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4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35)
“몬스터의 둥지는 짐승의 둥지와 다르다. 짐승의 둥지는 인간이 보금자리 혹은 요새를 꾸밀 때 생각하는 구조, 그 이치를 담고 있으니 몬스터의 둥지에는 그런 것이 없다. 하지만 몬스터의 둥지를 찾는 이들은 가장 먼저 짐승의 둥지를 떠올리고, 인간이 꾸민 요새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생각은 사실과 부합할 때가 많다. 그 까닭은…….”
‘중심, 핵, 성과 요새의 목적.’
투란은 뇌리에 스쳐 가는 이야기를 정리했다.
성채,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서 짓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요새라 함은 그 성채를 한층 더 중요하기에 공방(攻防)의 상황을 더욱 적극적으로 고려해서 만들어진다고, 낱말 뜻풀이랍시고 보충되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성채라 부르든 요새라 부르든 한 가지 기능적인 약점은 어찌할 수가 없으니, 바로 이동할 수 없다는 것. 한번 지어지면 그 지형(地形)의 일부가 되어 고정된다는 점이었다.
고대의 마법은 그 개념을 뒤집었고, 이동할 뿐 아니라 변형까지 가능한 요새를 만들어 냈다. 거기에 악마종이 제작했다는 몬스터 병기가 침투했고, 어찌 보든 간에 점령을 한 것이 지금 상황.
―어딘가에 반드시 이 요새를 움직이는 마법의 핵이 있겠지.
투란의 흘러가는 생각에 쐐기를 박듯, 드라고니아가 한번 더 강조해서 말했다.
당연히 그 핵을 찾아서 헤매는 중이었지만…… 투란은 이 변화하는 요새, 성채가 자신의 중심을 쉽게 드러낼 리가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마법의 핵은 성채 안에 있다.
‘요새를 변화시키는 마법이라면 반드시 기본적인 형태가 있겠지?’
투란의 다양한 생각의 갈래 속에서 불쑥 한 가지 물음이 튀어 올랐다.
―기본적인……?
기초적인 규모부터 내부 영역과 구조를 자유롭게 뒤바꾸는, 말 그대로 변화무쌍한 요새를 놓고 기본을 말하는 투란을 드라고니아가 살짝 의아해했다.
‘지금은 언데드인 병사지만, 원래는 산 사람을 병사로 품고 있었다며?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머물기 위한 준비, 시설이 있을 거 아냐?’
―당연하지. 하지만 산 사람이 없는 지금 그런 시설을 유지할 리는 없을 것 같다만?
‘그래, 먹고 마시고 싸고 누워 잘 시설이야 치웠을 수도 있지. 하지만 벽과 바닥 같은 곳에 언제라도 튀어나올 언데드를 눌러 붙여 놨어. 성채를 지키는 것이 산 사람이었다면 그 자리에는 뭐가 있었을까?’
―무장한 경비가 순찰을 돌고 있었겠지. 그건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성채와 요새의 기본…….
퉁! 투퉁!
투란의 손이 둔탁하게 손뼉을 쳤다.
미묘한 격동, 파문이 벽을 울리며 전 방향으로 퍼져 나갔다.
반향은 간격을 두고 차분히 되돌아왔다.
그 반향을 시각화하면서 투란은 말을 멈춘 드라고니아에게 말한다.
‘처음에는 언데드 병사, 벽에 붙여 놓은 언데드를 이용했지. 그 벽이랑 한꺼번에 한참 뭉개고 나서 쳇바퀴 상태를 파악하고 나니 다크미스트가 움직이는 데드워커가 나왔지. 그게 나오고 나서는 언데드 병사가 움직이지 않고.’
키이잉.
투란의 두 손, 사룡의 발톱 형상을 건틀릿으로 꾸민 듯한 두 손 사이에서 사나운 소리가 거칠게 흘렀다.
‘옵저버, 프로브처럼 사물에 부여할 수 있는 거지?’
―있다, 어떻게 하자고?
‘내 손 사이, 마력 장벽 안에 잉크에 부여해 줘.’
말과 함께 투란의 손은 격동을 울타리로 삼은 마력 장벽을 이뤘고, 둥근 모서리의 상자처럼 짜인 장벽 중심에 잉크 덩어리가 맥동하며 퍼져 나왔다.
드라고니아는 구체적으로 계획이 뭐냐 묻지 않고 바로 그 잉크 덩어리에, ‘악마의 심장’ 줄기가 간혹 드러나는 시커먼 잉크에 옵저버의 마법을 심어 넣었다.
‘응, 이제 더 잘 보이네.’
프로브처럼 옵저버 또한 투란의 감각을 기반으로 새로운 영역을 감지하게 시작했고, 곧바로 사룡의 격동과 반향을 이용하는 감각을 한층 더 증폭시키고 가다듬어서 투란에게 요새의 형태를 비춰 줬다.
―감추려 하는 곳이 있었군.
드라고니아가 흥미롭다는 듯, 투란을 칭찬하듯 말했다.
옵저버를 품지 않은 채로 격동의 반향을 파악했을 때에 없던 것이 옵저버를 이용하고 나서 명백하게 포착되고 있었다.
‘저것도 마력 장벽이네?’
반향을 통해서, 자신이 주변 마력에서 옵저버를 지키기 위해 형성한 마력 장벽처럼 저 아래 깊은 곳에 은밀하게 자리 잡은 밀실 같은 것 또한 마력으로 장벽을 둘러치는 것을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투란이 배우고 익힌 것과 전혀 다른 구성과 흐름을 지닌 장벽이었다.
―대단하군, 격동에 공명하는 방식이라니…… 파문 상쇄를 저렇게 유연하게 적용할 수도 있다니, 정말 대단해.
드라고니아는 사룡의 격동에 적응하고, 그 파동에 어울리며 빈자리를 그려 내는 요새의 마력 장벽에 솔직하게 감탄했다. 투란에게는 그냥 없는 척, 기묘하게 그 낌새를 감춘다는 생각만 떠올리게 하는 장벽이었는데 드라고니아는 뭔가 그 원리까지 엿보는 듯했다.
‘그래? 너도 나중에 저렇게 할 수 있는 거지? 믿어 보자고!’
―뭐? 그건 대체 무슨……?
툭 던지듯이 말하고 투란은 곧바로 옵저버를 품에 안았다.
가슴에서 일렁이는 투란의 격동과 마력이 옵저버를 보호하는 채로 그 감각을 확장하면서 감춰진 밀실과 투란 사이에 놓인 몇 개의 층을 투시(透視)하듯 훑어 갔다. 그 과정에 자극받은 것처럼, 몇 개의 층에서 언데드 병사들이 부푸는 것이 엿보였다.
투란은 한 손을 더욱 높이 치켜올렸고, 크게 부풀렸다.
사룡의 격동이 더욱 사납고 맹렬하게, 마력까지 머금은 채로 내질러졌다.
파괴의 흔적 없이, 저절로 바닥과 벽이 사라진 것처럼 구멍이 아래를 향해 대각 방향으로 몇 층을 관통하며 뚫리자마자 투란은 뛰어들었다.
쾅, 쾅, 쾅.
발을 딛는 자리에서부터 격렬하게 굉음이 터져 나갔다.
드라고의 발에는 어느새 사파이어의 광채에서 벗어난 흑록색의 광택이 맴돌고 있었고, 걸음마다 섬뜩한 격동이 머금어진 탓이었다.
일렁이며 다시 메워지려던 구멍, 벽과 천장 혹은 바닥의 형상이 그 격동에 일그러지면서 으스러져 갔다.
서서히 저편에서 아스라한 메아리가 되돌아올 때, 투란은 밀실을 감싼 마력 장벽을 사룡의 발톱으로 할퀴고 있었다.
써억.
‘어라?’
―흠?
아무것도 없는 빈자리를 긁는 상황에 함께 당황하면서도 투란은 앞으로 나아갔고 드라고니아는 말리지 않고 관찰했다.
‘이게 왜?’
―공명 때문이로군. 네가 뿌린 격동과 공명하고 있기 때문에 자취를 감추고 구조를 숨길 수는 있었지만…… 그 때문에 같은 공명 파동을 지닌 손짓이나 몸통을 그대로 투과시킬 수밖에 없는 거다. 좀 어이없기는 하다만…….
바닥에서 발목을 감싸며 차오르는 듯한 마력, 그 마력을 따라 진흙처럼 뭉클거리는 포석을 보며 투란은 다른 의견을 슬쩍 덧붙였다.
‘아니면 들어와도 어떻게 할 자신이 있든가 말이지?’
―그런 면도 있겠군.
마력 장벽은 사룡의 격동과 공명하기에 다른 것은 투과시키지 않는 힘을 갖췄다. 하지만 사룡의 격동을 몸에 두른 투란은 안에 들여놓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선 자를 향해, 공명하는 마력 장벽이 직접 흐르는 듯한 석재(石材)로 포박해 오는 상황을 투란 또한 피할 수가 없다. 게다가.
‘적응하고 배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사룡의 힘을 거두게 되면?’
―마력 장벽이 머금은 격동이 널 으스러뜨리겠지.
작은 의문에 대해 드라고니아는 단정 짓고 있었다.
우웅, 투퉁.
한숨을 쉬고, 손으로 살짝 몸을 두드리면서 격동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채로 투란은 밀실 안을 둘러봤다. 마력 장벽이 촘촘히 가득 채워진 채로 꿈틀거리며 흐르는 밀실은 커다란 홀이었고, 투란에게 이모저모로 마이두스 왕의 옥좌가 있던 방을 떠올리게 했다.
두 곳은 어느 면에서는 닮았지만 어느 면에서는 완전히 다른 것도 있었으니.
‘저거 물웅덩이 아니지?’
사방 벽을 따라 해자처럼 파인 자리에 녹색과 적색, 보라색이 제멋대로 섞인 기괴한 액체가 거품을 피워 올리며 채워져 있었다. 그 안에서 간간이 치솟는 작은 빛 조각은 무슨 벌레처럼 흐느적거리다가 사방 벽에 들러붙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거의 홀의 중심에는 기둥처럼 천장을 향해 치솟은 옥좌가 있었고, 그 옥좌에 앉혀진 것은 왕의 모습을 한 어떤 것이 아니라 맥동하는 시뻘건 수정이었다. 어찌 보면 기둥을 파내서 옥좌를 꾸민 듯하기도 한데, 어쨌든 사람이 앉아야 할 듯한 자리에서 수정이 시뻘겋게 맥동하는 광경은 이상할 뿐이었다.
―소울 풀(Soul Pool)이다, 그리고 저건…… 유니콘, 아니 레오콘의 문장기(紋章旗)? 설마 여기가 그 저주받은 요새 유니콘홀드? 뭐 이런……!
침착하게 물웅덩이에 대해서 대답하던 드라고니아가 옥좌의 윗부분, 의자의 위로 그대로 치솟아 허공을 채운 기둥에 울퉁불퉁하게 새겨진 문양을 보며 당황하고 있었다.
투란은 그 문양이 언데드처럼 미묘하게 불룩한 것을 보면서 ‘저것도 튀어나오려나?’ 하던 참이었다. 미끈한 외뿔이 돋아나온 사자 머리 같은 것이니, 튀어나오면 뿔 달린 사자가 아닐까 해서 나름대로 대응할 방법도 상상하던 참이기도 했다. 한데 드라고니아는 그런 것과 다른 뭔가에 놀라고 있었다.
‘왜? 레오콘이 뭔데? 유니콘의 변종이냐? 센 거야? 언데드 병사처럼 마수가 튀어나오나?’
―아니, 그런 게 아니야! 저건…… 말 대가리 유니콘이 약해 보인다고 사자 머리 형태로 만들어진 문장기라고! 젠장, 밖에서 봤던 것은 순수한 말머리 유니콘이 분명했는데! 왜 저게 여기서……!
‘안 튀어나와? 그럼, 저 소울 풀은 뭔데? 저 빛, 저거 영핵이지? 여기서 영핵이 튀어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거야?’
쉽게 설명이 나오지 않고 더듬는 드라고니아에게 투란은 다시 물었다.
물으면서 투란의 발은 바쁘게 여기저기 다른 곳을 딛는 중이었다.
마력 장벽이 가득한 방 안에서, 그 흐름을 타고 불룩불룩하는 채로 솟는 바닥 석재가 진흙처럼 엉겨 붙으려 하는 것을 피하는 모습이었다. 덤으로 어느 쪽 벽을 봐도 바닥처럼 뭉클거리면서 가까이 오면 붙잡겠다는 광경이 엿보이니 투란은 한자리에서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영핵 맞아. 소울 풀에서 성 곳곳으로, 밖으로 내보냈던 언데드에게도 저 웅덩이에서 나온 영핵이 자리 잡는 거다. 언데드의 육신이 부서지면 다시 소울 풀로 돌아와서 영력을 충전하고, 이 요새가 제공하는 새로운 육신에 깃들도록 준비되는 거야. 여기는…… 그런 저주를 각오하고 싸우기 위한 병사를 위한 요새, 유니콘홀드였어.
‘뭐? 저주를 각오해? 뭔 미친…… 설마 죽어서도 싸운다, 그 말을 실현한 거라고?’
듣던 투란은 움찔해서 뭉클거리는 바닥이 아닌 물웅덩이처럼 보이는 소울 풀을 다시 흘깃하며 되물었다.
씁쓸하게, 여전히 당황스러워하며서도 드라고니아가 착실하게 대답한다.
―그래, 인간의 집착과 망집…… 그런 의도가 가득 담겨 있어서 이 요새는 최초로 건설되기 시작했으면서도 최후에 완성…… 아니, 완성하기로 했지만 끝내 완성되지 못한 채로 사라져 버렸다고 하던 고대의 비극이다.
‘비극은 또 뭐야? 에잇, 그건 지금 중요한 일이 아니고! 소울 풀이랑 저 기분 나쁜 빨강 덩어리랑 뭔 관계지?’
―원래 저리 붉은색이 아니었을 거야. 유니콘홀드에서 제어 핵으로 사용한 것은 맑은 자수정(紫水晶)이었다니까. 저건 뭔가에 오염된 상태야. 다크미스트일 가능성이 높다만…… 흘러나오는 꼴이 레드미스트라고 해야 할 지경인데?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에 시뻘건 수정의 주변에서 칙칙하게 맴도는 광채를 다시 살펴봐야 했다. 그냥 소울 풀에서 나오는 영핵, 그 빛의 광채가 벽에 스며들려고 여기저기 쏘다니다가 그 언저리에서 살짝 물들어서 안개 덩어리처럼 보이는가 했는데 확실히 아니었다. 수정의 맥동과 함께 퍼져 나온 안개 가루가 소울 풀의 영핵처럼 주변을 쏘다니다가 다시 수정의 표면에 들러붙으며 녹아들고 있었다.
이 상황을 어찌 해결해야 하는가?
투란은 복잡하고 다양한 생각을 걷어치우고 가장 단순한 방법을 골랐다.
‘어쨌든…… 저게 핵이란 말이지?’
격동과 공명하고, 그 마력 장벽을 이용해 방어하는 것.
어찌 보면 투란이 이 안에서 보여 준 최강의 힘을 봉쇄하는 훌륭한 방어책이었다.
―두들겨 패려고?
함께 공명하는 중이었으니 격동은 쓸모가 없었다.
오히려 멈추면 투란이 격동에 쓸려 나가 으깨질 상황이었다.
하지만 순수하게 주먹으로 팬다면, 과연 이는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격동을 통해 똑같은 돌덩이가 되었다고 친다면, 돌로 돌을 후려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과연 그런 예상대로 될 것인가?
‘한번 보자고!’
달리 보면 이 안에 투란이 들어선 순간, 함께 무효화돼 버린 전혀 쓸모없는 방어책이기도 했다.
주먹이 통하는가 아닌가, 확인하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잖은가.
우두둑, 우두둑.
주먹 뼈마디로 험한 소리를 내면서 불량한 표정까지 꾸민 채로 볼록거리는 바닥을 건너뛰면서 투란은 원래는 맑은 자수정이었다는…… 지금은 불타는 핏덩이처럼 붉은 수정을 향해, 옥좌를 향해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