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5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50)
수염 달린 드라고가 수염 없이 매끈한 인간으로 변했다.
슬슬 늙어 가는 조짐이 나타나는 남성, 차림새마저도 그 변모에 맞춰서 한 박자 늦게 바뀌고 있었다. 지하의 밀실에 어울리던 두건 옷이 빛을 받으면 반짝거릴 듯한 금박 무늬를 지닌, 단정하고 경건한 몸가짐에 어울리는 모양으로 바뀌었다.
“성전의 대사제가 바로 이 몸이니 말이오. 신도와 사제들을 이용해서 전언을 하는 정도는 아무 때나 할 수 있소.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전언을 누구에게 하는가 전혀 알 수가 없는 처지. 직접 말을 전하거나 편지를 이용할 때는 주의하길 바라오. 엿듣거나 엿봐서 알 수 없도록…… 암호 책자를 이용하도록 하면 적당할 거요.”
변화한 모습에 걸맞게 뒤바뀐 듯한 목소리로 드리츠람이 말했다.
투란은 그 광경을 보며 어리둥절하면서도 어이없는 기분이었고, 밀실 곳곳에서 한층 더 황당해하고 짜증까지 섞인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렸다.
드라고니아가 이런 분위기에 어울리듯 중얼거린다.
―드라코니스가 앙트에서 사제 노릇이라니…… 그냥도 아니고 대사제라니, 대체 뭐 하는 짓이냐.
이 의문은 칼리투람 역시 품은 듯, 더욱 노골적으로 묻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군. 어떻게……?”
“헤러틱 메타모프(Heretic Metamorph). 이종변환(異種變換)의 대마법이오. 위대한 지배자께서, 나의 역할을 배려하여 부여해 주신 특별한 능력이라 하면 이해할 수 있겠소?”
드리츠람의 대답은 변한 모습에 어울리는 경건함을 갖춘 채였다.
칼리투람은 어딘가 불편해하면서도 ‘과연.’이란 한마디로 납득하고 있었다.
오히려 굴디아드가 드리츠람의 새로운 모습을 납득하기 싫다는 듯이 말한다.
“굳이 지금 그 모습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뒤늦게 너의 그런 모습을 보고 의심할 동포도 없거늘…….”
드리츠람이 뭐라 하기 전, 코르티알이 이에 대해 답하고 있었다.
“성전을 들락거리며 소식을 주고받는 일이 낯설고 불편할 동포가 있습니다. 미리 알아 두는 편이 유리합니다.”
굴디아드는 ‘유리’하다는 말을 되뇌는 시늉을 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까칠하게 비늘을 세우는 듯, 잔가시를 떨게 하는 모습이 기분은 여전히 나쁘다고 드러내는 듯했다.
이 오가는 대화를 한 귀로 듣고 기억하면서도 한 귀로 흘려 내는 채로 투란은 자신의 몸 상태를 관찰하는 일에 집중해야 했다.
‘으아아, 내가 대사제라니! 모래 망령이면서 이런 몰골을……! 아무리 환영이라지만 너무한 거 아냐? 몸에 막 성스러운 힘이 스며 오는 것 같잖아! 대체 무슨 신을 섬기는 성전이야?’
―투란, 방금 기억났는데 앙트의 성전은 여러 신의 성소를 모아 둔 곳이었다. 신전이니 성전이니 하면서 별 차이가 없는 지금과 다르다. 그림 투아란의 시대란 점을 고려하면…… 성자(聖者)가 직접 신의 권능을 행사하는 일도 드물지 않은 시절이라고.
‘뭐? 그럼 대사제란 것은…… 대체 뭐야?’
―일종의 중재자, 신과 신의 대립조차도 중재할 수 있는 자라고 했다. 트루세이어가 등장한 이후로 사라졌다고 하더군.
‘헐? 그럼, 이 시절에는 트루세이어도 없었다는 거야? 그런 시대였다고?’
―전하는 바로는 그래. 아무튼 어느 신전에 속한 사제라도 이상하지 않지만, 어느 곳에 속하지 않아도 이상하지는 않은 기묘한 존재라고 했어. 헤러틱 메타모픽을 사용할 정도니까, 어쩌면 그 역할에 아주 걸맞은 경우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얌전히 두면 궁전 쪽으로 간다는 거겠지?’
투란은 다른 생각을 접어 두고 드리츠람이 가려는 곳이 자신이 파고들어야 하는 모래 미궁 어딘가라는 점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림 투아란 이야기는 다양하게 여러 가지 들어 봤지만, 이렇게 은밀한 곳에 모여서 음모를 꾸미는 당사자들을 직접…… 진짜인가 아닌가 구별도 안 되는 환영을 통해, 정말로 있었던 일인지 아닌지도 모를 상황을 지켜본다는 것이 투란에게 어딘가 껄끄럽게 느껴진 탓이었다.
딱히 끼어들어서 뭘 할 수 있어 보이지도 않았고…….
이런 투란의 판단에 응한 것처럼 밀실의 모임은 금방 끝났다.
이제부터는 다들 가야 할 곳으로 가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지려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투란은 들어올 때와는 전혀 다른 길로, 성전의 대사제 모습을 한 채로 드리츠람이 어딘가로 빠져가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는데…… 그 길이 어둑하고 음침한 하수로가 아니었다.
앙트로 귀환하는 순찰대원을 흉내 내던 것과 다르다고 온몸으로 외치는 것처럼, 대사제 모습을 한 드리츠람이 나가는 길은 어둡지만 깨끗하게 정돈된 지하 통로였다. 벽마다 파고든 벽감 속에 청동으로 된 인형이 누워 있는 것이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는 있었지만,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돈된 통로였다.
‘이건 대체 뭐 하는…….’
―앙트의 지하 영묘야. 있다고 말은 들었다만, 이렇게 이용되고 있을 줄은 몰랐군.
‘야, 영묘라니…… 그거 설마 무덤?’
―벽에 놓인 청동 인형이 모두 청동관이니까, 무덤이 아닐 수는 없다만?
‘시체가 벌떡 일어나면 청동 갑옷을 걸친 채가 되는 거냐?’
―영묘의 방호 상태로 봤을 때, 데드워커가 발생한다면 청동 인형 속에 감금당한 꼴이 될 테니 그런 일은 없을걸?
‘비싸게 지독하구나!’
잘해 놨다고 감탄하는 기분은 잠깐 치워 두고 투란은 어이없다는 생각부터 하고 말았다. 시체가 도로 발딱 일어나는 것이 싫다면 불태우든가 어쩌든가 해서 방비하는 편이 깔끔한 처리였다. 굳이 청동을 소모하면서, 저리도 정교하고 화려하게 사람의 모습을 새겨 놓은 관을 이런 땅 아래 깊은 곳에 정성껏 묻고 관리하다니!
―광물이 넘쳐나는 곳이라 했지. 모조리 티끌이 되고 모래 바다가 되기 전에는 말이야.
쓴웃음인가 한탄인가 모를 모호한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넘쳐난다고 낭비하다니…… 앙트는 이상한 곳이었군.’
투란은 깔끔하게 지하 영묘에 대해 감상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영묘의 풍경에 뭔가 이질적인 것이 없나 느껴 보려 하는데, 데저트 데몬이 이에 호응하듯 조금 더 자세하게 이 영묘의 상태를 알려 준다는 것처럼 밝은 노란빛과 녹색의 테를 가득 뿌려 주고 있었다.
당장 저쪽으로 몸을 옮겨갈 수 있다고 표시해 주는 듯한데, 그 광경은 투란과 드라고니아가 함께 식겁하게 했다.
‘야, 야, 야아아!’
―대비를 한 게 아니라 벌써 데드워커가 된 것을 묶어 둔 거였냐! 기척도 없이 잘도 숨겨 놨구먼!
청동 인형 모양의 관, 벽감 가득한 것들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밝은 노란 빛이 크게 켜졌다가 멀어질수록 녹색의 테를 머금다가 녹색으로 채색되며 통로의 어두운 배경 속에 사라지고 있었다.
그 의미를 투란과 드라고니아가 제각각 해석하며 마구 떠들었다.
‘얘가 나한테 지금 데드워커 흉내라도 내라는 거야?’
―옛날 몬스터 로드에 용족까지 덧씌울 수 있었잖아! 데드워커면 차라리…… 아니, 이게 아니고! 앙트 왕국의 지하 영묘에 대체 뭔 데드워커가 이렇게 한가득하냐고! 청동 인형이 모두 다 일어서는 꼴이 당연해 보일 지경이잖아!
작은 소란을 떠는 분위기는 데저트 데몬에게, 데저트 데몬이 꾸미고 있는 껍질인 드리츠람의 대사제 모습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때문에 투란은 더욱 예민해진 채로 통로의 벽감, 청동 인형과 함께 통로가 아예 청동을 바탕으로 황동으로 무늬를 얹은, 보기에 따라서는 귀하고 푸른 돌 위에 금빛 무늬를 그려 놓은 듯한 화려한 풍경으로 변해 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데드워커 처넣고 뭔 낭비냐고 이게!’
한층 더 투덜거리려는 투란을 향해, 드라고니아도 한층 더 섬뜩하다는 듯이 대꾸를 한다.
―마력을 이어 주는 아케인 패턴을 그려 놓은 거야!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만, 저렇게 정교하게 황동을 다루는 일이 쉽지는 않지! 정말로 어마어마하게 쏟아부은 시설이다! 네 말대로 엄청난 낭비가 맞아!
끼이익.
투덜거리는 사이에 드리츠람은 통로의 끝, 양옆으로 늘어선 벽감과 다르게 정면에 정사각형의 방처럼 크고 넓게 뚫린 방처럼 보이는 곳에 도달해 있었다. 그 안도 역시 청동과 황동이 어우러진 화려한 장식 무늬가 가득했는데, 지나온 통로와 다르게 밟으니 소리가 났고 방이 통째로 움직이기까지 했다.
그 움직임은 투란에게 낯설지 않았다.
‘승강기?’
―위로 가는데?
마치 알드바인에서 북벽을 오르내릴 때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멈추고 나니, 들어온 방향의 반대쪽으로 나가게 되어 있었다.
드리츠람은 인간의 모습에 어울리는 태도로 걸어 나갔고, 새로 도착한 곳은 크고 넓은…… 반원의 책상과 책장, 제대로 된 문이 달린 집무실처럼 꾸며져 있었다.
끼익.
등 뒤편에서 나는 소리가 투란에게 승강기 문이 닫혔다고, 승강기가 아예 감춰졌다고 알려 줬다. 나가자마자 놓인 반원의 커다란 책상을 등진 채로 서가가 움직여 채워지듯 감춰진 것이다. 마치 원래부터 이 집무실은 서가를 벽 삼아 꾸며진 듯한 형태가 매우 자연스러웠다.
‘여긴?’
―성전 안이겠지?
드리츠람이 익숙한 태도로 의자에 앉았고, 탁자 위의 물품을 만지작거렸다.
딸칵.
뭔가 풀리는 소리가 나면서 제대로 된 문짝 너머의 분위기가 은은하게 문턱을 넘어 들어오는 듯했다.
―음, 안팎을 분리하는 폐쇄 장치가 있는 모양이군. 마법은 아닌데…….
드라고니아가 그 상황을 분석할 때, 투란은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녹색 테를 지닌 누군가가 문 너머에 나타난 것을 알아차렸다.
드리츠람도 이를 느낀 듯, 바로 태도를 바꾸고 있었다.
책상 위의 다양한 서류에 눈길을 주면서, 문 너머를 향해 드리츠람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나간다.
“들어오시게.”
바쁜 일을 하면서 손님을 맞는다는 듯한 자연스러운 태도.
문을 열고 들어선 자는 예의 바르게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투란은 그 모습을 보고 드리츠람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바싹 몸을 조이면서 만약을 대비하는 태도, 마치 들어온 이가 완전무장한 중갑을 몸에 걸친 것이 문제라는 듯한 자세였다. 투구까지 얼굴을 가린 밀폐형이라서 표정도 안 보이니 더욱 긴장을 더한 듯한데…….
―성기사?
드라고니아는 조금 갸웃하며 그 무장 상태를 평했다.
투란에게는 납득이 안 가는 평이었다.
‘그냥 전투 준비 끝난 기사 아니야?’
성기사라면 방패나 검, 갑옷에 성스러운 힘을 팍팍 풍겨 내는 장식이나 문양을 새겨 넣고 과시하듯 드러내는 것 아니던가?
드리츠람을 긴장시킨 기사의 무장에는 어떤 장식이나 문양도 없었다.
그저 인간의 몸을 감싸고, 활동성을 보장하는 강철의 재질만이 뚜렷하게 드러난 채였다. 마치 뭔가 그려 넣고 싶으면 나중에 하라고 매끈하고 깔끔하게 바탕만 남겨 놓은 듯한 모양이었다. 여백이 넘쳐나서 진흙이라도 뿌리면 그게 바로 뭔가를 상징하는 문양이 될 듯한.
“바쁘신데 실례하겠습니다. 이번에 괴물 사냥에 나서는 순례단의 일 때문입니다.”
기사는 정중하게 드리츠람에게 말문을 열고 있었다.
“순례단? 그분들은 당분간 궁성 안에 머물기로 하지 않았소?”
드리츠람은 인간의 모습에 어울리는 태도와 몸짓으로 바로 대꾸했다.
기사가 매끈한 철갑 투구를 흔들면서 꺼낸 말을 잇는다.
“예정은 그랬습니만, 드래곤 공작이 당분간 궁성에 머물 거란 소식을 듣고 나서 괴물 사냥을 돕겠다고…….”
“허어, 전혀 듣지 못한 일이오. 대체 언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오?”
드리츠람이 혀를 차며, 몸을 뒤로 기대는 완벽한 인간의 모습으로 되묻고 있었다.
기사는 그런 드리츠람을 향해 철갑을 둘러 표정을 감춘 그대로 낭랑하게, 하지만 말투 속에는 미묘한 미안함과 함께 어쩔 수 없다는 기분을 담아 대답을 한다.
“대사제께서 명상에 들어갈 무렵에 따로 모이셔서 결정하셨습니다. 아마…… 저를 이리로 보낸 시점에서 이동을 시작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폴트 경과 이 몸을 완전히 배제한 결정이었군. 하면, 앙트 폐하께서는 알고 계신 것이오?”
대사제의 염려 섞인 물음에 기사 폴트는 철갑 머리통을 흔들었다.
“그게…… 폐하에게 말씀드리는 일은 대사제께서 맡아 주시길 바란다고 하시더군요. 음, 드래곤 대공과의 사연이 있으니 납득하실 거라고.”
이 말에 드리츠람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굉장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는 것을 투란은 알 수 있었다.
더불어 곤란한 소식을 전하는 탓에 저 기사가 완전무장을 하고 얼굴까지 가려 둔 것이 아닌가 하는 가벼운 의심도 품을 수 있는 투란이었다.
드라고니아는 이런 대화의 분위기보다 그 내용에 집중한 듯했다.
―드래곤 대공이라면, 그림 투아란일 텐데…… 순례단이면 대체 어느 신전의 사제들인 거지? 뭔 사연이 있길래 같은 장소에 있기 싫다고 피하지?
투란은 전혀 궁금하지 않은 일이었다.
드리츠람도 자세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았다.
대사제는 완전무장한 기사 폴트에게 능숙하게 일을 떠넘길 뿐이었다!
“일단 폴트 경이 먼저 폐하에게 가 주게나. 지금 처리할 일이 몇 가지 있으니, 내가 뒤따라가지. 아, 폐하께서 용건을 물으시면 순례단의 일을 미리 말해 둬도 나는 괜찮네.”
“네.”
기사 폴트는 매우 마땅치 않은 듯 대꾸했으니, 투란은 이를 기회로 봤다.
밝은 노란빛의 폴트로 재빨리 옮겨 가서 궁정 안으로 들어갈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