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5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46)
Chapter 190. 모래성의 기억 Ⅱ
‘심상이…… 보인다고?’
명확한 상황, 그에 대한 납득으로 인해 투란은 샘솟는 짙은 의혹과 함께 당황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 로드의 심상, 그 풍경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창문 너머 거리를 구경하는 것처럼 보이다니!
뭔지 모르고 볼 때와 알고 나서 볼 때의 생각이 완연히 다른 셈이었다.
이에 대해 드라고니아가 빠르게 이야기한다.
―마법 때문이야. 저 빛의 패턴에 담긴 마법이 객관적으로 심상을 투영해 주는 거야. 투란, 주변을 둘러봐라. 다 같이 데저트 데몬이 드러낸 심상 풍경, 영혼 감옥의 상태를 살피고 있잖아.
‘어라? 그러네?’
투란은 앉고 선 채로 구경하는 자들을 둘러보면서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 또한 투란처럼 데저트 데몬이 흉내 내는 자, 몬스터 로드이지만 그 영혼이 감옥에 갇힌 채로 몸을 빼앗긴 꼴이 된 자의 심상 풍경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 광경은 투란에게 조금 전의 대화를 되새기게 했다.
데저트 데몬이 투란의 입을 통해 말했던 것.
영혼 감옥을 확인하는 일이다.
빛 무늬가 투란이 지금 엿보는 마음의 풍경을 현실 속으로 꺼내 비춰 주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데저트 데몬을 두른 투란 역시 볼 수 있는 광경이었고!
‘음, 이제 이해는 했어. 그래도 왠지 꺼림칙하네.’
결국 저 빛 무늬가 마음속을 훤히 비춰 주는 마법이란 뜻이었다.
당장 투란에게 몬스터 로드인 녀석의 심상, 그 속에 자리 잡은 영혼 감옥을 저리 보여 주며 그 안의 갈등까지 드러내 주다니…….
“동포들이여, 확인했소이까?”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투란은 움찔했다.
데저트 데몬이 누군가의 흉내, 어떤 역할을 하는 중이란 것이 새삼 투란을 곤혹스럽게 했다. 몬스터 로드인데 영혼 감옥에 걸려 버리고, 정작 삼켜 버린 몬스터인 녀석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 상황이라니…… 어쩐지 투란에게는 드라고니아가 이러면 어쩌나 하는 미묘한 불안이 떠오르잖는가.
―나는 못 하는 일이다.
드라고니아가 뭔가 미묘한 혐오감을 담아 투란의 상념에 대답하고 있었다.
‘어? 내가 뭐라고 했냐?’
투란이 시침 떼듯 툴툴거리는 사이, 데저트 데몬의 가슴에 닿았던 빛 무늬가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 빛 무늬, 마법을 썼던 기괴한 자의 얼굴에서 가면이 떨어져 내리면서 묵직하고 기괴한 숨소리가 섞인 말도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확인했다, 내게는 충분했다. 충분하다 여기지 않는 동포는 나서서 말하라.”
그 얼굴이 바로 눈에 확 들어왔기에 투란은 누가 뭐라 하며 나서는가를 제대로 살필 수가 없었다.
‘와앗, 수염 났어! 무슨 드라고인데 수염이!’
―드라고 아니야! 드라코니스라고! 근원 자체가 완전히 다른 종족이란 말이다! 잘 지켜보기나 하라고!
‘음? 으음, 영혼 감옥 상태 보더니 다들 그냥 넘어가는 모양인데?’
―기분 나쁘다는 분위기를 대놓고 드러내는 놈들이 늘었다. 몬스터 로드, 이놈들은 포식자라고 불렀지? 포식당한 채로 포식자의 영혼을 감금했다고는 해도 역시 몸의 순수성을 따지자면 몬스터 로드의 본래 종, 인간이라서 싫다는 태도였다고!
‘으흠? 얘네는…….’
듣다 보니 투란도 조금 더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새삼스럽게 이 패거리의 실체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래 미궁 속에서 멀쩡한 하늘이라든가, 과거의 왕국 모습을 본다는 낯설고 이상한 상황인지라 이런 도시의 지하 은밀한 곳에 모인 녀석들이 인간이 아니라고 해서 딱히 이상할 것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 자리로 투란을 인도한 녀석이 사실은 몬스터 로드이고 영혼 감옥이란 이상한 마법에 의해 몬스터의 의지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이 상황은 그런 환영, 과거의 일에 불과하다는 감상을 싹 날려 버렸다.
게다가 드라고니아는 이미 이 녀석들을 보면서 이 왕국의 옛날을 추측하고 있는 듯하니, 투란보다 먼저 과거의 환영이 지닌 의미를 더듬는 듯했고 뭔가 짐작이라도 하는 것 같잖나.
‘무슨 일인가 아는 것 있어?’
신중하게 투란이 물었다.
어설픈 추측을 걷어치우고, 이 용족이니 동포이니 뭐니 하지만 실제로 드러난 생김새는 모두 제각각인 듯한 꼴도 심상치 않았다.
가시뱀, 드라코니스…… 그 외에도 털이 무성한 채로 뱀 눈을 가진 놈이라든가, 놈이라고 하기보다는 년이라고 불러야 할 몸매지만 여우나 늑대를 섞은 듯한 머리통을 지닌 놈까지 있었다!
뭐라 부르든 이놈들은 동포라는 말을 꺼낼 정도로 동일한 종일 리가 없었다.
―용혈을 근원으로 삼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용혈이 이 세상에 적응하면서, 세상이 간직한 형태에 맞춰 적응한 모습이야. 그러니…… 동포 맞아. 자신들을 용족이라고 부를만한 까닭은 있어. 그리고…… 들어 봐,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것이 정말로 드래곤을 숭배하는 집단이잖아.
‘그런 집단 들어 본 적 없어! 내가 보기에는…… 무슨 신전의 사제단? 그쪽이 더 쉽게 떠오르는데? 몬스터 사냥한답시고 춤추는 산맥 깊이 들어와서 멋 부리는 사제들이 얘네랑 비슷해.’
―맞아, 거의 그쯤으로 납득하는 편이 쉽겠군. 아, 좀 들어 봐라.
드라고니아는 뭔가 안부를 주고받으면서 천천히 두건을 벗고 중앙에 모여드는 여럿이 본론으로 넘어가는 광경을 짚으며 투란에게 말했다.
투란도 귀를 쫑긋하든 관심을 모았다.
빛 무늬 마법을 썼던, 수염 난 드라고로 보이는 녀석이 소리를 높여 말할 때였다.
“이 자리에 모인 동포여! 이제 의논을 할 때가 되었소! 우리가 여기까지 온 까닭! 온갖 역경을 견뎌 내고…… 심지어 포식당한 수모까지 버티며 모인 까닭! 그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때요!”
“드리츠람, 너무 거창하게 떠들지 말아요. 다들 알고 있으니까.”
여우와 늑대의 머리, 인간 여성의 몸매를 한 이가 수염 난 드라고를 향해 핀잔을 하듯, 한숨 섞인 말투로 소리 냈다. 살짝 그르렁거림이 섞인 그 소리는 곧바로 드리츠람, 수염 난 드라고의 눈길을 돌리게 했다.
“코르티알, 알고 있다면 말하라.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가!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엄격한 말투는 코르티알이라는, 아무리 봐도 투란에게는 낯설고 이상한 여자에게 이야기를 강요하는 듯했지만 정작 나오는 대답은 기다렸다는 듯했다.
“냉정하게, 숨김없이 말하자면 우리는 패배했다고 해야겠지요.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반역자가 진정한 드래곤으로 인정받는 상황을 우리는 어찌할 수가 없으니까요. 우리가 그를 반역자라 부른다는 것부터 이미 불경하다며 처단하려는…… 한때는 우리 모두의 동포였던 이들조차 그러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상황을 반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반역자가 차단해 버린 교감, 진정한 우리의 지배자와의 교감 통로를 다시 여는 것.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 일이 가능할지, 가능하더라도 과연 언제 실현할 수 있는가를 전혀 알 수 없는 지경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반역자의 군세에 우리가 한때 동포라 불렀던 이들이 참여하고 있기도 하지요. 심지어……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자리에 있는 동포 중에서도 여전히 그 유혹을 받아 갈등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니 불편해하지 말아요. 위대한 지배자와 교감할 수 없는 우리에게 반역자는 그저 외면할 수 없는 강대한 존재이며, 어찌 보면 완벽한 대안일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니까요. 드리츠람, 노여움을 드러내기 전에 냉정하게 판단해야지요? 현재 상황을 감정에 휩쓸려서 인정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저 지성을 부여받은 짐승에 불과할 뿐이란 것을 기억해야 할 겁니다. 그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에게 반격의 기회가 있으니까요.”
여우와 늑대가 섞였어도 길쭉한 입이 다물어졌다.
대신 팔짱을 낀 도도한 여인의 몸짓은 그 눈길이 사방을 휘저으며 반박하려면 해 보라고 을러대는 듯한 낌새를 잔뜩 뿌려내고 있었다. 말보다 행동으로 의지를 드러내는 태도였다.
드리츠람은 수염을 긁적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투란에 덧씌워진 데저트 데몬 역시 이 상황에서는 별 역할이 없는 듯 침묵했다.
말문을 연 자는 뾰족한 가시가 돋힌 비늘을 지닌 채로 두 발로 선, 가시뱀의 용족이었다.
“코르티알의 말에 동의한다, 어쩔 수 없지만 서펜트 나인(Nine) 중에서 일곱이 전멸해 버렸으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말은 금방 가벼운 소란, 당혹스러운 반응을 끌어냈다.
“일곱? 그새 둘이나 더 당했다고?”
“닷새 전까지 확인했다, 분명히 다섯일 텐데?”
짜악, 비늘이 가시를 삼키는 듯한 박수 소리가 짧게 울리면서 웅성거리는 동요를 멈추게 했다.
“어제까지, 나의 크림슨 서펜트를 제외하고는 서펜트 헤드는 모두 떨어져 나갔다. 아홉 군단 중에서 나의 군단만이 온전하며, 일곱은 전멸했다. 하나 남은 군단에는 현재 지휘권을 지닌 자가 없기에 내 휘하로 합류하는 중이다. 내가, 이 굴디아드가 여기 참석한 까닭이 그 때문이다. 드높은 긍지를 지닌 서펜트 나인의 아홉 머리 중 여덟이 떨어졌고, 군단조차 일곱이 전멸하고 머리 잃은 하나와…… 만약을 대비한 최후의 머리로서 뽑힌 나만 남았으니까. 더 이상 긍지와 사기만 내세워서는 이 도시를 맴도는 샌드웜 한 마리도 어쩔 수가 없는 지경이다. 알고 있겠지만 샌드웜은 반역자가 내세운 용의 화신 셋 중에서 가장 약하다. 우리는 그 최약체 하나조차 제대로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이 된 것이야. 그러니…….”
가시뱀의 용족, 굴디아드는 마지막 말을 망설이듯 흐렸다.
코르티알이 그 끝말을 밝히듯이 말을 잇는다.
“남은 것은 음모와 계책뿐이지요. 위대한 지배자의 위엄과 권세로서 반역자를, 그 세력을 짓누를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사라졌으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여기 모인 것입니다. 드리츠람, 그렇지요?”
대답을 지목당한 드리츠람은 수염 난 드라고 같은 머리통을 휘저으며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부터 드러낸 다음에야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고…… 굴디아드 역시 이에 동의해서 이 자리에 온 것이다. 굴디아드, 그렇지?”
책임을 떠넘기듯이 묻는 말은 가시뱀의 얼굴 비늘에서 새록새록 잔가시가 돋게 했다. 하지만 굴디아드 역시 그 못마땅하다는 태도와 다르게 명확한 대답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이견을 낼 수가 없는 상황까지 와 버렸다. 음모, 계책. 이제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수단은 그뿐이다. 다른 수단을 아는 동포가 있다면, 기꺼이 말해 주길 바란다. 이 굴디아드가 분명하게 지지하겠다.”
다른 의견은 전혀 없었고, 그저 미묘한 침묵만이 잠시 맴돌았다.
코르티알이 입가를 움직이며 더욱 여우의 입매에 가까운 표정으로 그 침묵을 음미했다는 듯,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는 듯이 침묵을 깨뜨렸다.
“서펜트 나인의 유일한 우두머리의 후원이라도 상황을 바꿀 수단은 되지 못합니다, 다들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생각하겠어요. 그러면…… 이제 내가 세운 반격의 기회, 우리가 꾸며야 할 음모와 계책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위대한 지배자의 권속으로서 이러한 일이 부끄럽기에 참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동포라면, 이만 돌아가도록 해요. 슬프게도 우리의 반격, 계책이 실패하고 음모가 드러나게 된다면…… 지금 돌아갈 동포야말로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 될 겁니다. 굴디아드, 드리츠람 어쩔 겁니까?”
여럿을 둘러보면서도 코르티알의 늑대 같은 눈매, 여우 같은 표정의 코끝은 둘에게 집중하는 듯했고 말끝은 이를 한층 더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굴디아드는 마땅찮은 눈빛부터 흘렸지만 코르티알과 눈을 똑바로 마주치면서 명쾌한 대답을 꺼내고 있었다.
“이미 말했듯, 더 이상 긍지를 따질 수가 없다. 이대로 전멸인가, 아니면 마지막으로 계책과 음모에라도 매달리든가. 나 굴디아드는 전멸보다 마지막 기회에 매달리기를 선택하겠다.”
드리츠람도 비슷한 기분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보태듯 대답한다.
“여덟 머리를 잃고 일곱 군단이 전멸한 서펜트 나인의 결정이다. 내가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는 일이지. 그리고…… 코르티알, 너의 계책은 지금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나는 인정한다.”
작은 소란이 곳곳에서 나직하게 일어났다.
아무래도 드리츠람이 이 자리에서 갖는 무게가 대단한 듯, 입에 담아 내놓은 ‘유일한 희망’이란 말에 부추겨진 듯한 분위기였다.
살짝 달궈진 그 분위기에 올라타듯, 코르티알이 한 걸음 나서는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면서…… 이제까지 굴디아드와 드리츠람을 중요한 설득 대상으로 삼았던 태도에서 벗어나서 모두를 설득하는 자세로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동포 여러분, 우리는 긍지를 버리고 명예롭지 못한 일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부끄러운 일은 계책을 꾸미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우리가 약하다는 것, 그것 한 가지입니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근원, 우리 존재의 원천에서 우리를 단절시키고 고립시킨 자가 누굽니까! 우리가 마땅히 지녀야 할 힘을 가로채서 지배자의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은 대체 누구입니까! 우리는 그 반역자에게 알려 줘야 합니다. 위대한 지배자와 우리의 교감을 가로채서 끊어 버렸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위대한 자의 권속이며, 반역자에게 매달려 그 교감을 나눠 받지는 않겠다고! 그 대신, 우리는 싸워서 빼앗을 겁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를 되찾을 겁니다! 그리고 반역자를 가둘 것입니다, 위대한 지배자께서 알려 준 비술로 그 영혼을 가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