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6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51)
Chapter 191. 모래성의 기억 Ⅲ
이동은 현란했고, 살짝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투란이 더욱 깊이 데저트 데몬의 바꿔치기에 집중한 탓이었다.
‘우왓! 잠깐 모래 망령이 된 것 같았어!’
―그보다는 모래가 되어 흩어졌다가 다시 뭉친 쪽이겠지.
드라고니아는 냉정하게 이동 과정을 분석한 듯이 말했다.
투란은 갸웃하면서도 바로 부정했다.
‘흩어지긴…… 모래 안으로 푹 파묻혔다고 도로 툭 튀어나온 느낌이었다고! 자, 보라고!’
다음 순간, 기사 폴트의 몸에서 지나가던 시녀로 데저트 데몬이 투란을 옮겨 버렸다. 그 과정은 바닥에 깔린 포석 안으로 투란이 쑥 빠져들어 가면서 주변이 온통 모래로 가득한 풍경을 지나친 다음, 허우적거리는 모래 인형…… 모래 망령을 데저트 데몬이 덮치면서 그 속에 투란이 끼워 넣어지는 듯했다.
처음 데저트 데몬이 이를 실행했을 때처럼 어리둥절하다가 그냥 넘어가지 않고 강하게 그 과정을 향해 집중하며 느끼기를 원했기에 알 수 있는 과정이기도 했다. 데저트 데몬이 투란의 호기심에, 강렬한 의지에 호응해서 옮겨 씌워지는 과정 동안에도 감각을 차단하지 않은 것이다.
드라고니아도 이 감각을 공유하면서 분석을 보태듯 말한다.
―너는 모래 안으로 파묻혔다가 나온 상태를 느끼겠지만, 데저트 데몬이 주변을 완전히 흩었다가 다시 끌어들여 구성하고 있단 말이다. 모래 미궁의 맥동과 호응해서, 모래 망령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섞여 드는 모양이야. 미궁 전체가 요동치는 틈새를 이용한다고나 할까? 크게 흔들리는 중이니까 이런 식으로 간섭해도…….
‘뭐라는 거야, 아무튼! 이 시녀는 아닌가 보다.’
―뭐? 아, 궁성 바깥쪽으로 향하네. 저쪽 경비가 안쪽으로 옮겨 간다. 이런, 아까 그 기사를 그대로 이용하는 편이 좋았으려나?
‘이미 가 버렸는데…… 아니지, 따라붙을 수 있을까?’
다른 시녀들과 무리 짓는 듯한 분위기로 시녀가 바구니를 들고 사뿐사뿐 걸어가는 쪽은 궁성의 바깥쪽이었고, 드리츠람과 대화를 마친 기사 폴트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궁성 곳곳에 자리 잡은 경비병을 확인하듯 움직이고 있었다. 기사 폴트의 움직임에 따라 경비병들은 제자리를 지키는 경우와 순찰을 도는 경우로 나뉘는 듯했고, 어쩌면 교대 시간을 확인받고 움직이는 듯도 했다.
어느 쪽이든 투란은 높이 치솟은 궁성, 드물게 유리로 된 지붕 너머로 훤히 보이는 높은 궁전의 풍경을 향해 움직여야 했다. 뭐가 있든 저 안 깊은 곳에 있는 것이 모래왕이 찾는 것일 테니.
그래서 투란은 일단 시녀와 스쳐 지나가는 궁정 내관에게 옮겼고, 궁정 내관이 스치는 경비로 옮겨 가며 안쪽에서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한 이들을 하나씩 거쳐 가면서 기사 폴트를 아예 앞질러서 궁정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렇게 투란이 마지막으로 옮겨 간 모습은 은장식의 수레에 음식, 음료를 잔뜩 얹어 밀고 가는 궁정 하인이었다.
궁정 하인은 높은 옥좌와 그 앞으로 넓게 펼쳐진 광장 같은 공간으로, 그 안에서 열심히 오가며 떠드는 수많은…… 환영을 통해 과거의 모습을 비춰 주는 모래 망령들 틈새로 투란을 옮겨 놓고 있었다.
너무 많아서 잠시 투란은 누굴 골라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임금님……은 없네?’
문득 알현실의 풍경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을 알아냈지만 두리번거릴 필요는 없었다. 궁정 하인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 화려한 차림새의 남녀, 어떻게 봐도 귀족인 사람들 사이를 누비면서 여기저기 계속 둘러보는 중이었다. 나름대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충실한 그 태도는 곧바로 투란의 몸을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이는 셈이었고, 굳이 강력한 의지를 통해 어딘가를 봐야 할 필요가 없게 해 줬다.
하지만 그 덕분에 투란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했다.
‘여기가 제일 깊은 곳 아닌가?’
―글쎄…… 왕족과 귀족이 만나는 곳이다만, 왕족이 생활하는 곳이라고는 못 할 것 같은데? 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으로 판단하자면, 여기가 궁정 안에서 왕족과 왕족 아닌 자들이 만나는 경계선이라고 생각된다만…… 이 안으로 들어가려면 왕족을 골라서 옮겨 가야 할 모양이다.
‘으흠, 그런데 왕족이…… 누구냐? 설마 없는 건가?’
드라고니아의 말을 들으면서 투란은 잠시 주변의 오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봤다. 하지만 그 안에 왕족을 의미하는 ‘임금님’이라든가, ‘왕자님’이라든가 ‘공주님’ 따위의 호칭은 등장하지 않았다.
게다가 무슨 남작, 자작이라든가 백작의 근황이라든가 하는 이야기 틈새로 어느 신전의 무슨 사제가 어쩌고 성기사가 어쩌고 하는데…… 누가 누구에게 한눈에 반했다느니, 누가 누구랑 약혼해서 잘 지내는 척하다가 얼마 전에 깨졌다느니…… 도무지 투란에게 흥미롭게 여겨지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듣는 것도 힘든 이야기가 이런 거였군.’
새삼 한숨을 쉬고 싶은 기분으로 투란은 그나마 ‘괴물’이라든가 ‘마물’이라든가 하는 몇 마디가 가끔 섞여 나오는 쪽에 귀를 기울여 보려 했다. 하지만 그 또한 주변에서 우르르 몰려든 이들이 ‘이런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꼭 해야 하나요?’란 분위기로 덮고 지워 버리는 상황!
―목적을 지닌 궁정 잔치가 아닐까 싶군.
드라고니아가 대화가 유지되는 일정한 범위를 파악했다는 듯이 말했다.
‘목적? 뭔 목적?’
―인간 사이에서는 혈연을 이용해 이익을 추구하는 관계가 있다고 들었다. 이들은 지금 그 정보를 활발하게 교환하고 공유하는, 공식적인 궁정 모임에 찾아온 것으로 보여. 음, 투란 너에게는 완전히 낯선 상황이겠군.
‘야, 나도 상아탑의 대마법사님이랑 궁정에 발 디뎌 봤거든?’
―궁정을 파괴하는 일에 한몫했다고 하고 싶냐?
‘황금왕의 옥좌도 구경했잖아! 나도 궁전 구경 많이 해 본 사람이라고!’
―정상적인 인간은 한 명도 없는 괴물의 궁전이었잖아! 여기는…… 비록 모래 미궁에서 모래 망령이 꾸미고 고대의 아티팩트가 비춰 주는 환영이라 해도 제대로 된 왕국의 궁정 모습이란 말이다. 괜히 아는 척 우기지 마!
‘쳇, 나처럼 한두 번 구경도 못 해 본 사람 많거든? 그래서 안으로 들어갈 공주님 왕자님은 못 찾겠다는 거지? 그러면…… 모래왕이 찾아내라는 성궤인가 뭔가, 그게 이 궁전 어디에 있다는 기록은 없었냐?’
―궁전 깊은 곳, 왕족 중에서도 특별한 몇에게만 허락된 곳이라 들었다.
‘여기는 절대 아니겠네.’
투란은 한숨 쉬며 주저앉고 싶은 기분이었다.
비어 있는 옥좌 앞에서 와글거리는 귀족들, 그중 누구도 궁전의 안쪽을 탐색할 낌새가 없어 보였다. 투란을 담고 열심히 움직이는 궁정 하인 또한 이 알현실에서 벗어나서는 다시 바깥쪽으로 나갈 듯했다. 그나마 기회를 노리겠다면 이 안에 있는 귀족을 골라 계속 머물면서 상황을 지켜봐야 할 듯한데…….
―투란, 저기 구석에 있는 녀석을 이용해 봐라.
툭 던지는 드라고니의 말은 투란을 의아하게 했다.
‘이용? 뭔 소리야, 어느 귀퉁이? 아, 저거…… 혼자 벽에 기대고 사방을 감시……하는 거겠지?’
궁정 하인이 들어온 입구 근처, 나갈 마음이 없다는 듯이 제법 열 걸음 이상 떨어지기는 했지만 알현실의 잔치 속에 전혀 끼어들 낌새도 없이 벽에 기댄 채로 언제 주웠는가 모를 잔 하나를 손에 든 채로 사방을 노려보는 티를 팍팍 내는 괴상한 작자였다.
일단 귀족이기는 한 듯한데, 다른 귀족들처럼 바쁘게 오가면서 인사하고 약혼, 파혼, 새로운 파티에 대해 떠들지 않고 저 구석에서 뭐 하는 중인가?
‘저리로 옮겨 가는 것도 몇을 거쳐야 하는구먼, 뭘 이용하란 거야?’
궁정 하인 속에서 사방을 둘러보는 것과 저리 한구석에 붙어서 지켜보는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기에 권하는가?
다시 생각해 봐도 투란에게 드라고니아의 의도는 여전히 아리송하게 느껴졌다.
―투란, 바보냐? 데저트 데몬에게 네 움직임을 완전히 맡겨 둘 수도 있지만, 맡겨 두지 않고 네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있잖아!
‘어? 어라?’
조금 당황했지만, 투란은 바로 알아차렸다.
주변에 어우러지도록, 이 망령이 회상하는 과거의 환영 속에 자연스럽게 그 일부가 되기 위해서 가만히…… 극단적이라 할 정도의 수동적인 태도를 유지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투란이 뭔가 말하고 싶을 때는 말을 할 수 있었고, 움직이려 하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 말과 행동이 완전히 주변에서 어긋났다가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가만히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벽과도 마주 보지 않고 등질 정도의 녀석이라면 투란이 그 껍질을 뒤집어쓰고 적당히 움직여도 이상하지는 않을 터!
‘알아들었다! 그래, 가자!’
―정말 알아들은 거냐? 벽을 등진 모습은 혼자인 거랑 전혀 상관없는 것 같다만…….
스쳐 간 투란의 상념을 눈치챈 듯, 드라고니아가 한숨 섞인 말투로 중얼거렸다.
이는 투란을 살짝 찔끔하게 했다.
확실히, 이런 궁정 잔치 속에서 사람들 등지고 벽 보면서 뭐라 떠들고 있다면…… 그건 미친놈이잖은가!
‘다행이잖아, 벽 보고 혼자 떠드는 미친놈 아니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대충 둘러대면서 투란은 빠르게 주변의 밝은 노란 빛을 확인하면서 옮겨 가기 시작했다.
뚱뚱한 자작님을 넘어서, 삐쩍 마른 남작 부인을 지나치고, 사나운 웃음의 백작을 건너서 소심하게 눈치 보는 남작과 또 다른 자작을 건너서…… 홀로 벽을 등진 채로 이 궁정의 화려한 잔치를 구경하는 이상한 녀석에게 꽂혀 들어갔다.
격렬하다 싶을 정도의 빠른 이동이었고, 이는 데저트 데몬이 주변을 한바탕 모래 회오리로 바꿨다가 바로 잡는 듯한 환영을 투란에게 비춰 줄 지경이었다.
그렇게 해서 잔을 든 자의 몸, 그 환영을 뒤집어쓴 순간…… 투란은 자기 입에서 새어 나와 귓가로 스며 오는 음울한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추잡한 것들…… 공주님을 제물로 내놓고 저리 즐거워하다니.”
속이 울컥해지게 만드는 말투가 꽤 자극적이었다.
‘오? 이놈, 공주님 아는 놈?’
―앙트 왕국 귀족이니 당연히 알겠지! 아는 게 문제가 아니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가 문제잖아! 불평불만을 평소에 쌓아 둔 녀석이라면, 궁정 안을 움직이는 일에 적합하지 않을 수가 있어. 잘못 고른 것일 수도 있다고.
‘괜찮아, 얘한테 누가 시비 걸면 그리로 옮겨 가면 돼!’
―음? 그건…… 그러네?
키득거리면서 뭔가 사고 칠 녀석인가 하는 기대를 품은 채로 투란은 일단 잔을 든 손을 펼쳤다. 어렵지 않게 데저트 데몬이 투란의 의도를 따라 줬고, 술잔은 자연스럽게 떨어지며 깨졌다.
그 정교한 광경을 흘깃하면서 투란이 주변을 둘러보니, 알현실 입구 쪽에 석상처럼 선 경비가 눈알만 굴려서 지켜보는 중이었다.
가만히 손을 젓는 시늉을 하며, 떨어진 잔에서 튄 술 방울이 옷자락에 묻은 것을 떨어 내는 시늉을 하며 투란은 한 걸음 옮겼다. 역시 저항 없이 투란의 의도에 따라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 남은 일은 간단했다.
투란은 바로 석상 같은 경비병을 지나서 알현실 밖으로 나갔고, 경비병의 시야를 가려 주는 굵은 기둥 뒤로 움직였다.
‘어디 보자…….’
조용히 기둥에 기대면서 투란은 일단 자신이 얼마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가를 점검했다. 차림새는 저 잔치 속에 어울리는 요란한 모양이었지만 몸의 움직임에 방해되는 부분은 전혀 없었다. 마치 데저트 데몬이 꾸며 놓은 껍질이기에 옷감으로서의 기능과는 다른, 몸에서 돋아난 가죽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다음에 투란은 복도와 통로를 흘깃하며 자세히 둘러봤다.
알현실 안쪽의 소란스러움은 은은하게 복도를 울리며 퍼져 나갔고, 궁정 안과 밖으로 이어지는 통로 곳곳에는 나름대로 엄중한 경계를 하는 경비병이 있었다. 경비가 안으로 이어지는 요소마다 서 있는 꼴이 꽤 치밀해 보였다.
‘타고 옮겨 갈 수 있을까? 좀 멀려나?’
옮겨 가기 위해 필요한 거리, 밝은 노란 빛이 포착되는 거리를 가늠하면서 투란은 일단 막무가내로 쳐들어가는 방법부터 생각했다.
조금 이상한 반응이 나올 수는 있겠지만, 지금 이 불평 가득한 귀족의 몸을 들이대고 경비와 부딪히고 그 몸으로 옮겨 가서 더 안쪽의 경비까지 계속 갈아치우면 어느 순간에 궁정 깊은 곳에 머무는 누군가와 접촉할 수 있을 터였다.
현실적인 상황이라면 그렇게 밀고 가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붙들리고 그대로 바닥에 처박혀 묶이겠지만, 모래 망령을 기반으로 한 환영 사이를 옮겨 갈 수 있는 지금이라면 오히려 자연스럽게 통할 방법일 수 있잖은가.
―모래 망령이 상황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문제이겠다만…… 지금 상황에서 다른 길이 있다고는 못 하겠군. 어쨌든 데저트 데몬을 주고 이런 짓을 시킨 까닭이 있겠지. 해 봐라.
드라고니아도 약간의 호기심과 덤덤하게 포기했다는 듯한 분위기를 섞어 투란에게 찬성해 주고 있었다.
머뭇거림 없이 투란은 바로 당당한 태도를 꾸미면서 안쪽에 자리 잡은 경비병 쪽으로, 일부러 그 모습을 보지 못한 척하면서 궁정 안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려 했다.
경비병의 반응은 투란이 그 앞을 스치기가 무섭게 나왔다.
“기다리십시오! 이 안은 왕가의 일족이 아니면…….”
“으라라랏!”
말도 안 되는 외침과 함께 투란은 달리기 시작했다.
“어엇?”
“잡앗!”
매우 정상적인 경비병의 반응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