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6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58)
‘왜…… 새카맣지?’
투란은 이어지는 광경에 의문을 품어야 했다.
아크휠이 무지갯빛을 머금으면서 바꿔 버린 풍경, 그 온갖 색채를 자랑하는 정원의 풍경 속에서 두 사람의 형체는 극단적으로 이질적이었다.
마치 투란이 하던 짓을 흉내라도 낸 것처럼, 허공에 시커멓게 뚫린 구멍처럼 생긴 그림자 인형이 움직이는 모습.
왜 저런 몰골인가 의아해하는 와중에도 사념의 파동을 통해 엿들을 수 있는 둘 사이의 대화.
―엄청난 빛의 정령이라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빛의 파문을 이용해서 사념전언까지 모사할 줄이야.
드라고니아는 투란과 다른 부분을 놓고 놀라며 의아해하고 있었다.
투란에게는 낮과 밤을 뒤집고 감추며 사막의 경계를 지워 대는 엄청난 놈이 고작 그런 것 흉내 냈다고 왜 놀라느냐 따지고 싶기는 했지만…….
‘엘카야는 그렇다 치고, 투아란이라고 하지 않았냐?’
어딘가 시시하게 느껴지는 안부 인사로 오가는 대화가 시작되기 전, 분명히 ‘투아란’이란 이름이 튀어나왔다.
즉, 저 그림자 중 남자 쪽이 그림 투아란이라고 하는 셈이 아닌가?
―확실히…… 그림 투아란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만…… 엘카야란 저 여자는 뭐냐?
‘그걸 내가 알겠냐?’
―이 상황은 마치 너에게 뭔가 보여 주려는 것 같다만, 뭐 짐작 가거니 느껴지는 바가 전혀 없어? 사룡조차 자제시키는 이 분위기, 대체 뭔지 아무 느낌도 없어?
‘음? 으음.’
투란은 울컥하던 기분을 가라앉히고 드라고니아의 말을 되새겨 봤다.
분명히 사룡의 본능이 현재 상황에 반응하고 있었고, 투란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어째서인가, 몬스터와 인간의 형상이 섞인 수호군단을 향해서 드러내던 공격성을 스스로 억누르면서 새로 변해 버린 이 풍경을 물끄러미 몇 걸음 떨어진 채로 지켜보고자 하는 충동.
‘뭔가 보라는 것 같은데?’
―답답하군.
겨우 쥐어짜 낸 투란의 대답에 드라고니아가 바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다시 뭐라 투덜거리기 전, 투란은 그림자 여인이 꺼내는 기묘한 것에 아크휠이 맹렬하게 반응하는 것부터 지켜봐야 했다. 너무나 갑작스러웠고 오가던 안부 인사 속에서 전혀 낌새가 없던 것이 툭 튀어나와 그림자 남녀의 틈새를 현란한 색채로 채우고 있는 셈이라니…… 너무 짙고 복잡한 광채 덕분에 ‘투아란’과 ‘엘카야’의 그림자 형상이 더욱 지독하게 허공을 꿰뚫는 허무한 구멍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상자?’
―선물이라고 했으니, 선물을 담은 상자겠지?
‘아? 어, 그런 말을 하긴 했네.’
―보지만 말고 대화에도 주의해라!
오가던 말을 그냥 흘려들었던 탓에 어리둥절한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바로 핀잔하고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잘 지냈냐는 둥, 잘 있었냐는 둥, 잘 다녀왔냐는 둥의 말을 늘어놓다가 선물을 주고받는 상황이었고 남자 ‘투아란’이 꺼내 든 늘어진 끄나풀이 아무 특징도 없는 터에 여인 ‘엘카야’가 꺼낸 것이 너무 격하게 반응하고 있을 뿐이었다.
요란한 만큼 뭐가 있으면 스쳐 본 것을 반성하겠지만, 요란하고 아무 일 없는 것이라면…….
―투란, 저 끈이 아크휠이잖아!
불쑥 드라고니아가 한 말은 투란을 움찔하게 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뭔 목조르기 용 끈이라도 넘겨주나 했는데, 그 늘어진 끈이 대사막을 덮는 환영을 일으키는 아크휠이라니!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아까 전만 해도 자연스럽게 여인의 손목에 걸려 있던 것이 없었다.
그야말로 이제서야 선물을 받아 손목에 걸고 상자를 내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었다.
눈을 부릅뜨고 다양한 감각으로 지켜보는데 이건 대체 무슨 일인가.
어쩐지 한참 눈을 감았다 뜨니 보이던 것이 뒤바뀐 듯한 이 상황은 대체 뭔가?
투란이 어이없어하는 사이, 남자 ‘투아란’이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투란은, 드라고니아는 잠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나타날 때부터 현란했던 상자, 그 상자 속에서 우러나오는 광채는 그 현란한 채색을 압도하는 장엄한 무늬를 머금고 있었다.
빛으로 채색된 무엇이 아니라 무늬 안에 담겨 있는 기괴한 힘이 그 형상을 빚어내는 빛을 압도하며 억누르는 듯한…….
‘기분 나쁘게 성스러운데?’
투란은 솔직하게 그 감상을 흘려 냈다.
드라고니아가 여기에 바로 보태듯이 으르렁거린다.
―제대로 느꼈다. 저건 육신(六神)의 성물(聖物)이야. 이제는…… 지금 세상에는 오랫동안 없었던 것이다만, 이 환영이 비춰 주는 시절에는 아직 있었나 보군.
‘육신?’
―여섯 신이라고.
‘뭔 여러 신의 성물이 한 덩어리야? 아, 그래서 존중한다고 저리 요란하게 상자를 포장하고 있었나?’
―글쎄다…… 잠깐 지켜봐.
드라고니아의 말을 오래 따를 필요는 없었다.
투란은 잠깐 사이에 갑작스럽게 격변하는 풍경을 봐야 했고, 그 결말 또한 기다림 없이 바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 과정은 꽤 간단했다.
‘엘카야’가 손에 든 성물이 상자에서 나왔고, 정원의 풍경이 새하얗게 변해 사라지면서 오롯하게 남녀의 그림자 형상만 남았다. 성물은 상자 속에서 나오자마자 작고 삐죽한…… 꼬챙이 단도 같은 형체가 되어서는 ‘투아란’을 꿰뚫어 버렸다.
새하얀 배경 속에서 ‘투아란’은 드러누운 채로 가슴에 찬란하고 기괴한 힘을 간직한 단도에 꿰인 꼴이었고, ‘엘카야’가 그 머리를 감싸 안아 올리며 벙긋거리고 있었다. 그 벙긋거림은 굳이 사념전언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비명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언을 통해 더욱 확실하게 ‘투아란’이라는 이름을 외치며 고통스럽게 절규하는 것을 알 수밖에 없기도 했다.
이 광경은 투란에게 퍼뜩 깨닫게 했다.
‘이거…… 그거네?’
―그림 투아란의 최후, 그 광경이겠지.
드라고니아도 투란의 생각에 바로 동의했다.
때문에 투란은 곧바로 전설과 이 광경이 한 가지 어긋나 있다는 것을 짚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냥 장식용 칼이 아니었어?’
―뭐? 그림 투아란이 그런 것에 뚫렸겠냐!
‘아니, 무슨 예식에나 쓰는 장식용이라고…… 배신자에게 너무 관대했던 탓에 그런 칼에도 뚫리는 꼴이 되었다고 했는데?’
―예식에 쓰이는 것은 맞다만, 육신의 성물이 변화한 형태를 보통 장식용이라고 둘러대다니…… 아, 이런! 투란, 일단 지켜봐라.
‘엘카야’가 변하고 있었다.
시커먼 구멍 같던 그림자에서 회색으로, 울퉁불퉁하게 꿀렁거리는 회색의 형체로 변하고 있었다. 그 변화 속에서 늘어져 있던 끈처럼 보였던 아크휠이 하얗게 물들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사념을 대신해 또렷하게 허공을 울리는, 풍경까지 흔들어 대는 목소리로 말을 하고 있기까지 했다.
“나는 거짓을 말했다, 내가 진실이라고 믿었기에. 나는 투아란을 다칠 일을 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행동은 거짓에 휘둘렸고, 투아란을 해쳤다. 내가 믿었던 이들조차도 거짓에 물들었고, 자신들이 거짓에 휘둘린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우리는 진실이라 여겼던 일들이 모두 거짓이었다. 그 거짓에 휘둘려 투아란을…… 그림 투아란을 다치게 했고, 드래곤이 격노하게 했다. 드래곤조차도 거짓의 사슬이 진실한 마음을 왜곡하고 잘못된 행동으로 이어지는…… 그 길고 긴 연쇄를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림 투아란은 영혼까지 산산조각 났고 세계는 드래곤의 저주와 분노로 채워지게 되었다. 나는 투아란을, 그림 투아란을 되살릴 수 없고 저질러진 일을 돌이킬 수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심판자가 되겠다. 거짓을 심판하겠다. 설혹 신들이 지고한 성스러움으로 감싸 안은 거짓일지라도, 심판하겠다. 신조차 거부할 수 없는, 왜곡할 수 없어 덮어 감추려는 진실을 찾아 밝히는 탐색자가 되겠다. 내게 거짓을 고하는 자, 무지 속에서 거짓을 진실로 뒤틀려 하는 모든 이를 벌하는 자가 될 것이다. 나, 엘카야는…… 오로지 진실만을 따를 것이다.”
윙윙거리는 울림은 단순히 귀로만 듣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투란은 강력한 파동이 사룡이 맴도는 풍경, 문장이 머금은 심상 깊은 곳까지 닿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몬스터 엠블럼을 찢어 내려는 듯한 파동, 진실한 형태를 감춘 마법을 으깨려 하는 듯한 격렬함이었다.
거기에 투란이 뭘 어찌하기 전에 맹렬한 마력, 투란에게서 드라고니아가 빌려 갔던 의지의 마력이 반발했다. 한데 그 반발은 투란의 의지라기보다는 드라고니아가 스스로, 드라코눔의 아칸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확신하는 의지를 기반으로 삼아 버린 듯했다.
감탄이 저절로 투란의 마음속에서 샘솟았다.
‘너, 대단하다!’
윌 라이트의 마력이 순수하게 의지로만 이뤄진 존재를 그려 내고 있었다.
투란의 주변을 사납게 짓이기는 마력의 장벽이 겹쳐지는 듯했고, 붉은 비늘이 황금빛 광택을 머금은 듯한 무늬가 투란을 감싸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인가?
한층 더 갑작스럽게 드라고니아가 웅장한 위엄을 담아 소리 내서 말문을 열고 있었다.
“엘카야, 트루세이어라면 지금 말하는 자신을 먼저 확인해라! 너는 잔재, 그저 지워지고 남겨진 그림자! 아크휠이 그려 내는 환상일 뿐이다! 나는 몸을 잃었으나 의지를 품고 몬스터 로드에게 의탁하는 자, 진실한 의지를 품은 존재! 그대가 감히 몬스터 로드의 의지를, 그 삶을 부정하려 하는가? 우리의 진실을 한낱 빛으로 그려진 허구가 부정하려 하는가?”
“뭐? 야, 너 지금…….”
투란은 살짝 당황해서 묻고자 했다.
하지만 그 말이 소리가 되는 순간, 투란이 자신의 목소리에 놀란 탓에 저절로 얼버무려지고 있었다. 딱히 소리 내려 한 것이 아닌데 어째서인가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나오고 만 것!
이런 투란에게 회색의 ‘엘카야’가 하얀 끈, 아크휠이 감긴 손을 들어 올리고 바로 묻는다.
“그대가 품은 자, 그대가 그려 낸 거짓이 아닌가?”
“에? 뭔 바보 같은 소리야! 몬스터 로드를 대체 뭘로 보고!”
왠지 가슴속에서 울컥했기에 투란이 으르렁거렸다.
‘엘카야’는 지체 없이 다시 묻고 있었다.
“그렇다면 진실이라 주장하겠는가?”
“마법이라고, 마법! 몬스터 엠블럼이 마법이라서 불만이야? 그럼, 그 손에 감긴 정령인지 도구인지 모를 녀석부터 어떻게 하라고!”
그냥 몰리는 듯한 상황에 기분이 나빴기에 투란은 바로 반발했다.
드라고니아가 재빨리 여기에 보태듯, 역시 또렷하게 소리 내서 말한다.
“자신을 확인하기를 거부하는가? 엘카야, 그대는 진정한 엘카야인가? 그림 투아란을 찌른 자인가? 드래곤의 분노와 저주를 이 세상에 퍼뜨린 원흉인가? 답하라,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자신이 무엇인가! 답하라!”
이는 ‘엘카야’를, 그 회색의 형체를 주춤하게 했다.
“나는…….”
대답을 하려는 듯한 태도로 회색의 손이 올라가며 회색의 얼굴을 더듬었다.
얼굴에서 회색이 지워지며 시커먼 구멍 같은 빈자리가 다시 드리워졌다.
그 광경에 투란이 섬뜩함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서려 했다.
하지만 발목까지 꽉 뭐에 물린 듯 꼼짝하질 않았다!
‘이건 또 뭔?’
놀란 투란이 입을 꽉 다물며 아래를 살피니, 어느새 꾸물꾸물하는 모래 속으로 발목까지 잠긴 채였다.
앞에는 다시 구멍이 뚫려 버린 얼굴이 된 ‘엘카야’.
아래에는 갑작스럽게 여기 꼼짝 말라 묶어 버린 듯한 모래왕의 손길!
―침착해라. 엘카야를 똑바로 봐.
드라고니아가 살짝, 소리 없이 투란에게 속삭였다.
마치 모래왕과 저 ‘엘카야’에게는 비밀이란 듯한 말투.
어처구니없었지만 투란은 다시 ‘엘카야’를 노려봤다.
‘저거 진짜 트루세이어야?’
동시에 입을 꽉 다문 채로 드라고니아에게 묻기도 했다.
―나중에…… 일단 최초의 트루세이어라고만 알아 두고, 방심하지 마라!
‘젠장!’
빠른 대답 속에 투란을 화들짝 놀라게 하는 말이 섞여 있었다.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트루세이어의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징벌에 대한 이야기가 번개처럼 투란의 뇌리를 스쳐 갔다.
진실에서 티끌만큼이라도 어긋난 말이라면,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라든가 믿을 만한 누군가가 전한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 해도 곧바로 ‘너, 돼지!’라는 한마디에 곧바로 돼지를 만들어 버린다는 악명 높은 작자들!
진실의 사도라고도 하지만 진실을 핑계 삼아 온 세상을 저주할 뿐이란 말까지 나오게 하는 작자들!
‘잠깐, 그 최초?’
무서운 소문을 되새기던 투란은 퍼뜩 드라고니아가 한 말의 한 부분이 아주 엄청나다는 것을 짚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덕분에 한층 더 눈을 부라리는 꼴이 되어 회색의 ‘엘카야’, 얼굴 부분이 시커멓게 뚫린 탓에 한결 더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풍기는 몰골을 지켜보게 되었는데…….
“거짓된 형상이다! 없어져라! 나는 이 거짓된 모습을 부정한다!”
놀랍게도 ‘엘카야’가 자신을 향해 저리 외치고 있잖은가.
투란은 어쩐지 허탈했다.
‘와아, 환영인데도 저 지경이냐?’
―최초의 트루세이어답군.
드라고니아는 어쩐지 안도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