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4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40)
놀라울 정도로 넓고 큰 도시.
그 중심에 오만하다 싶을 정도로 뚜렷하게 자리 잡은 궁전.
어떻게 봐도 왕국의 중심이고 왕궁이라고 해야 할 광경이었다.
다만 그 모든 것이 모래로 이뤄졌다는 점이 한 가지 문제일 뿐.
‘진짜 왕궁이라고 해야겠네?’
―이 사막에 원래 존재했던 왕궁이 고스란히 미궁 안에 그 모양을 갖춘 것이겠지. 그보다 투란, 너 그렇게 정수를 삼키면서 움직여도 되냐? 차분히 전부 마무리 짓는 것부터 하지? 보는 입장에서 굉장히 불안해지거든? 악마종이 몬스터 병기를 두르고 날뛰었다는 기록을 많이 본 입장이라 말이야.
‘정리할 거야. 정리하다가 기습당할 일이 없나 미리 확인한 것뿐이야.’
쿠르륵, 성벽을 토막 내서 다시 붙인 듯한 4미터의 거인 몸통이 격한 소리를 내면서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벽돌의 크기가 줄어들고, 벽돌이 맞물리며 이뤄 낸 무늬가 함께 작아졌다.
투란의 체격이 대강 2미터 언저리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을 때 드라고니아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모래 망령의 움직임이 이전에 봤던 것과 아주 다르지? 이곳에서는…… 그저 꾸물거리며 하던 짓을 반복하지 않아. 마치 모래 망령의 외피를 둘러쓴 인간들이 도시를 꾸민 채로 자신들을 위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지. 하지만 그 다채로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움직임도 거대한 규모로 본다면 일 년을 주기로 되풀이된다.
‘일 년……?’
―경계하며 지켜보기를 이 년이나 하면서 확인했다. 세부적인 부분은 다르지만, 결국 왕궁과 도시 전체가 한 가지 움직임으로 귀결되는 것을 두 번 보고 확인했다.
‘프로브? 옵저버? 모래 망령 무리가 특이한 만큼 마력도 특이해 보이는데 탐색해 볼 수 있었어?’
―직접 들여보내지는 않았지. 대신 원거리에서 지속적으로 관찰했다. 몸은 이제 괜찮아진 거냐? 슬슬 유니콘홀드의 성벽 껍질은 벗어도 되겠어?
드라고니아가 투란이 한결 더 편한 낯빛으로 망루와 섞인 왕관이 들러붙은 머리 모양을 온전하게, 머리카락과 얼굴 형태를 또렷하게 꾸미는 것을 보며 물었다. 저쪽의 상황만큼이나 투란의 현재 상태를 조심스럽게 가늠하는 셈이었다.
투란은 바로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잠깐…… 이 주변은 안전한 거지?’
―나름대로 보호받고 있다. 모래왕이 그냥 덩그러니 이리로 밀어 보낸 것은 아니니까.
‘어? 그건 무슨 얘기야?’
―이 언덕을 경계로, 원래 네가 벽돌 상자 꼴로 놓인 곳을 중심으로 해서 일정한 범위를 모래왕이 자신의 영역으로 삼았다. 사방을 순찰하는 모래 망령이 이 년 동안 이 주변으로 다가서지 못한 까닭이지.
‘무책임하게 내던져 놓기만 한 거는 아니라니, 고마워해야 하나?’
쓴웃음과 함께 투란이 중얼거리는 말을 드라고니아가 단번에 쳐 내듯 대꾸한다.
―아니, 전혀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모래왕이 그냥 널 방치했다면, 유니콘홀드와 융합하는 과정에 뒤섞인 모래 망령이 모조리 다크미스트의 제물이 되었을 테니까. 그랬다면 네가 깨어나서 본 광경은 모래 망령이 검게 물든 쪽이랑 물들지 않은 쪽으로 나눠서 대난투를 벌이는 꼴이었을 거야.
‘그, 그랬구나.’
살짝 당황한 대꾸를 할 수밖에 없는 투란이었다.
레드미스트에 종속된 채였을지라도 다크미스트는, 투란을 감쌌던 성벽에서 맴도는 다크미스트는 여전히 순수한 몬스터였다.
드라고니아의 말은 그저 장난이나 농담일 리가 없었다.
―저쪽으로 가서 뭘 하기 전에, 모래왕의 영역 안에서 확실하게 점검을 해 둬야 해. 그런 면에서…… 아직 네 살갗 위로 다크미스트가 계속 꾸물거리는 중이다만, 정리 안 되는 거냐?
‘할 거야. 모래왕이 아직 지켜 주는 거라면, 좀 더 빨리 할 여유가 있는 거지.’
스스슥, 언덕에서 물러서서 원래 4미터의 상자 몰골로 처박힌 자리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투란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모래 티끌이 섞인 채로 성벽 무늬의 코와 입으로 넘어오는데, 입술의 성벽을 지키는 묘한 마력에 걸러져 상쾌함과 함께 텁텁하고 더운 기분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때문에 투란은 새로운 쓴웃음을 머금은 채로 되뇔 수밖에 없었다.
‘마법의 요새란 말이지…….’
그다지 좋은 꿈으로 기억되는 ‘꿈’은 아니었다.
하지만 투란은 그 ‘꿈’의 잔재가 남긴 기억, 유니콘홀드의 제어 수정이 지닌 마법 술식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알고’ 있었다. 덕분에 이전에 유니콘홀드에 대해서 드라고니아가 비극이 어쩌고 했던 말의 의미조차 분명하게 알 수밖에 없었다.
최초의 요새로 설계되고 제작이 시작되었던 유니콘홀드, 드라고니아는 마지막으로 완성된 요새니 어쩌니 했지만 사실은 완성된 적이 없었다. 그 완성에 필요한 마지막 마법의 제례, 그 의식이 치러지기 전에 다크미스트가 미완성의 유니콘홀드를 점령해 버렸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제어 수정이 단번에 장악당하지 않고 버텨 냈고, 다크미스트가 제어 수정의 마법에 적응해서 레드미스트로 변태하는 사이에 유니콘홀드를 노리고 침투해 오던 악마종 군단이 몰살당했다는 점이었다.
마법의 요새 하나와 악마종 군단의 주력이 공멸(共滅)한 셈이었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유니콘홀드가 미끼로 쓰인 탓이었다.
유니콘홀드와 운명을 함께하겠노라 맹세한 일만 병사가 그 미끼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악마종 군단 역시 그런 상황을 전혀 모르지는 않았던 듯했지만, 유니콘홀드가 완성될 경우의 상황이 악마종에게조차 지독하게 악랄했기에 그 도전을 받아들인 경우이기도 했다.
함께 설계된 다른 마법의 요새와 다른 유니콘홀드만의 독특한 특징이 악마종, 그 군단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런 도발적인 계획, 그 실행을 위해 유니콘홀드는 다른 요새에는 없는 마법 술식까지 잔뜩 품어야 했다.
‘구속, 봉인…… 귀속이었나?’
유니콘홀드는 악마종을 구속(拘束)하고, 봉인(封印)한 다음, 귀속(歸屬)시켜 버린다.
구속을 끊어 버린 악마종, 그들을 처음 이 세상에 불려 왔던 상태로 되돌려 버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이 세상에 감금하고 영원한 노예로 삼아 버린다!
이것이 악마종 군단이 미끼임을 눈치채고도 도전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대단한 고대의 마법이었다고는 해도 아무 희생도 없이 그런 미끼가 만들어질 수는 없었다.
1만 명의 병사, 그들을 제물 삼아 만들어진 소울 웹(Soul Web).
그 어떤 대악마라 할지라도 구속하고 봉인할 수 있는 마력, 선천적으로 타고날 수도 없고 후천적인 상황에 의해 감응될 수도 없는 극단적이고 이질적인 마력…… 혼마력(魂魔力), 혹은 아케인 소울 파워(Arcane Soul Power)라고 일컫기도 하는 힘의 그물을 만 명의 병사를 제물로 바쳐 만들어 냈다.
유니콘홀드의 설계가 마지막으로 수정되며 부여된 힘이었다.
그저 미끼라 여기고 방관한다면, 유니콘홀드는 악마종을 찾아내고 구속하며 봉인해 결국은 귀속된 존재로 변환시키는 이동 요새로서 완성될 참이었다.
그야말로 악마종 군단이 무시하든 말든 상관없는 압도적인 위협.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는 유니콘홀드를 노리고 오는 악마종 군단의 몰살…… 하지만 악마종의 패배는 아니었다. 악마종 군단을 몰살시키는 과정에서 인간의 군단 또한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악마종 군단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침투시키려 한 몬스터 병기 중에서 다크미스트가 끝내 유니콘홀드를 삼켜 버렸으므로.
그 전쟁은 더 많은 인간을, 세상을, 악마종을 삼키며 이어졌고, 더 긴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끝났다.
그러나 유니콘홀드는 그 종전(終戰)을 함께 맞이할 수가 없었다.
유니콘홀드의 제어 수정이 격이 달라진 다크미스트…… 레드미스트와 융합하면서 요새는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 창조자의 의도를, 제물로서 자신을 받친 일만 병사의 의지조차 상관하지 않은 몬스터가 되었으니까.
‘수십 킬로 용암 호수도 아닌데 말이지…….’
투란은 마음을 가다듬으면서도 낯이 찌푸려지는 기분을 어쩔 수가 없었다.
문장이 유니콘홀드를 삼키는 과정이 기괴하게 꼬인 까닭, 2년이나 걸린 이유를 이제는 잘 알고 있는 투란이었다. 결과를 놓고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니 확실하게 파악해 낼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2년이 훌렁 지나갔다는 사실은 ‘아, 그렇구나!’라고 날름 받아들이기가 너무 어렵잖은가!
스스로 그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면 그나마 열심히 2년간 뭘 했구나 싶어서 그럭저럭 넘어가겠지만…… 투란에게 그 시간은 길게 잡아 봐야 며칠 사이!
굉장히 억울한 심정이었지만 투란은 조심스럽게 숨을 고르면서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유니콘홀드의 형상을, 거대한 성채가 한 사람의 몸속에 구겨 넣어질 리가 없다는 기본적인 상식을 깨뜨리면서 남은 형상을 정리하고 본래 자신의 몸으로 되돌리기 시작했다.
성벽을 보호하는 마법이 살갗을 덮고, 성벽을 찾아 문장 속으로 흘러들어 갔고 성벽을 맴돌던 다크미스트는 그 정수와 함께 잔해조차 성벽을 따르듯이 문장에 삼켜졌다. 고대의 마법 술식이 차분히 문장 속에서, 문장의 풍경 속에서 정리되며 그 나름대로의 형태를 갖추는데…….
“으읏?”
투란은 가슴 위로 엉기는 마력, 유니콘홀드의 혼마력을 느끼면서 조금 당황한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마지막 한 조각까지 요새의 마법 술식이 모두 정리된 줄 알았는데, 혼마력이 끈질기게 문장 주변을 맴돌면서 버티며 뭔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유니콘홀드의 제어 수정 속에 각인된 어떤 조건이 발동한 것처럼.
―물질을, 물체를 생성하는 중인데?
드라고니아가 객관적으로 관찰하며 말했다.
그 말에 투란은 바로 가슴의 문장 위에서 어른거리는 뭔가를 손으로 잡아 갔다. 손이 닿기가 무섭게 그 형태가 투란의 마음속에 그려졌다. 자연스럽게, 마치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자리 잡는 형태, 문양은 부드러운 오각형 방패 속에 성난 갈기를 휘날리는 일각수(一角獸), 유니콘의 머리가 자리 잡은 모양이었다.
‘혼마력!’
순간적으로 투란은 깨달았다.
일만 병사의 염원, 그들이 수정에 맹세한 약속에서 자아낸 마력.
예정과 다른 유니콘홀드의 완성 과정에서도 변하지 않은 그 맹세로부터 흘러나온 마력이 갈망하는 것…… 악마종의 몬스터 병기인 레드미스트가 결코 충족해 줄 수 없던 한 가지를 투란에게 바라고 있었다.
어느 나라에도 속할 수 없는, 공통점이라면 격노와 증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기에 그 격노와 증오의 원인을 향해 목숨을 내던지며 나아가야 했던 이들이 자기 자신을 제물 삼아 유니콘홀드에 받치고 얻고자 한 것, 그 약속의 증표…….
“내가 바로 몬스터 로드야! 몬스터가 돼 버린 마법 물품, 너희들을 지휘해야 할 자가 마지막으로 혼을 걸어야 했던 수정을, 그 몬스터를 내가 처리했다! 성채라고? 요새라고? 몬스터 로드는 그 몸이 성벽이고 무기일 뿐이야! 그만 닥쳐! 너네들 군단장 노릇 따위 하지 않아도 내게는 함께하는 몬스터가 잔뜩 있고, 앞으로 더 늘릴 거니까!”
으르렁거리며 자기 자신을 향해 포효하는 투란이었다.
드라고니아가 조금 맹한 낌새로 말이 끝나자 조심스럽게 묻는다.
―투란, 무슨 이야기냐? 방금…….
“무장 생성, 사슬 끈.”
대답 대신에 투란은 주문을 읊조렸다.
치릭.
가늘고 섬세한 끈, 수십 배로 확대하면 분명히 쇠사슬로 보일 실 가닥 같은 끈이 투란의 손아귀에서 날카롭게 형체를 드러내며 혼마력이 생성해 낸 물체, 유니콘의 머리를 담고 있는 오각형 방패 문양에 엉겨들었다.
사슬 끈은 곧바로 투란의 목을 두어 번 감으며 목걸이가 된 유니콘 문양의 방패를 늘어뜨렸다. 목의 양쪽을 향해 가느다란 끈이 한 가닥씩 뻗어 나갔고, 원래부터 목을 감고 있는 듯한 고리처럼 보이는 사슬 끈과 엮였다.
―살갗 속까지?
겉으로 드러난 것 이상으로, 투란의 쇄골과 겨드랑이를 이으며 등까지 어느 정도 덮는 사슬 끈의 그물 형태를 보면서 드라고니아가 흠칫했다.
겉보기에는 그저 목에 걸린 가는 끈 두 가닥에 대롱거리는 모양이지만, 살갗 안을 채우며 보이지 않는 문신처럼 그물 형태로 짜여 들어 결코 끊어질 리가 없는…… 무슨 구속기구처럼 들러붙은 상황은 가볍게 여길 수가 없었다.
‘아, 괜찮아. 이 망할 마력, 아무래도 몬스터 엠블럼을 제멋대로 들락거릴 수가 있나 본데? 과연 고대의 마법이라고 해야 할까?’
―그게 무슨…… 헛?
드라고니아는 한층 더 놀라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투란의 말을 증명하듯, 이제는 완연히 사람의 발을 야금야금 발목까지 삼킬 듯이 부드럽게 깔려 있어야 할 모래 위로 포석의 무늬가 떠오르더니 그대로 포석이 자리 잡은 채였으니!
투란은 조용히 몸을 웅크려 앉으며 그 포석에 손을 댄 다음 중얼거린다.
“한번 잡으면 놓칠 리가 없단 말이지, 좋아. 아주 좋은 몬스터의 감금 시설이야.”
―이건 설마…… 석벽까지 마음대로 일으킬 수 있는 거냐?
드라고니아가 황당해하며 물었다.
‘뭐, 일단 그런 모양이야. 하지만 요새의 마력이 꽤 소모되기도 하고…… 조건도 이래저래 까다롭게 붙어 있어. 군단의 맹약인가 뭔가가 있는데 거기서 어긋나는 짓은 못 하는 것 같아. 까짓거, 안 쓰면 그만인 거고.’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투란이 소리 없는 투덜거림을 흘려 냈다.
이는 어딘가 드라고니아를 안심하게 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모래성 안에서도 너만의 석벽, 밀실을 만들 수는 있는 거지? 지금 시험한 것처럼 말이야.
‘어, 아마 될걸? 요새의 방 한 칸? 그 정도는…… 내게 넘어온 군단장 권한으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모양이야. 더럽게 쪼잔하지만, 그래도 제법 넓은 방인 모양이니…… 자, 이건 이제 됐고! 저 언덕 너머를 이제 어쩌냐.’
목덜미를 어루만지면서 투란은 다시 언덕 너머 모래의 왕궁을 볼 자리로 옮겨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