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6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55)
‘그러게…….’
겨우 정신을 추스르는 기분으로 투란은 소리 없이 되뇌었다.
그저 이름만 툭 튀어나왔다면 ‘역시 대마도사!’라고 대충 그냥 넘기고 말았을 터였다. 뭔가 수상하고 이상하면 날름 덮어씌우기 참 좋은 이름이니까!
하지만 세렌 공주는 그 이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대마도사 카엘이 이곳에 왔었다, 그냥 혼자 온 것도 아니다.
‘몬스터 군단을 끌고 왔다는 이야기지?’
겨우 추스른 마음으로 투란이 묻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드라고니아도 조금 진정한 듯 말한다.
―모래 망령을 상대하라고 몬스터 무리를 밀어 넣었다는 이야기겠지. 거기 대삼림의 오르카 일족이 왜 끼어 있는가는…… 그딴 거 알 게 뭐냐! 지금 중요한 일은 네가 죽냐 사냐 하는 일이잖아!
‘어? 어, 그야…….’
뭔가 생각하려다가 억지로 외면하는 것처럼 말을 돌리는 낌새에 투란은 살짝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가 짚기는 제대로 짚고 있었다. 지금 한편에 서서 멀뚱거리며 구경만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모래왕은 괜찮다고 하고, 공주는 괜찮을 리가 없다고 하는 것.
성궤가 투란을 죽이느냐 마느냐 하고 말다툼하는 중이다!
그냥 대단한 마도사가 정성껏 만들었다고 한다면 몬스터 로드답게 가슴을 펴고 무슨 마법인가 한번 보자고 투란이 나설…… 리가 없었다!
한데 드래곤이 끼어든 마법이라잖나!
도대체…….
“무슨 마법이지?”
의아함이 저절로 투란의 입술을 넘어 새어 나갔다.
멍하니 던진 말이었지만 데저트 데몬은 그 숨결을 모래 티끌로 열심히 치장해 주고 있었다. 그 덕분인가, 티끌이 퍼져 나가면서 모래왕과 공주에게 확실히 닿은 탓인가 기대하지 않은 대답이 바로 두 가닥으로 튀어나왔다.
“자격을 시험하는 마법이다.”
“투아란 아니면 죽이는 마법.”
모래왕의 덤덤하고 엄격한 말, 세렌 공주의 날카롭고 냉소적인 말.
투란의 낯이 데저트 데몬의 조각난 가면과 함께 구겨질 때.
―기본적인 조건을 갖췄어도 따로 시험까지 하는 모양이군.
드라고니아는 상황을 분석하고 추리하고 있었다.
투란은 그런 추측 대신에 더욱 확실한 답을 구하려 했다.
“모래왕, 자격을 갖춘 자라면 그냥 누구라도 상관없는 거야? 공주님, 그 자격이 있더라도 무조건 투아란이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도대체…… 무슨 마법인데요?”
마지막 물음은 드라고니아의 낌새에 살짝 덧붙여지고 말았다.
투란으로서는 그게 무슨 마법이라고 듣거나 말거나, 사실 상관없으니까.
중요한 점은 몬스터 로드라고 버티다가는 단번에 뒈질 수도 있다는 것.
매우 혼란스럽다는 기분을 그대로 드러내는 투란을 향해 공주가 먼저 재빠르게 대답을 한다.
“성궤는 강력한 맹약을 담고 있어. 모래왕을 묶어 두고 지배하는 강력한 맹약, 왕국을 수호하는 지고의 마도구를 지키는 맹약이기도 하지! 그래서 그저 가까이 가기 위해서도 드래곤의…… 용족의 가호가 필요해. 모래왕이 널 데려온 꼴로 봐서는, 너는 카엘이 말한 용의 도시에서 가호를 얻었겠지? 하지만 그건 겨우 성궤의 첫 번째 문턱을 넘는 자격일 뿐이야. 두 번째 문을 지나치려면 용의 화신을 움직여야 해. 미완성일 때 성궤의 소재를 노리고 함부로 접근하려는 자를 막으려고 임시로 설치했던 문이지만, 투아란은 그걸 치우기 전에 죽었어. 그래서 성궤가 완성된 다음에도 두 번째 문은 여전히 용의 화신을 움직이는 자격을 요구하지! 그리고 세 번째…… 그건 투아란이 아니면 아무도 지나칠 수 없어! 내 언니가…… 앙트의 첫째 공주가 투아란만을 기다리니까!”
“첫 번째?”
투란이 의아함을 담아 속삭였다.
흠칫하는 모습이 마른 넝마 같은 얼굴에 잠깐 스쳐 갔지만, 세렌 공주는 그대로 말을 맺어 가고 있었다.
“그 모든 사연을 담은 마법, 드래곤이 자신의 계약자만을 위해 남긴 마법이 성궤를 지키고 있어! 투아란이 죽었기에 아무도 해제할 수 없는 마법이라고! 그저 운명의 궤적이 닮았다고 언니가 널 성궤로 인도할 것 같아? 절대 아니야! 그리고…… 모래왕의 축복이 저주가 된 탓에 변해 버린 왕국 수호군단은 네가 누군지, 자격이 뭔지 상관 않고 무조건 죽이려고 할 거야! 그러니까 들어가면 넌 무조건 죽어!”
“수호군단?”
이번에도 맹한 속삭임을 흘려보는 투란이었다.
―모래 망령으로 된 군단이겠군.
드라고니아도 혀를 차듯 중얼거렸다.
오는 동안 그런 것이 보였던가, 되새기다가 투란은 생각을 멈췄다.
모래왕이 조용히 기다렸다가 세렌 공주의 말이 끝나자 말문을 열고 있었다.
“그대가 지닌 용의 가호는 용족의 가호를 대신할 수 있다. 이미 사룡의 잔재를 거둬들인 그대라면 용의 화신이 지닌 힘의 증명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래왕은 대마도사 카엘에게 약속을 받았다. 세 자매의 날개를 품고, 용의 파편을 얻어 낸 자가 죽지 않는 자의 거성을 모래 위로 떨굴 때…… 약속된 자가 성궤를 찾을 것이라고. 모래왕은 그를, 그대 투란을 인도할 의무가 있다.”
투란은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고 등골이 오싹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모래왕의 조용한 이야기에 ‘어?’ 하더니 바로 황당함과 함께 납득했다는…… 그래도 역시 짜증과 불만은 가득하다는 듯이 으르렁거리며 투란에게 떠들고 있었다.
―이거 몽땅 계획된 거란 말이잖아! 세 자매의 날개라면 유렐리아일 테고, 용의 파편이라면 사룡의 봉인석주! 유니콘홀드를 그 아슬아슬한 절벽에 둔 것까지! 젠장할, 이게 전부……!
‘대마도사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숨을 고르면서 떨리려는 몸을 강제로 진정하면서 투란은 스스로 다독이기 위해 되뇔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겪은 일이 번개처럼, 벼락 치듯이 투란의 마음을 스치고 지나간 다음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한 가지가 또렷하게 투란의 마음에 치솟듯이 남겨졌다.
문장의 풍경 속에서, 기묘한 몰골로 으르렁거리는 시커먼 늑대…….
모든 것이 그 이상한 문장의 전이로부터 시작이었잖은가.
고대의 몬스터 엠블럼, 펜릴의 문장.
그 또한 이 대사막의 성궤, 그 안에 담긴 맹약을 해제하기 위한 준비였다면…….
‘문장 바꿔 놓을까?’
―하지 마! 사룡의 힘이, 그 능력이 중요하다고 했잖아! 유렐리아 역시 뭔가에 필요할 수 있고! 뭐가 나오든, 지금 너의 천칭이라면 대항할 수 있다고! 나 역시 뭐든 할 수 있는 것은 천칭 속에서니까!
살짝 갸웃하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맹렬하게 으르렁거렸다.
그 격한 말투 속에 담긴 감정이 고스란히 투란의 마음에 전해져 왔다.
드라고니아 역시 이런 상황을 싫어하고 있었다.
전혀 눈치채지 못한 일도 아니었기에, 더욱 싫어하는 듯했다.
어째서 펜릴의 문장이 준비된 제단이 있었는가.
유렐리아의 사냥을 위해 준비된 몬스터…… 여러 종이 원래 나타난 보금자리에서 얼마나 먼 곳을 옮겨져 있던가.
난투 끝에 떨어진 사막의 막막함 속에 만났던 소녀, 마녀 키유나 역시도 결국 투란에게 인도당한 셈이 아닌가.
완전히 앞이 가려진 장님처럼, 귀머거리처럼 이리저리 뛰고 날아 도달한 결과가 겨우 죽을지 살지 모를 열쇠 노릇이라니!
‘뭐…… 그래도 검은 늑대 낯짝을 가슴에 품고 돌파해 오지는 않았잖아?’
피식, 모래의 가면이 투란의 얼굴에 웃음을 그려 냈다.
살짝 흠칫하는 낌새가 마음속에 느껴지면서 조금 가라앉은 드라고니아의 말이 투란의 뇌리를 울린다.
―카엘이, 대마도사가 뭘 어떻게 준비했는가 중요하지 않다. 투란, 너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몬스터 로드야. 그러니까…… 모래왕이고 성궤고, 너를 어떻게 못 한다! 자신의 힘을 믿어!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 흥분해라. 내가 널 말려야겠냐? 네가 날 말려야지!’
키득거리고 싶은 기분으로 투란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내쉴 때는 알아서 모래 먼지를 섞는 데저트 데몬이 들이쉴 때는 티끌 한 톨도 닿지 못하게 깨끗하게 걸러 내 버린 듯, 투란은 가슴 속에 맑고 깨끗한 숨결이 들이찬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분도 조금 깔끔해진 듯한 느낌을 담아 투란은 세렌 공주를 똑바로 보는 채로, 가능한 한 담담하게 전해지도록 말문을 열었다.
“공주님, 나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고마운데…… 모래왕이 믿기지 않더라도, 내게 기회를 좀 주지 않을래요?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 나한테는 꽤 불편한 일이거든요. 그래서 빨리 끝내고 돌아가고 싶어서 말이죠.”
“죽고 싶어?”
세렌 공주가 마른 입술을, 넝마 같은 목젖과 볼을 쥐어짜듯이 말했다.
사각사각, 뭐라 대답할까 생각하며 투란이 볼을 긁적이니 곧바로 데저트 데몬을 긁어 낸 듯했다. 마치 투란을 투란 자신의 손끝에서도 보호한다는 듯, 재빨리 볼을 덮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이 데저트 데몬은 어딘가 이상하긴 이상하다고 느끼면서 투란의 입이 열렸다.
“음, 아닐걸요? 모래왕은 내가 죽기를 바라시나?”
“모래왕은 투란이 죽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기에는 너무 강하니까.”
모래왕의 대답이 묵직하게 미궁을 울리듯이 흘러나왔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한 그 말에 살짝 투란의 눈가가 꿈틀했다.
모래왕 자신도 터무니없이 강하지만 성궤를 그 강대한 힘으로 어쩌지 못했으면서, 여전히 어떻게 못 하기에 투란을 끌어들였으면서 강한 것이 중요하다는 듯한 말투라니!
‘오르카 쿤토르만큼이나 엉망진창인 성격이구먼.’
불룩 튀어나오려는 불만을 한편으로 흘리면서 투란은 공주를 향해 다시 담담하게 말을 한다.
“모래왕이 내가 죽지 않는다잖아요, 나도 죽고 싶지 않고 말이죠.”
“죽고 싶지 않아도 죽는다고! 넌 투아란이…… 전설이 된 그림 투아란이 아니니까! 네가 강하든 말든 상관없어! 중요한 것은 네가……!”
완강한 세렌 공주의 말이 끝나기 전에 투란은 그 앞으로 다가갔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자리에서 투란이 공주가 말을 멈칫하는 틈을 노려 말한다.
“어떻게든 해볼 수 있는 일만 할 거예요. 모래왕도 기회를 노린 것뿐이니까. 내가 실패한다고 해도…… 아마 다른 누군가 또 찾아올 수 있을걸요? 물론 내가 실패하더라도 죽지는 않을 거예요. 공주님, 난 공주님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끈질겨요! 그러니까 모래왕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내게 기회를 한번 줘요. 성궤가 어떻게 생겼나, 구경이라도 하게 해 줘요.”
“구경?”
어이없다는 듯이 공주가 되뇌었다.
“앙트 세레니아 티아크, 그는 투란이다.”
갑작스럽게 모래왕이 덧붙였다.
스르륵 곁에 서는 채로 말하는 그 모습에 투란이 황당해서 바라봤지만, 모래왕은 공주를 향해 머리통을 기울이면서 다시 강조하듯 되뇌고 있었다.
“투란이다, 이자는 투아란이 아닌 투란이며 자격을 갖추었다. 공주여, 그대의 약속을 지킬 때가 되었음을 인정하라.”
“죽든 말든…… 그래, 내 알 바 아니겠네.”
다소 성난 듯한 세렌 공주의 말이었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아련해진 눈빛을 투란에게 쏘아 내는 공주의 표정은…….
‘으아, 이상해!’
말라비틀어진 채로 모래를 걸친 몰골이 너무 기괴했다!
―내색하지 마!
드라고니아가 급히 말했고, 투란은 어설프게라도 입가에 웃음을 띠려 노력했다. 하지만 데저트 데몬은 그런 투란의 얼굴에 성난 괴수처럼 일그러진 가면을 덮어씌우고 있었으니…….
“모래왕, 데저트 데몬은 회수할 거지?”
완전히 기분 상한 듯한 세렌 공주의 말이 툭 튀어나왔다.
투란이 움찔하는 사이, 모래왕의 대답이 울려 퍼진다.
“성궤가 자격을 인정한다면, 정령으로 이뤄진 아티팩트는 그를 주인으로 섬길 것이다. 그가 죽는다면…… 미궁이 다시 아티팩트를 거둘 것이다.”
왠지 속이 살짝 울컥했기에 투란은 바로 이 말에 대꾸하고 말았다.
“헤에? 내가 이 꿈틀꿈틀 모래 가면의 주인이 된단 말이지? 그렇게 되면 이 녀석을 대체 어떻게 써먹을 수 있는가도 알려 줄 거야?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뭘 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뭐, 나중 일이니까. 나중에 꼭 잘 알려 주길 바라.”
“그런 얘기는 살아남은 다음에 해.”
세렌 공주의 말이 차갑게, 티끌을 투란에게 뿜어내는 듯한 숨결과 함께 뿜어 나왔다.
하지만 그 말과 함께 세렌 공주는 한편으로 몸을 옮겼고, 공주가 있던 자리의 모래가 허물어지며 커다란 구멍이 열렸다. 사람 서넛이 꼭 끌어안은 채로 뛰어들어도 될 정도의 구멍 안은 깊었고 잠깐 시커멓게 보였다.
그 어둠 속으로 모래 미궁의 모래가 부스스하니 흘러들어 가니, 그 누런 빛이 어둠을 밝히는 듯했다.
그 묘한 광채로 인해 투란은 볼 수 있었다.
서서히 누렇게 밝혀지는 구멍 깊은 곳에 가득한 창과 방패, 그 창과 방패로 가려진 병사들…….
“망령이 된 수호군단이야. 얼른 도망치는 것이 좋을걸?”
차갑지만 어딘가 떨리는 말투로 세렌 공주가 말하고 있었다.
모래왕은 투란이 디딘 자리를 무너뜨렸다.
―이 썩을 정령이 진짜!
“웨에에에에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