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6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53)
―시체……는 아닌데?
드라고니아가 먼저 간단하게 대상을 가늠했다.
투란도 그 말에 반쯤 동의할 수 있었다.
동의할 수 없는 절반의 까닭은 눈앞의 공주, 세렌이 모래 인형 속에 파묻힌 말라비틀어진 시체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체가 표정을 움직이면서 입술을 열고 목소리를 토해 내는 일은…… 데드워커라든가 언데드라면 가능할 수 있는가?
―아니라고!
투란의 추측을 드라고니아가 바로 부정했다.
그 의미를 투란은 금방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그래, 심장이 뛰고 있고, 흐트러져 있긴 해도 생명력이 없진 않아.
드라고니아가 보태는 말 그대로였다.
모래 인형 속에 파묻힌 채로 얼굴과 몸의 절반가량을 노출한 모습, 그 노출된 부분이 완전히 말라비틀어진 윤기 없는 넝마 같은 꼴이었지만 ‘죽지 않은’ 채였다. 그래도 반쯤 죽었다고 보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 몸에서는 미약한 심장의 박동이 있었고…….
“누구냐!”
격한 노여움을 표현하는 모습은 데드워커가 보일 꼴이 결코 아니잖나.
―미궁의 영역을 다루는 것 같은데?
돌연 놀란 듯이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투란도 그 변화를 보며 느낄 수밖에 없었다.
데저트 데몬이 보여 주던 환영이 지워졌고, 모래로 이뤄진 벽과 천장이 부슬거리며 흘러내리는 와중에도 다시 형태를 갖추려 버둥거리는 기묘한 방의 풍경.
여기까지 뒤집어쓰고 왔던 기사 폴트는 모래 망령의 형태가 되어 방 문턱 너머로 밀려나서 허우적거렸다. 그 꼴은 다른 모래 망령을 끌어오거나 모래 미궁에 영향을 끼칠 수는 없어 보였다.
일단 말을 걸어온 상대이니 투란도 뭔가 대꾸를 하기로 했다.
“당신은…… 정말 세렌 공주야?”
질문에 대해 질문으로 대응하니 넝마 같은 눈알이 모래 티끌을 휘날리면서 더욱 격렬한 음성을, 모래 위에 파문을 일으키는 강력한 음파를 토해 내며 대답했다.
“앙트 세레니아 티아크! 나는 이 자리에 정당한 자격과 권리로 머물고 있다! 너는 누구냐? 누구이길래…… 데저트 데몬?”
격노 속에 토해져 나오던 말이 갑작스럽게 힘을 잃으면서 기묘한 되뇜으로 끝맺고 있었다.
때문에 흠칫하면서도 투란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공주라는 거야, 아니란 거야?’
―애칭이 세렌이고, 앙트 세레니아 티아크란 본명을 그대로 말한 거야. 왕족의 본명 듣는 일이 처음이냐?
‘야, 마이두스 왕은 안 그랬잖아! 홀시딘이 부숴 먹은 왕궁에서도 못 들은 것 같은데?’
―마이두스 왕은 그렇다 치고, 정식으로 왕궁에 방문한 적이 없으니 어쩔 수 없군.
‘너 혼자 납득하지 마! 그보다, 지금 데저트 데몬을 알아본 거지? 어떻게……?’
―모래 미궁 속에서 모래 망령과는 다른 형태로 생존한 몰골이잖아. 정체가 진짜 공주라 한다면…… 대체 몇백 년을 여기서 저러고 있었다는 거지?
뒤늦게 생각이 닿은 듯, 드라고니아가 마른 넝마 같은 몸을 모래로 감싼 공주에 대해 놀라움을 터뜨렸다. 그사이에 투란은 느릿느릿, 애써 생각을 쥐어짜 낸 말을 풀어낼 수밖에 없었다.
“데저트 데몬을 알아? 당신 진짜 여기 공주님 맞아? 모래 미궁 속에서…… 몇백 년을, 아니 거의 천 년일 텐데…… 살아 있었다고?”
이는 곧바로 격분을 부른 모양이었다.
사각! 사르르륵!
주변의 풍경이 환영을 벗어던진 채로 모래 미궁의 광경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넝마 같은 손이 휘둘러진 순간이었다.
그 손목에 모래가 엉긴 채로 장신구 노릇을 한다는 것부터 신기했지만, 모래 미궁이 누군가의 손짓에 호응해서 투란의 주변을 휘감고 데저트 데몬이 다시 얼굴에 쓴 가면 조각이 되도록 한 것은 섬뜩하게 느껴지는 영향력이었다.
게다가 그다음에 튀어나온 날카롭고 높은 외침.
“모래왕! 내 거처에 침입을 허용하다니! 비보(祕寶)가 왜 저런 이상한 놈을 감싸고 있는 거야! 당장 내게 해명해! 계약자로서 명한다!”
‘우앗?’
―계약자라니?
투란은 모래왕을 멋대로 부리는 것처럼 부르는 모습에 놀랐고, 드라고니아는 계약자란 한마디를 예민하게 짚었다.
누가 놀라든 말든 모래는 소용돌이와 회오리, 거기에 격렬한 요동을 더하면서 주변을 휩쓸었다. 그리고 우뚝 선 석상, 가죽으로 된 펑퍼짐한 차림새를 한 모래의 형상이 투란과 마른 넝마 꼴인 세렌 공주 사이에 자리 잡았다.
잠시 그 모래의 형태를 살피던 투란은 금방 모래왕이 형체를 내밀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동시에 드라고니아가 짚은 한마디의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달았다.
‘계약자…… 저 말라비틀어진 시체 같은 공주님이 모래왕의 계약자라고? 근데…… 죽었다고 하지 않았냐? 성궤에 억지로 묶여 있어서 나더러 풀어내라고 한 것 아니었어? 모래왕, 사기 친 거야?’
―어떻게 생각해도 사기 친 것 같다만…… 거짓말이라기보다는 진실을 감춘 이야기였을 거야.
‘뭐? 버젓이 계약자가 불러내니까 바로 튀어나왔잖아. 죽었다는 얘기가 어떻게 거짓말이 아닐…….’
―영혼의 계약은 대상이 유령인 꼴로 지상에 묶여 있는 동안에도 유지된다. 만약 공주가 죽은 다음에 저런 꼴이 된 거라면, 언데드의 형체로서 저런 꼴로 유령인 자신을 지상에 묶어 둔 것이라면…….
‘그만해!’
유령이란 말에 오싹해진 투란은 바로 드라고니아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바로 투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모래왕에게, 그 너머에 있는 세렌 공주를 향해 말문을 열기도 했다.
“맹약이 담긴 성궤를 해결해서, 풀려나고 싶다고 한 것 아니었나? 계약자가 있다면 성궤를 어떻게 해도 여전히 맹약에 묶인 것 아니야?”
마법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따질 수는 없었다.
하지만 모래왕이 떠넘긴 일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짚어 볼 수 있었다.
스스로 계약자라며 나선 공주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삼자대면으로 상황을 확실하게 짚어 보는 셈이었다.
이런 투란의 말에 모래왕이 부스스한 표정을 느릿하니 움직일 때, 세렌 공주가 넝마처럼 주름진 얼굴을 몇 겹 더 구기면서 한층 더 날카롭게 외친다.
“풀려나고 싶다? 하아, 핫! 누가? 모래왕, 네가? 내게서? 이 모래의 저주에서? 성궤를 어찌해? 아하핫, 드래곤의 저주가 깃든 성궤를 누가 건드릴 수 있었나! 저 얼간이가 대체 누군데! 왜 저런 멍청이에게 데저트 데몬을…… 대체 어떻게 저자가 데저트 데몬을 쓸 수 있는 거냐고! 모래왕, 대답하란 말이야!”
“다물고 들어라, 모래왕이 이야기할 것이니.”
타이르는 듯한 분위기를 한껏 풍겨 내면서 무거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모래가 말한다는 상황부터 어딘가 어긋난 듯했지만, 투란은 바쁘게 공주의 말을 되새기면서 드라고니아에게 확인해야 했다.
‘왜? 데저트 데몬을 내가 쓰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거야? 모래왕이 헛소리한 일이 있는 거야?’
―조용히 해, 들어 봐!
드라고니아는 가속화된 사고(思考) 속에서 투란이 묻는 말보다 모래왕이 느릿느릿하게 변화시키는 형태가 더 흥미롭다는 듯, 더 위협적이라는 듯이 대답하고 있었다. 그 느낌은 조금 늦게 투란에게도 찾아왔다.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계약자, 세렌 공주의 기묘한 몰골과 날카로운 말투, 그 태도에 호응하듯 모래왕이 꾸민 형체가 날카롭게, 위험하게 불룩거리고 있다! 여차라면 모래로 된 창이나 화살이 툭 튀어나올 수도 있고, 그냥 모래가 늪처럼 덮쳐 올 듯도 했다.
그냥은 볼 수 없는 광경이었지만, 가속화된 사고 속에서 느릿하니 보고 있자니 너무나도 그 광경이 또렷해서 투란은 그 너머의 공주는 이럴 때 대체 뭘 하려는가, 그러면 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데저트 데몬은 용의 가호를 지닌 몬스터 로드에게 열려 있다. 그에게 그러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모래왕이 확인했다.”
“뭐? 용의…… 그 드래곤과 상관없는 이상한 것들의 괴상한 마력? 그런 걸로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다니! 잠깐, 그럼 이자는…… 몬스터 로드이기는 하다고? 설마 용의 문장을 지닌 것은 아니겠지? 그건 투아란만의 문장이야! 용을 삼키고 용을 부리는 투아란의 문장을 지녔을 리가 없잖아!”
앙칼진 세렌 공주의 말은 텁텁한 모래 티끌과 함께 토해져 나왔다.
그 몰골은 투란이 한번 더 찔끔하고 섬뜩함을 느끼게 했다.
사람이 말을 하다 침이 튄 경우야 흔하지만, 몸 깊은 곳에서 짜낸 모래 먼지를 풀풀 휘날리는 경우라니!
샌드 리저드도 저런 꼴은 아니었잖나.
투란의 기분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모래왕의 느릿해서 느긋하게 들리는 말이 세렌 공주를 향해 나오고 있었다.
“그의 문장에는 사룡이 삼켜졌고, 그는 사룡을 부린다. 모래왕은 그 또한 확인했다. 용을 삼키고 용을 부리는 문장, 데저트 데몬이 필요로 하는 조건은 충분히 갖추고 있는 자이다.”
“웃기지 마! 나는 드래곤에게 약속했어! 이 영혼이 으스러지고 깨져나가더라도 나는 여기서 투아란을…… 모두가 끔찍하다고 외면하려고 ‘그림’ 투아란이라 부르는, 아무도 기억하려 하지 않는 투아란을 기다리기로 했단 말이야! 투아란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여기서 비켜서게 하지 못해! 데저트 데몬의 마스터 자격? 그딴 거 내가 알 바 아니야!”
세렌 공주는 절규했다.
그 절규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몇 마디는 투란을 당황시켰다.
‘뭔 얘기냐?’
―낸들 알겠냐?
드라고니아도 답이 없다는 듯이 대꾸할 뿐이었다.
그러나 모래왕은 너무나도 느긋하게, 그냥 느릿할 뿐인 듯했지만 덕분에 여유가 넘쳐나는 느긋함이 가득한 듯한 말투로 덤덤하게 하던 말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앙트 세레니아 티아크, 모래왕의 맹약을 수호하는 계약자여…… 네 앞에 선 자에게, 데저트 데몬을 쓴 사람에게 이름을 물어야 하지 않겠나?”
어딘가 다정한 분위기도 살짝 섞인 듯한 탓인가, 세렌 공주가 흠칫하면서도 주저하는 눈길을 투란에게 보냈다. 그 순간.
―저 빌어 처먹을 정령 놈이…….
드라고니아가 잔잔하지만 터질 듯한 격노를 담아 속삭였다.
‘허얼? 너 갑자기 왜 그래?’
너무 뜬금없는 탓에 투란은 완전히 황당할 뿐이었다.
불꽃왕에 버금간다고 나름 존중하는 듯했던 태도가 어디론가 실종돼 버린 듯한 이 노여움은 대체 무엇 때문인가?
물론 소리 내서 직접 말을 전한 것이 아니니 뭔 말인들 못 할까도 싶지만, 이렇게 격렬한 감정을 흘려 내니 마력이 가볍게 흔들거리면서 슬그머니 그 자취를 드러낼 지경 아닌가!
하지만 투란이 이를 더 캐물을 여유가 없었다.
세렌 공주가 넝마 조각 같은 눈알에 힘을 주는 듯한 모습으로, 억누른 탓에 더욱 거센 압력이 담긴 듯한 말투로 묻고 있었으니까.
“너, 진짜 이름이 뭐야?”
투란은 어째 맨 처음 질문을 다시 듣는 기분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진짜 이름’이라고 또박또박, 입가에서 먼지를 흩날리며 묻는 바가 어딘가 엄숙한 것이 위험하게 느껴져서 투란이 잠깐 망설일 지경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대답은 해야 할 상황.
한데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입술이 꿈틀하는 순간, 압도적인 가속을 담아 투란의 마음에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을 쏟아붓고 있었다.
―저건 진명을 묻는 말이야! 투란, 안다 모른다가 아니라 기억한다 못 한다로 대답해야 한다! 에잇, 잘 모르겠으면 네가 기억하는 유일한 이름은 투란이라고 해! 정직하게, 진심으로!
‘야, 정직이고 진심이고 따지기 전에 투란 말고 다른 이름 따윈 모른다고!’
―모른다는 말을 하지 말란 말이다! 갓난아기 때의 일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그러니 들은 적이 있어 ‘안다’ 해도 넌 ‘기억을 못 하는 것’이라 해야 한다고!
‘알았어, 알았으니까 넌 좀 조용히 해.’
한숨을 흩날리는 기분을 팍팍 풍기면서 투란은 다시 귓가에 세렌 공주의 질문이 남긴 메아리가 여운을 흘리는 감각을 깨달으면서 대답을 꺼낸다.
“투란,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이름. 다른 이름으로는…… 불렸던 기억이 없어. 음, 참고로 지금 세상에서는 굉장히 흔한 이름이니까, 신기해하지 마.”
세렌 공주의 반응이 투란의 골을 깨부술 정도로 강렬하게 돌아왔다.
“까불지 마! 너의 ‘진정한 이름’을 말해! 투아란의 흉내를 낸 가짜 이름이 아닌, 네 부모가 네게 부여한 ‘이름’을 토해 내란 말이다!”
골이 울리는 와중에도 투란은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 울컥 치솟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그동안 꼭 닫아 놨던 뚜껑이 저 캐묻는 말에 두들겨 맞고 부서져 나간 듯했다.
“그딴 것 기억 못 한다고! 난 부모 낯짝이 어떻게 생겼는가도 기억하지 못한단 말이야! 갓 태어난 날 주워다 키운 사람들도 모른다는데 내가 기억할 리가 없잖아!”
으득거리는 와중에도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빠른 경고, 반복되는 자극에 ‘모른다’는 낱말을 피해서 악착같이 ‘기억 못 한다’는 진실을 강조하는 대답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