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4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39)
하아아…….
입으로 토해 내는 숨결은 있지만 입이나 코로 들이쉬는 숨결은 없었다, 여전히!
오랫동안이라더니 정말 얼마나 오래였는가 알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버릇처럼, 이제는 당연하다는 것처럼 온몸의 살갗으로 숨을 들이쉬고 있었다. 그나마 정신 차리고 나서 말을 하기 위해, 닫힌 목구멍을 열기 위해서 토해 내기 시작하면서 다시 입과 코로 숨을 내쉬는 것뿐이었다.
그 상태에서 몸을 점검하며, 잠깐 꿈을 꾸던 시간이 2년이었다는 말을 되새기면서…… 심지어 10년을 각오까지 했다는 드라고니아의 이야기에 투란은 집중했다.
―수정의 마법이 일방적으로 각인된 것이 아니었어. 수정 속에 너 또한 각인되어 가는 중이었다. 레드미스트, 다크미스트의 정수가 그 과정에 끼어들었지. 즉, 너는 단순히 제어 수정의 권한을 계승받는 것이 아니라, 몬스터 로드로서 마법을 장악한 몬스터의 본질, 그 정수까지 삼키고 장악해야 했다. 아무 생각 할 수 없는, 의식불명이었기는 했지만 그래도 몬스터 로드답게 무의식적으로, 어쩌면 몬스터 로드가 문장을 얻으면서 얻게 되는 본능적인 기능일지도 모르겠다만, 넌 제어 수정과 레드미스트의 융합된 과정을 되밟으면서 둘이 하나 된 채였던 제어 수정을 네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몰랐고, 그대로 두면……어쩌면 몇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추측은 금방 할 수 있었어. 그래서 그 과정을 촉진시키고, 덤으로 너의 의식도 빨리 깨워서 최대한 단축하기 위해 내게 권한을 넘겨 둔 마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지. 여전히 너의 의지는 나에게 힘을 줬다고 해야 할 상황이었다. 아, 그래. 맞아. 바로 마법을 쓸 정도의 마력은 아니었지. 그래서…… 음, 너의 무의식에 계속 말을 걸고 있었다. 네 의지가 생각 없이도 나를 돕게 말이야. 어쨌든 너도 그런 상태에서 나를 도왔지. 꽤 속도가 빨라서 몇십 년을 십 년으로, 그 십 년을 더욱 짧게 단축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든 때가 일 년 전이야. 최근 들어서 더욱 속도가 붙었다만, 그래도 일 년은 더 남았을 줄 알았는데…… 오늘 부르니까 네가 바로 대답을 한 거다. 대충 무슨 이야기인가 알아듣겠어?
‘어, 대충.’
드라고니아가 조심스럽다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짧게 대답했다.
드라고니아는 시작부터 명확하게 관찰의 결과일 뿐이라면서, 그렇게 한계를 정한 채로 이야기를 했다. 실제로 투란의 정신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는가, 그 ‘효과’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전혀 간파할 수 없었다는 고백과 함께.
덕분에 투란은 자신이 꾸고 있던 ‘꿈’이 그냥 잠자리를 뒤숭숭하게 하는 꿈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꿈’은 드라고니아가 관측해 낼 수 없었던 투란 자신만의 정신 활동, 마음속에서 마음이 뒤틀린 채로 움직인 결과가 남긴 기억이었다. 그럼에도 그 기억에는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투란 스스로를 관찰한 부분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그런데 내 몸은 지금 어떤 상태야? 이 껍질, 이것도 내 몸에서 만들어진 건가?’
몸을 감싸고 있었던 것, 살갗과 밀착된 채로 살갗이 숨을 쉬게 해 주던 어둑한 분위기가 넘쳐나는 탓에 원래 바탕색이 뭔지도 모를 껍질을 손끝으로 더듬으면서 투란이 물었다.
이 껍질이야말로 투란이 전혀 알지 못했던 몸의 활동, 그 결과물인 셈인데…….
―절반은 그렇다만, 절반은 유니콘홀드가 네게 맞춰서 변화하고 압축된 결과야. 지켜본 바로는 다크미스트의 형질이 상당히 녹아든 채이지. 내 생각이 맞다면, 몬스터의 정수를 섭취하는 과정에서 네가 모조리 수 있을 거야. 다만…… 투란, 안쪽은 피와 살이 엮인 살가죽처럼 구성되었다만, 이거 바깥은…… 음, 완전히 구워 낸 벽돌, 성벽형태야.
‘뭐? 성벽?’
―보여 줄까?
‘보여 줘!’
곧바로 투란은 벽돌이란 말이 그야말로 명확한, 네모반듯한 성벽 덩어리를 볼 수 있었다. 시각 속으로 직접 투영된 듯, 뇌리에 스며드는 그 모양은 규격을 맞춘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꾸민…… 그런데도 어딘가 삐뚤빼뚤한 상자였다.
마치 성벽을 떼어다가 상자를 꾸민 듯한 그런 몰골이 모래 더미에 푹 꽂힌 채로, 어스름한 풍경을 배경 삼아 놓인 광경.
투란은 멍하니 그 광경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사물, 상황부터 먼저 짚을 수밖에 없었다.
‘모래는 뭐야?’
―놓인 곳이지.
뭔가 애매한, 슬그머니 회피하는 듯한 대답이었다.
드라고니아랑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낌새에 투란은 한층 더 당황스럽고 멍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이어지는 물음은 바로 투란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욱신거리는 듯한 낌새를 담고 바로 나온다.
‘설마…… 사막인 거야?’
―음,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주춤거리는 말투, 멈칫거리는 낌새를 한가득 담은 드라고니아의 대답이 더 이어지기 전에 투란이 먼저 버럭 외친다.
‘왜! 절벽 위였다고! 산맥에 들어선 다음이었잖아! 그 안에서 우당탕콰당탕 싸운 거잖아! 왜 사막에 내리꽂혀 있어? 게다가 어둡다? 설마 모래 속 미궁? 그 안에 처박혀 있는 거냐? 도대체 어째서! 어쩌다가!’
―말할 테니까, 들어! 닥치고 들으란 말이다!
결국 고운 말 걷어치웠다는 듯이 드라고니아도 으르렁거렸다.
우두둑, 꾸드득.
팔다리를 움직이려 애쓰면서 투란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외부를 비춰 주는 시야 속에서 삐뚤거리던 벽돌이 콰득거리며 살짝 움직일 듯 말 듯 한 낌새를 드러냈다.
몸이 빠득거리며 오랜만의 움직임이라 거칠다는 것을 깨달으며 투란은 얌전히, 살살 말해야 했다.
‘좋아, 들을게. 들을 테니 확실하게 내가 걱정할 상황인가 말해. 아, 그 전에…… 이 벽돌 상자 크기가 어느 정도야?’
―가로세로, 높이가 4미터 정도 되는 정육면체야. 바깥쪽과 다르게 안쪽은 가죽과 피, 살로 이뤄진 채이고 넌 거기 박혀 서 있는 꼴이다. 자, 그러면…… 투란 네가 그 꿈을 꾸려고 했을 때부터 이야기하지. 간단히 말하자면, 무너지고 있었다. 네가 제어 수정, 레드미스트와 융합에 들어가면서 사막과 접한 절벽, 그 지반부터 지형 전체가 사막으로 기울어지면서 무너져 버린 거야. 사막에 잔해와 파편이 쏟아졌고 융합 과정에서 제어 기능이 완전히 소실된 유니콘홀드도 그 잔해의 일부가 되어 사막으로 쏟아져 내렸다. 아마 모래왕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을 거야. 마력이 미약해서 구체적으로 확인은 못 했다만, 쏟아지는 절벽의 파편은 모래 속의 유동에 휘말려서 미궁 속으로 운반된 것은 분명했지. 그리고 그때부터 줄곧 모래 아래의 거대한 흐름에 맞춰 이리저리 밀려 나가다가 정착한 곳이 바로 지금 놓인 자리야. 이전에 구경하며 스쳐 갔던 미궁과는 수준이 다른 규모이고, 내가 검토한 바로는 미궁 중에서도 거의 왕궁, 중심일 거라고 추측된다. 좀 과감하게 추측하자면, 모래왕이 네가 사막으로 귀환했다고 여기고 자기 문제를 해결할 곳으로 옮겨 놓지 않았나 싶어.
‘아니라고 말해 볼 수 있을까? 그냥 잘못해서 길 가다 미끄러진 거라고 말이야. 그렇게 말 걸어 볼 수 있나?’
―모래왕과 접촉할 방법이 없어. 접촉한다고 해도 네가 다시 사막에 들어섰다는 시점에서 무조건 약속을 지키라고 할 거야. 모래왕에게 너는…… 굉장한 기회이니까. 설혹 진명을 모른다고 해도, 사룡의 힘으로 어떻게든 해낼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봐야겠지.
‘하아…… 완전히 덤터기 썼구먼.’
―뭐, 그런 셈이다.
포기한 듯한 투란의 말에 드라고니아가 적당히 공감하는 시늉을 했다.
이제 어찌할까, 투란은 고민하지 않았다.
아직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몬스터의 형상, 삼키지 못한 정수를 지닌 몬스터가 여전히 자신을 휘감은 채란 것을 알았으니까.
뿌드득.
팔다리 근육이 얼마나 굳어 있었는가를 과시하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움직였다. 그 팔다리에 얽히고설킨 모양으로 ‘악마의 심장’도 줄기를 내뻗었다. 사람의 형체를 중심으로 가득 채워져 있던 피와 살, 가죽의 덩어리가 줄기에 꿰이고 투란의 손발, 살갗에 다시 들러붙었다. 핏빛의 고리가 투란의 몸 곳곳에서 피어나면서 줄기를 따라, 살갗을 따라 번져 나갔다.
‘아, 이렇게 된 거구나.’
성벽, 벽돌 상자를 향해 뻗어 나가는 감각을 통해 투란은 알 수 있었다.
성벽이란 형태에 얽매인 다크미스트, 이 녀석이 여전히 몬스터이면서도 충실하게 유니콘홀드의 마법에 복종하며 당연하다는 듯이 종속성을 드러내는 까닭은 레드미스터의 파편이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유니콘홀드의 제어 수정을 향해 침입했던 것은 한 마리 다크미스트였고 그 최초의 형질이 변화해서 상위종이란 형태로 거듭난 것이 레드미스트. 그런 변화, 애벌레가 나비로 변화하는 변태의 과정에 버금가는 변화 속에서도 레드미스트는 그 본질인 다크미스트의 파편을 흘리며 마법의 요새를 장악하려고 했다. 때문에 파편에서 성장한 다크미스트는 독립한 개별적인 몬스터이면서도 언제든지 다시 레드미스트로 귀속될 수 있는 종속형 몬스터였다.
레드미스트가 투란에게 삼켜지고 제어 수정과 다시 융합해 가는 과정은 그 지배와 종속의 관계를 망가뜨리지 않았다. 오히려 유니콘홀드의 제어 마법에 다크미스트를 더욱 깊이 통합시키며 종속성을 강화했다.
이쯤 되면 굳이 정수를 삼켜 몬스터 엠블럼으로 다시 몬스터의 형상을 새로 형성할 필요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저 몸속으로 끌어들였다가 내보낼 수도 있는, 어찌 보면 휘드라곤 같은 정령과 같은 수준이라 할 수도 있었다.
모래 미궁으로 다시 떨궈졌다는 것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몬스터 엠블럼과 무관하게…… 파고들면 어쨌든 관계가 있지만, 독립적이고 개별적으로 투란 자신에게는 아무 부담 없이 다룰 수 있는 시종 같은 몬스터가 생겼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거 어떻게 생각해?’
투란은 따로 두고 몬스터를 부리는 것에 대해 드라고니아에게 물었다.
―그러다가 악마종으로 오해받을걸. 그 오해는 아마 풀 수도 없을 거야.
‘잉? 그렇게나?’
―그래, 악마종의 비전, 기술은 악마종만 다루니까. 데몬스 러그라든가, 그 은신처에서 얻은 것을 함부로 꺼내 보이면 안 된다고 말했잖아. 그때보다 더 지독한 경우야, 다크미스트는…… 어지간한 악몽이 아니었다니까. 걸린 현상금이 아마 아직도 유지되고 있을걸? 아, 가끔 파편처럼 남아 돌아다니는 다크미스트도 있다던가? 좀 가물거리고 애매한 이야기였다만…… 그걸 삼킨 몬스터 로드가 오해 때문에 죽었다든가, 그냥 망했다든가?
‘일단 전부 삼켜 놓기로 하자.’
조금 주눅 든 것처럼 투란이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우두둑, 콰드득.
투란의 몸이 부풀면서 성벽의 형체를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금방 커다란, 대강 4미터 크기의 성벽으로 된 인간의 모습이 생겨났다.
모래를 푹 파내며 두 다리가 박혔고, 엉거주춤하니 일어서며 기우뚱거리는 사이에 주변의 모래가 밀려들었다.
“내 머리는 망루?”
굵직하게 돌을 가는 듯한 목소리가 성벽으로 된 머리, 그 벽돌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망루 모양이 왕관? 그거랑 닮기는 했다만…… 으흠, 쿤토르가 들은 예언이란 것이 지금 네 모습 때문에 그런 걸까? 벽돌로 된 성벽 무늬 몸이지만, 그래도 왕관을 썼으니까, 예지자의 눈에는 왕으로 착각할 수도 있어 보이는데?
‘놀리는 거냐? 설마 진심으로 그러는 거냐?’
울컥하려다가 드라고니아가 움찔하는 낌새를 느끼고 투란이 성벽 무늬의 얼굴을 와장창 구기적거리면서 으르렁거렸다.
―음, 뭐……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한데, 그런 오해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럼 정말로 어느 나라 가서 반란이라도 일으키고 왕이 되어 보려고?
‘그런 짓을 왜 해! 어우, 정말! 이 년 동안 그 미운 말 하는 버릇이라도 고칠 것이지! 정말 이 년 지난 거 맞기는 해?’
―오차가 좀 있을 수는 있겠지만, 며칠 정도 오차일 뿐이다. 정말로, 진짜로, 실제로 두 해가 지났어. 괜한 희망은 버려.
‘쳇.’
쿵, 쾅, 쿵, 쿵.
손뼉을 치면서, 그냥 암석으로 된 거인이 아니라 착실하게 움직이는 체격 4미터의 우람한 성벽 거인의 몸을 확인하면서 투란은 소리 없이 문득 중얼거림을 토해 낸다.
‘그러고 보니 키유나를 미리 보내길 정말 잘했네.’
―그건 뭐…… 아주 잘한 짓이었지. 가서 기다리면서 울화가 쌓인 마녀를 상대해야 하기는 하겠지만, 기다리다가 울화가 쌓여서 바로 꼼짝 못 하는 너한테 풀 마녀보다야 나으니까.
‘뭔 저주야! 그만하고, 주변 상황…… 그러고 보니 너 여길 왜 왕궁이라고 말한 거냐? 그냥 크고 넓은 미궁이면 대미궁이라고 하면 될 텐데……?’
툴툴거리다가 갸웃하면서 투란은 새삼 두리번거리는 채로 물었다.
하늘은 밝은 모래였고, 저편에는 지평선을 대신한 담장 같은 모래 벽이 보였다.
딛고 있는 자리는 계속 서 있으면 잡아먹을 것처럼 무너지는 모래 구멍이 되려는 듯했다. 널찍한 몇 미터의 상자 모양에서 굵은 기둥 같은 두 다리인 것이 좋지 않다고 알려 주는 것처럼.
―언덕을 넘어가 봐. 그러면 보일 거다. 아, 너무 들이대진 말고…… 안 보이게 열심히 쳐 둔 담장이니까, 살짝 보라고.
드라고니아는 한구석에 치솟아서 시야를 가리는 모래 언덕, 작은 담장 같은 아담한 분위기가 가득한 모래 더미를 짚어 주며 말하고 있었다.
투란은 4미터의 몸통으로 슬쩍 엎드린 꼴이 되어 그 언덕을 기어 올라가 엿봤고…….
“으어?”
실없이 굵은, 놀란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