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5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41)
Chapter 189. 모래성의 기억 Ⅰ
누런 빛이 뭉쳐 만든 수많은 인형이 걷는다, 서로를 바라본다, 손짓하고 고갯짓하며 정교한 입술을 움직이기도 한다.인형이 서고 걷는 곳은 모래로 이뤄진 거리, 건물은 안팎이 모두 모래이면서도 인형의 표정만큼이나 풍부하고 다채로운 물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도시는 그런 수준 높은 모래 공예의 집결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심지어 그런 도시를 내려다보는 하늘조차 모래로 된 구름이 둥실거리며 떠 있는 채였고, 낮과 밤을 가리듯이 찬란한 황금빛을 번뜩이는 중이었다.
투란은 잠시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저 생김새를 교묘하게 꾸민 정도가 아니었다.
저 하늘의 황금빛, 똑같은 황색 계통이라도 밝고 흐림에 차이를 둔 채로 온갖 형상의 모형을 다채로운 광채로 포장한 듯, 모래가 한 가지 계통의 색이라도 얼마나 많은 색일 수 있는가 보여 주는 광경으로 도시를,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세심하고 정교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우와아…… 저 꿈틀거리는 꼴 봐! 저건 바람결이지? 저건 분수대? 모래 분수대라니! 어? 마차가 움직이는데? 모래 바퀴인데! 아, 사람도 움직이는 중이니 신기할 것도 없나?’
다양한 시각으로, 성벽의 벽돌 무늬를 바탕으로 여러 눈알을 벽돌마다 볼록이는 괴이한 몰골로 바라보면서 투란이 한껏 모래의 예술을 감상할 때, 드라고니아가 갑작스럽게 경악을 보태듯이 말한다.
―야아아아! 저 성은 대체 뭐냐? 투란, 너 뭐 하는 거야?
‘응? 성? 저 왕도? 아니, 내가 뭘 해? 모래성에 내가 뭘…….’
―그거 말고! 문장! 문장 속을 보라고!
갑작스럽게 더해지는 말에 투란은 한층 더 어리둥절했다.
지금 지켜보고 어떤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은 저쪽 모래 도시의 풍경이 아니던가?
마음의 풍경이야 몬스터가 돼 버린 마법의 요새를 정리하면서 나중에 천천히 점검할 일인데…….
‘으어어? 저 똥 덩어리는 뭐냐!’
투란도 문장의 풍경을 슬쩍 엿보자마자 드라고니아처럼 경악하는 외침을 터뜨리고 있었다.
―비유를 꼭 그렇게 해야겠냐?
지친다는 듯, 드라고니아가 노골적으로 핀잔했다.
하지만 투란은 물러설 수가 없었다.
‘평평한 맨땅에 꼬맹이가 쪼그리고 앉아 길게 응가를 하면 딱 저 모양 나오거든? 응아아아, 하고 배에 힘주면 말이야!’
―닥쳐. 다른 곳도 아니고 너의 몬스터 엠블럼이 그려 내는 풍경이잖아. 왜 너의 심상을 기반으로 저런 것이 생기는가, 마법의 요새가 몬스터의 거성(巨城)이 된 탓인가 확인해야 하는 건 네 일이라고! 잘 좀 살려! 모래 도시를 어쩌기 전에 저 몬스터 성채가 본능적으로 일 저지르지 않게 하란 말이다! 지금 발아래에서 벌어지는 일도 모르고 있지? 봐라, 얼른!
‘발아래?’
흠칫해서 투란은 저 멀리 보던 눈알 중 하나를 재빨리 자신이 디딘 자리로 움직였다. 저쪽 도시의 모래 공예를 감상하기 위해 어느 틈엔가 몸을 반쯤 일으키며 반쯤 앉은 채인 곳은 원래 모래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포석.’
투란은 자신을 향해 되뇌었다.
무엇이냐고 따질 필요도,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눈보라 산맥의 골짜기를 헤맬 때 잠깐 봤던 것이 금방 기억나기도 했다.
유니콘홀드, 마법의 요새가 몬스터의 거성이 되기 전부터 지닌 기능.
이동을 위해 만들어진 고대 마법의 가벼운 응용이나 다름없는 매설(埋設) 기능을 한번 더 응용한 것뿐이었다.
간단하면서도 가변적인 응용 범위는 방대한, 이제는 몬스터인 거성의 기본적인 능력이기도 했다.
포석을 방출하고, 주변 지형에 덧씌우고 그 포석을 ‘문(門)’으로 활용해서 거성 내의 병력을 자유롭게 이동시킨다.몬스터가 된 요새는 다크미스트를 기반으로 장악한 짐승과 마수, 몬스터의 데드워커가 타고 움직일 수 있는 발판으로서 이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투란!
‘응? 아, 정신 나가지 않았어.’
짭게, 분명하게 대답하며 투란은 저펴의 풍경을 바라보는 자신과 문장의 풍경을 바라보는 자신을 가볍게 분리했다.
어느 쪽도 가볍게 볼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 * *
별빛 무리, 드라고니아가 자리한 풍경과 반대쪽이었다.
그 거대함을 전혀 숨기지 않는 나선(螺線)의 형태, 원반을 쌓아 올린 것과도 닮은 꼴로 유니콘홀드는 허공에 우뚝 선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거대한 성을 받쳐 주는 지반은 절벽을 반구형으로 퍼낸 모양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울퉁불퉁해서 사납고 거친 절벽이 원형을 만들려고 애쓰다가 성채에 반쯤 짓눌려 포기한 듯한 분위기를 풀풀 휘날리고 있었다.
거성의 자태에서 무엇보다 투란의 관심을 끈 것은 그 정상, 얌전한 말의 머리에 뿔이 돋은 시늉을 하는 채로 길쭉한 오각형의 문장기…… 하지만 지금은 성의 정상에 닿아서 곧바로 바닥까지 꿰뚫겠다는 듯한 송곳처럼 보이는 쐐기, 바위로 이뤄진 조형물이었다.
어느 방향이든 모두 쳐다보겠다는 듯이 측면조차 다섯인 입체적인 형태에는 그런 유니콘의 형상이 제멋대로의 감정을 담은 표정으로 새겨져 있었다. 화를 내는 탓에 외뿔 사자처럼 보이기도, 탐욕을 그린 듯이 외뿔 늑대를 닮은 듯도 보이는 다섯 가지 유니콘의 모습인 셈이었다.
투란에게는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의 낯짝이 저 중 어느 것을 닮았는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개별적이고 독특한 표정의 유니콘 조각이었다.
그런 쐐기 바위를 문장기 삼아 정상에 둔 채로 거성은 아래로 길게 퍼져 나가는 나선의 성벽을 두르고 있었다. 성벽 아래 뿌리 부분은 여지없이 해자를 형성해서 뭔지 알 수 없는 액체가 꾸물거리면서, 다음 층의 성벽과 확실하게 간격을 두기도 하는 묘한 광경이었다.
그 이어지는 괴기한 거성의 형태를 멍하니 보던 투란은 퍼뜩 저것이 자신이 삼긴 몬스터이며 ‘천칭’과 완전히 따로 노는 것인가 생각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금방 느끼고 ‘알 수’ 있었다.
‘천칭’이 흘려 내는 작은 가지, 투란이 형태를 담는 알과 몬스터의 형상을 처음 받아들이며 살피는 원형의 정상 틈새에서 흘러나가 그물처럼 번지는 가지는 맹렬하게 율동하며 유니콘홀드를 향해 이어지는 ‘길’을 만들고 있었다. 거성에 닿을 무렵에는 포석으로 꾸며진 그럴듯한 도로처럼 보일 지경!
‘이건 이상 없는 것 같고…….’
살짝 몬스터 거성의 정수가 정상적으로 풍경 속에 자리 잡은 것에 안도하면서 투란은 본격적으로 자신이 품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기괴하고 색다른 변화를 드러내는 유니콘홀드의 형상을 둘러봤다.
정상에서 흘러내려 가는 나선의 성벽, 그 위에 병사들이 하나둘씩 자리 잡으며 성벽을 순회하고 경비를 서는 듯이 자리 잡은 모습이 가장 인상 깊었다. 성벽 아래의 해자 속에서 검게 찰랑이며 괴상한 짐승과 몬스터의 모습이 잠깐씩 드러나는 것도 그만큼 인상 깊었고…….
‘이 자식, 얼마나 큰 거야?’
아무래도 페브라의 왕성보다 더 커다란 듯한 거성의 규모에 투란은 조금 움찔하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봐도 자신이 실제로 겪었던 요새보다 훨씬 더 크게 부풀어 버린 것처럼 느껴지니까.
―내게 보이는 바로는, 수직으로만 팔백여 미터는 가볍게 넘을 듯하군. 그것도 더 늘리고 줄일 수 있는 여력이 철철 넘쳐나면서 말이야. 그런 상태에서 불룩하게 보일 정도로 부풀고 있고…… 전체적으로 보자면 커다란 새알처럼 보이지? 못해도 육칠백 미터는 잡아야 할 지름이다. 배치된 병사의 숫자는…….
‘너, 저걸 탐색하고 있었냐?’
드라고니아가 뜬금없이 계측해 놓는 결과에 투란이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끼어들어 묻고 말았다. 이는 곧바로 드라고니아에게서 조금 낯선 반응을 불러낸 모양이었다.
―그래! 그러니까 이상하단 거다! 왜 저게 탐색이 되냐고!
‘어? 어…… 성이니까?’
―헛소리할래?
‘아니, 헛소리는 아니고…… 하아…… 내가 지금 내 마음의 풍경을 보는 중인데 우리 대화는 어째…….’
―응? 이건…….
드라고니아가 뒤늦게 알아차렸다는 듯이 놀란 외침을 낭랑한 소리로 이어붙이고 있었다.
“완전히 객관적이잖아?”
투란도 적당히 풍경에 어울리는 소리로 답을 한다.
“그래. 드라코눔의 아칸에게 완전하게 바깥세상의 맛을 보여 주는 거지. 혼마력이라고, 아케인 소울 파워라고도 하는 것에 대해 알아?”
“뭐? 그건 금단의…… 설마 그것까지 담고 있었다는 거냐?”
별빛 무리가 숨기지 못한 경악을 요란한 반짝임으로 드러냈다.
“완전히 탐색은 안 되는 모양이다? 뭐, 그편이 낫긴 낫겠다만…… 아무튼…… 저렇게 따로 노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어. 저 안에 품고 있는 몬스터 떼거리…… 아, 몬스터만이 아니구나. 짐승도 마수도 유니콘홀드의 경로에 걸쳐 있다가 포석에 감금당하고 다크미스트가 물들여 버린 녀석들이 가득해. 그런 녀석들이랑 내가 삼킨 몬스터랑 헷갈리게 섞기 싫어. 전부 굶겨 죽이고 죽은 채로 부려먹는 중이니까. 아닌 것도 있나? 에잇, 몰라! 지금 삼켜 버린 몬스터 요새를 탐구할 때가 아니잖아! 그건 나중에 하고!”
투란은 마음을 돌렸다.
* * *
손이 가슴을 더듬고 목걸이를 움켜쥐었다.
몸에 파고든 실그물의 무늬가 살갗 안에서 은밀하게 요동치며 투란에게 ‘혼마력을 어디에 쓰고 싶은가?’라고 묻는 듯했다.
‘얌전히.’
투란은 그 요동치는 힘을 가라앉힌 채로 멀리 보이는 모래성의 풍경에 다시 눈길을 보내며 집중했다.
투란이 아는 성, 아는 건물과는 여러 가지로 차이가 나는 도시, 성과 궁전…… 모래로 이뤄졌지만 충분히 그 거리의 의상과 풍속이 이질적이고 색다른 것을 느끼게 해 주는 망령의 세계.
“어쩌란 거야.”
문득 한숨을 쉬면서 투란은 자신이 디딘 포석을 내려다봤다.
몸에 두른 성벽 무늬가 사라지고, 눈알도 하나씩 감기며 지워졌다.
널찍하니 드러누워도 될 듯했던 포석이 오그라들면서, 투란이 디딘 무릎과 발끝 언저리에 작은 네모 칸처럼 남겨졌다.
사아아…….
모래가 흔들리듯이 포석에 눌렸던 부분을 자연스럽게 지워 버리듯이 꿈틀거렸다.
저편을 보기에 좋은 언덕의 한 곳, 다시 그런 풍경을 만들어 주는 듯했다.
그 꼴을 보던 투란의 입가가 뒤틀린 미소를 머금었다.
“흐흠, 기회가 되자마자 나를 멋대로 여기 끌고 와서 처박았다고 했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대놓고 성난 듯이 소리 내서 중얼거리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바로 따져 물었다. 괜히 이상한 짓 하지 말라고 미리 핀잔을 주는 말투였다. 그렇지만 그런 드라고니아의 낌새는 투란의 현재, 현실에 몰입하는 꼴은 아니었다. 마치 잠시 다른 일 하는 동안 일 저지르지 말라고 엄하게 외치는 낌새가 가득했다.
‘혼마력이 그렇게 신기한 거냐? 나중에 연구해, 나중에.’
짚자마자 드라고니아가 움찔하는 낌새가 고스란히 투란에게 전해져 왔다.
입가의 미소를 조금 더 뒤틀면서, 일부러 못된 짓하는 표정을 잔뜩 짓고서 투란은 그 일부를 살짝 드라고니아에게 노골적으로 전하는 기분을 담아 단호하게 말을 잇는다.
‘지금은 모래왕이랑 얘기 좀 해야 할 때야.’
―뭘 하려고?
염려와 함께 의아함, 호기심을 담아 드라고니아가 물었다.
대답을 대신하듯, 투란은 몸상태를 한번 점검하고 온전한 사람의 모습을 챙긴 채로 한 겹의 얇은 마력 장벽만을 두른 상태를 만든 다음에 모래를 짚었다.
모래 미궁이면서 전혀 다른 광경을 보여 주는 저 광대한 도시를 이룬 모래와는 다른 영역, 모래왕이 투란을 처박아 놓은 자리의 모래가 한 줌이라도 특별하다는 것처럼 투란의 손아귀에서 미묘한 요동을 일으키며 손가락 사이로, 살갗을 타고 물처럼 흘러나가려 했다.
주먹을 움켜쥐고 그 끝자락을 꽉 잡으면서 투란이 입을 연다.
“한숨만 불면 사라질 수도 있는 작은 모래의 조각을 남겨봐. 네가 기회를 잡고 처박고 지켜본 시간 동안 내가 대체 무슨 힘을, 마법을 얻었는가 보여 줄 테니까. 알고 있어야 할 거야. 내가 저 모래 망령의 도시에 무슨 짓을 할 수 있는가, 금세 지워질 정령의 조각에 시범 삼아 보여 줄 테니까. 참고로…… 이건 내게 아주 쉽고 편한 방법이야. 이 모래 망령의 도시, 미궁을 깔끔하게 지울 수 있는.”
드라고니아가 어이없다는 듯, 흘려듣기 힘들다는 듯이 바로 말한다.
―너, 지금 협박하는 말투다?
‘맞아, 협박이지.’
상큼하고 깔끔한 투란의 대답이었다.
그러면서 투란은 모래왕의 대답은 기다리지 않았다.
희미한 잔재만 남기고 새어 나간 모래, 영활(靈活)함을 담고 투란의 주변을 둘러치고 받쳐 주면서 모래 미궁의 망령, 저 도시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자리를 만들어 내는 모래의 잔재를 향해 투란의 손바닥…… 손금 사이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혼마력? 야, 뭘 하려고?
드라고니아가 더 이상 한눈팔 수 없다는 듯 급히 물었다.
말없이 투란은 손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