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4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38)
‘꿈?’
투란은 어리둥절했다.
보고 듣는 것이 마치 문장의 풍경 속을 볼 때와 비슷해져 있는데, 결코 문장의 풍경이 아니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는가를 확실하게 하려 해도 모든 것이 빠르게, 온갖 냄새와 맛, 살갗을 스치는 기묘한 감각 속에서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분명하게 오감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
‘누구?’
셀 수 없이 스쳐 가는 풍경, 온갖 감각을 담은 광경 속에는 중심이 있었다.
희미한 그림자처럼, 하지만 왠지 다시 만난다면 그 얼굴을…… 여섯 얼굴을 당장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여섯 사람이 중심이었다.
몬스터 로드로서 생각하자면, 사람의 모양을 한 무엇이라고 해야 하는 편이 더 정확할 듯했지만 투란은 더 깊이 파고들어 생각하지 않고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 마음먹는 순간, 스쳐 가는 감각과 풍경이 한 곳에 집중되었다.
돌연 여섯 중 누군가가 말했다.
“맹세한다.”
다른 다섯이 이를 되풀이했다.
이어지는 말과 행동, 일제히 손을 내밀고 잔을 들어 올리는 그 모습에서 투란은 문득 알아차렸다.
이들이 무엇인가를 맹세하는 중이라고, 그 약속을 들어 올린 잔에 담는 중이라는 것…… 그 잔 아래에 작고 투명한 자수정이 놓여 있다는 것!
‘수정……?’
“여섯 군단의 장군으로서, 물러서지 않고 싸운다.”
“이 피를 걸고 맹세한다.”
연이어 떠오르는 말, 그 이야기가 투란의 가슴에 스며드는 듯했다.
자수정 위로 기울어진 잔에서 떨어진 붉은 방울이 깃들었다.
‘……피?’
투란은 흠칫했다.
뭔가 잔에 담아 마시려는 것이 아니라, 이 여섯은 자신들의 피를 잔에 담아 자수정에 붓고 맹세하고 있었다!
자수정이 마법으로 이를 기억하는 광경이었다.
“산맥이 춤을 멈출 때까지.”
“우리의 피가 생명을 담고 이어 가는 동안!”
“세계를 구하기 위하여!”
‘뭐?’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세계의 파멸과 싸운다!”
“파멸을 패배시키고 승리한다!”
‘네?’
채앵.
비워진 잔이 공중에서 충돌했고 그 파편이 자수정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무슨 생각할 겨를도 없이 투란은 자신이 그 파편에 휩쓸린 채로 자수정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었는가를 전혀 가늠해 볼 기회가 없었다.
다만 자수정에 휩쓸려 들어가는 파편, 그 틈새에서 투란은 한번 더 분명하게 마음을 비춰 오는 마법을 느낄 수 있었다.
유니콘홀드 제어 술식.
마음이 울렸고, 동시에 투란은 기억할 수 있었다.
자수정이 투란의 마음에, 심장에 박혀 오는 듯했다.
투란은 자신이 자수정 속으로 박혀 들어간다고 느꼈다.
‘융합!’
퍼뜩 투란이 한마디를 떠올릴 때, 투란의 마음 깊은 곳에서 붉게 뭉클거리는 무엇인가가 솟아 나왔다. 무엇인가 따지기도 전에 투란은 그 붉은 것이 마법과 뒤엉키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몬스터의 본능, 레드미스트의 본능이 오랫동안 지배해 온 마법을 다시 한번 지배해 가는 과정이란 것을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꿈?’
퍼뜩, 투란은 갑작스럽게 자신이 잠에서 깨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완전히 깨어나기 직전, 아직 잠들어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이것이 잠든 상태이면서 이제 곧 깨겠다고 느끼는 상태.
잠들기 전에 무엇을 했는가, 저절로 희미하게나마 되짚어 보는 중이라고 자각하면서 투란은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려 했다.
‘에, 어?’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고 입에서 소리도 나지 않았다.
당황스러운 와중에 투란은 자신이 지금 숨도 쉬지 않는 중이란 것을 알아차렸다.
숨만 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몸속에서 흐르고 있어야 할 피조차 멈춰 있었다.
그 까닭은 심장이 멈춘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
‘내가…… 약 마셨나?’
어이없는 기분이 뒤늦게 가슴을 채우는 듯했고, 그 기분과 함께 잠겨 있던 자물쇠가 풀리는 것처럼 심장이 느릿하니 꿈틀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느낌 속에서 투란은 자신이 생매장 준비를 위한 약 따위는 먹은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 냈고, 그럼에도 지금 상태가 그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뭐야, 진짜 파묻힌 거야?’
정적의 기괴한 힘에 짓눌렸을 때와는 아주 다르게, 투란의 몸은 털끝 하나까지 뭔가에 덮인 채였다. 그것이 무엇인가 투란이 깊이 생각하기 전에 몸의 감각이 바늘 끝에 들쑤셔지는 것처럼 점점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느릿느릿, 하지만 분명하게 움직이는 손끝의 감각을 점검하며 투란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움직이고 나면 이 상황을 더욱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일을 아주 열심히 도와줄 녀석도 함께하잖는가?
그런데 마력의 기척이 없었다, 윌 라이트의 마력이 소실된 것처럼 투란의 마음에 닿질 않고 있었다.
‘어라, 야? 야! 드라코눔의 아칸!’
반사적으로 마음을 가다듬으며, 정신을 집중해서 의지의 빛을 이끌어 내며 투란은 마력을 형성하려 했다. 이에 드라코눔의 비전이라는 윌 라이트보다 먼저 반응하며 스며 나온 힘은 오러였고, 몬스터 엠블럼이 맹렬하게 맥동하는 듯한 파문을 흘리며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이 사납게 피어올랐다.
“쿨럭.”
갑작스럽게 허파가 조여지면서 목구멍으로, 혀와 이를 넘어 입술 너머로 거친 숨을 세차게 재채기로 토해 냈다.
투란은 재빨리 입가를 둘러봤다.
손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게 입술을 잔뜩 내밀고 눈알만 굴리는 괴상한 꼴로, 입가와 입에서 토해져 나간 것이 닿는 영역을 살피고 나서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갔다. 재채기가 억세고 목이 뜯기던 느낌은 피가 가득한 내장을 토해 낸 듯했는데, 그냥 침만 좀 흘러나가고 말았으니까.
―투란?
그리고 갑작스럽게 들려온 드라고니아의 말소리가 투란을 긴장시켰다.
뇌리를 울리거나, 귓속 깊은 곳으로 파고드는 마력이 아니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부르는 목소리처럼 들린 탓이었다.
‘너……?’
드라고니아가 문장 밖으로 달아난 것인가 하는 생각을 떠올릴 때, 곧바로 투란이 새로 끌어낸 마력이 맥동하며 이전처럼 드라고니아의 말이 뇌리로, 귓속 깊은 곳을 넘어서 골을 울리듯이 들려왔다.
―정신이 든 거냐? 오래되었나? 얼마나 기억하지?
말이 이어지면서 점차 마음 깊이 울리는, 문장의 풍경이 새록새록 마음속에 피어나는 듯한…… 낯익지만 낯선 묘한 기분 속에서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역시 ‘천칭’ 깊은 곳에 별빛 무리를 반짝이고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 잠든 거였나? 꿈꾼 기분인데?’
불쑥 하는 말이었지만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금방 알아들었다고 느꼈다.
한숨처럼 하지만 굉장한 안도를 담은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이야기했다.
―수면 상태라고 하기는 어렵다만, 의식이 비슷한 상황에 빠져들었지. 그렇게 되고 한참을, 아주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다. 남겨 둔 마력도 프로브 하나 겨우 꾸밀 정도로 작았어. 그 작은 마력을 내가 키우고 키워서 방어 마법을 꾸밀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가 짐작해 봐라. 그 방어 마법이 완성된 다음에 새로 마력을 더 키우고 더 많은 마법을 준비하고…… 잠들고 깨어날 때까지 얼마나 지났는가 대강이라도 느낌은 있는 거냐?
맹한 투란에게 이야기를 더하지 않고 드라고니아가 묻고 있었다.
손가락을 꾸물거리면서 생각할 틈을 쥐어짜 내면서 투란은 점차 강성해지는 심장박동을 점검하면서 느릿하게 대답을 꺼내야 했다.
‘눈 감았다 뜨니 몇 시간…… 그런 쪽은 아닌데, 뭔가 짧은 꿈을 꾸다가 천천히 일어난 기분이기는 해. 그렇게 오래 꿈꾸고 있던 것은 아니니까…… 음, 그래도 한 열 시간? 아니, 좀 더? 길게 잡아도 대충 반나절을 조금 넘긴 정도? 내 느낌은 그런데…… 야, 나 며칠 잔 거야?’
―일단 몸부터 움직여 봐라. 제대로 움직일 수 있나 확실하게 확인해야 해.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뭔가 살짝 피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몸부터 점검할 상황이기는 했다.
우두둑, 우두둑.
손가락 마디가 내는 소리는 확실히 몸이 생각보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굳어진 채였다고 느끼게 해 줬다. 손가락의 감각은 멍하고 모호할 뿐이라서 움직이는가 움직이지 않는가의 분별도 어려울 뿐이었고.
결국 투란은 왕성하게 움직이는 문장의 맥동을 느끼면서 ‘악마의 심장’을 형성하는 쪽으로 먼저 집중했다. 손가락도 그렇게 눈꺼풀도 슬쩍 무겁고 둔한 상태인 데다가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는 어째서인가 한층 더 시끄러웠으니, 뭔가 잘못된 것을 빠르게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악마의 심장’이라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더라도 바로 찾아내서 금방 복구할 수도 있으니까.
두둑, 투둑, 찌릿.
‘악마의 심장’이 심장부터, 가슴 속에서 배 속으로, 팔다리로, 목을 넘어 뒷골 속으로 스며들 듯이 형성되었다. 그로부터 확인된 상태는 투란을 흠칫하게 했다.
‘어라? 멀쩡하네?’
몸의 어디에도 손상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상할 정도로 둔하고 낯선 이 감각은 왜 몸에 눌어붙어 있는가?
―투란, 몸을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고 했잖아. 거의 가사 상태인 채로 오래 꼼짝도 않고 있어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아까도 오래라고 했지, 그러고 보니 얼마나 오래인데? 며칠이나…….’
갑자기 투란은 묻는 말을 멈췄다.
새엑거리고 새어 나가면서 토해져 나가는 숨결, 아까부터 토해 내는 중인데 왠지 들이쉬는 숨결이 적거나…… 아예 없는 듯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다시 숨을 토해 내는 중인가? 들이쉬는 것 없이 자신이 어떻게 계속 숨을 내쉬는 중인가?
뒤늦게 호흡을 살피던 투란은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묻는 말을 꺼낸다.
‘얼마나 지난 거야? 시간 확인은 하고 있었겠지? 몇 달 지났어?’
드라고니아가 다시 길게 한숨을 쉬는 듯한 낌새부터 흘려 냈다.
놀리고 장난이라도 치는가 하고 투란이 울컥하려는 찰나, 드라고니아의 신중하고 진지한 대답이 나온다.
―약 이 년…… 투란, 이 년 정도 지났다. 정확한 날짜를 셈하자면…….
‘년? 달이 아니라 년? 장난해? 장난이지? 그래, 장난인 거지?’
투란은 헛웃음이라도 토해 내는 기분으로, 식식 새어 나가기만 하는 숨결과 함께 터뜨리고 싶은 외침이 터지지 않아 소리 내지 못한 채로 으르렁거렸다.
잠깐 눈 감았다 떴더니 뜨던 해가 지고 있더라, 하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며칠을 잠 못 자고 헤매던 몬스터 헌터가 마을에 들어와 쉬면서 가끔 저지르는 짓이었으니까, 드물지도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잠깐 좀 묘한 꿈을 꾸다 깬 듯한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차라리 몇 달이라고 하면 그렇구나 싶은데 2년이라니!
울화가 저절로 샘솟아 터져 나올 듯한 순간, 드라고니아가 말한다.
―투란, 진정해라. 그래도 내 예상보다 훨씬 빨리 깨어난 거야.
‘뭐? 이 년이 흘렀다면서 빨라? 너 대체 몇 년을 예상했는데? 도대체 왜!’
―늦으면 십 년은 걸릴 거라고 예상했다. 빨라도 삼 년은 걸릴 거라고 추측했고.
‘대체 왜!’
우두둑, 와드득.
격한 마음에 호응하듯, 투란의 몸에서 뻗어 나간 뿌리줄기가 뭔가를 세차게 밀어내면서 살갗에 바람결이 와 닿게 했다. 마치 온몸으로 다시 숨을 쉬게 된 듯한 느낌이 찾아왔고, 투란은 자신이 이제까지 온몸으로 숨을 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입과 코, 보통 숨 쉴 때 사용하는 구멍이 모두 막힌 탓에 오러의 기교를 이용해서 온몸 살갗으로 숨을 쉬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그 기교를 사용했는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푸후웃, 후우욱!
격한 숨을 토해 내고, 다시 삼키면서 투란은 눈을 부릅떴다.
‘악마의 심장’이 눈동자 주변을 털어 냈고, 투란은 흘러나가는 먼지와 티끌을 보면서 이제까지 눈을 뜨고 본다 여겼던 것이 모두 헛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처음 재채기를 하며 입가를 살폈던 시야는 코끝에 달린 눈알, 언제 형성된 것인지 짐작도 안 되는, 박힌 듯한 눈의 시야였을 뿐이었다.
열린 시야를 확인하면서 투란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설명해, 길어도 되니까 정확하게! 지금 내가 무슨 꼴이야?’
―그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