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5)
“어! 왜 안 돼?”
투란이 황당해하면서 조금 크게 중얼거렸다.
손발은 여전히 그랑츄의 발, 붉은 털의 웨어울프의 팔, 샤머닉 트롤의 팔이었고 기대한 것은 전혀 나타날 낌새가 없었기 때문이다.
—뭘 하고 있냐고!
버럭 들려오는 마음 깊은 곳의 묻는 말에 투란이 뚱하니 대답한다.
“드라고니아 왜 안 생겨?”
그리고 다시 두 손을 흔들면서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목구멍에서 덩굴줄기가 사르륵거리는 촉감이 명쾌하고 기분 좋게 정신을 집중하는 데 도움을 줬다. 보통 사람이면 목구멍이 부어서 숨통이 막힐지도 모르게 할 독성이 가득한 환경이었지만, 악마의 심장이 가슴속에서 거침없이 맥동하는 투란에게는 그저 상쾌한 숨결만 남을 뿐임을 확인시켜 주는 셈이었다.
‘좋아, 다시!’
투란은 몬스터 엠블럼에 정신을 모으고, 자신의 마음에 잔소리를 퍼붓는 존재를 끌어내려 했다. 팔다리, 손발에 그 형상을 부여하려 했다. 전설로 듣기만 했던 드라고니아 스케일을 끄집어내려 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
“왜?”
투란의 짧은 중얼거림만이 다시 입에서 툭 튀어나올 뿐이었다.
—투란, 너 설마 나를 형성해 보려 한 거냐?
“응.”
투란은 자신의 마음에 계속해서 말을 걸고 있는 드라고니아의 상태에 좀 더 정신을 모으며, 가볍게 대답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근데…… 너 대체 어떻게 생겼냐? 드라고니아라는 게 어떻게 생긴 거야?”
음유시인의 이야기 속에서 간간이 그 특징이란 것이 몇 마디 말로 나오기는 하는데, 투란이 본 적이 없는 모습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도 몬스터 엠블럼으로 그 존재를 느끼고 형성하는 것은 몬스터 로드인 투란에게는 당연히 되어야 할 일인 것 같은데, 되지 않았다. 이쯤 되면 떠들고 있는 당사자, 드라고니아에게 직접 물어볼 수밖에!
—넌 나를 형성할 수 없다, 투란. 나는 샤머닉 트롤이나 붉은 웨어울프처럼 절단 난 몸뚱이로 네게 삼켜진 것이 아니다. 온전한 형상으로 키린에게 삼켜진 나는, 너에게 나를 허용하지 않을 수 있다!
“뭐야, 그게?”
투란은 마음에 도도하게 흘러나오는 대답, 뭔지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을 향해 뚱하니 되묻고 말았다. 어린애의 말투로, 조금 삐진 것처럼.
—안 되는 일에 신경 쓰지 말라고! 넌 드라고니아의 모습이 될 수 없고, 그 힘을 쓸 수도 없다고!
결국 드라고니아가 먼저 울컥한 것처럼 외치는 소리만이 선명하게 남았다.
“안 돼?”
삐죽거리는 입술로 투란이 다시 중얼거렸고, 대답은 바로 ‘그래!’라고 쟁쟁거리는 흉포한 말투로 되돌아왔다. 투란은 두 손을 내려다보면서 쥐고 펴는 동작으로 꼼지락거리다가 한숨을 쉬었다.
산들거리는 바람이 흘러왔고, 늪의 냄새와 숲의 냄새가 뒤엉킨 채로 스쳐 갔다.
그 자리에 잠시 선 채로, 투란은 자신의 문장에 정신을 더 강하게 집중했다.
‘보고 싶어, 그때 그거…….’
염원하는 것은 문장 속 풍경이었다.
* * *
‘와아!’
몸이 없는 채로, 한가득 마음에 비치는 광경은 투란을 환호하게 했다.
어렴풋이 기억나던 모든 ‘천칭’의 풍경이 더할 나위 없어 선명하게 보였다.
톱니바퀴가 겹쳐진 듯이 단단하게 조여져 닫힌 마개, 천칭의 기둥 축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크고 넓은 원형의 저울접시, 그 아래를 화려한 무늬를 갖춘 채로 차지한 큰 알…….
무엇보다 새롭게 보인 것은 오러 몽거였다.
크고 작은 톱니와 톱니가 정교하게 미세한 형태로 모여 이뤄진 천칭의 축으로부터 뻗어 나온 가지에 매달린 저울 접시 위에 놓인 오러 몽거는 우두커니 앉은 모습으로 거기 놓인 채로, 심장이 없는 형상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었다. 어째서 저것을 꺼내면 팔다리가 움직여지지 않는가를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
‘좀 더 강한 심장이 있어야 하네.’
묘한 감상이 투란을 들뜨게 했다.
오러 몽거가 필요로 하는 심장이 뭔가 어렴풋이 가늠되는 것이 아주 신기한 탓일까, 투란은 잠시 자신이 왜 문장 속 풍경을 다시 보려 했는가를 살짝 잊었다.
그러나 강한 심장에 대한 열망이 금방 되새기게 해 줬다.
‘어떤 심장을 얻으면 오러 몽거를…… 아, 드라고니아의 심장이라면! 어라? 그러고 보니…… 왜 안 보여?’
천칭과 얽힌 몬스터, 투란이 삼킨 몬스터는 알 안에 담겨 있거나 아니면 옆으로 뻗어 나온 저울대 팔에 매달린 저울접시 위에 올려져 있었고, 그래야 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없었다.
분명히 투란에게 말을 걸어왔던, 키린이 전해 준 몬스터는 없었다.
문장 속에 없는데 어떻게 투란의 마음속에 말을 걸 수 있을까?
‘뭐야, 이 녀석.’
투란은 천칭을 좀 더 훑어보는 감각으로 더듬었다.
저 아래로 쭉쭉 뻗어 내려간 축의 아래편도 주의했다.
하지만 다시 살펴도 없는 것은 없는 것, 그렇다면 대체 키린에게 전이받은 드라고니아는 어디에 있을까?
투란이 당황한 기분에 사로잡힐 때, 차갑고 사나운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흥. 나는 이쪽이다.
그 순간, 투란은 천칭의 축과 멀리 떨어진 곳을 ‘느꼈다’.
아스라하니 아무것도 없을 듯한 허무의 저편으로, 천칭에서 잘게 부서져 나간 듯한 빛의 반짝임이 겨우 이어져 밤하늘의 성운처럼 맺힌 풍경이 거기 있었다.
맑게 반짝이며, 별빛이 뭉쳐 춤을 추는 듯한 이상한 풍경이었다.
‘저게 뭐야!’
투란은 아까와 다른 놀라움을 느꼈다.
어째서 드라고니아가 저런 별 무리 같은 모습으로, 이 문장 속의 풍경을 차지하고 있을까?
—마법이다.
물음에 대한 답이란 듯, 천둥 같은 울림이 말했다.
‘마법?’
투란은 계속 묻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래, 네가 기절해 있는 동안 내가 마법을 썼다. 난 이곳에 나만의 영역을 만들어 냈고, 이렇게 존재한다!
‘그게 뭐야?’
—뭐?
‘거기 있다면서 왜 모습이 제대로 안 보여? 반짝반짝 이쁘기는 한데, 그건 그냥…… 밤에 보는 별 무리 같다고. 그게 드라고니아의 모습은 아니잖아.’
—당연히 아니지! 난 내게 내 모습을 보여 주지 않겠다고 했잖아!”
‘응? 왜! 보여 주면 어때서!’
—어차피 나를 형성할 수 없는데, 봐서 뭐 하게?
‘어라? 혹시 내가 네 모습을 보면…….’
투란의 생각은 다음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뭔가 알 수 없는 거대한 포효가 별 무리를 흔들면서 강렬하게 울려 나온 탓이었고, 그 안에 담긴 경고가 문장 속 풍경보다 급한 일이 나타난 것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뭐야, 뭐가?’
* * *
꾸아앙!
괴성을 지르면서, 털투성이 덩치가 손톱을 뾰족하게 내밀고 투란을 향해 돌격해 오고 있었다. 숲의 그늘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녀석은 입을 떡 벌린 채로 위아래로 가지런히 송곳니조차 날을 세운 듯이 들이대는 꼴이었다.
‘비비나비?’
어딘가 예전에 봤던 비비나비의 시체랑 닮아 보였지만, 뭔가 다른 느낌의 짐승 같은 놈이었다. 어쨌든 괴물인가 싶었다.
—아니다. 저건 마수야.
짧고 강한, 분명한 말이 투란의 뇌리에 스며들었다.
‘마수?’
—잔나비가 마력을 품고, 강해졌다고 보면 되겠지. 흔히 말하는 크고 힘센 원숭이 같은 거야.
‘아, 잔나비!’
달려드는 놈을 보면서 투란은 겨우 녀석이 왜 비비나비와 달라 보이는가를 알아차렸다. 비비나비에게는 없는 긴 꼬리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핏대를 잔뜩 세운 눈동자는 한낮임에도 푸른 색채로 활짝 열린 것처럼 보였다.
꾸아아아아!
퍼엉!
손톱으로 투란의 어깨를 내리찍듯이 붙들면서 벌린 입으로는 바로 얼굴을 물어뜯으려 한 녀석의 머리통이 큰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키익.
뒤늦게 투란의 어깨에서 바위가 손톱에 긁히는 소리가 났다.
“이런 마수도 다 있었네. 마수라서 여기서 아무렇지도 않게 숨도 쉬나?”
갸웃하는 투란의 목소리는 태평하게 울렸다.
—한 방이더냐…….
어이없어하는 드라고니아의 한마디였다.
피식, 으스대는 웃음이 투란의 입가에 떠올랐다.
“여기 사는 큰 그랑츄도 이 손에 걸리면 그대로 머리가 뜯겨 나가고, 뱃가죽이 갈라져. 비비나비 같은 몬스터도 아닌 잔나비인데 이 늑대의 손에 버틸 리가 없잖아.”
달려들던 놈의 머리통을 한 방에 후려쳐서 날려 버린 붉은 털의 손을 투란은 입가에 대며 냄새를 맡고, 혀로 날름거리며 핥았다. 시큼한 맛과 약간 떫고 썩은 듯한 냄새가 짙었다.
“못 먹겠네, 이거.”
중얼거리면서 투란은 여전히 어깨를 쥔 자세인 잔나비 마수를 밀어 버렸다.
키익, 다시 어깨의 살갗을 긁는 소리가 나며 녀석이 옆으로 몸을 누이며 쓰러졌다.
흙이 몽실몽실, 불끈불끈하는 낌새가 보이더니 흙도마뱀의 앞발과 주둥이가 들락거리는 광경 사이로 마수가 조금씩 뜯겨 나가다가 뼈도 안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아주 잠깐 사이에 보인 그 광경에 투란은 눈을 껌벅거릴 수밖에 없었다.
기가 막힌 탓인지 말도 할 수 없었다.
—뭘 놀라나? 여긴 저 도마뱀의 소굴이다. 돌아다니면서 사냥하기 귀찮은 키린이 여기 자리 잡고 있었다고!
‘헉? 그랬어?’
—잿빛바위 그랑츄의 발을 물어뜯으려 할 만큼 멍청한 녀석들도 아니고, 한 마리가 자신을 희생해서 네가 먹을 만한 놈이 아닌 것을 밝힌 상태니까. 그래서 지금 너한테 덤벼들지 않는 거야.
투란은 이 설명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흙도마뱀이 상대를 가린다는 소리는 들은 적도 없다.
……자기를 잡아먹으려 하는 괴물의 콧등을 깨물고 죽어 간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리 사납고 앞뒤 잴 줄 모르는 것이 여기서는 무리도 짓고, 몸도 사린다!
‘더 강해지고 싶어! 드라고니아, 널 쓸 수는 없나?’
투란은 다시 문장을 향해 외치며 염원했다.
보고 싶다고.
* * *
‘아니, 그거 말고!’
좀 더 뚜렷하게 반짝거리는 별빛의 군무를 보면서 투란은 버럭 소리 지르듯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늑하게 먼 곳에서 울리던 느낌은 사라진, 조금 가까운 듯한, 그래도 뭔가 두꺼운 담장 너머인 듯한 느낌의 웅장한 소리가 짙게 풍경을 물들이며 답해 온다.
—투란, 너는 나를 써서는 안 돼. 나는 너에게 나를 허용해서는 안 되고!
깊은 울림은 그 안에 뭔가 깊은 까닭이 있음을 알려 주었다.
‘왜?’
호기심이 투란의 마음을 움직였다.
왜 몬스터 로드가 문장 안에 삼킨 몬스터를 써서는 안 되는가?
어째서 드라고니아는 이 문장 안에서 저렇게 분명하게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가?
도대체 키린은 그에게 뭘 넘겨준 것인가?
무수한 의문이 저절로 흐르듯이 투란의 마음을 더듬으며 스쳐 갔다.
그리고 이에 대해 별빛이 조금 곤혹스러운 듯이 일렁거리면서 투란이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광경을 비춰 줬다.
—나는…… 괴물로서 죽었다. 키린은 나를 쓰러뜨렸고, 내 잔해가 마력을 폭주시키면서 불러올 파괴를 막기 위해 나를 삼켰다. 원래는……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이성을 갖춘 존재는 몬스터라 해도, 몬스터 로드가 삼켜서는 안 되는 대상이다. 그건 금기를 범하는 짓이었다. 그래서 키린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었고,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세상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이 산맥에 들어온 것이다. 여기라면 어떤 괴물도 숨죽이며 조심하고 살아야 하는 곳이니까…….
조금 길게 흘러나온 드라고니아의 이야기가 투란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의문이 바로 투란의 마음에서 툭 튀어나온다.
‘왜 키린은 너를 없애지 않았지?’
몬스터 로드라면, 그렇게 감당할 수 없게 된 존재를 즉각 해치울 방법이 있잖은가? 왜 키린은 드라고니아를 품었을까? 저 아래 깊은 심연에 담가 버리면 될 텐데…… 이렇게 투란에게 전해 줄 필요가 없었을 텐데…….
‘어?’
이 물음에 대해서, 어딘가 곤란해하고 살짝 부끄러워하면서도 거칠고 사납게 흔들리는 격한 감정이 투란의 마음으로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