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4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34)
영혼을 오염(汚染)시킨다.
드라고니아의 말에서 전해진 바를 투란은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룡이 가장 불쾌하게 여기는 감각, 더불어 투란의 어딘가를 끊임없이 자극하는데 오감(五感)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그 기분 나쁜 무엇.
몸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을 긁는 듯한 그 무엇이 영혼이니 뭐니 하는 쪽의 자극이라면 투란은 이 상황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데드워커 중에서는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미쳐 날뛰다가 그 몸이 치명적인 중상을 입은 다음에야 죽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나마 사람이라면 미쳐 날뛴다고, 말이 갑자기 통하지 않는다고 이상 사태를 빠르게 판단 내리기라도 하지만 짐승이라면 미쳤는지 그냥 발정 난 경우인지 몰라서 멀뚱거리면서 보다가 썩은 냄새를 풍길 때가 되어서야 알아챌 때도 있었다.
드라고니아가 윌 라이트, 투란의 의지에서 비롯된 마력을 기반으로 주변을 탐색하는 방식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기분 나쁜 것. 영혼을 건드리는 것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마법사라든가 오러 윌더도 가끔 그쪽으로 취약해서 괴상한 꼴을 당하는 일이 있었고, 몬스터 헌터들은 그런 사례를 들먹이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전문적인 일을 하는가를 자랑질하고는 하니까.
그런 자랑질을 하다가 샤오콴 마을까지 도망칠 일에 휩싸였던 작자도 있었기에 투란은 알고 있었다. 괜히 남 놀리고 자랑질하다가 험한 일을 당한…….
‘아, 이거 아닌가?’
갑자기 뒷골을 쭈뼛하게 할 정도로 ‘정신 차려, 투란!’이라며 드라고니아가 외쳤기에 투란은 연상을 멈췄다.
아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딴생각에 빠져들다가 정신 차리려 할 때는 이미 영혼이 오염될 대로 되어서 손 쓸 방법이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투란은 딴생각을 하는 와중에 배꼽 언저리에서 소울테이커가 새겨 둔 희미한 무늬를 뿜어내는 중이었다. 작은 지렁이가 꿈틀거리듯, 지렁이 크기의 뱀이 꿈틀거리고 흘러나오는 것처럼 무늬를 머금은 살점이 투란에게서 분리되어 나오고 있었다.
그 살점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투란은 바로 밟아 짓이겼다.
‘아, 후련하네.’
―진짜냐?
드라고니아의 말투 속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영혼 오염이라고 듣자마자 뭔가 대처를 하는 듯싶었는데, 순식간에 투란의 마음을 채워 들어간 것은 그냥 쓸모없는 과거에 대한 회상으로 바로 이어졌으니까. 상황을 납득하고 대처 방안을 구상하는 쪽이랑은 아무 상관 없었으니 드라고니아의 의심은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하지만 투란은 바닥을 밟은 발을 몇 번 더 꽉꽉 누르고 비비 틀어 누르는 시늉을 하면서 단호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냥 감각이나 마력은 아닌 것 같아서, 애당초 유령인지 망령인지 닮은 영핵을 다루고 있었잖아. 그러다 보니 그쪽으로 뭔가 느낄 수 있는 소울테이커가 움직인 거고…… 모를 때면 어리바리했겠지만 확실히 영혼 오염이라고 네가 말했잖아. 그렇게 알고 나니 벗겨 낼 수 있었어. 이제부터는…… 오러 가드로 정신 방어하는 정도로도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어.’
―그렇군.
잠시 윌 라이트의 마력을 기묘하게 뒤섞는 듯하다가 드라고니아가 납득했다는 대꾸를 하고 있었다. 덕분에 투란은 그 뒤섞임에 대해, 그 틈새에 생겨난 마력의 변화에 대해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건…… 뭐냐?’
―미리 알면 윌 라이트의 마력으로도 탐색하고 방어할 수 있어. 드라코눔의 마법이 오러 윌더의 기교만도 못할 줄 알았냐?
‘앞으로는 미리 좀 알아낼 수 있도록 해 줘.’
―원래 알아내는 정도가 아니라 막아 낼 수 있었거든? 누가 날뛰는 탓에 걸어 둔 방어 마법이 몽땅 날아가는 탓일까? 응, 누구 탓일까?
‘야, 저건 뭐냐?’
으르렁거리며 타박하는 말을 회피하려는 듯이 투란이 불쑥 물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말 돌리지 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짓이겨졌던 산양 머리의 파편이 저편으로 걸쭉하게 흘러가면서, 그 주변에서 어스름하니 짙어지는 뭔가가 뒤엉기면서 양날 도끼를 들고 있던 괴인의 형체가 다시 복원되고 있었다.
그 광경은 한번 뭉개지면 멀리 달아나던 희미한 불꽃처럼 느껴지던 영핵과는 전혀 다른 뭔가가 다시 부서진 몬스터의 형체를 되돌려 놓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전에 벽에서 부풀어 나왔던 언데드 병사들의 몸에 채워지는 마력, 영핵이 뒤엉킨 것과는 어딘가 질적으로 달랐다.
투란에게는 이제까지 기분 나빴던 것이 똘똘 뭉쳐서 형체를 갖추는 것처럼 보이고 느껴지기까지 하는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드라고니아 또한 이런 기분에 동감한다는 듯, 연이어 마력의 파문을 흘리고 투란의 살갗 위로 프로브의 파편을 드리우는 듯한 묘한 재간을 부렸다. 이를 통해 직접적으로 요새의 마력을 무시한 채로 움직이는 프로브나 옵저버가 아직 무리란 것을 투란이 알아차릴 때, 드라고니아는 아예 저 기괴한 광경의 실체를 파악한 모양이었다.
―이런 미친…….
성난 욕설이 잠깐 흐르는가 싶다가 투란의 의아함이 짙어지기가 무섭게 드라고니아는 뭘 파악했는가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다크미스트, 악마종이 제작한 몬스터 병기 중에서 악랄할 쪽으로 유명한 마물이다.
‘여기, 이 성채 만든 것이 악마종이었다는 거야?’
―아니! 이 요새는 분명히 인간이 만들었지! 다크미스트가 점령했고!
‘뭐 하는 몬스터야? 아, 영혼 오염시키는 범인인가?’
―전혀! 저건 영혼을 오염시키는 녀석이 아니고, 정신에 들러붙어서 몸을 빼앗는…… 빙의(憑依) 형태의 마물이다! 빼앗은 몸이 부서지면 곧바로 다른 몸으로 옮겨 가 버리고!
‘데드워커의 원인이 될 수도 있고?’
―그래! 병사 형태의 데드워커, 그건 확실히 언데드였지. 하지만 몬스터와 짐승은 데드워커, 영핵이 없이 저 마물이 깃들어서 움직이는 거야. 문제는…….
양날 도끼가 투란의 머리를 찍어 왔다.
키잉, 퍼억!
드라고의 발이 투란의 머리로 치솟으며 양날 도끼째로 찍어눌렀다.
납작해진 산양 머리의 괴인을 내려다보면서 투란이 소리 없이 중얼거린다.
‘오염시키는 놈 따로, 몬스터 움직이는 놈 따로…… 그런데 이건 요새의 마법도 아니란 거지?’
―그래…… 이 요새의 마법이 마물에게 협조적인, 미친 상황이고 말이지!
‘마법의 성이든 뭐든 일단 비었으니까 마물이나 괴물이 들어와 자리 잡을 수 있는 거지, 폐가의 유령 소동에는 늘 색다른 몬스터가 끼어 있다는 말 못 들어 봤어?’
―그런 폐가에 몬스터가 끼어들 때까지 왜 놔두나!
‘인간 나라에서는 종종 그럴 때도 있다만.’
드라코눔의 환경에 대해 궁금해하면서도 투란은 다시 어스름하니 뭉쳐서 산양 머리의 괴인을 일으켜 세우는 마물을 지켜봤다. 벽에서 나오던 병사 때처럼 느긋하면서도 분명하게 산양 머리의 괴인 몸을 살점 하나 다시 모아서 조립하는 광경은 어딘지 속을 긁는 스산함이 맴돌았다.
―다크미스트는 오러가 깃든 공격으로 흩어 놓을 수는 있다만, 말살은 못 해. 마법 중에서도 불이나 번개, 얼음 따위로는 별 피해를 줄 수 없어. 저건 정말 특별한 마물이다, 어쩔 거냐?
‘유령은 아닌 거지?’
―유령으로 보이냐?
‘그건 아니지만.’
―유령처럼 삼키기 싫은 거잖아!
‘그야 뭐…… 저게 전부인 것도 아니잖아? 어떻게 처리하든 한 방에 모아서 날려 버려야지. 그런데…… 아까부터 수상한데, 이거 사티로스인 거야 아닌 거야?’
―응? 고트만(Goat-Man)이잖아? 뭐, 생김새야 다리 말고는 사티로스 판박이이기는 하다만. 몰랐냐?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말투에 투란은 떨떠름했다.
허리 위는 분명히 사티로스 계통인데, 허리 아래는 덜렁덜렁하는 꼴이 제대로 인간 남성임을 과시하는 몰골이었다. 그래서 짓이기고 뭉개면서도 이게 대체 뭔가 의아했는데, 이런 괴인에 대해서 드라고니아는 별생각 없이 참으로 잘 알고 있다니!
―모르면 빨리 모른다고 해! 이 시체는 몬스터가 아니라 수인(獸人)…….
캬아아앙!
날카로운 울음소리에 투란은 괴인 너머를 보고 바로 뒤통수로도 눈알을 굴렸다.
앞뒤를 동시에 포착해 보니 좌우의 벽이 부르르 떨게 하는 세찬 울림을 터뜨리면서 네발짐승 몇 마리가 나타나 달려들고 있었다. 투란이 데드워커 고트만을 상대하는 사이, 커다란 고양이를 닮은 맹수가 몇 마리 앞뒤로 덮쳐 오는 것이다.
‘얘네는?’
―쿠거잖아!
‘마수?’
―그냥 죽은 쿠거.
퍼억, 퍽! 콰득, 우두둑.
투란의 손과 발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앞뒤로 덤벼드는 데드워커인 짐승과 괴인을 다시 한번 짓이기고 비틀어 버렸다.
뒤틀린 짐승과 괴인의 몸에서 어스름하고 검은 뭔가가 새어 나오며 바닥과 벽으로 스러지듯 사라져갔다. 마치 더 이상 이런 짐승과 괴인의 시체로는 안 될 것 같으니 물러나기라도 한 것처럼, 남겨진 시체는 다시 복구되며 움직이지 않았다.
가만히 그 짓이기고 비틀어 버린 쿠거의 시체 몇 구를 둘러보다가 투란은 말한다.
‘쿤토르가 겁줘서 쫓아 버렸던 품종이지?’
굽이치는 대삼림에서 가끔 산자락을 타고 사냥감을 노리며 주변을 맴돌다가 투란과 오르카인 쿤토르에게 코를 들이밀며 냄새 맡던 쿠거처럼 꼬리가 짧고 발목에 점 무늬가 있었다. 그 몸통의 가죽이 썩은 채이기는 했지만, 그 정도면 충분히 같은 조상을 지닌 품종이라고 볼만하잖나.
―그래 보인다. 이 산맥과 대삼림을 오가는 짐승이 많으니까. 요새 안으로 휩쓸려 들어왔다가 이런 몰골이 된 거겠지.
‘다크미스트, 어디로 간 걸까?’
투란은 시체를 밟고 지나치면서 혹시라도 다시 어스름한 다크미스트의 형체가 나타날까를 살피는 채로 앞으로 나아갔다. 지나치는 석벽에는 여전히 병사의 몰골이 무늬처럼 박혀 있었지만, 이제는 진짜 양각된 조각 무늬일 뿐이란 것처럼 부풀어 튀어나오질 않았다.
그렇게 복도를 걷고, 굽이를 돌며 나아가다가 투란은 문득 느낄 수 있었다.
몸을 조여 오는 마력이 점차 짙어지면서 압박감을 주는 분위기가 몇 겹으로 더 짙어지고 있는 상황.
투란의 이런 느낌에 보태듯, 사룡의 형상을 빌린 두 손이 저절로 부풀면서 이 귀찮고 불쾌한 감각을 떨쳐 내고 싶다는 듯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자제하지 않았다면 가차 없이 손의 형상을 벗어 버리고 사룡의 거대한 두 발이 되어 사방으로 격동을 포악하게 흘려 낼 듯한 느낌이었다.
그 기묘한 감각을 더듬다가 투란은 불쑥 묻는 말을 꺼낸다.
‘악마종이랑 인간이 협력해서 만든 요새일까?’
―지금 상황은 그렇다만, 원래 그렇지는 않을 거야.
드라고니아의 대답은 머뭇거림이 없었다.
‘인간 사이에 숨어든 악마종이 주도해서 만든 것일 수도 있잖아?’
―유니콘의 깃발은 그냥 깃발이 아니야. 그 깃발에 새겨진 마법, 아니 제대로 말하자면 마법이라고 하기도 어렵겠군. 그 주술은 춤추는 산맥 밖에서 간신히 찾아낼 수 있는…… 샤머닉 트롤의 주술이거든.
‘그건 또 뭔 소리야?’
―인간과 교분을 쌓은 샤머닉 트롤, 충분한 지성을 지녀 대화가 가능하지만 여전히 몬스터의 굴레를 지닌 일족이 자신들과 다르게 인간에 대해 적대적인 존재를 들춰 내는 힘을 선물했다고 기록에 남아 있어. 어떤 상황이었는가는 알 수 없다만, 유니콘의 깃발을 지닌 마법의 요새는 순수하게 인간을 위해서 건설되었다는 결과만은 분명하지. 악마종이 어설프게 이런 마법의 요새에 발을 디디면 금방 정체가 탄로 난다는 이야기다. 뭐, 악마종도 만만찮은 놈들이기는 하니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냈을 수도 있겠다만…… 적어도 이 요새 안에서 자기 정체를 드러낼 수는 없었다는 것만은 분명하겠지. 그러니까 이 상황은 시작이나 과정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결과일 뿐이란 말이다.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아무튼 다크미스트가 설쳐 대더라도 악마종이 직접 와서 수작 부려 놓은 거는 아니란 말이겠지?’
―대충 그렇다고 해 두자.
‘좋아, 대충 인간이 요새를 만들고 악마종이 빼앗았다고 해 두고! 그래서 다크미스트가 나도는 이런 곳이라면 중심은 어디쯤이겠어? 인간 취향일까, 악마종 취향일까?’
투란이 앞에서 튀어나오는, 정체가 뭔가 오락가락하는 엉키고설킨 시체를 후려 패고 걷어차면서 물었다. 몇 마디 하는 사이에 나오는 녀석들은 이제 괴인이냐 짐승이냐를 따질 수준을 넘어서서 완전히 뒤엉킨 기괴한 흉물인 채였다.
이쯤 되면 데드워커니 언데드니 따지기 전에 살 조각이 왜 움직이냐고 물어야 할 듯한 형태였다.
―취향은 나중이고, 인간이 움직이기 위해 만든 성채잖아. 군단을 품고 움직이는 요새란 말이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중심을 어디에 어떻게 뒀나 생각해라. 악마종이 함락했다고 해도 그 기초는 그대로일 테니까.
‘으흠, 기초라…….’
투란은 성벽을 다시 둘러보면서 주변에서 달려들던 놈들을 확실하게 격동으로 파쇄하고 날려 보내면서 요새라든가 왕궁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생각해 봤다.
그러다 보니 닥치는 대로 읽어 뒀던 도감의 한구석이 문득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