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5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42)
혼마력을 머금은 다크미스트였다.
모래의 잔재, 너무 작아서 그저 티끌이 희미한 누런 얼룩이나 남겼을 정도인 모래의 잔재를 침식(侵蝕)하며 거뭇하게 물들이는 몬스터 병기였다.
투란의 눈가에는 붉은 안개가 맺힌 채였고, 그 눈빛에 따라 다크미스트가 짙은 그림자처럼 찰랑이는 파문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파문에 모래의 잔재가 요동쳤고, 부풀어 올랐다.
순식간에 투란의 손에는 거뭇한 모래로 이뤄진 새끼손톱 크기의 작은 상자가 올려졌다. 너무 얇아서 안이 훤히 비쳐 보이는 모래의 상자, 그 속에서 요동치는 것 또한 모래였다. 원래의 잔재보다 훨씬 부풀고 늘어난 듯한 모래였다.
―다크미스트로 정령을 제압한 거냐?
지켜보던 드라고니아가 어리둥절한 듯이 물었다.
‘그래, 몬스터 로드의 능력이 아니고 순전히 요새의 마력으로 말이지.’
투란의 대답은 어딘가 냉정했다.
그리고 그다음 손짓은 한층 더 차가웠다.
상자를 올려놓은 손을 단숨에 움켜쥐었고, 으스러뜨리듯이 힘을 주면서 투란이 다시 소리 내어 말을 이어 간다.
“잘 봤지? 정령의 잔재라도 제압할 수 있는 몬스터야. 아주 특별한…… 모래왕, 너도 이미 알고 있는 마법의 요새가 지닌 힘이야. 저 도시를, 저 도시의 모든 망령을 잡아먹을 수도 있는 몬스터이기도 하지. 사룡의 힘과 이 몬스터의 능력이면 저 모래 도시를 망령과 함께 모조리 잡아먹을 수 있어. 그러면 저 도시가 뭘 감추고 있든 간에 그대로 드러날 테고, 사룡의 힘으로 쳐부술 수가 있을 거야. 내게 쉽고 편한 방법이지. 모래왕, 그러기를 바라?”
―정말 협박하는구나?
드라고니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핀잔하거나 멈추란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투란이 하는 말이 끝나면서 모래가 출렁였고, 투란 앞에 작은 모래 인형이…… 모래왕이 꾸민 조그마한 형체가 솟아났으니까. 그리고 투란이 긴 설명과 함께 짧게 물은 말에 대해 확고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모래왕은 그러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럼 알려 줘, 대체 저 도시를 어떻게 처리하란 거야? 온통 모래만 가득한 도시라고. 내가 들어가서 할 수 있는 일은 때려 부수고 싸우고, 결국은 이렇게 억누르고 잡아먹을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까 뭘 어떻게 하길 바라지?”
재빠르게 투란이 짚어 묻고 있었다.
드라고니아는 흥미롭다는 듯이 침묵했다.
모래왕의 인형은 머뭇거림 없이 바로 대답하고 있었다.
“모래왕은 그대가 저 도시 안으로 숨어들어 가길 바란다. 숨어들어서 몰래 맹약의 성궤를 탈취하기를 바란다. 성궤를 도시 밖으로 옮겨, 그 맹약을 해체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저주가 된 모래왕의 축복이 거둬지기를 바란다. 모래 망령이 모두 해방되기를 바란다. 또 다른 구속을 받지 않기를 바란다.”
“그게 될 일이냐? 저길 어떻게 숨어들어 가!”
귀를 기울이다가 낯을 잔뜩 구기면서 투란은 나직하게, 분명하게 분통 터지는 기분을 담아 되묻고 말았다.
시커먼 바탕에 하얀 반점, 혹은 새하얀 바탕에 검은 반점을 크게 찍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온통 모래만 가득한 곳에 투란이 어기적거리고 들어가서 대체 뭘 할 수 있겠는가!
저것이 진짜 도시라면 몰라도, 지금 모래왕의 말은 그저 억지에 불과할 뿐이었다.
모래로 몸을 범벅이 된다 해도 대체 망령들 틈새를 어떻게 들키지 않고 지나갈 수 있단 말인가.
“그대라면 이것을 사용할 수 있은 것이다, 고성(古城)의 마법으로 모래 정령의 파편을 앗아 갈 수 있다면 이것을 사용할 수 있을 터, 그러니 모래왕은 기대한다. 그대는 망령의 도시로 숨어들 것이다.”
차분하게 말을 마친 뒤, 인형은 바로 으스러지면서 흘러내렸다.
투란이 그 광경에 뭐라 하기 전에 인형이 으스러져 내린 자리에서 새로 치솟으며 꿈틀거리는 형체가 있었다. 역시 모래로 되어 있지만 모래왕과는 전혀 다른 기척, 기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떤 얼굴을 만들려는 것처럼 뭉클거리지만, 계속해서 무너져 내리는 기묘한…….
“이게 뭔데……?”
투란이 중얼거렸지만 대답은 없었다.
조금 짜증 난 표정으로 투란은 한번 더 심각한 협박을 할까 하는데, 드라고니아가 꿈틀거리는 형체 주변을 마력으로 흔들면서 말한다.
―잡아 봐, 어쩌면…… 일단 잡아 올려 봐라.
‘이게 뭔지 알아?’
갸웃하면서도 투란은 꿈틀거리는 모래를 손으로 퍼 올려 봤다.
계속 무너지는 것을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잡을 수는 없을 듯해서, 손바닥으로 퍼 올리는 셈이었다. 하지만 금방 드라고니아가 잡으라 한 말이 무엇인가 투란은 손아귀 속에서 금세 느낄 수 있었다.
허물어지다가 꿈틀거리며 무너진 부분을 다시 메우는 기묘한 것은 닿은 부분에 묘한 묵직함을 얹었고, 이를 가만히 움켜쥐듯이 조이니 그 부분만 살짝 고정된 것처럼 쥘 수가 있었다. 그 상태로 들어 올리고 보니, 무너지는 부분이 완전히 떨어져 나가질 않고 허공에서 가늘게 이어지며 바람결에 흔들리는 것처럼 다시 얼굴의 한 귀퉁이를 찾아 돌아와 메꾸고 있었다.
―진짜 있었군. 아티팩트가 된 정령, 데저트 데몬.
손끝에서 일어나는 마력에서 바로 발생한 프로브가 가볍게 모래 얼굴을 스쳐 가면서 드라고니아가 확인을 끝냈다는 듯이 말했다.
‘그게 뭔데? 잠깐, 데몬이면 악마종 계통 아니야?’
투란은 이제 손가락으로 얼굴을 잡으며, 얇게 펼쳐진 듯하면서도 나름대로 두께를 지닌 채로 쉴 새 없이 무너지고 복구되는 기괴한 양상으로 허공에서 형체를 유지하는 꼴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름이 데몬이면 보통 악마종이기는 하다만, 아닌 경우도 많아. 이 아티팩트가 그런 경우지. 지금은 고대의 유물 중에서나 볼 수 있고 다시 만들 수는 없다고까지 하는 희귀한 것이기도 하고.
‘정령이 아티팩트가 될 수 있나?’
가만히 듣다가 투란은 갸웃하면서 물었다.
마력으로 구성된 아티팩트가 정령의 특성을 지닌 채로 정령처럼 활동하는 것이라면 드라코눔의 스피릿 아티팩트, 투란 자신도 이미 지니고 있는 정령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있을 수가 있는가?
투란은 그런 쪽으로 전혀 들은 적이 없었다.
―정령을 부르는 도구가 만들어질 당시, 거기서 한층 더 나아가 정령을 물질화하고 이 세상에 고정하는 비술을 다루는 이들이 있었다고 하더군. 그림 투아란의 시절이었고, 그 비술을 품은 나라가 그림 투아란의 죽음 이후에 드래곤의 저주와 분노로 사라졌지. 당연히 비술도 함께 사라졌고. 그 나라가 아마도…….
‘사막이 돼 버린 왕국이었다? 그러면 이 유명한 데저트 데몬은 대체 뭐 하는 아티팩트인데? 가만, 그때는 사막도 아니었던 시절 아냐? 이걸 어디 쓰라는 거지?’
한층 더 아리송한 아티팩트, 그 실체조차 무너지다가 다시 겨우 바람결이 긁어모아 두는 듯한 얇은 모래 얼굴인 것을 보며 투란은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드라고니아에게는 그런 모호함이 없는 듯했다.
―얼굴에 써라. 가면이잖아.
‘응? 가면? 그건 그러네? 쓰면 되는 거라고? 몬스터 로드인데?’
―쓰면 알게 되겠지. 모래왕이 괜히 내준 것인가, 아닌가.
왠지 한층 더 단호한 드라고니아의 말이었다.
조금 미묘하기는 했지만 투란으로서도 모래왕이 내준 것을 그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열심히 협박한 시늉을 한 것도 뭔가 방법을 내줄 것을 기대했고, 그 기대에 호응해서 내준 것이니 일단 써보기는 해야 할 터였다.
그래서 투란이 모래 얼굴, 데저트 데몬을 조심스럽게 얼굴에 가까이하자 모래는 한층 더 꿈틀거렸고 노골적으로 투란의 얼굴에 닿으려는 듯이 흐르는 방향조차 바뀌고 있었다.
뭔가 혀를 날름대는 듯, 가는 실 같은 촉수를 꿈틀거린다는 분위기에 투란은 살짝 움찔했지만 그래도 모래 얼굴을 자신의 얼굴에 덧대듯이 붙였다. 모래 얼굴은 가면답게 투란의 얼굴에 겹쳐지면서 순식간에 그 형태를 변화시켰다. 정확하게 투란의 얼굴에 들어맞게, 그리고 고스란히 투란의 얼굴이 드러나는 형태였다.
그에 대해 뭔가 느끼기 전, 투란은 이 데저트 데몬이 단순히 얼굴만 감싸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얇디얇은 막이 머리카락 사이를 헤집으며 살갗 위로 흘러넘치기 시작했고, 목과 가슴, 등을 타고 온몸으로…… 결국은 팔다리를 넘어 손끝 발끝까지 닿고 있었다.
‘뭐야, 이거?’
투란이 반사적으로 일으킨 마력 장벽,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이 모래 얼굴을 기점으로 퍼지는 모래의 피막에 전혀 간섭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숨을 쉬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데저트 데몬은 완벽하게 투란의 몸 구석구석을 차지한 채로 두터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살갗 안으로 미묘하게 잔털처럼 밀려드는 부분도 있었고, 그 부분을 투란이 느끼는 순간…… 세상이 변했다.
“우어! 우어어어어!”
째애액, 째잭.
하늘은 새파랗고 높았다.
그 하늘을 가리는 나무, 기이한 열매가 매달린 나무에는 새들이 오가며 파먹고 울어 대면서 기분 좋은 날씨라고 안부를 주고받는 분위기를 펼쳐 놓고 있었다. 그런 나무와 새들의 풍경으로 주변이 채워진 채로 숲의 길은 길게 이어지며 저 먼 곳의 도시 풍경을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숲을 스쳐 가는 바람은 시원했고 딛고 있는 땅은 푹신하면서도 찰지고, 나름대로 습기를 머금은 숲의 토질(土質)이었다.
멀리 보이는 도시, 그 도시와 이어진 길은 강을 건너는 다리와 내려가는 언덕의 일부였다. 강은 주변을 풍요롭게 해 주며 그 속에서도 활발히 움직이는 물고기의 비늘을 간혹 비춰 주고 있었다.
저 풍경을 바라보는 자리는 막 숲에서 벗어나는 길목.
사막 따위는 흔적도 없는 곳에 멀뚱히 선 채.
“와아.”
투란은 놀라던 소리를 마무리 지으면서 손을 들어 눈앞에 올렸다.
낯선 차림새는 손가락을 훤히 드러내고 손목으로 이어진 장갑부터 바로 시작되고 있었다. 두건부터 장화에 이르기까지, 투란은 이제까지 이런 모양의 옷차림도 있었던가 절로 의아할 정도로 낯선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두건이 붙은 웃옷, 가슴 아래에서 허리를 감싸고 앞섶까지 내려가는 기묘한 복대이면서도 확장된 코르셋 같은 가죽 갑옷…… 정말 갑옷인가 그냥 차림새인가 헷갈리는 것부터 무릎 아래까지 펑퍼짐하게 퍼지다가 종아리를 조이는 장화 속으로 조여들어 가는 바지, 대체 어느 나라에서 이런 양식의 차림새를 하는가?
팔꿈치를 넘어 펑퍼짐하다가 손을 조이고 손목을 넘어 팔뚝을 감은 완갑에 조여 대는 웃옷 소매도 비슷한 양식이었다.
‘칼도 있네?’
문득 허리춤에 덜렁거리는 검……인가 해서 보니 검처럼 주욱 뻗어 가다가 중간 부분부터 부드럽게 휘어지는, 살짝 낯선 모양이었다. 칼자루와 칼집이 매끈하게 이어진 꼴이 도저히 칼날의 시작부를 구분할 수 없는 지경, 대체 이모저모로 왜 손을 보호하는 가드 부위가 없는가?
투란은 머리를 더듬어 봤다.
두건이 매 혹은 독수리처럼 머리를 덮고 있었다.
‘야, 나 다른 곳으로 옮겨진 거야? 몸을 덮은 모래 잔털? 가시? 그건 아직 느껴지는데…….’
―넌 제자리에 있다. 이건 데저트 데몬이 너의 모든 감각을 뒤틀어서 보여 주는 환영이야, 하지만…… 그냥 환영이 아니라 모래 도시와 망령들의 형체를 바탕으로 꾸민 듯하군.
투란이 자신이 느끼는 바를 전하며 말하자마자 드라고니아가 침착하게, 하지만 역시 놀란 낌새는 감추지 않고 대답하고 있었다.
덕분에 투란도 한층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 로드인, 다른 한편으로는 독특한 마력 장벽에다가 다양한 오러 가드까지 덤으로 펼쳐 낼 수 있는 투란의 감각을 대체 얼마나 뒤틀었으면 모래 미궁의 풍경을 통째로 지우고, 이렇게 숲과 강, 짐승이 모두 멀쩡한 세상의 풍경을 진짜처럼, 실물처럼 느끼게 한단 말인가!
‘정말로…… 몬스터 로드의 손에서도 위력을 발휘하는 아티팩트라고?’
무엇보다 투란은 이 점부터 짚어 볼 수밖에 없었다.
드라고니아가 이 말에 문득 알았다는 듯이 쓴웃음을 섞어 말한다.
―투란, 데저트 데몬은 그림 투아란 시절에 그림 투아란을 위해 만들어졌던 아티팩트야. 그 기반이 되는 마법을 구성하는데 드래곤의 도움까지 받았다고 하더군. 덕분에 정령을 아티팩트로 변환시키는 비술이 구상 단계에서 단숨에 실현 단계로 도약했다고까지 했다. 사라질 때는 정말 나라와 함께 단번에 사라지기도 했지만.
‘그람투아란? 그렇다면?’
―그래, 처음부터 몬스터 로드를, 드래곤 로드라 불리던 강대하기 이를 데 없는 몬스터 로드를 위해 구상되고 만들어진 것이니까 너도 별 탈 없이 쓸 수 있지. 다만…… 모래왕이 왜 이걸 갖고 있었는지, 이 모래 미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애매했다. 하지만 미궁이 돼 버린 왕국의 원래 풍경을 이렇게 보여 주는 거라면…… 모래 망령은 어떻게 보일까? 네가 그 안으로 섞여 들어가면 대체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일까?
투란은 뭐라 답할 수 없었다.
대신 변해 버린 세상, 그 풍경이 답하고 있었다.
덜그럭, 덜그럭.
“어이, 길 가로막지 말고 좀 비켜요!”
마차를 몰고 멀쩡한 모습으로 투란에게 외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 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