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6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60)
아크휠의 광파변질은 강력하고 매우 다채로웠다.
메듀시아의 눈빛은 아주 명쾌하게 단순했다.
둘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빛을 매개로 삼는다는 것.
둘이 섞이면서 나온 결과는 다채로움을 삼킨 단순함이라 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색을 독하게 섞어서 몽땅 통일한 셈인가.
드라고니아가 안도하는 듯하면서도 놀란 듯이 중얼거렸다.
우드득, 빠드득!
투란이 몸을 움직이며 새롭게 격동을 흘렸다.
적당한 범위로 퍼진 격동이 돌이 된 빛의 파도를 으스러뜨리며 밀어냈다.
‘아직 안 끝났어!’
투란은 느슨해진 낌새를 보이는 드라고니아를 향해, 거기에 살짝 마음이 가는 자신을 향해 사납게 외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석재 장벽이 돼 버린 파문이 부서져 나갔다.
으깨져 나가는 돌의 파편이 자욱하게 주변을 메우는 광경 속에서 투란은 사룡의 감각에 골든 드레이크의 생체 파동을 밀어 넣었다. 동시에 투란의 어깨와 등, 가슴으로 흘러내리는 황금 모피의 형상 속에서도 파동이 일어나며 겹쳐졌다.
아크휠의 광파에 저항하지 않는 사룡을 대신하는 파동이었고, 투란의 의지에 따라 격동 속으로 깊이 스며들며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사룡의 본능은 아크휠의 권한을 인정한 것처럼, 투란의 의지 또한 거부하지 않았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격동의 자리를 차지한 생체 파동은 한층 더 맹렬하게 아크휠의 광파변질을 머금은 암석의 장벽을 부수며 몇 걸음 너머를 드러나게 했다.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융합해 끌어낸 몬스터의 형상에 질린 듯, 하지만 간섭을 자제하는 것처럼 침묵했다. 대신 최대한 옵저버와 프로브의 감각을 확장하며 주변을 탐색하고 감지해 투란에게 전했다.
몬스터의 감각과 마법의 탐지를 한꺼번에 받아들이며 투란은 곧바로 ‘엘카야’를 향해 다가갔다.
웅크린 검은 형체는 흑요석(黑曜石)처럼 굳어진 채였고, 그 손목에 걸린 하얀 끈도 백색의 조각처럼 보였다. 거기에 투란의 파동이 닿는 순간, ‘엘카야’의 검은 형체와 하얀 끈이 동시에 균열을 일으키며 으스러지기 시작했다.
메듀시아의 눈빛이 침투한 광파변질이 닿는 범위 안에 아크휠과 ‘엘카야’가 포함된 채란 것을 증명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그 부서져 가는 안쪽이 여전히 허공에 뚫린 구멍, 시커먼 장막처럼 드리워진 부분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야에 포착된 것과 다른, 허공을 더듬어 가는 파동의 감각을 통해서였다.
‘눈알?’
곱게 손끝에 닿은 듯한 뭔가의 느낌은 ‘천칭’ 속에서 또 다른 몬스터의 본능을 끌어내기 충분한 모양이었다.
곧바로 앞으로 내민 투란의 손, 드라고의 손아귀 중심에서 시커먼 잉크가 응어리진 채로 돋아났다. 그사이에 투란의 어깨와 등에는 날개처럼 촉수가 흘러나오며 황금 모피의 생체 파동을 보조하고 강화했다. 더불어 투란의 눈동자는 한층 더 짙은 보랏빛, 붉은 광채를 흘려 냈다.
그러나 새로 포착된 검은 구멍 안으로 투란의 눈빛은 닿지 못했다.
아크휠의 광파조차도 그 구멍 안에 닿지 못하고 있었다.
손을 내밀고 주변을 향해 촉수를 뻗어내며 은은한 바람과 진동을 흘려 내는 채로 투란은 더 나아갔다.
시커먼 구멍 속으로 시커멓게 응어리진 잉크가 파고들었다.
그 잉크를 따르듯, 꼬인 고리가 굳어진 하얀 아크휠로부터 피어나며 함께 구멍 속으로 스며들었다.
잠깐 침묵했던 드라고니아가 흠칫하며 외친다.
―아크휠이 널 이용하려는 것 같다!
‘그러네, 하지만 늦었어.’
투란은 손을 뒤틀었다.
시커먼 잉크 속에서 맑게 흩어지는 광채가 피어났다.
검은 구멍의 중심, 파동과 격동의 감각이 혼재된 속에서 겨우 느낄 수 있었던 어떤 ‘눈알’의 주변으로 크리스탈 애쉬가 그물처럼 펼쳐졌다. 그 순간에는 이미 투란의 이마와 눈가로 두툼하고 튼튼한 검은 사자의 가면이 번져 있는 채였다.
아크휠이 시커먼 잉크 속으로 밀어 넣던 꼬인 고리, 빛이 결정화된 듯한 고리는 크리스탈의 맑은 광채에 부딪혔고 그물을 넘지 못한 물고기처럼 갇혔다.
투란은 곧바로 시커먼 잉크의 영역을 구멍 안으로 더욱 깊고 넓게 퍼뜨렸다.
곧바로 아르고누스가 새로운 눈알을 삼켜 버렸다.
크리스탈 애쉬의 그물 안에서 아크휠이 터져 나가듯 튕겨 버렸다.
주변을 변질시키던 빛이 순수하게 흘러넘치면서 여섯 기둥의 경계, 그 지붕 아래를 가득 채웠다.
파아앙!
돌가루와 파편이 곧바로 기둥 경계 너머로 밀려 나갔다.
투란은 자신의 앞에 떠오른 하얀 빛의 고리, 순간마다 뒤틀리고 꼬이면서 밧줄의 나선 형태를 만들다가 풀렸다가 하는 괴상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제는 메듀시아의 눈빛에도 석화되는 일이 없는 꼴을 보니, 그 광파변질의 능력을 전혀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천천히 숨을 들이쉬면서 메듀시아의 눈을 거둬들인 다음, 투란은 손을 펼쳤다.
시커먼 잉크가 뭉클거렸고 삼켰던 눈알의 형상을 다시 구현해 냈다.
‘보랏빛? 아니, 붉은빛인가?’
단정 지을 수 없는 기묘한 눈동자를 지닌 눈알이 핏줄기를 머금은 채로 투란의 손바닥에서, 시커먼 잉크를 바탕으로 꿈틀거렸다.
특이한 눈동자였지만 투란은 거기서 어떤 마력도, 특별한 힘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손바닥 위에서 자신을 바라볼 뿐이고, 다양한 몬스터의 형상을 갖춘 몰골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인간의 눈알인데?
드라고니아도 간략하게 관찰 결과를 말했다.
‘이걸…… 아크휠이 왜……?’
아크휠조차 닿지 못한 그 시커먼 구멍은 뭐였을까?
왜 그 속에 이 눈알이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었는가?
투란에게는 영문을 모를 상황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환영을 치운 듯한 아크휠은 그 의아함을 한층 더 증폭시키고 있었다. 어째서 지붕 아래를 훤히 채우면서 광파변질을 멈췄는가? 무엇 때문에 갑작스럽게 순수한 빛으로, 어떤 영향도 주고받지 않으며 그저 불빛처럼 지붕 아래를 밝히고만 있는가?
투란은 마음에 들지 않는 이 상황에 대해 불평하듯 속삭였다.
“대체 성궤는 어디 있는 거야?”
작게 소리 낸 탓인가, 곧바로 발목에서 치솟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대는 이미 성궤 안에 서 있다.”
모래왕의 인형이 부스스한 형체로 투란 앞에 솟아났다.
보기에 따라서는 투란의 발목을 움켜쥔 채로, 노렸던 기회가 왔노라고 선언이라도 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거기에 드라고니아가 투란만큼이나 어리둥절한 듯 중얼거렸다.
―성궤 안?
‘성궤가 궤짝이 아니야? 상자 모양이 아니라……?’
투란이 재빨리 두리번거렸다.
모래왕이 인형이 푸스스 모래가 흘러내리는 입술을 움직여서, 친절하게 이야기를 잇는다.
“휘광의 성궤, 그것은 앙트의 궁성 안에 설치된 마법의 망루였다. 지금 그대가 서 있는 자리, 그대를 둘러싼 기둥과 지붕이 바로 그 망루의 남은 형체. 이 자리가 바로 휘광의 성궤이며 맹약을 지키는 빛의 정령이 머무는 곳이다. 그리고 지금 막, 그대는 빛의 정령을 여기 묶어 둔 증표를 거두었다.”
“눈알? 이게 대체 뭔데?”
움찔하면서 손바닥의 눈알을 굴려 주변을 보는 채로, 투란은 엉겁결에 중얼거리고 말았다.
어째서인가 친절해진 듯한 모래왕이 바로 대답한다.
“엘카야의 눈, 이곳에 빛의 정령이자 아티팩트인 아크휠을 묶어 두기 위해 엘카야가 스스로 적출하여 남긴 징표이다. 엘카야가 앙트를 떠날 때, 한쪽 눈을 남기고 갔지. 진실을 보는 눈이며, 아크휠이 그려 내는 환영의 거짓조차도 용납하지 않는…… 아티팩트이다.”
“저기, 좀 무서운 얘기를 한다는 생각이 안 드시나?”
어이없어서 투란은 이리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되새겨 봐도 ‘엘카야’는 소녀였던 듯한데…… 한쪽 눈알을 쑥 뽑아서 여기 두고 가다니!
남녀노소를 따지기 전에 인간으로서 그게 무슨 끔찍한 짓이란 말인가!
―그걸 손바닥에 올려놓고 굴리는 너는 뭔데?
드라고니아가 어이없어하며 중얼거렸다.
투란은 그 딴지에 대꾸하지 않고 모래왕을 노려보면서 재빨리 말을 잇는다.
“여길 떠날 때 죽은 사람이 아니었지? 그러니까 산 사람이 자기 눈알을 뽑아 놓고 갔다는 말이지? 그런데 그게 왜 아티팩트야? 도대체…… 여기가 성궤라면 이제 어떻게 하자는 거야? 모래왕, 내 발목은 왜 계속 잡고 있는 거지?”
뒤죽박죽,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떠드는 소리였다.
이에 모래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막 기둥의 경계 안으로 들어선 세렌 공주가 답하고 있었다.
“진실만을 쫓고, 진실만을 따르겠다고 맹세했던 언니에게 드래곤이 심판자의 권능을 새겨 버렸어. 신들조차 왜곡할 수 없는 진실의 권능이라고 했지. 그 권능이 담긴 눈알은 성궤 안에 담겨서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치 않는 피투성이였고…… 빛의 정령인 아크휠에게 형체를 부여하고 여기 묶어 버렸어. 그리고 심판했지. 앙트를, 거기 살아가는 모두를…….”
물끄러미 투란의 손바닥, 눈알을 내려다보면서 세렌 공주의 말이 멈췄다.
모래왕이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바로 말문을 연다.
“세레니아 역시 그 심판으로 벌을 받았다. 나를 이 세상에 묶는 맹약의 수호자, 계약자로서 성궤 안에 들어서지 못한 채로 그 오랜 세월을 살아서 버텨야 했다. 모래 미궁이 돼 버린 옛 왕궁에서, 오로지 과거의 환영만이 가득한 모래 속에서 죽지 못하고 감금되어야 했다.”
투란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어디 가지 말고 꼼짝 말라고 가둬 두는 것은 오래된 형벌 중의 하나일 텐데, 이런 모래 미궁 속에서 사방이 망령으로 가득한 와중에 저런 몰골이 된 채로 ‘살아 있는’ 벌이라니!
세렌 공주가 흘깃 투란의 표정을 살피고 말한다.
“처음에는 그리 나쁘지 않았어. 아크휠이 착해서, 나를 위해 많은 것을 꾸며 줬으니까. 하지만…… 너무 오랜 세월이었어. 그래서 많이 지루했고 심심해졌을 뿐이야. 내게 내린 벌이 고통스럽지는 않았어. 당연히 받아야 할 벌이었으니까. 투아란에게, 그림 투아란에게 누군가 무슨 일을 하려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침묵한 죄가 있으니까.”
“침묵……?”
투란이 되뇌었다.
모래왕이 가만히 세렌 공주를 감싸는 모래의 장막을 일으키면서 말한다.
“어린 소녀의 질투, 시기와 선망이었다. 엘카야가 투아란에게 잘못을 저지른다면, 그 잘못이 둘을 멀어지게 한다면 작은 세레니아가 투아란을 얻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여겼지.”
세렌 공주의 마른 얼굴에 모래의 가면이 웃는 표정으로 씌워졌다.
투란은 그 웃는 표정이 꾸며진 것이 아니고 세렌 공주의 얼굴이 변화함에 맞춰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치 데저트 데몬이 옮겨 간 듯한…….
‘어라? 이거 어디 갔지?’
생각이 닿는 순간 투란은 자신의 얼굴, 목 주변을 맴돌던 변화무쌍한 모래의 가면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잠깐 사이에 세렌 공주가 모래로 이뤄진 형체처럼 변했고, 그 위로 아크휠의 맑은 빛이 드리워졌다.
환영이 다시 세렌 공주를 덮었다.
생기 있고 밝은 모습의 공주가 모래왕의 인형과 함께 투란 앞에 서 있었다.
“그냥 언니를 대신하고 싶었어. 투아란 곁에 언니 대신 내가 머물고 싶었어. 언니가 나를 위해 모래왕과의 계약을 투아란에게 부탁할 수 있는 것처럼, 내가 투아란에게 뭔가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했어. 그래서 이상한 신들의 사제단이 오락가락하고 대사제가 수상해도 가만히 있었어. 나는…… 바보였어. 그러니까 벌을 받기로 했어. 그런데 드래곤이 말했어, 영혼이 분쇄되고 신들의 저주를 받았더라도 자기는 투아란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이야. 그러니까 언젠가…… 반드시 투아란을 되찾을 거라고 그랬어. 그래서 부탁했어. 나도 투아란을 다시 만나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고.”
“드래곤은 앙트 세레니아 티아크의 소망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언젠가 이 모래 미궁, 성궤에 투아란의 운명이 다시 드리워질 때가 올 것이라 말했다. 반드시 똑같지는 않아도, 그림 투아란의 운명을 잇는 자가 도달할 것이라고 모래왕에게 약속했다. 모래왕은 기다렸다. 하지만 모래왕에게조차 그 세월이 너무 길었다. 너무 길어서…… 모래왕은 대마도사가 엮은 대마법 ‘운명의 사슬’을 받아들여야 했다. 세레니아가 아직 온전한 정신일 때,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야 함으로…… 투란, 그대의 도움으로 모래왕이 원하는 바가 이뤄졌다.”
공주의 말을 잇는 모래왕의 이야기.
투란은 그 내용을 제대로 납득할 수는 없었다.
과거의 전설, 여기서 자신이 뭘 했는가…….
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모래왕은 해방을, 세렌 공주와 함께 해방을 원했고 투란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것!
그리고 지금 투란이 선 자리를, 모래판을 통째로 밀어 올리며 쫓아내려 한다는 것!
“어이, 잠깐! 이대로 밀어 올리면……!”
모래로 이뤄진 천장, 모래 미궁의 천장이 무너져 내리며 투란의 말을 삼켰다.
그 모래 더미 속으로 처박힌 채로 밀어 올려지는 와중에도 모래왕의 말이 선명하게 투란의 귓가에 닿았다.
“언젠가 모두 알게 될 것이다, 몬스터 로드여…… 인내하며 기다리라.”
―저 썩을 정령이 진짜아아!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외침을 들으며 모래를 관통하며 지나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