 누설했거든. 덕분에 강제로 동료들과 한번 더 의뢰를 나와야 했는데…… 일이 꼬여서 샤오콴 마을에 한동안 머물러야 했어. 아, 그러고 보니 망할 용병 누나도 그 아저씨 동료였네! 근육 자랑하면서 여자라고 마음이 여리니까 까불지 말라더니…… 사람 참 많이 팼지.’
말하면서 투란은 살짝 자신의 뒤통수를 어루만졌다.
오래전에 가볍게 장난처럼 맞았던 자리가 다시 아프다는 듯.
―그렇군. 그런 일을 겪지 않으려고 방패막이로 시알라 남매를 끼고 보금자리를 틀려는 거였군. 투란, 너도 나름대로 흉악하구나.
‘에? 휴, 흉악! 얀마, 내가 왜 흉악한 놈이 되는 거야?’
―음? 다른 인간을 대신 들이대고 상황을 회피하려 하면, 인간 사이에서는 흉악하고 비겁하다고 하지 않나?
‘비, 비겁까지! 야, 서로 돕는 거라고 서로 돕는 거! 나도 시알라랑 페란드랑 제란드랑 멜란드를 돕잖아! 누가 위험한 일이 몰아넣기라도 하냐? 서로 잘 살자고 협력하는 거라고! 이상한 일에 휘말리지 않게 도우면서 말이야!’
―돕기는 하지만, 비밀은 잔뜩 감추고 있잖나. 뭐, 이 마녀에게도 비슷한 짓을 하고는 있군. 투란, 인간 사이의 일은 내가 좀 헷갈린다만 그런 식으로 계속 감추는 것이 있다면 진짜 동반자가 되기는 힘들어.
‘다 털어놓는다고 진짜 동반자가 되는 것도 아니라고! 아우으읏! 그런 일은 내게 맡기고, 프로브…… 아니, 옵저버 상태는 어때? 겉핥기라도 제대로 해 놔야 하잖아. 아, 그러고 보니 이쯤이면 프로브도 별 탈 없이 쓸 수 있는 거 아닌가?’
―쓸 수 있다. 사막의 환영은 이런 경계에서는 없는 척하느라고 거의 작용을 하지 않으니까. 조금 더 들어가서 경계 너머의 풍경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싶을 때부터 바람의 미로가 위력을 몰래 발휘하니까.
투덜거리다가 말을 돌리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는 착실하게 대답했다.
덕분에 투란은 조금 멋쩍은 표정으로 벌러덩 뒤로 누웠다.
일단 주변이 조용해진 다음이니, 경계를 하면서도 어느 정도 휴식은 필요하니까.
‘불 꺼지지 않게 봐주고, 일 터지면 깨워.’
―그런 건 정령수가 늘 하도록 되어 있잖아. 뭘 새삼스럽게…….
‘나 잔다아아!’
틈나면 핀잔하는 드라고니아에게 투란은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모닥불 속에서 파이로가 어른거렸고, 은근히 모래를 꾸물거리면서 테라트가 울타리를 그린 듯한 무늬를 주변에 퍼뜨렸다. 불가의 따스함을 머금은 바람이 고요하게 투란과 키유나를 담요처럼 덮듯이 흘렀다.
톡, 톡.
눈가에 떨어지는 이슬방울, 그 속에서 아쿠아의 기척을 느끼면서 투란은 눈을 떴다. 금방 이슬방울이 살갗으로 스며들었고 ‘악마의 심장’이 잠으로 인해 낮아져 있던 몸의 기능을 언제라도 싸울 수 있는 상태로 끌어올렸다.
어느새 해가 아침노을을 지울 정도로 떠 있었고 절벽의 그림자는 길고 짙게 드리워진 채로 얹고 있는 도도한 성채의 형상을 삐죽거리며 드러내고 있었다.
“후우…….”
투란은 자는 사이에 아무 일 없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가볍게 숨을 내쉬면서 키유나가 자던 자리를 바라봤다.
온유한 바람을 흘리는 에어로 덕분에 누가 누웠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정작 키유나가 없었다.
‘응? 어디…….’
두리번거리던 투란은 금방 키유나를 찾았다.
절벽을 보는 쪽과 반대로, 키유나가 멀리 모래가 이룬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잔잔한 바람이 살랑이며 키유나의 머리카락을 흩날렸지만, 키유나는 무엇인가 다른 생각을 하듯 모래 티끌이 휘날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멀리 볼 뿐이었다.
주섬주섬 일어서면서 팔다리를 저어 보며 투란이 키유나에게 다가가 묻는다.
“푹 쉬었어? 배는 안 고프고?”
“쉬었어, 배고프지 않아.”
또박또박, 묻는 대로 대답하는 키유나였다.
투란은 재빨리 물음을 더했다.
“뭘 보는 거야?”
이번에는 기대한 것처럼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숨을 둘, 셋 셀 정도에 대답이 나오고는 있었다.
“기억하는 거야. 잊지 않으려고.”
키유나가 무엇을 기억하려느냐고 투란은 묻지 않았다.
며칠은 되었을 것처럼 기억하는 밤 동안의 이야기, 키유나는 홀로 간직하면 잊는 것이 생길까 봐 투란에게 잔뜩 해 줬으니까. 누군가와 나누지 않으면 자기 안에서 흐려지다가 사라질까 봐 그 기억을 잔뜩 나눠 줬으니까.
그러고도 이 잔혹했던 사막의 풍경을 더 많이 품기 위해서 키유나는 바라보고 있었다.
투란에게는 봐도 봐도 누런빛 모래뿐이니 더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지만, 입으로는 다른 말이 툭 튀어나오고 있었다.
“돌아올 거잖아? 끝낼 일도 있고 말이야.”
“그래…… 끝낼 일이 있으니까, 돌아와야지.”
키유나는 스스로 다짐하듯 대꾸했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채로 투란은 절벽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한다.
“그러니까 일단 먹자. 배고프지 않아도 먹어 둬야 해. 저길 올라가려면 힘들고, 올라가고 나서 새로 먹을 것도 구해야 하니까…….”
―흉악한 놈, 마법 배낭 속에 식량 잔뜩 갖고 있으면서.
드라고니아가 혀를 차듯 중얼거렸다.
‘시끄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