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5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45)
―미안, 조금 당황했다. 기록으로 접하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생생하게 지켜볼 일이 될 줄은 상상도 한 적이 없어서.
드라고니아 담담하게 늘어놓는 사과의 말은 투란을 한층 더 오싹하게 했다!
핀잔하거나 얼버무리는 대신에 미안하다니…….
‘무슨 일인데?’
슬그머니 묻는 시늉을 하면서도 투란은 일단 데저트 데몬의 움직임, 주변의 변화하는 상황을 주시했다. 맡겨 두면 알아서 하는 것 같지만 가만히 보니 데저트 데몬 또한 망령의 하나처럼, 과거의 환영 한 가지를 뒤집어쓴 채로 그 역할에 충실히 움직이고 있었다.
도움이 되는 동안이라면 괜찮지만, 자신이 이 모래 미궁의 환영 속에 침투한 목적에 방해가 되는 부분이 나온다면 투란은 빠르게 나서서 움직일 속셈이었다. 의지를 지닌 채로 말을 하거나 행동하려 하면 데저트 데몬이 바로 호응해서 투란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해 둔 채이니까.
이 상태를 투란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는 않았다.
과거의 환영을 보여 주면서 그 과거에 끼어드는 행동, 말을 할 수 있다니…….
마법이구나 하고 그냥 넘어가며 복잡한 생각 하지 말라는 드라고니아의 태도로 보건대, 드라고니아 또한 투란을 제대로 납득시킬 방법이 없는 것을 훤히 알 수 있었다.
때문에 투란은 마음의 경계를 잔뜩 끌어올린 채로 낯선 앙트의 풍경, 상황을 지켜보는 채로 드라고니아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더 캐내려 하고 있었다. 드라고니아도 이에 호응하듯, 뜬금없던 사과의 말과 다른 이야기를 바로 꺼내주었다.
―이 용족이란 녀석들은 우리 일족, 드라코눔의 일족과는 전혀 다른 경우야. 용혈(龍血)을 근원으로 삼지만, 거기에 완전히 종속되는…… 세계의 섭리를 뒤트는 혼돈의 존재, 이런 말이 어렵다면…… 간단히 말해서 몬스터 로드가 삼킬 수 있는 녀석들인데 몬스터라고 하기는 좀 어려운 품성과 지능을 지닌 놈들, 알아듣겠냐?
‘대강 알 것 같네. 자신이 무슨 종족이라고 떠벌리는 녀석이잖아. 몬스터 로드는 저런 것들 삼킬 수 있어도 삼키지 말라고 하는 경우겠지. 그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라?’
문득 이어진 생각에 투란이 멈칫했다.
그 생각을 드라고니아가 바로 부연하듯, 확신하듯 잇고 보태 말한다.
―그래, 과거에 이런 녀석들을 삼켜서 벌어진 일 때문에 할 수 있어도 해서는 안 되는 금기로 자리 잡은 것이지. 너는 그 과거를 겪고 보는 셈이고…… 얼마나 간섭할 수 있는가 모르겠다만, 모래왕이 원하는 해결이 가능하다 해도 쉽지는 않을 거야. 몬스터 로드인 네가 아니라 데저트 데몬이 꾸미고 있는 역할에 집중해야 할 테니까. 그 역할을 이용해서 더 깊이 들어가야 하고.
복잡해질 상황을 예상한 것처럼 살짝 우려(憂慮)가 실린 이야기였다.
왠지 한숨을 쉬고 싶은 기분을 느끼던 투란은 데저트 데몬이 광장을 벗어나서 리저드만의 비명이 들리지 않는 골목 깊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며 의문을 품어야 했다.
‘어디로 가는 거지?’
―시야가 차단되고, 소리도 쉽게 새어 나가지 않는 환경이로군. 어딘가 은밀한 곳을 찾아가는 모양인데?
‘길을 헤매지도 않는걸?’
―원래 고향이라고 하지 않았냐?
‘어? 그랬네? 하지만……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은 아니잖아?’
―그렇긴 해도 최소한 앙트의 지리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겠지. 목적이 있다면 지리 파악은 미리 해 놓고 움직여야 할 테니까.
‘그래, 그리고 여기가 그 목적지인가? 너, 살펴볼 수 없어?’
―안 돼. 모래 망령과 미궁만 감지될 뿐이야. 너를 통해서 이 환영을 관찰하는 것이 고작이다. 애초에…… 너라는 매개체가 없었다면 난 네가 모래 미궁 안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뭘 하는가 전혀 모를 상황이라고.
‘으흠, 그것 참…….’
혀를 차는 시늉을 했지만 투란은 납득할 수 있었다.
데저트 데몬이 보여 주는 이 환영, 오감을 전부 뒤틀어 보여 주는 과거의 모습은 그 뒤틀림을 넘어설 경우 바로 모래 미궁의 거대한 풍경…… 현재의 진실을 드러낼 뿐이었다.
현재의 본래 모습으로 그 진실을 더듬고자 한다면, 맞이해 줄 것은 말도 안 통하고 어디나 누런빛이 가득한 채로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를 모래가 온갖 기괴한 형태와 양상으로 꿈틀거리는 사막 지하의 거대한 공동을 헤매는 꼴이 될 뿐이었다.
그래서 투덜거린 투란에게 모래왕이 건네준 데저트 데몬이잖나.
‘최대한 많이 보고, 움직일 방법을 찾아야겠네. 그런데 여기서 대체 뭘 찾아야 하는 거라고 했더라?’
새삼 다짐을 하며 투란이 중얼거렸다.
이에 응한 것처럼, 데저트 데몬이 투란의 입을 움직이며 기묘한 소리를 섞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맹약의…… 흐아웅…… 사도로서 찾아왔으니…… 알흐람…… 진실의 문을 열라.”
귀에 담겨 온 말은 훨씬 길고 복잡했지만 투란이 파악한 말은 이 정도였다. 그중에서 투란의 관심을 끄는 낱말은 고작해야 ‘진실의 문’ 하나였다.
‘뭐야, 무슨 트루세이어라도 되나?’
―마법의 키워드일 뿐이야.
드리고니아가 짧게 투란에게 대꾸하는 사이, 그늘진 골목의 벽 한쪽이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리면서 문이 드러났다. 벽에 금을 그어 놓은 듯한 문이 안쪽으로 함몰되며 열렸고, 아래를 향한 긴 통로가 드러났다.
투란은 그 통로 속에서 졸졸거리는 물소리가 나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고 보니 여기 도로를 따라 수로가 있었지?’
작은 시냇물처럼, 한 걸음이면 건너는 좁은 폭이었지만 도로 양쪽으로 물길이 열려 있었다. 앙트의 중심 어딘가에서 외곽 지역을 향해 흘러가는 물길이었다. 깊이도 고작해야 무릎이 간신히 잠길 정도에 불과했지만 도시 전역에 이런 식으로 물길을 깔아 뒀다는 점은 투란에게 알드바인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었다.
―알드바인과 좀 다르긴 하다만, 앙트도 지하에 수원(水源)을 관리하고 도시의 상하수도를 개설해 놓은 도시로 유명했어. 이 지역의 풍요로움은 그렇게 물 관리를 잘하는 앙트 덕분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말이지.
‘음, 그런데 그렇게 뚫어 놓은 지하를 이상한 녀석들이 이용하는구먼.’
미묘한 쓴웃음과 함께 투란은 데저트 데몬이 움직이는 두 다리의 감각을 느끼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마법으로 가려진 문을 열고 들어온 통로는 좁으면서 원래의 구조물에 살짝 덧댄 듯한 길이었다.
이리저리 굽어지는 그 좁은 길을 가다 보니, 지상의 광장과 비슷하면서도 훨씬 좁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꽤 넓고 큰 밀실로 여겨질 공간이 나타났다.
이미 오래 기다리고 있었던 듯한 여러 모습이 그 밀실 곳곳에, 쌓아 놓은 상자를 의자 삼아 앉거나 서 있었다.
그 분위기에 익숙한 듯, 데저트 데몬은 투란의 몸을 움직여 한구석으로 갔고 자기 자리란 것처럼 섰다.
전혀 이 분위기에 익숙할 리가 없는 투란은 그 사이에 미리 자리 잡은 이들 중 몇몇의 기척이 왠지 낯익다는 것을 느끼고 당황했다.
‘뭐야? 어디서 본 듯한데? 본 적이 없을 텐데? 아는 얼굴도 아닌…… 얘네 인간이 아닌 거지?’
두건 아래로 인간의 낯짝일 리가 없는 몰골까지 서넛 확인하고 나니 한층 더 무슨 상황인가 알 수가 없었다.
―몇이나 있는가도 알 수가 없군! 투란, 네가 보고 듣는 사방에 은신하고 있는 녀석들이 한가득하다. 모습을 드러낸 녀석들이 전부도 아니지만, 계속 오락가락하는 짓을 하는군. 대충 많이 잡아서 열둘, 셋 정도이고 거기에 네가 합류한 꼴이다.
‘가시 박힌 비늘 보이는 저 턱, 용족이라고 해야겠지?’
―음…… 가시뱀의 혈통이라면 용족이란 표현보다, 용종(龍種)이라고 해야 할걸? 씨앗처럼 이 세상에 뿌려져서 용혈의 부름을 기다리는 경우라서 어떤 모습으로 싹이 돋을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종, 그중에서 저런 비늘을 가진 녀석들이 꽤 큰 규모를 키워 냈다는 기록은 봤어. 거의 왕국의 군단 수준이었고, 다양한 상황에서 자주 노출된 종이기도 했다더군.
‘뭔 뱀의 혈통인데 두 발로 서 있냐?’
호칭과 다르게 강철을 덧댄 가죽 바지가 두 다리를 확실하게 조인 모습이었기에 투란은 투덜거렸다.
마침 데저트 데몬도 말문을 열고 있었다.
“격변의 시기에 동포들을 만나게 되었소. 나는…….”
“동포라 할 수 있는가? 인간의 마도(魔道)에 포박된 존재, 그 그림자에 불과한데? 언제 반역자의 군세에 합류할지 모르는데?”
누군가 날카롭게 말을 자르면서 투란에게, 투란이 뒤집어쓴 데저트 데몬의 모래 형체를 향해 살의(殺意)와 적의(敵意)를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뭔 얘기인가 설명은…… 안 해 주겠지?’
내막을 알 수 없어 답답해하는 투란.
―인간의 마도…… 포박?
수수께끼의 단서를 잡았다는 듯이 더듬는 드라고니아.
둘의 이런 노력을 비웃듯 데저트 데몬이 바로 답을 하고 있었다.
“동포의 의혹은 당연하오. 하지만 그 의혹에 따른 대책이 멸살(滅殺)뿐이라는 생각에는 반대하오. 그것은 우리의 위대한 지배자를 의심하는 반역 행위이잖소? 다른 말 하기 전에 먼저 나의 영혼 감옥을 확인하라 권하겠소.”
―영혼 감옥? 설마 영혼뢰(靈魂牢)!
드라고니아가 단숨에 어떤 단서를 얻은 것처럼 놀라 중얼거렸다.
투란도 덩달아 놀라서 중얼거림을 보태고 있었다.
‘영혼 감옥! 무슨 사제의 대봉인술이라던데? 용족이 그런 것도 쓸 줄 안다고? 얘네 용족 맞아?’
저편에서 살의와 적의를 노골적으로 흘려 내던 이가 쿵쿵거리며, 메아리까지 울리는 발소리를 내면서 다가오는 채로 하는 말이 투란과 드라고니아의 관심을 끌며 놀란 기분을 바로 가라앉혔다.
“영혼 감옥은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위대한 지배자께서 직접 하사하신 영혼 감옥이 아니잖아. 잡아먹힌 죄를 범하고, 영혼 감옥인 척하며 우리를 사냥하러 나서는 포식자까지 나타났다. 확인할 수밖에 없어. 반대하는 자는…… 없겠지?”
투란 앞쪽으로 꽤 다가온 다음, 주변을 돌아보며 사나운 눈길을 잔뜩 뿌리며 묻는 말에는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위험한 분위기를 잔뜩 풍기면서 데저트 데몬을 씌운 채인 투란에게 손톱을 내밀고 있었다!
‘크고 날카로운데? 저거 대체 뭐야?’
움찔거리려는 몸을 억누르면서 데저트 데몬에게 이 상황의 처리를 맡기면서도 투란은 비늘 바탕에 털이 돋고 상아빛 손톱이 작은 단도처럼 튀어나온 손…… 두건 아래로 가면까지 둘러서 낯짝이 보이지 않지만 두건과 가면 틈새로 수염 같은 털을 내밀고 있는 괴이한 모습의 정체가 궁금했다.
드라고니아가 살짝 신음하는 듯한 말투로 바로 답한다.
―드라코니스…… 우리 일족 이전에 드래곤의 사도로서 이 땅에 출현했다는 드라코니스, 드라코니안이라고도 불리던 종족이다. 드라고의 육체와 드라코눔의 상위 마법으로 무장한 경우라고 생각해라.
‘무시무시한 경우잖아!’
한 박자 늦은 투란이 대꾸였다.
그리고 더 그 정체를 궁금해할 겨를이 없었다.
데저트 데몬이 가볍게 가슴팍의 옷자락을 헤쳤고, 맨살이 드러나는 상황이었으니까. 심지어 그 맨살에 검은 무늬의 마법 각인이 선명하기도 했으니, 더욱 주의 깊게 되는 것인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상황은 드라코니스의 손톱에서 빛의 무늬가 번져 나오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빛의 무늬는 허공을 수놓았고, 손톱과 가슴 사이를 잇는 가교(架橋)가 되었다.
동시에 투란은 데저트 데몬이 새로운 영역의 환상을, 지금 보이는 상황 속에 겹쳐서 보여 주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 정사각형의 강철 상자에 감금된 풍경, 앙트의 지하에 상자가 쌓이고 이런저런 모습들이 서고 앉은 풍경과 완연히 다르지만 동시에 존재하는 그 광경은 투란에게 익숙했다.
‘문장의……?’
몬스터 엠블럼을 통해 몬스터 로드가 완성해야 하는 심상, 그 풍경이었다.
그런데 그 풍경 속에 비정상적이고 이질적인 상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
그 상자를 향해 몬스터 엠블럼의 외부에서 스며든 빛의 무늬가 다가가는 것은 한층 더 이질적이었고, 투란에게 어째서 고유 마력이 방어하지 않고 용납하고 있는가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허용하고 있어. 몬스터 엠블럼이 갖춘 고유 마력의 방벽은 몬스터 로드의 의지, 마음가짐에 따라 외부의 마력을, 마법을 받아들일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저 드라코니스의 마법을, 데저트 데몬이 꾸미고 있는 망령이 완전히 받아들이는 상황인 거야. 음, 이제는 볼 수 없는 광경이 분명하지만…….
‘무슨 마법인데? 어?’
되묻던 투란은 흠칫하며 지켜보기에 집중해야 했다.
빛의 무늬가 심상 속의 상자에 닿자, 강철의 질감이 상자에서 생겨났고 동시에 윙윙웅웅 상자가 울리기 시작했다.
―열어! 내가 주인이라고! 내가 삼킨 놈이 나를 가두게 하지 마!
―주인? 영혼 감옥에 갇힌 너는 더 이상 이 몸의 주인이 아니다.
두 가지 소리가 단숨에 뇌리를 울리듯이 이어지면서 말다툼을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언제 시작했는지 알 수 없는 논쟁인 듯했고, 언제 끝날지 짐작도 할 수 없는 격렬한 난투의 분위기가 넘쳐났다.
더 자세히 듣고 살필 것도 없이 투란은 깨달았다.
영혼 감옥, 몬스터 엠블럼…… 용족을 동포라 부르는 녀석과 그 몸에 새겨진 문장 깊은 곳에 마법의 감옥 속에 감금당한 심혼(心魂)…….
상황이 꽤 명확하잖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