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6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52)
귀족 청년은 고래고래 괴성을 지르면서 끌려갔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왜 경비병을 무시하고 궁정 안쪽으로 뛰어들려고 했는가에 대한 변명은 한마디도 없었다. 마치 투란이 움직인 까닭이 바로 자신의 동기였다는 듯, 귀족 청년은 ‘공주님! 공주님을 구해야 한다!’ 따위의 말을 보태면서 더욱 개인적인 의도에 따라 막무가내로 치고 들어갈 작정이었다는 태도만 노골적으로 표현할 뿐이었다.
뒤늦게 다가오다가 다른 경비병이 손을 썼기에 구경하는 꼴이 된 경비병, 제법 안쪽에서 소란을 보고 달려온 자가 혀를 차며 뒤돌아섰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간단했지?’
자신이 일으킨 소란, 귀족 청년의 자취가 사라지고 다시 정상적인 경비병의 경계태세가 이뤄진 다음에 느긋하게 중얼거리는 투란이었다.
가장 안쪽에서 나온 경비병의 껍질을 둘러쓴 채로, 투란은 눈알만 굴렸다.
주변을 둘러보는 당연한 경비병의 자세, 하지만 투란은 원하는 자를 찾을 수가 없었다. 다음에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왕가의 일족, 왕족이면 좋을 텐데 안으로 이어진 긴 회랑에는 간격을 둔 경비병만 늘어서 있을 뿐이고 안팎으로 들락거리는 사람이 없었다.
―묘하군, 알현실에서 파티를 벌이고 있는데 왕족의 모습이 보이질 않고 파티 진행 상황을 전하는 이들도 없다니.
드라고니아는 자신이 아는 인간 세상의 상식과 어긋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뭐, 그래도 저 끝까지 어떻게든 옮겨 갈 수는 있어 보이잖아.’
투란이 느긋한 척 대꾸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옮겨 가기는 좀 애매한 거리였다.
녹색의 테가 선명했고, 노란 빛보다는 녹색 빛이 더 짙어서 옮겨 가려면 몇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이쯤 되면 벽을 그대로 관통해서 지나가면 더 좋을 듯도 하지만, 아무래도 데저트 데몬은 투란이 벽이나 바닥을 이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데저트 데몬을 벗어젖히거나 하면 사방이 모래 망령이 모래 미궁 한복판에 덩그러니 떨궈진 꼴이 될 테니, 어떻게든 규칙을 따르며 가능한 한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었다.
―뭘 어쩔 건데?
어떻게든이란 투란의 말에 흥미가 생긴 듯, 드라고니아가 물었다.
무슨 억지를 부리지 않고서는 자연스럽게 안으로 옮겨 갈 방법이 없다는 상황을 한번 더 확인한 다음이었다.
‘인간적인 방법이지!’
투란은 조금 뻔뻔하게 대꾸했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어?”
작은 소리를 내면서 경비병이 들고 있는 유일한 무장인 창을 슬쩍 앞으로 누이면서 자세도 살짝 낮춘 채로 몇 걸음 조심스럽게 내딛는 것.
이는 곧바로 경비병들의 경계심을 자극했고 투란이 뒤집어쓴 경비병 쪽으로 주목하게 했다. 비교적 가까이 있는 경우에는 다가서기도 했으니, 그 틈에 투란은 재빠르게 더욱 안쪽의 경비병으로…… 밝은 노란 빛이 확인되기가 무섭게 옮겨 갔다.
데저트 데몬은 이제 이동 과정에 흥미가 없는 투란의 마음을 안다는 듯, 살짝 감각을 차단했다가 다시 열어서 어지러운 기분을 느끼지 않게 조절해 주고 있었다.
투란으로서는 갑자기 시점이 변해 버린 광경에 빠르게 적응만 하면 되었고,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경비병을 향해서, 또다시 ‘읏?’이라며 뭔가 느낀 시늉을 하며 빠르게 돌아서서 다가가고 또 옮기고…….
미묘한 장난질처럼 느껴지는 과정을 거쳐서 결국 투란은 궁정 안쪽으로 이어진 회랑, 복도의 끝에 선 경비병을 뒤집어쓴 채로 서게 되었다. 이에 대해 드라고니아는 잠깐 재미있었지만 이제 재미없다는 말투로 중얼거린다.
―잠겼다만?
‘그러게?’
뚱하니 투란도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경비병은 문을 사이에 두고 회랑 복도와 궁정 바깥을 내다보는 자세였는데, 그 문짝은 두툼한 목재를 바탕으로 쇠를 두르고 장식을 해 놓은 형태가 굉장히 튼튼했다. 그 너머로 아무런 인기척이 없는 걸로 봐서는 그야말로 이 문 너머는 왕족만의 거처인 듯한데…….
‘따고 들어가려고 하면, 다들 덤비겠지?’
―죽이려고 할걸?
‘음, 다 죽을 때까지 옮겨 다니다가 마지막 남은 녀석이 되어 문을 부순다는 것은?’
―여기 있는 경비병 말고 다른 곳에서도 몰려올걸? 이들은 경보를 울리고 시간을 끄는 일을 맡았을 거야. 허리춤을 봐라, 전부 호각(號角)을 매달고 있잖아.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은 경비병의 허리춤에 매달린 것을 한번 더 확인했다.
만약을 위한 보조 무기인 듯 단검이 칼집째로 매달려 있었고, 그 곁으로 덜렁거리는 장식처럼 보이는 작은 뿔이 홈이 파인 채로 분명히 자리 잡고 있었다. 낯선 모양이기는 했지만 확실히 크게 퍼져 나가는 소리를 낼 수 있는 호각이었다.
‘몇이나 모일까?’
불쑥 투란이 떠올린 생각에 드라고니아가 바로 으르렁거림을 토해 낸다.
―하지 마! 모래 미궁을 자극해서 될 일이 아니잖아! 애초에 미궁 깊이, 모래 더미 속에 담겨 있을 물건을 밖에서 밀고 들어와 찾을 자신이 없어서 이러고 있잖아! 모래왕도 그걸 인정해서 데저트 데몬을 넘겨줬고! 괜한 소란 피우지 말고, 제대로 된 생각을 하란 말이다!
‘알았어, 알았다고. 머리 울리는 소리 그만해…… 저쪽에 오고 있는 작자가 안으로 들어가길 기대하자고.’
툴툴거리는 대꾸를 하면서 투란은 회랑 입구에 나타나서 당당하게 복도를 걸으며 다가오는 이들을 살폈다. 드라고니아가 곧바로 그중 하나를 짚으며 혀를 차는 말투로 중얼거린다.
―아까 그 기사인데?
‘폴트였나?’
투란도 다시 그 이름을 떠올리면서 쓴웃음이 저절로 맺히는 것을 느꼈다.
폴트는 궁정 내관을 앞세우고 투란이 스며든 경비병 쪽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그 뒤로 다소곳하니 바구니를 든 시녀 두엇이 따르는 것으로 봐서는, 애초에 이리로 오기로 되어 있던 모양이고 투란이 어찌 넘어갈까 궁리하는 문을 지나갈 계획이 있던 듯했다.
그러니까 결국…….
―여태 헛짓거리를 하고 있었던 거네?
어처구니없다는 시늉을 하면서 드라고니아가 한숨처럼 핀잔하는 그대로였다.
‘그럴 수도 있지! 뭔 일이 벌어지려는가 어떻게 아냐고! 그래도 궁정 구경은 제대로 했잖아! 귀족 파티 구경도 했고!’
긍정적인 뭔가를 찾아 열심히 투덜거리는 것이 고작인 투란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멍청했다고 알려 주는 지침처럼 폴트가 경비병 앞에 섰고, 궁정 내관과 시녀들 모두와 함께 밝은 노란빛을 훤히 드러내 줬으니…….
―놓치지 마!
드라고니아의 속삭임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 고집처럼 투란은 일단 궁정 내관을 골랐다.
그 궁정 내관이 투란 자신의 입을 움직여 말하는 바.
“폴트 경께서 공주님과 약속한 시간이네. 시녀들은 마침 세탁물을 교환할 때가 되었지.”
동시에 손을 들어 손바닥에 찰싹 붙은 듯한 작은 네모패를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경비병이 마찬가지로 손을 드니, 그 손바닥에도 역시 네모난 패가 작게 들러붙은 채였다.
마주 본 두 패는 서로를 알아봤다는 듯이 진동했고 파란빛을 흘리며 따스한 느낌을 손에 퍼뜨렸다. 그 감각이 투란에게 바로 깨닫게 했다. 만약 패를 지닌 사람이 자격이 없다면 단숨에 손부터 시작해서 몸이 얼어붙었을 것이라고, 그렇게 확인된 침입자를 경비병은 가차 없이 들고 있는 창으로 푹푹 쑤실 것이라고!
‘뭐야, 왕궁이 왜 이리 험악해?’
침입자를 곧바로 유혈 상태로 이끌겠다는 각오, 상황을 깨닫고 나니 어이없는 투란이었다.
그래도 왕족이 산다는 곳인데, 묶어서 음침한 지하 감옥으로 데려간 다음에 하수구 옆에서 유혈 낭자한 사태를 벌이는 것이 좋지 않은가?
―앙트는 원래 이랬을걸? 왕족이라고 하지만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조금 벗어났다니까 말이야. 치열한 전투 상황에 언제라도 대비한 자치도시, 그런 도시를 다스리는 왕족이니 어느 때 어느 곳에서라도 피를 볼 작정을 했다고…… 그렇게 기록되어 있었어.
‘거참…… 이런 곳에서 공주님이라니…… 아, 젠장!’
드라고니아의 이야기에 조금 씁쓸하면서도 꽤 실용적이라고 감탄하던 투란은 문득 자신이 또 실수한 것을 깨달았다. 드라고니아도 금방 투란의 실수를 짚듯, 핀잔하고 야유하는 말을 잇고 있었다.
―저 기사가 공주님 만날 예정이었다고 말한 거지? 지금 네 입으로 말이야.
‘내 입이지만 내가 한 말 아니거든! 제엔자아앙!’
욱하며 반발했지만 투란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결국 돌고 돌아서 다시 폴트 경, 기사 폴트에게 옮겨 갈 수밖에!
끼익, 티이잉.
문이 열리면서 묘한 종소리가 안쪽에서 울렸다.
굳이 확인할 것도 없이 무엇 때문인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문 너머 저쪽, 문 가까이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인기척이 있었고 드러나는 그 모습은 들어 올리던 쇠뇌를 내리는 중이었으니까.
정상적으로 문이 열리지 않으면 문은 그저 삐걱거리고 끼익끼익 소리만 크게 냈을 것이고 종소리는 생략된 채였을 터였다. 그다음에 문을 연 자에게는 쇠뇌살이 냅다 꽂혀 들었을 상황.
‘심한데?’
―그런 듯하군.
너무 철저한 방비는 투란을 의아하게 했고, 드라고니아도 함께 갸웃했다.
무슨 왕족이 사는 궁정 안쪽이기에 이리 험악하게 경계하고 있는가?
의아함을 파묻고 투란은 일단 폴트의 움직임에 몸을 떠맡겼다.
기사다움을 드러내듯 폴트는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길을 헤매는 일 없이…… 궁정 내관이 길 안내 하는 시늉을 하고는 있었지만 몸짓으로 봐서는 폴트 혼자서도 찾아갈 수 있는 듯한 궁정 안의 화사한 방 한 곳에 도달했다.
문이 아예 없는 방이었고 궁정 내관이 먼저 그 입구에서 목소리를 높여 알리고 있었다.
“세렌 공주님, 폴트 경이 도착했습니다.”
“들어오라 해.”
안에서 나온 대답, 그 말투가 기묘했다.
어딘가 지겹고, 어딘가 나른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의 공주라니?
‘아줌마나 할머니인 공주님인가?’
투란이 갸웃했다.
그사이에 폴트가 궁정 내관을 거쳐 기사다움을 강조하는 몸짓, 걸음걸이로 입구로 들어서서 공주를 향해 인사를 했다.
“세렌 공주님을 뵙습니다.”
가만히 내리깔았던 폴트의 눈길이 인사를 마치면서 공주를 향했다.
―할머니는 분명히 아니고 아줌마란 호칭은 저런 어린 여성에게 쓰지 않는 걸로 안다만?
드라고니아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투란이 한 말에 딴지를 놓고 있었다.
투란은 딱히 반발할 수가 없었다.
‘그러네? 근데 뭔 말투가…….’
소녀의 모습을 놓고 이렇게 꿍하니 되뇔 수밖에.
태도나 차림새는 밖에서 들었던 기묘함에 걸맞기는 했다.
왜 달고 있는가 어리둥절할 정도로 화려한 장신구가 목과 팔, 손가락 사이까지 주렁주렁 늘어진 채였고 긴 치마가 가슴 아래에서 바로 시작하며 옷의 위아래 구별이 없는데, 온갖 장식이 가슴부터 발목 언저리까지 치마 전부를 수놓듯이 매달려 있었다.
어떻게 봐도 저 장신구, 장식의 무게 때문에 긴 침상 같은 소파에 늘어져 있을 수밖에 없어 보이는 소녀…… 하지만 아주 어리지는 않았고 한두 해만 넘기면 금방 성숙해 버릴 듯한 분위기의 외모였다.
그 외모는 분명히 한창 생기발랄하고 어쩌면 사나울 수 있는 소녀.
그런데 그 말투나 태도는 왜 그리 나른하고 지겨움이 가득한가?
차림새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 걸친 것의 무게와는 다른 권태가 소녀에게서 철철 풍겨 나오고 있었다.
폴트는 그런 공주에게 눈길을 고정해 놓은 채였고, 또박또박 보고하듯 말을 잇고 있었다.
“지시하신 대로 드리츠람 대사제님께 다녀왔습니다. 순례단의 일에 대해서 맡아 주실 듯합니다만, 가능하다면 제가 먼저 폐하께 도달해 말씀드리길 원하셨습니다. 어찌할까요? 이대로 제가 먼저 폐하를 뵙고 순례단의 괴물 사냥에 대해 보고를 해도 되겠습니까?”
“그래도 되겠지만, 그러지 마. 기껏 내가 경을 대사제에게 보낸 까닭이, 너 누구냐?”
나른하게 흘러나오던 공주의 목소리가 끝자락에서 날카로워졌고, 누워 있던 권태 가득했던 자세 또한 순식간에 벌떡 일어서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마침 투란이 폴트의 한쪽 눈알을 옆으로 굴린 순간이었다.
반쯤 감고 졸린 듯, 너무 지겨워서 세상을 보기 싫다는 듯했던 실눈을 하고 있던 공주가 투란이 움직인 눈동자, 살짝 한쪽 눈알만 굴려 낸 탓에 보기 기괴했던 폴트의 눈가에 바로 반응한 셈이었다.
이는 드라고니아조차 예상하지 못한 듯.
―응? 저 공주 설마?
당황스러운 중얼거림을 흘리는데, 투란은 공주가 사납게 손짓하는 모습과 함께 주변이 왕창 흩어져서 모래바람이 되어 뭉개지는 광경을 봐야 했다.
더불어 데저트 데몬이 다시 부스스 흩어져 내리는 모래의 가면이 되어 얼굴 반쪽도 안 되는, 고작해야 한쪽 눈가에 들러붙었으니 가히 사분의 일에 불과한 꼴로 남겨지며 폴트의 껍질이 날려진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