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4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37)
―투란?
드라고니아가 속삭였다.
투란은 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한참 격렬하게,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른 격렬한 싸움이 마음속에서 번져 갈 때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정적.
한순간에 밀실을 장악한 정적은 투란이 흘려 내는 격동, 그 파문조차 단숨에 멈춰 버리게 했다. 그저 시끄럽던 영역이 고요해진 것과는 성질의 정적은 투란의 주변을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꽉 채운 듯했다. 마치 움직일 틈도 없이 ‘정적’이라 불리는 격류가 주변을 완전히 채운 듯한 것이 보통 겪는 고요함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그 고요함, 강렬하다 할 지경인 정적 속에서 영핵도, 수정도 멈춰 버린 듯했고 심지어 몬스터 엠블럼의 마력조차도 하던 일을 멈추고 지켜보는 듯했다.
너무나도 낯설고 이상한, 고요하면서도 강렬한 분위기가 모든 것을 압도하며 덮어 누른다고 해야 할 지경.
도대체 이런 상황을 뭐라 해야 하는가?
의아함 속에 퍼뜩 깊이 묻혀 있던 기억 속의 이야기가 투란에게 할 말을 찾아 줬다.
‘이게 바로 생매장이구나!’
―뭐?
드라고니아가 황당한 듯 짧게 되물었다.
투란은 바로 떠오른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몬스터 헌터가 숨으려고, 죽지도 않았는데 죽은 척하려고 할 때 쓰는 약이 있어. 꽤 독해서 자주 쓰지는 않는다는데…… 암튼, 그 약을 먹으면 숨도 쉬지 않고 심장도 거의 멈춘 것처럼 아주 느리게 뛰면서 피가 멈춘 것처럼 된다는 거야.’
―가사 상태에 빠지게 해 준다고? 그냥 짐승의 먹잇감이 되는 이야기냐?
‘어? 아니! 그 약은 그런 상태에서도 얼마 동안 어느 정도는 움직일 수 있어. 움직인 만큼 약효가 빨리 소모된다든가? 아,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그 약을 먹고 땅 파고 들어가 숨는 거야. 그렇게 숨으면 흙에 완전히 파묻힌 꼴이 되는데…… 지금 내가 그런 것 같잖아!’
―분명히 뭔지 모를 힘이 작용하는 것이긴 하다만, 소울 풀이나 제어 수정 쪽이 어떻게 된 것은 아니야. 마음 놓지 마라.
‘그래, 그렇지…….’
대답과 함께, 대화하는 와중에도 수없이 갈라진 생각과 온몸의 잔털이 부르짖는 것처럼 찰랑이며 전해 오는 바를 느끼면서 투란은 결정했다. 이 기괴한 정적이 또 다른 무엇이 되기 전에 몬스터 에센스를 모조리 삼키기로.
투란의 마음이 곧바로 문장과 어우러졌고 정적이 강제로 멈췄던 마력이 다시 꿈틀거리며 움직이려 했다. 이에 호응하듯, 마력과 엮인 모든 것이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함께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정적을 강제로 파고드는 듯한 시도였고, 투란은 여기에 가장 격렬하게 반응해 오는 것이 뭔가 바로 알아차렸다.
붉게 맥동하는 수정, 그 수정이 붉은 안개와 구름처럼 맥동을 따라 수축하고 팽창하면서 투란을 덮치고 휘감아 왔으니 모르기가 더 힘들었다. 거기에 발아래에서 치솟는 다크미스트도 더 이상 포석의 재질을 이용하지 않은 채, 검은 연기처럼 뭉클거리며 투란의 무릎을 담가 버린 연못처럼 쌓이며 응축했다.
붉고 검은 구름과 연기, 그 속에 투란이 갇힌 꼴이 되는 것은 잠깐 사이의 일이었다. 거기에 사방의 거품 병사가 한꺼번에 터져 나가면서 정적을 찢고 붉은빛과 녹색이 뒤엉킨 거품 파편을 흩날리며 몰아닥쳤다.
그 속에서 투란은 갑작스럽게 닥쳐온 이변(異變)을 느꼈다.
‘뭐야, 내가 뭘 보는 거지?’
수많은 조각이 눈앞에서 휘몰아치는 격류처럼 요동쳤고 그 조각마다 풍경을 담고 있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뭘 보는 중인가 말할 수 없이 혼란스러운데 풍경마다 기묘한 감정이 흘러나오며 투란의 마음을 물들이려 했다. 어떤 풍경의 어떤 감장에 물들더라도 이제까지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고 느낀 것을 짓이기고 뭉갠 다음,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할 것이라 느껴지는 강렬한 감정이 조각마다 가득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 풍경 전체를 관통하며 흐르는 맥동, 사룡의 격동과는 전혀 다른 맥동이 그 감정을 흔들면서 투란의 마음을 견고하게 다져 놓고 있었다. 어찌 보면 풍경 속의 수많은 감정이 터져 들어오기 전에 먼저 투란의 마음을 차지해 버린 것처럼.
그리고 억지로 뇌리를 파고들며 찾아온 질문이 있었다.
스스로 생각한 것이라고 투란이 착각할 여지조차 없는 질문은 어딘가 드라고니아와 하는 대화처럼 명확했다.
―너는 계승자(繼承者)인가?
‘뭐라고?’
자연스럽게 투란의 마음에서 피어난 되물음.
누가 대체 어떻게, 뭘 물어보고 있는 것인가?
투란의 의문에 대한 대답은 없었다.
두 번 묻지도 않았다.
대신 정적이 돌아왔다.
이번에도 역시 투란에게 생매장된 채로 움직이는 이야기를 떠올리는 기분을 느끼게 했지만, 확연히 다른 특징을 지닌 정적이었다.
―투란, 마력이……!
드라고니아가 그 특징을 말하려 했으나 끝맺지 못했다.
마법에 의한 의사 전달이 막힌 정도가 아니었다.
투란은 자신의 문장을 조여 오는 압박을 느꼈고, 몬스터의 형상이 강제로 해제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질문한 무엇인가가 몬스터 로드를 잡는 가장 적절한 방법, 몬스터 엠블럼을 봉쇄해서 평범한 사람의 몸에 가두고 잡는다 하는 그 방법을 고스란히 따르기라도 하는 듯했다.
그에 대해 투란은 반사적으로 대응했다.
생각하고 결정한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이, 몸 깊이 새겨진 본능…… 강제적인 학습에 의한 본능이 몬스터의 본능을 대신해서 피어난 셈이었다.
그 까닭을 투란은 뼛속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몬스터 로드의 문장을 봉쇄, 봉인하는 방법은 굉장히 많아. 하지만 어떤 방법이라 해도 몬스터 엠블럼을 지우지는 못해. 지워지지 않은 몬스터 엠블럼은 생명을 도구로 다룬다는 가장 기본적인 특성, 그 능력만큼은 어떤 상황에서도 발휘하지. 그러니까 투란, 최악을 대비하는 몬스터 로드라면 오러를 깨우고 단련해야 하는 거야.”
키린의 자상하면서도 엄격한, 투란에게는 살짝 끔찍하다고 부르르 떨게 하는 목소리의 기억은 곧바로 오러를 자아내고 있었다.
문장은 오러를 휘감은 채로 저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괴한 정적은 오러를 무시하듯, 오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이 문장을 다시 조여들었다.
투란이 오러 가드를 더욱 사납고 촘촘하게 운영하며 문장이 몬스터의 형상을 유지하도록 하려 했지만, 정적은 투란보다 훨씬 더 정밀하고 교활하게 오러 가드를 무시한 채로 문장을 압박하며 봉쇄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뭐야!’
오러의 힘을 이토록 없는 것처럼 투과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었다. 오러 사인을 지닌 오러 윌더들이 오러를 무효화당했다는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는데, 지금 투란은 겪게 된 셈이었다.
그나마 살짝 위안이라면, 마법을 기반으로 삼은 소울 풀이라든가 몬스터인 다크미스트와 레드미스트 쪽도 이 정적에 휘말리고 밀려서 별 힘을 못 쓰는 듯하다는 것.
그러나 이를 보충하듯 투란의 살갗을 긁고 핏줄 속으로 스며 오는 다른 것이 있었으니, 한순간의 위안거리는 삽시간에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투란은 오러를 더욱 맹렬하게 끌어올렸고, 퍼내면서 의지를 가다듬었다. 오러와 동반한 의지의 힘, 그 마음의 빛에서 마력을 끌어내는 윌 라이트를 이용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렇게 뭔가 하려는 투란의 뇌리에 뭔가가 말해 왔다.
―계승자의 조건을 확인했다. 전승(傳承)을 허락한다.
‘뭐? 계승자…… 조건? 전승? 뭔 이야기야!’
따지고 들려는 투란에게 돌아오는 해명은 없었다.
대신 뒷골을 푹 찔러 오는 날카로운 것이 있었다.
그 날카로움은 곧바로 투란의 온몸 곳곳을 찔러 왔다.
한데 고통이 없었다.
굵고 깊이 파고드는 날카로움이었지만 투란은 그저 뭔가 몸을 얼마큼 찌르고 파고들었는가를 ‘알게’ 되었을 뿐이고 그로 인해 당연히 느껴야 할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감각이 뒤틀렸는가 하는 생각이 맨 처음 떠올랐지만, 투란은 금방 그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고 있었다.
몬스터 엠블럼을 무력화하는 기괴한 힘, 그럼에도 오러에 대해서만큼은 전혀 간섭하지 않는…… 어찌 보면 오러라 일컫는 모든 힘과 서로 침범하거나 간섭하지 않는 약속이라도 맺은 듯한 그 힘은 투란이 몬스터 형상을 해제하도록 하면서도 오러만큼은 확고하게 유지하도록 북돋고 있었다.
때문에 투란은 오롯하게 한 가지로 뭉쳐 드는 듯한 마음가짐으로 판단할 수가 있었다. 말을 걸어온 존재가 무엇인가 전혀 알 수 없기는 하지만 자신을 해치려 하는 목적은 없다는 것.
당장 위협받는 상황이 아니란 점은 투란에게 재빠르게 한 가지 계획을 고르게 했다. 이럴 경우를, 거의 있을 리가 없는 상황이지만 할 일 없고 생각 많은 드라고니아가 수많은 험난한 조건 중의 한 가지로 골라 놓은 경우를 대비한 계획이었다.
‘윌 라이트, 그 마력으로…… 드라코눔의 아칸, 떠들어 봐! 이거 무슨…….’
미미한 마력을 형성하자마자 투란은 드라고니아를 호출하며 마력에 그 의지를 싣게 하려 했다. 여느 때라면 곧바로 드라고니아가 잔소리를 하든 핀잔을 하든 이 상황에 대해 길게 뭐라 떠들었을 터인데, 투란의 기대와 다르게 여느 때랑 전혀 다른 것이 먼저 윌 라이트의 마력을 타고 투란에게 그 의지를 전해 왔다.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도 싸운다!
―밟아 주겠다! 발아래 뭉개 주겠어!
―내 검이 나를 대신할 것이다!
―살아라, 죽어도 살아!
―무찔러라! 우리는 살아남는다!
―세계가 너희를 용납하지 않으니, 사라져라!
‘구호?’
제각각의 색채를 띤 듯한 묘한 감정을 담은 의지가 다채롭게 외치는 듯했다.
그중에서 두엇은 투란에게도 낯익은 구호였다.
샤오콴 마을 근처에서 왕국의 군단병이 지랄맞게 떠든다고 못마땅해하면서 몬스터 헌터들이 가끔 장난삼아 흉내 내던 것이니까.
‘기가둠이 밟는 거였고, 로그람은…… 죽어도 싸운다였나?’
왕국의 시초부터, 왕국의 시조들이 왕국보다 먼저 군단을 꾸미면서 내건 구호라고 했다. 그 까닭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지금도 왕국 군단병이라면, 여섯 왕국의 군단병이라면 저 다채로운 구호 중 한 가지를 열심히 외치면서 그 의무를 다한다고 했다.
‘설마 여섯 왕국의 구호였나?’
확실한 것은 두엇이지만, 분위기가 투란에게 알려 주려는 듯했다.
이 요새의 과거에 춤추는 산맥의 여섯 왕국이 골고루 관여하고 있다고.
그런데 그래서 뭘 어쩌란 것인가?
의아해하면서 투란은 다시 윌 라이트의 마력을 제어했고 오러 가드를 두껍게 쌓아 올리면서 다시 드라고니아를 호출했다. 이번에는 더욱 강하게 확고하게 상대를 지정한 탓인가, 드라고니아의 외침이 곧바로 투란에게 되돌아왔다.
―투라아안!
‘야, 살살 말해!’
밑도 끝도 없이 불러 대는 외침에 투란이 인상을 쓰며 대꾸했다.
동시에 투란은 자신이 오러 속에서, 오러에 담긴 의지로 긴급하게 끌어낸 미약한 마력이 뒤틀리며 드라고니아의 차분한 이야기가 뇌리에 꽂혀 드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런 경우에 대한 대비로서, 마력의 용량이 모자랄 때에는 빠르게 낭비 없는 의사 전달을 위해 약속된 형식의 이야기였다.
―투란, 제어 수정이 문장의 마력을 재우고 네 몸에 스며든다. 수정의 마법이 너에게 각인될 거야. 몬스터 쪽은 모르겠다. 유니콘홀드의 마법이 뭔가도 모른다. 투란, 제어 수정이…….
반복되는 부분에서 마력이 사라진 듯, 투란의 뇌리에 선명하게 울리던 드라고니아의 말소리가 금세 사라졌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분명하게 투란에게 남겨졌다.
뭘 어찌하란 것인가는 전혀 없는 이야기였지만, 투란은 생각하고 결정해야 했다.
드라고니아는 다시 투란이 마력을 모을 때까지, 말할 수 있는 상황이 될 때까지 이치고 있을 터였다. 어떤 경로로든 다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면 그때부터 제대로, 하던 대로 이야기할 터였다.
그때까지는 투란 스스로, 한 번에 한 가지밖에 생각 못 하는 처지가 되어 생각하고 결정해야 했다. 이 상황에서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정해야 했다.
‘해롭지 않아, 그렇다면 탐색? 와아, 나도 드라코눔의 아칸한테 많이 물들었구먼!’
굳은 몸이고 얼굴이라 쓴웃음을 짓는 표정은 꾸밀 수가 없었지만, 투란의 기분은 딱 쓴웃음이 실실 새어 나올 상황이라 깨닫게 해 줬다.
정하고 나니 이제 무엇을 탐색하고 알아내야 하는 것 또한 분명해졌다.
‘몸에 마법이 스며든다, 각인이 된다…… 무슨 마법을 전승하려는 거지?’
투란의 마음에 선명한 의문이 깃드는 순간, 날카롭게 몸에 파고들었던 힘이 뒤틀리면서 곧바로 그 답을 알려 오고 있었다.
이른바 ‘유니콘홀드 제어 술식’이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