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3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29)
녹원에서 가져온 과일을 배낭 안에서 모두 꺼낸 식사는 빨리 끝났다.
키유나가 입이 짧은 것처럼 두 개째를 먹을 때 투란이 나머지를 모조리 먹어 치웠으니까, 얼마 되지 않는 과일이었기에 오래 끌 까닭도 없었다. 그렇게 욕심부리듯 먹어 치우고 나서 아직 키유나의 입에 과일 조각이 물려 있는 사이에 투란은 배낭을 털고 정리하며 몬스터 헌터의 차림새를 갖췄다.
그리고 기다리는 모습에 키유나는 남은 과일 조각을 그대로 그림자에 떨궜고, 셀레스티얼 가드가 검게 꿈틀거리며 이를 재빨리 삼키는 듯했다.
그 광경에 투란이 뚱하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녀석도 뭘 먹어야 했어?”
“아니, 그냥 보관만 해 줘. 사막에서는…… 늘 만약을 대비한 한 조각을 남겨 놓아야 하니까.”
키유나의 대답은 투란이 눈을 반짝이며 다시 묻게 했다.
“마법 배낭 노릇도 하는 거야?”
살짝 주춤한 듯, 키유나의 대답이 한 박자 늦게 나온다.
“그냥 과일 몇 개 정도만 담을 수 있어. 배낭처럼은…… 지금 내게는 무리야.”
“어, 그렇구나.”
아쉬운 표정으로 투란이 적당히 대꾸했다.
미묘한 눈길로 투란을 보던 키유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투란은 바로 깔개로 뒀던 가죽을 모두 해체했다.
누런빛 모래가 다시 푹푹 발에 파이며 발을 삼키는 풍경 속에는 어느새 모닥불의 자취까지 싹 지워진 채로 둘은 황량한 사막과 절벽 그림자 사이에 덜렁 떨어진 것처럼 돼 버렸다.
투란은 절벽 쪽을 손짓하며 이제부터의 계획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그대로 타고 올라가지는 않을 거야. 또 뭐가 떨어지면 절벽에 들러붙은 채로는 답답하니까. 저쪽으로 조금 돌아서, 적당히 거리가 되었다 싶으면 바로 날아갈 거야. 음, 그러니까…… 이 배낭은 키유나가 짊어지고 있을래?”
말을 끝내며 내미는 배낭을, 두 자루 검이 삐죽하니 매달린 배낭을 키유나가 조용히 받아 들고 끌어안았다. 언제라도 품에서 밀어내서 건네줄 듯한 그 자세에 투란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보탠다.
“매고 있어. 필요하면 칼 빼서 써도 되니까. 올라갈 때는…… 어차피 난 날개를 펼쳐야 하잖아.”
―굉장히 바보처럼 보이는 말인데? 그럴 거면서 왜 옷을 그렇게 꼬박꼬박 챙겨 꾸미냐고 묻는 것 같지 않아?
드라고니아가 슬쩍 놀리듯이 말했다.
살짝 마음 한구석이 움찔하기는 했지만 투란은 키유나가 별말 없이, 별다른 눈길 없이 묵묵히 배낭을 등에 지고 메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닥치고 좀 있으라고! 너 때문에 미친놈 소리 듣고 싶지 않거든?’
툴툴거리면서 투란은 천천히 앞장서듯 걸어 나갔다.
아직 사막의 모래가 가까운 곳을 채우며 가득했고, 그 모래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녀석들은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절벽에서 떨궈진 것이 아닌 순수하게 이 사막에 보금자리를 튼 녀석들…….
투란이 슬쩍 그쪽으로 관심을 두는 듯하니 드라고니아도 놀리던 말을 싹 잊은 것처럼 말한다.
―안 나온다. 눈치는 보는데, 거의 경계만 하는 꼴이야. 네가 쳐들어가기도 난감한 것이, 거의 칠팔십 미터 깊이 파내고 들어가야 하거든. 하지만 들어갈 조짐만 보여도 더 깊이 멀리 도망칠 거야.
‘음, 샌드 리저드가 저렇게 예민하고 유능할 줄은 몰랐네.’
―글쎄, 그냥 가다 만난 서너 마리의 무리가 아니니까. 저렇게 제대로 지휘되고 있는 패거리는 거의 훈련된 군단급이지. 역할 분담까지 또렷한 걸 보니 섣불리 건드리면 뒤도 안 돌아보고 튈 거다. 광범위로 힘을 써서 다 쳐 죽이려고 해도 몇 마리 안 걸릴걸.
‘뭐, 일단 괜찮은 놈 하나는 삼켰잖아. 무슨 짓을 하나 일단 잘 봐 두라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좋은 본보기가 될 테니까.’
―아, 저쪽 그늘이다. 누런빛이 보이지? 모래가 엉켜 올라간 것 같은 거, 그쪽으로 타고 올라가면 언데드 무리가 쏟아져 내리더라도 바로 마주칠 일 없을 거야. 위편도 언데드의 영역이 아니니까, 요새의 영향력이 닿지 않아서 말이지.
드라고니아가 광역으로 탐색하는 옵저버의 정보를 넘겨주면서 잡다한 이야기를 끊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저 요새와 어울려 볼 때라는 것처럼.
“키유나.”
투란은 몇 걸음 뒤에 따라오는 키유나를 돌아보며 불렀다.
자신처럼 몬스터 헌터의 차림새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검은 가죽 바지와 검은 코르셋, 갑주 형태를 이루고 손목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가죽 보호대의 모습은 어딘가 키유나에게 이질적이었다.
마녀라서가 아니라 가냘픈 소녀의 모습이기에 생긴 이질감이었다.
그나마 머리카락이라도 정돈해서 묶고 뭉쳐 틀어 놨으면 괜찮았을 텐데, 키유나는 배낭 위에 그냥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였다. 누가 보면 맹랑한 소녀가 몬스터 헌터 흉내 내는 모습이라고 빠르게 결론 내 버릴 자태인 셈.
하지만 그런 모습을 꾸며 준 것이 바로 투란 자신이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이쪽이 비어 있는 것으로 보이니까, 이쪽으로 날 거야. 날아오르는 동안에 주변 좀 살펴봐 줘.”
두 손을 내밀면서 언제라도 안아 올릴 준비가 되었다는 태도와 함께 하는 말에 키유나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가와 투란의 어깨에 두 손을 얹었다. 곧바로 투란이 그 허리를 팔로 감아 들어 올렸고, 무릎 쪽을 받쳐 올리며 키유나를 안고 나니 등 쪽에서 거세게 옷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날개가 치솟았다.
스톰라이더의 날개가 금방 투란을 허공으로 치솟게 했다.
속도라든가 추진력, 그런 쪽으로는 드레이크의 날개에 비해 많이 모자란 듯했지만 끈기와 함께 거센 힘에 대해 저항하는 강인함은 드레이크의 날개에 못지않은…… 어떤 면에서는 본능적인 기능이 더욱 강골(强骨)이라 할 날개는 소녀의 몸뚱이 하나 정도 추가되었다고 해도 아무런 부담이 없다는 듯이 가볍게 허공을 할퀴고 짓밟으며 투란을 상승시켰다.
―흠, 모래 속 녀석들이 당황하네? 그래도 틈나면 널 잡아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은근히 킬킬거리는 듯한 시늉을 하면서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나중에 내가 다 잡아 줄 날이 있겠지.’
살짝 얕보인 것이 짜증 난 투란이 소리 없이 툴툴거리며 더욱 힘차게 날갯짓했다.
오를수록 드러나는 바람의 미로는 사막의 경계를 넘는 투란이 못마땅하다는 듯이 조금 거친 풍압을 드리우고 눈에 보이지 않는 허공을 질주하는 바람결이 얼마나 사납고 못되었나를 과시하는 영향을 보이기는 했지만, 경계를 넘는 영향력은 자제하듯이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어차피 폭풍을 쏟아붓는다 해도 스톰라이더의 날개는 거뜬히 헤쳐 나가겠지만, 그래도 상승하면서 거세지는 바람결에 키유나의 머리카락이 사정없이 흩날리며 압도된 것처럼 기우뚱거리는 듯한 모습은 피할 수가 없었다. 물론 투란이 그렇게 궤도를 뒤튼 까닭을 잘 아는 드라고니아는 바로 핀잔할 뿐이었다.
―머리카락을 정리해서 묶어 배낭 안에 집어넣으라고 말을 해 두든가! 아니면 시야를 넓혀 놓든가! 기껏 날면서 두 눈에 의지하다가 머리카락에 가려진다고 비뚤거릴 필요가 있냐?
‘눈에만 의지하는 거 아니거든? 잠깐 헷갈린 것뿐이야.’
투덜거리면서 투란은 곧바로 더 빠르게, 더 힘차게 날갯짓했다.
헝클어지던 키유나의 머리카락은 스톰라이더의 날갯짓에 정돈되듯이 얌전히 아래쪽으로 흘렀고, 투란은 곧바로 누런빛의 절벽 선을 따라서 위로 올라갔다.
오를수록 사막의 영향력이 파격적으로 줄어들었고, 어느새 쌓인 눈과 차가운 바람결이 살갗에 와 닿았다.
유렐리아가 없어졌어도 여전히 눈보라가 어딘가에서 흘러오는 듯한 분위기를 느끼면서 투란은 저편 성채가 더욱 명확하게 그 형체를 드러낸 풍경을 살폈다. 그 앞에 뚝 떨궈지는 짓은 이래저래 피하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로 지켜볼 수 있는 자리를 찾아보니, 꽤 괜찮은 언덕이 숲과 맞물린 것처럼 보였다.
“내려간다.”
키유나에게 짧게 말해 주고, 투란은 그 언덕 위로 방향을 잡았다.
몇 번의 날갯짓, 주변의 바람결을 물리치는 억센 날개의 움직임 속에 가벼운 활강이 이어졌고 별다른 방해 없이 내려설 수 있었다.
후드득, 우두둑.
키유나를 내려놓자마자 날개를 접어 넣고 다시 옷차림새를 갖추는 투란이었다.
그 와중에 마지막으로 펼친 날갯짓의 바람결이 맞물린 숲 쪽으로 세차게 흘러갔다. 놀란 짐승 몇 마리가 소란스럽게 달아나는 낌새가 나무 사이로 새어 나왔다.
그 속에서 미묘하고 여리지만 분명히 마력의 잔재도 섞여 있었다.
놀란 짐승 속에 마수가 섞여 있었던 것이다.
―뭐, 제대로 겁준 모양이네. 먹잇감으로 마땅치 않다는 것을 확실히 안 모양이다. 너 여기 있는 사이에 돌아오진 않을 거야.
드라고니아가 투란이 한 짓의 결과를 검토하듯이 중얼거렸다.
하늘에서 뭔가 떨어져 내리는데, 그 덩치가 자기보다 더 컸음에도 먹잇감으로 달려들려던 묘한 녀석…… 무리 속에 섞여 있었고 무리를 이끄는 듯했지만 뭔가 이질적이던 한 마리를 떠올리며 투란이 바로 묻는다.
‘다람쥐 아니었냐?’
―다람쥐도 경우에 따라서는 육식한다만?
‘아, 그야 그렇지.’
입꼬리를 뒤틀면서 투란은 일단 성채 쪽으로 눈길을 모았다.
옵저버가 알려 준 정보, 거기에 맨눈으로 바라보는 지금의 상황과 유렐리아랑 치고받으면서 스쳐 갈 때의 기억까지 포개 본 투란의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저거, 어떻게 옮겨 다니는 거지?”
불쑥 튀어나온 혼잣말이었다.
키유나가 흘깃 투란을 보고 조용한 소리로 말한다.
“모래가 움직이는 것처럼?”
“어? 아…….”
투란의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바퀴 달린 수레도 아니고, 무슨 거대한 웜처럼 성채가 땅을 밀고 지나간 흔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원래 있던 자리랑은 거리가 꽤 먼 곳까지, 정말 흔적도 없이 이동한 것이 너무 희한해서 한 말이었는데 키유나가 그 의문을 한순간에 풀어낸 것이다.
모래성처럼, 아래가 흩어졌다 다시 뭉치는 방식이라면 무슨 흔적을 남길 것도 없이 산뜻하게 옮겨 다닐 수 있다.
―야, 맞는다는 보장은 없어. 뭐,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뭔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툴툴거렸다.
투란은 잠시 다른 뭔가가 있나 생각하는 시늉을 하면서 멀리 바라보는 눈길을 꾸몄다. 지금 풀어야 할 일은 고대의 마법 요새란 것이 어떻게 옮겨 다녀야 하는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할 일은…….
“어떻게 조사할 거야?”
키유나가 묻는 그대로였다.
“응? 어떻게라…….”
투란은 머리를 긁적였다.
―무식하게 그냥 몸을 들이밀고 뭐가 튀어나오나 보는 거지! 마녀는 상상도 못 할 방법이라니까! 솔직히 말해 주지그래?
‘시끄러워, 대체 왜 그렇게 성질이 나빠지는 거냐?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은 소리 없이, 키유나가 자신을 뭔가 생각에 잠긴 것처럼 바라보도록 표정을 관리하며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그사이에 키유나는 나름대로 생각한 바가 있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마법이 지키고 있는 성이야. 그냥 옮겨 다니기만 하는 마법이 아니야. 밖에서 지켜봐서는 알아낼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을 거야. 저건…… 내 가디언이 처음 마녀랑 계약했을 때보다도 더 오래된 마법의 성이야.”
투란을 놀리던 드라고니아가 살짝 머쓱한 낌새를 드러내게 하는 이야기였다.
덩달아 투란도 어색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야, 쳐들어가는 쪽이 최선이었던 거냐?’
그걸로 놀려 먹고 놀림당하고 있었는데, 마녀가 그 방법이 정답이라 말하고 있다니!
드라고니아는 뻔뻔하게 대꾸하고 있었다.
―일이 년 지켜본다 치면 밖에서도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 뭐, 모래왕이 짜증 내면서 튀어나올 수도 있는 기간이다만…….
‘어으, 너 진짜……!’
후욱,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가 내쉬며 고르는 시늉과 함께 투란은 키유나와 눈을 마주치는 채로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을 꺼낸다.
“몬스터 로드에게는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야. 키유나, 다른 방법은 없어? 가디언에게 저런 곳을 탐색하는 능력이 있다든가, 없어?”
키유나가 고개를 저었다.
“무리야. 저 성채는…… 내 능력보다, 내가 아는 마법보다 훨씬 더 엄청난 마법이 사역된 거야. 올라와서 보니 아주 분명해졌어. 저건…… 모래왕이 사막 한복판으로 끌어들여 집어삼키더라도 바로 어쩌질 못해. 성벽을 부수고 그 안 깊은 곳까지 으스러뜨리려면 모래왕이라도 몇백 년이 걸릴 거야. 그것도 성공한다고 장담할 수 없고. 그래서 모래왕이 투란을 보내고 부탁한 거야, 나도 이제 알겠어.”
“그렇구나.”
뭔가 할 말을 고르기 애매해서 투란은 적당히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왜 으쓱하냐?
드라고니아는 이 와중에도 투란의 마음에 살며시 떠오르는 기분에 어이없다면서 투덜거렸다.
모래왕이 자기도 해결 못 할 일을 맡겼다고 으스댈 상황이 아니잖은가.
‘그냥 막 부려먹는 일 아니라잖아, 일단 그것만으로도…… 젠장, 좋은 일이 아니네.’
한숨을 억누르면서 투란은 다시 절벽 위에 그 자태를 또렷하게 꾸미고 있는 성채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