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4)
“아니, 뭐 그렇게까지는…….”
투란은 허공에 대고 보이지 않는 상대를 향해 얼버무리는 말을 꺼내려 했다. 말투에 담겨 있는 감정이 꽤나 사납고 거친 것이, 왠지 좋은 기억을 상큼하고 명랑하게 전해 줄 듯한 낌새가 없잖은가!
“크어!”
갑작스럽게 온몸의 감각이 아늑하게 멀어지는 느낌과 함께, 투란은 ‘기억’해 낼 수밖에 없었다.
* * *
콰아아!
불꽃의 기둥은 키린과 투란을 둘러치며 치솟았다.
작게 깔려 있던 불꽃의 울타리는 이제 없었다.
거대한 불꽃의 기둥이 흘려 내는 불길이 저절로 사방을 싹 둘러치는 광경이었다.
그 불꽃의 배경을 등 너머로 두른 채, 키린이 빙그레 웃었다.
키린의 가슴에서 다시 한 번 ‘매의 문장’이 보였다.
이번에는 입을 열고 뭔가 삼키는 대신, 매는 둥글고 둥근 황금빛 투명한 껍질에 싸인 붉은빛의 맥동을 토해 냈다.
투란은 그게 대체 뭔가, 얼굴 한가득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로 눈동자를 반짝거리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 마음에 담긴 기대감은 투란의 숨결마저 거칠고 세차게 만들었다.
불꽃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키린, 그런 키린이 주는 붉은 빛의 맥동은 분명히 불꽃처럼 보였다!
괴물 왕자 키린을 전설이 되도록 한, 불꽃 괴물의 조각이 아닐까?
투란이 설레는 소년의 마음을 억누르면서 숨결조차 가늘게 하며 지켜보는 사이에 키린의 손이 뻗어졌다.
“열고, 받아들여.”
잔잔한 키린의 말, 어딘가 즐거워하는 그의 눈빛.
주변에 치솟은 불꽃의 기둥과 함께 그들의 머리 위에서도 보다 굵은 불기둥 치솟아 올랐다.
투란에게는 거부할 생각도, 그럴 기분도 전혀 없었다.
‘천칭의 문장’이 그의 가슴 위에 작은 톱니 고리를 돌출시켰다.
붉은 빛의 맥동이 투명한 황금빛 껍질째로 고리 안에 담겼다.
그 순간, 투란은 혼백을 뒤흔드는 굉음을 몸과 마음으로 ‘듣고’ 말았다.
“제에에에에에에에엔장!”
‘어?’
입에서 나오지 못한 그러나 마음에 깊이 품은 의문의 한마디, 투란이 기절하기 전에 느낀 전부였다.
* * *
“제에엔장?”
투란은 입술을 꼬물거리면서 갸웃한 채로, 한마디를 토해 냈다.
그 이상한 소리를 느낀 순간 듣는다기보다는 그야말로 온몸과 마음으로 느낀 그 순간에 기절했고, 그다음 이어진 기억은 잠에서 깨듯이 깨어났다는 것이다. 그사이에 키린이 없어졌고, 투란은 혼자가 되었다.
“아니, 이게 뭐야?”
기억하고 뭐고 할 것이 아니었다.
그냥 키린이 전해 주는 것을 품은 그 순간, 투란의 정신이 훅 날아간 것뿐이잖은가!
이런 상황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허풍쟁이?’
—뭣! 누가!
당장 반발하는 맹렬한 외침이 튀어나왔다.
입으로 꺼낸 말도 아니고, 투란이 마음에 품은 생각에 대한 반발이었다.
“어라?”
투란은 맹한 눈길로 주변을 슬금슬금 둘러봤다.
주변에 혹시 마음을 꿰뚫어 보는 뭔가 있어서 자신을 놀리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네 안에 있다!
툭 던지는 으르렁거리는 외침에 투란이 바로 꽥 하는 대꾸를 하고 만다.
“뭐야, 그거! 무서워!”
다른 곳에 있는 놈도 아니고 자신의 안에 있다니!
투란은 슬그머니 배를 긁적이고, 슬슬 가슴을 손끝으로 눌러 보는 시늉도 했다. 물결처럼 번져서 퍼져 있던 오러의 힘이 그의 손짓에 은은하게 반응해 오는 감각은 낯설고도 신기했다.
‘왜 이게 계속 새 나오는 거지?’
문득 투란의 기억 너머에서 오러 마크를 지닌 사냥꾼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평소에는 오러를 전혀 활용하지 않다가 필요한 순간에만 발생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오러는 강력하지만, 그만큼 심하게 체력을 소모하고 제대로 된 오러 윌더가 아닐 경우에는 생명마저 위험해지기 때문이라고. 오러 사인이 아닌 오러 마크를 달고 다니는 사냥꾼들에게는 그래서 오러를 적절한 순간에만 발생시켜 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 된다고 했다.
한데 투란의 오러는 지금 물결처럼 온몸을 덮은 채로, 사람 모양의 물방울 혹은 거품인 것처럼 버티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오러를 계속 소모해도 되는 것인가, 저절로 투란을 근심하게 했다.
—이봐, 지금 그런 걸 따질 때냐! 이 집중력 없는 녀석아!
머리를 징징 울리는 소리가 투란의 주의를 끌었다.
어딘가 어처구니없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기가 막혀서 맥이 풀렸다는 듯한 낌새도 조금 섞여 있는 말이었다.
“음? 아니, 이건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불완전한 오러 마크 따위랑 비교하지 마라. 몬스터 엠블럼은 오러 사인보다도 훨씬 상위의 대마법이라고! 지금 환경에서 사람인 채로 네가 버티게 해 주는, 딱 그만큼의 힘만을 소모하고 있다. 그 정도는…… 너에게는 거의 부담이 없어!
“그래?”
맹하니 투란은 뇌리에 울려온 소리에 대꾸했다.
가만히 듣다 보니, 키린이 남긴 수다스러워졌다는 말이 불쑥 떠오른다. 이대로 이 괴상한 목소리를 달고 다니면서, 거기에 대꾸하는 자신의 모습도 상상할 수 있었다.
‘어?’
그 모습 위로, 샤오콴 마을에서 봤던 이상한 마법사의 형상을 덧붙여 볼 수도 있었다. 뭔가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꼴이 누구랑 이야기하는 것 같았는데,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마법사를 보며 다들 수군거렸고, 결론은 금방 나왔다.
미친 마법사라고.
“헐! 나 미친놈 취급 받는 거야?”
생각이 도약했고, 투란의 중얼거림은 조금 격하게 입으로 튀어나왔다.
—뭐? 이게 진짜……!
투란이 뭔 생각을 했는가 알아차린 듯, 격한 반발이 부글거리며 뿜어져 나왔다.
‘이거 정말 신기하네!’
투란은 자신이 지금 겪는 것처럼 그 마법사도 사실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이제야 겨우 할 수 있었다. 그때는 그런 미친 마법사 옆에 있다가 정체불명의 저주에라도 걸리는 것이 아닌가 해서, 가까이 있지 않으려고 다니던 길마저 바꾸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데서 누구랑 이야기하는 꼴이 되면 미친놈 맞잖아?’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투란은 표정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남에게 사정을 설명한다고 해도, 역시나 미친놈처럼 보일 것이고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것이다!
—이 멍청이가! 입을 열지 않아도 이렇게 대화가 되잖아! 왜 입을 열어서 미친놈 취급을…… 아니, 이게 아니지! 대체 뭔 생각을 하는 거야! 계속 이렇게 정신 줄 놓고 해롱거리고 있을 참이냐!
‘음? 어, 그건 그러네.’
입을 꼭 다물고, 투란은 생각만으로 말했다.
벅벅, 머리를 긁적이던 손에 힘이 좀 더 들어갔다.
아무래도 입을 열지 않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한다고 하니, 투란의 몸이 근질거리면서 이 낯선 상황에 대해 거부하고 싶다는 충동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하지만 그런 충동은 잠시 마음 한구석으로 치운 채, 투란은 자신을 향해 그리고 자신 안에 있다는 새로운 존재를 향해 물었다.
‘그러면…… 뭘 해야 하나?’
이번에는 으르렁거림도, 짜증도, 사나운 말도 없었다. 고요함이 맴돌면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응? 뭐야, 이번에는 못 들었나?”
중얼거림을 일부러 토해 내기도 했다.
어쩔 수 없다는, 긴 한숨 같은 반응이 느껴졌다.
아주 먼 곳인 듯, 아주 가까운 곳인 듯, 작은 속삭임이 침묵 속에서 울려 나와 투란의 마음에 전해진다.
—모르겠다, 키린이 대체 왜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흠.’
투란은 손을 내밀었고, 천천히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숨결에 따르듯 오러의 물결이 살갗 안으로 스며들었고, 살갗을 긁어 대는 가려운 통증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팔뚝을 들어 보니 살갗은 푸르스름해져 있고, 뭔가가 계속 짓누르고 파고들려는 것처럼 꿈틀대며 파이거나 볼록해지는 작은 줄이 돋아났다. 들이쉰 숨결조차도 가슴속을 긁으며 시큰한 통증을 주었다.
‘역시 위험한 곳이네.’
—뭐 하는 거야! 죽고 싶은가? 어서 오러를…….
어이없어하며 들려오는 소리에는 마음을 쓰지 않았다.
가만히 투란의 정신이 몬스터 엠블럼에 닿았고 악마의 심장을 염원했다.
두근, 두근…… 우득, 꽈드득.
“켁?”
격하게 심장 위에 돋아나는 악마의 심장은 거의 포효하듯이 투란의 몸을 질주하는 듯한 파문을 뿜어냈다. 오러와 다른, 몬스터 엠블럼의 마력이 악마의 심장과 함께 샘솟으며 핏줄과 힘줄, 심장의 한쪽이 모조리 변해 버렸다.
그러면서 너무 오랜만에 드러내는 변형이란 것처럼 요란한 소리까지 일으켜 버린 것이다!
우득, 와드득.
팔다리를 움찔거리는 순간에 들리는 소리가 투란에게는 묘하게 상쾌했다.
“후으으…….”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깊은 숨을 내쉬면서 투란은 허파와 목 줄기에 맴도는 악마의 심장 넝쿨의 촘촘함을 실감했다. 가만히 내려다보던 팔뚝의 살갗도 푸르스름하니 물들던 기색을 싹 떨쳐 버린 채로, 오밀조밀한 넝쿨의 잔그물을 살 속에서부터 밀어 올리면서 부드러운 옷감처럼 짜이는 것이 보였다.
투란은 고개를 잠시 좌우로 흔들었고, 악마의 심장 속에서 ‘작은 늪’이 들어서는 감각을 즐기듯이 관조했다. 느릿하니 발을 뻗으며 발가락도 까닥거리니, 곧 새끼발가락이 엄지발가락처럼 굵어지며 독특한 그랑츄의 발 모양이 갖춰졌다.
‘좋아!’
발로 땅을 움켜쥐듯이 디디면서 투란은 발목과 무릎, 다리의 힘만으로 곧장 몸을 일으켜 세웠다. 주저앉아 징징대던 투란의 자세는 곧장 굵고 큰 발을 추처럼 땅에 박고 선 모습이 되었다.
콰드득!
뼈가 꿈틀거리면서 살 속 깊은 곳에서 뒤틀리는 소리가 몸 밖으로 흘러나왔다.
투란의 다리와 허리, 등짝의 형상이 사람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두껍고 굵게 변해 갔다. 뼈대가 더 커지면서 몸이 그에 맞게 확장된 듯한 꼴이었다.
‘좋아, 그랑츄까지 되었고!’
투란은 좀 더 신중하게, 숨을 몇 번 더 고르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오러의 보호 없이 들이쉬고 내쉴 때의 통증은 없었다.
굵어진 발로 슬슬 바닥을 밀어 봤고, 역시나 작은 돌 정도는 가볍게 으스러뜨리는 무게감이 충실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면서, 투란은 마음을 집중하며 두 팔의 형상을 상상하며 몬스터 엠블럼에 정신을 걸었다.
붉은 털이 치솟았고, 짙푸르면서 검게 보이는 손도 보였다.
왼쪽에는 붉은 늑대, 오른쪽에는…….
“샤머닉 트롤.”
투란은 키린에게서 들었던 말을 중얼거리며, ‘이상한 심장’이라고 생각하던 트롤의 팔을 바라봤다. 이제는 자신의 오른팔이다.
두 팔을 활짝 벌리면서 투란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
가슴도 펼치고, 온몸으로 햇살을 받으며 하늘을 우러러보는 듯한 모습으로 투란은 잠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두근, 두근.
악마의 심장이 색다른 고동을 일으키면서, 오른쪽 가슴 깊은 곳에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듯한 신호를 보낸다.
‘응? 아, 그렇지.’
투란은 곧 그 신호의 의미를 깨달았다.
ㄴ오른팔, 손바닥의 연한 새싹빛과 손등으로 가며 너무 짙어서 검게 물들어 가는 듯이 보이는 샤머닉 트롤의 팔에 힘이 모자랐다. 제대로 된 심장이 없다는 것처럼, 악마의 심장만으로는 피가 모자란다는 것처럼!
“후으읍!”
바로 깊은 호흡과 함께 투란은 정신에 힘을 줬고, 곧 오른쪽 가슴속에서도 기다렸다는 듯이 강렬하게 맥동하며 등장하는 ‘이상한 심장’, 샤머닉 트롤의 심장을 채워 넣었다.
새로운 활력이 투란의 머리까지 맑게 했다.
—응? 지금 뭘 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