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3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30)
성벽의 망루, 안쪽에서 첨탑을 밀어 올리고 있는 거대한 내궁(內宮).
그 모습은 투란에게 이모저모로 페브라의 왕성을 떠올리게 했다.
왕도의 중심에서 왕궁을 품은 성…….
비록 도시의 풍경 따위는 한 조각도 엿볼 수 없기는 하지만, 고대의 요새는 그러한 왕성의 자태를 분위기 속에 잔뜩 담고 있었다. 그 안쪽에 언데드, 데드워커의 무리가 우글거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홀시딘이 싸웠던 상황보다 훨씬 좋지 않다는 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
“키유나, 여기서…….”
“함께 들어갈게.”
투란이 말을 꺼내려 하기가 무섭게 키유나가 또박또박 말하고 있었다.
하려던 말을 미리 알고 그에 대해 정확하게 자신의 의도를 말하는 키유나를 투란이 흠칫하며 바라보았다.
“가능한 많은 것을 알아내야 하잖아. 내 눈으로도, 내 가디언의 눈으로도 봐 둬야 해. 투란이 보는 것과 다른 것을 볼 테니까. 지금 저 성을 끝내려 가려는 것이 아니니까. 최대한 많이 알아내서 도움을 청하러 가야 하잖아.”
여전히 또박또박, 키유나가 조리 있게 말하고 있었다.
맹하니 엉겁결에 투란은 대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네?”
―뭐가 그래! 정신 차려!
다소 얼빠진 듯한 투란에게 바로 드라고니아가 호통쳤다.
후욱,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투란은 절벽 위에 떨어질 듯이 살짝 걸쳐 있다가 미세하게 다시 돌아서서 안정된 자리로 돌아오려는 듯한 성채를 살피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서 빠르게 돌아가는 생각은 저절로 드라고니아를 향해, 자기 자신을 향해 정리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마녀가 보는 거랑 내가 보는 거, 네가 알아내는 일이 다를 수밖에 없잖아. 셀레스티얼 가드는 특별하다며? 마녀도 특별하고…… 키유나의 말이 맞아. 밖에서 살필 수도 없고. 그렇다면 일단 들이……대 볼 수밖에 없어. 위험하면 따로 빼낼 일도 생각을 해 두긴 해야겠지만.’
놀리면서 했던 드라고니아의 말대로 하는 것이 묘하게 거슬렸지만, 그것이 최선이며 키유나를 안전한 곳에 두고 가려던 계획도 뒤로 미룬 꼴이기는 했지만 투란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범위 내에서 성채, 고대의 요새에 대한 정보를 끌어모아야 홀시딘을 설득하기 쉬워진다는 것.
대마법사에 올라선 홀시딘을 설득해야 상아탑의 힘을 끌어내 모래왕이 내민 과제를 해결하는 일이 더 쉬워진다는 것!
―마녀랑 사이 나쁘다니까!
투덜거리듯이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로열 클래스면 괜찮다니까.’
말투를 따라 하듯 대꾸를 흘려 낸 다음, 투란은 키유나에게 말한다.
“키유나, 그럼 약속부터 해.”
“약속……?”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던 듯, 키유나가 움찔하면서 투란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도망쳐. 마법을 쓰든 가디언을 쓰든, 내 걱정할 것 없이 온 힘을 다해서 도망치는 거야. 약속해.”
단호하고 굳건한 투란의 말에 키유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 머뭇거림에 투란이 바로 말을 잇는다.
“키유나, 난 다치지 않아. 키유나가 뭘 해도 상관없어. 난…… 사막의 주민이 아니야. 봤잖아?”
“봤어. 알았어. 도망칠게.”
작은 숨을 토해 내면서 키유나가 흐릿하고 여리게 마지못한 표정을 띤 채로 겨우 대답을 짜내고 있었다.
그 모습에 투란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갈라설 경우에 어디서 만나려고? 미리 장소라든가 만나기 위한 시간이라도 정해 두지?
드라고니아가 냉정하게 짚어 말하고 있었다.
문득 투란도 깨달을 수 있었다.
성채에 들어갔다 나온다 해도 바로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가?
다람쥐 마수가 무리를 끌고 쏘다니기도 했지만, 눈보라가 잦아든 채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 산맥 안에는 예측할 수 없는 기괴한 마법이 수상한 음모를 품은 채로 몬스터를 흩어 놓고 기다리는 중이 아니던가!
과연 유렐리아를 정리했다고 그 모든 것이 정리되었을까?
“키유나, 만약 저 안에 들어갔다 나오고 나서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면…… 그래서 당분간 만날 수 없다 싶으면 알드바인으로 가면 돼. 알았지?”
“알드바인…….”
“그래, 하얀 호수가 있는 하이랜드의 도시야. 헌터를 위한 대공방도 있고, 여기서 좀 멀기는 하지만 키유나라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어.”
“알았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키유나였다.
그 모습에 투란은 살짝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드라고니아의 핀잔은 그런 투란의 뇌리에 팍팍 꽂혀 들고 있었다.
―뭔 무책임한 말이냐? 좀 멀어? 춤추는 산맥 안으로 들어가서도 갈기 산맥을 돌파하거나 경계 도시 몇 곳을 거쳐야 하는 도시를 다시 만날 곳으로 삼냐? 이 근처에 적당한 곳을 찾으면 되잖아! 아, 이 정신 나간 녀석 같으니라고!
‘야야, 생각해서 한 말이거든? 여기서 나랑 키유나를 갈라서게 할 정도라면 이 산맥 안에서 다시 못 만나게 할 정도는 될 거잖아! 어으, 좀 조용히 하고 있어!’
살짝 다른 곳에 귀를 기울이는 시늉을 하면서 투란은 씩씩한 걸음으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키유나가 여전히 배낭을 멘 채로 그 뒤를 따랐다.
가면서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을 조금 더 되새겼고,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서 가늠해 봤다. 그 진지함과 신중함은 드라고니아가 더 뭐라 잔소리하는 것을 멈추게 했다. 지금 투란과 마녀를 동행하지 못하게 할 상황이라면 정말로 이 산맥 밖에서 만나는 편이 낫다고 인정하는 듯, 투란이 지금 생각하는 바가 타당하다는 듯.
그렇게 가는 사이, 가끔 주변에서 느껴지는 낌새를 향해 투란은 가차 없이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을 이용한 파문을 흘려 냈다. 명백한 위협이었고 덕분에 어설프게 먹잇감인 줄 노리고 다가오던 것들이 화들짝 놀라 도망치는 낌새가 몇 번 이어졌다.
키유나는 이런 투란의 짓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 당연하다는 듯, 투란이 하지 않았으면 키유나가 했을 수도 있었다는 듯.
그 자연스러운 태도가 반갑기도 하고, 왠지 낯설기도 해서 투란은 모르는 척하고 성채를 향해 다가갔다.
그렇게 다가갈수록 성채도 투란을 느끼는 듯, 입을 열고 노려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성문과 망루의 형체를 또렷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애초에 어딘가 들어갈 구멍이 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으로 가는 중이기는 했지만, 저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성문을 드러내는 상황은 투란에게 예상 밖이었다.
‘야, 저기 원래 문이 있던 거 아니지?’
변화했다는 흔적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옵저버가 훑고 지나간 것이 바로 조금 전이었다.
분명히 성벽이었던 부분이 투란의 시야에 닿을 무렵에는 성문이 되었고 하나만 솟아 있던 성벽 망루가 마치 겹쳐져 보이다가 실체를 드러낸 것처럼 둘로 나눠진 상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교묘하군, 인간이 지닌 감각의 범위를 상정하고 변화한 거야. 변하지 않은 것처럼 꾸미면서 변해 있는 거지. 저건 지능을 갖춘 위장이다. 뭐가 저 요새를 움직이는가 모르겠다만, 확실히 뭔가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라. 들어가면…… 예상 이상으로 험악하고 위험할 수 있어.
‘그래…… 기대하고 있다고.’
투란은 걸음을 멈추지도 늦추지도 않았다.
키유나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투란은 자신에게 명확하게 들이대고 있는 거대한 입처럼 느껴지는 성문을 향해 똑바로 나아갔다. 망루의 틈새가 텅 빈 눈알처럼 내려다보는 듯했지만, 투란은 거침없이 나아갔다.
그런 투란을 뒤따르던 키유나가 멈칫한 것은 성문이 열린 때였다.
드라고니아가 어이없어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하? 아주 노골적인데?
성문은 투란을 환영하듯 열리고 있었다.
이제는 투란이 도망칠 리가 없다고 결론 냈다는 것처럼 활짝 열린 채로 성안으로 이끄는 포석까지 드러내고 있었다.
그 포석이 깔린 길을 따라오라는 것처럼…….
그 도발적인 광경에 투란은 그대로 포석 위에 발을 디뎠다.
도발에 대응해서 ‘내가 디뎠는데 어쩔 거냐!’라고 도발을 거는 태도였다.
그에 대한 반응은 그야말로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일어났다.
‘우엑?’
―야, 이 미친!
드라고니아가 뒤늦게 투란의 한 걸음에 잔소리하려 할 때는 이미 투란도 포석에서 치밀어 오르는 이질적인 마력, 기괴한 마법에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뒤따라오던 키유나는 한층 더 놀란 소리를, 누가 들어도 비명이라 할 만한 외침을 터뜨리고 있었다.
“투란, 위험……!”
마무리 맺지 못한 뒷소리가 흐려진 순간, 투란은 번개처럼 뒤돌아봤다.
키유나의 입가에 핏방울이 어른거렸고 몸에 걸친 가죽 갑주 곳곳에 균열이 피어나고 있었다. 등에 걸머진 배낭에서 튀어나온 칼자루 역시 감고 있는 가죽부터 균열을 드러내며 키유나의 허리 어림에서 새어 나온 칼집 또한 미세하게 갈라지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투란은 알아차렸다.
키유나를 위협하는 것은 포석의 마력이 아니었다.
성채가 키유나에게 저러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젠장!”
저절로 욕설이 나오게 만드는 원인은 투란 자신이었다.
고대의 요새, 마법의 성채가 포석을 통해 기괴한 수작을 부려오는 그 순간에 투란의 문장 속에서 몬스터가 본능적으로 반응한 탓이었다.
다른 놈도 아니고 이 세상 무엇에도 관심 없는 척했던, 그야말로 잡아 삼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해야 하는…… 그 뒤로는 고작해야 샌드 리저드를 호기심에 잡아 삼킨 것뿐인…… 사룡이 반응하고 있었다.
그 거대했던 몸집에서 가차 없이 뿜어내던 파동, 주변을 물들이는 어둠을 드리웠던 파괴의 장막을 치솟게 하고 두르고 다녔던 탓에 붙여진 더스크라이더란 이름이 어째서 붙어 있는가를 증명하는 강맹한 힘이 요동치며 투란을 중심으로 번져 나가고 있었다.
키유나는 거기에 휘말린 것뿐이었다.
사룡이 불쾌해하며, 본능적으로 대응한 것은 분명히 성채이고 대부분의 파동은 그쪽으로 맹렬하게 흘러갔기에 그저 흐릿한 여파였을 뿐인데…… 키유나 역시 어느 틈엔가 본격적으로 형체를 드러낸 셀레스티얼 가드에 보호받는 중인데도 온몸에 충격을 받고 튕겨 튀어오르는 꼴이 되며 상처 입고 있었다.
―투란!
드라고니아가 사납게 외쳤다.
그 순간에 투란은 지금 한 가지 생각에 매달려 있을 때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야 했고, 모든 상황을 집중해서 검토해야 했으며 이를 통합한 결론을 단숨에 끌어내야 했다.
그 중심이 되는 것은 두 가지, 사룡과 마녀.
고대의 요새가 흘려 내는 기괴한 마법 술식에 사룡 더스크라이더는 왜 반응했는가?
직접 닿고 나서야 반응한 까닭은 무엇인가?
키유나를, 간신히 버텨 내면서도 상처 입고 있는 마녀를 이대로 동반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키유나에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투란의 마음이 여러 갈래로 갈라졌고, 동시에 투란의 어깨와 몸이 검게 물들며 형상을 변화시켰다.
맑고 투명한 수정의 가루, 크리스털 애시가 먼저 투란이 내민 손에서 터져 나가며 키유나를 휘감았다. 키유나가 입고 걸치고 있는 가죽 속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시커먼 잉크가 맺히면서 크리스털 애시에 호응했다.
일방적으로 흘러나오던 격렬하고 사나운 파동에 휩쓸리던 키유나는 순식간에 그 파동의 주역이 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몸에 걸친 가죽이 키유나를 중심으로, 키유나를 위한 공명(共鳴)을 일으키면서 짓쳐 오는 파동을 상쇄하며 그 충격을 지워 버리는 것!
동시에 키유나는 귓속에 둥글게 뭉친 것이 투란의 목소리를 빠르게 전해 오는 것도 듣고 있었다.
“키유나, 먼저 가야겠어. 걱정하지 마, 나는 괜찮아…….”
휘이잉!
순간적으로 허공 높이 튕겨 나가면서 키유나가 놀라 눈을 부릅떴다.
그사이에도 투란의 말은 이어졌고, 성문을 열고 망루가 기울어지며 내려다보는 듯한 성채의 풍경은 멀어지고 있었다.
이 상황이 의미하는 바에 키유나는 사막의 주민들과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던 순간을 떠올렸고 다급히 외쳤다.
“투란, 투란!”
“괜찮다니까. 어서 가. 나 때문에 다친 거라고, 이 못된 사룡을 진정시켜야 하니까. 키유나, 내 말 기억하고 알드바인으로 먼저 가.”
긴말을 끝낸 투란이 손을 흔들며, 까마득하게 작아진 모습임에도 키유나에게 선명하게 보이는 커다란 손을 흔들며 말을 전해 오고 있었다.
키유나는 그 손의 형상에 전율하며 할 말을 잊었다.
그냥 크게 키운 손이 아니라, 사룡의 발톱을 한껏 드러낸 시커먼 바탕에 바위를 녹일 듯한 붉은 금을 머금은 형상이니!
그런 투란을 향해 망루가 무너지듯 덮쳤고, 포석은 허공을 향해 산사태처럼 치솟고 있었다. 거대한 폭음과 함께 열린 성문의 주변 벽이 터져 나갔지만, 그 무너지는 잔해와 돌 더미는 더욱 빠르게 투란의 모습을 삼킬 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사납게 격동하며 거대한 발톱, 손톱이라고 해야 할 형상이 튀어 오르며 휘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