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7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61)
Chapter 193. 회상의 여로
모래 먼지가 입가에서 짙게 뿜어 나갔다.
어이없어하며 고개를 드니, 머리 위에는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 한없이 펼쳐져 있었다. 앞으로는 밤 그늘 아래 놓인 누런 사막이 흐릿한 별빛의 광채를 머금은 듯이 멀리 지평선의 뒤틀린 풍경을 머금은 듯 보였다.
그 풍경이 곧바로 투란에게 느끼게 해 줬다.
드라고니아가 그 느낌을 확정 짓듯이 말한다.
―아크휠의 환영은 확실히 사라졌다. 바람의 미로는 남겨져 있다만, 시간을 두고 서서히 해제될 모양이야. 성궤의 매듭에서 풀려난 것만큼은 확실해 보이는군.
‘이젠 프로브로도 충분히 주변을 탐색할 수 있다는 말이야?’
―썩을. 그래, 옵저버를 쓰지 않아도 이제 탐색이 가능해 보이는군.
‘뭐, 나중에 어딘가 또 프로브를 못 쓰는 곳이 있겠지.’
미묘한 쓴웃음과 함께 투란은 아직 반쯤 모래에 파묻힌 몸을 끌어내 기어 나갔다.
거칠고 날카로운 모래 속을 파헤치고 밀려 나오는 사이에 드라고니아도 내뱉던 욕설을 멈췄고 상황 분석을 하느라 바쁘더니, 그럭저럭 진정한 모양이었다. 그러니 이제는 투란이 주변 상황을 살피고 정리한 다음에 어찌할까를 정해야 할 때였다.
하지만 이전에도 그랬듯이 사막은 황량한 풍경을 별빛과 달빛 아래 누렇게 드러내면서 어디로 가든 똑같다는 듯, 투란을 조롱하는 듯한 광경만 펼쳐 놓고 있었다. 물론 모래왕이 간섭하지 않은 사막이 투란에게 어떤 감정을 품었을 리는 없지만…….
‘응? 야, 별이랑 달이…….’
문득 투란은 이 밤의 풍경이 의미하는 바에 마음이 닿았다.
방향을 알려 주는 낯익은 밤하늘의 풍경이었다.
―말했잖아, 환영이 사라졌다고.
귀찮다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대꾸였다.
‘아…… 이제 별 보고 길 찾기가 그냥 되는 거였지.’
쓴웃음과 함께 투란은 머리를 털어 냈다.
단숨에 파악해야 할 것을 조금 뒤늦게 깨달은 셈이었다.
날씨가 뒤틀리고 하늘의 풍경조차 뒤틀려 흔들거리는 춤추는 산맥 깊은 곳처럼 느껴지던 사막의 광경이 춤추는 산맥의 바깥쪽다운 모습이 되어 있었다. 굳이 프로브를, 마법을 쓰지 않더라도 보고 느끼는 바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영역 안의 풍경이 되어 있었다.
―모래왕도 더 이상 이 사막에 간섭하지 않을 모양이다. 정령수들이 억압에서 풀려나 있잖아.
‘어?’
이어진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이 움찔했다.
윌 라이트의 마력에 호응해서 정령수 넷이 곧바로 투란의 온몸을 간지럽히는 듯한 움직임을 드러냈다. 얼마 동안 없던 움직임이었고, 아크휠의 환영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제대로 느낄 수 없던 자극이었다.
‘잊고 있었네…….’
살짝 민망한 기분이 되는 투란이었다.
프로브가 교란당하고 마법도 이래저래 제약당하면서 슬그머니 잊고 있었으니까.
드라고니아에게 맡겨 두고 홀랑 잊는 것을 당연히 여겼으니까.
다시 돌이켜 보면 투란은 몬스터의 본능을 느끼고 다스리는 일에 몰두해야 했고 그 밖의 일은 모두 드라고니아에게 편하게 떠넘긴 셈이었다. 몸으로 때우며 마음은 매우 편하게!
‘꽤 세졌다고 생각했는데…… 게을러진 건가?’
씁쓸한 기분이 슬그머니 마음속에 스며드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몸을 털고 주변 모래를 두드리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여린 모래바람이 살갗에 닿으며 텁텁하고 푸석거리는 느낌이 한층 더해졌다. 살갗 아래로 얇게 펼쳐진 ‘악마의 심장’ 껍질이 몸속에서 한 방울의 땀도 헛되이 흘러 나가지 않도록 봉쇄하는 탓에 당장 몸이 말라 죽는 일은 없을 테지만, 정직하게 느끼는 살갗의 감각은 사막이 여전히 목마름으로 죽음을 부른다는 것을 알게 해 줬다.
투란은 살짝 궁금해졌다.
불길에 약한 ‘악마의 심장’답게 사막의 뜨거운 한낮에도 약할까?
몬스터 로드의 몸에 형성되었으니 오히려 뜨거움을 극복하고 사막의 녹원을 찾는 일을 유리하게 해 줄까?
문득 되새겨 보니 오로지 ‘악마의 심장’만 품은 채로 헤맸던 곳이 이 사막보다 쉬운 곳은 아니었잖은가?
쓴웃음이 투란의 입가에 걸렸다.
사룡을 삼키고서도 허우적거린 듯한 이 사막…….
그랑츄의 발목, 그 발을 얻고서 겨우 걸음마를 떼는 듯했던 일…….
현재와 과거를 비교해 보니 뭔가 기묘한 기분이 투란의 가슴을 간지럽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드라고니아가 약간 불안해하는 말투로 묻고 있었다.
‘어? 아, 그렇지.’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오롯하게 자신만의 기억, 드라고니아가 문장 속에 깃들이 이전의 일들.
마력과 정령수, 온몸을 감싸고 드나들며 새롭게 강화되고 정립하는 감각이 없던 시절의 일들……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는 말이 딱 어울리던 때였다.
하지만 지금 어떤가?
달랑 하나…… 간신히 걸음마를 시작했던 듯한 때에도 둘, 그다음에 ‘붉은 늑대’의 잘린 팔 한 짝을 얻기는 했지만 모두 파편이었던 형상을 겹쳐 두르고 움직이던 그 무렵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풍요롭다.
여유롭고, 위험도 없고…….
그런데 왜 휘둘리고 있을까?
뭐든 마음대로 하면 될 듯한데 정작 자신이 휘둘리고 있잖은가.
그 원인이 무엇인가, 투란은 가장 간단하게 먼저 짚어 볼 수 있었다.
‘운명의 사슬인가 뭔가 하는 마법, 뭐 하는 마법이야?’
불쑥 묻는 말에 드라고니아가 움찔하면서 잠깐 주춤하는 낌새가 바로 투란에게 느껴졌다. 말해 주기 곤란하다기보다는 말하기 싫다는 듯한 기묘한 감정이었다. 어쩐지 모래왕에게 욕할 때의 드라고니아가 고스란히 겹쳐지는 듯한 태도였다. 덕분에 왠지 잊고 싶어 하는 일을 억지로 들쑤셨다는 생각이 절로 투란의 뇌리를 스쳐 갔다.
―쉽고 빠르게 말하자면, 행운과 불운을 조작하는 마법…… 대마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절대로 어중간한 마법사가 손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지.
‘무슨 도박사를 위한 마법이었냐?’
―도박? 어째서 행운과 불운이라는 말에 도박부터 튀어나오는 거냐? 어처구니없기는…… 쉽게 말해 줬는데 그런 식으로 생각하다니. 그럼 조금 복잡하게 얘기해 줄 테니까, 잘 들어! 운명의 사슬이란, 말 그대로 운명을 조작하는 마법이야. 세계가 너를 돕게 하거나, 훼방 놓거나 하게 하지.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으면 간단히 생각하란 말이다! 행운이란 세상이 널 돕는 듯한 상황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고, 불운이란 세상이 널 훼방 놓고 괴롭히려는 듯한 상황에 쓰이잖아. 운명의 사슬은 그렇게 세계를 조작하면서도 섭리를 따르게 하는 마법이라고. 어중간한 마법사는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조차 못 하지. 맨손으로 불을 뿜어내고 번개를 불러내며, 얼어붙게 만들 줄은 알면서도 말이야.
‘어째 모래왕이 말한 거랑 조금 다른 듯하다만? 모래왕은 마치…….’
―운명의 굴레로 널 묶어서 보내 줬다는 것처럼 말했다고? 그게 죽음의 굴레를 맞이해야 하는 입장에서 운명을 말할 때 쓰이는 표현이니까 그렇게 느꼈겠지. 어떤 면에서는 그런 식으로 쓰일 수도 있는 마법이기도 하지만, 본질은 세계를 조작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 내려는 대마법이다. 단순히 주문만 외워서 되는 마법도 아니고…… 수많은 준비, 환경까지 갖춰져야 비로소 제대로 그 효과를 발휘하는 마법이라 아는 자라 해도 그저 몽상으로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하지만 카엘은, 대마도사 카엘은 다르다. 투란, 카엘은 운명의 사슬로 세계를 조작할 수 있어. 그렇기에 대마도사라 불리는 것이고, 그렇기에 전설로 이야기되는 위업을 쌓았다.
‘그렇다 치고, 그래서 모래왕이랑 나랑은 대체 어떻게 엮었다는 거야? 이제 완전히 끝난 것이기는 한 거냐?’
버릇처럼 복잡한 일을 떠넘기듯이 투란이 투덜거리며 물었다.
드라고니아가 복잡한 기분이 담긴 말투로 대답한다.
―너랑 모래왕을 엮었다고 하기는 좀 난감하군. 이 사막에 떨어진 다음에 모래왕이 이모저모로 너한테 수작을 부리기는 했다만…… 카엘의 대마법이 너를 직접 엮은 것은 아닐 거야.
‘왜?’
낯을 살짝 구기면서 투란이 짧게 되물었다.
험한 꼴 당한 것 같은데 사실은 다른 사람이 당할 일을 대신 뒤집어썼다니!
괜히 억울하고 짜증 나는 일이잖나.
―펜릴의 문장, 유렐리아. 그게 아마 운명의 사슬을 위한 준비였을 거야. 누군가 거기 뛰어들면, 눈보라의 산맥 정상에서 사막으로 이어지도록 말이지. 그러니까 이미 몬스터 엠블럼을 갖춘 네가 대상이었다고 하기 어렵지. 모험에 나섰거나 어쩌다 그 제단에 도달한 자가 대상이었을 것이고…… 하지만 현실은 탐욕스럽게 세 자매를 마무리 지으려던 네가 걸린 셈이야. 모래왕에게도 너는 꽤나 의외였을걸.
‘나 말고 다른 누군가였으면, 나처럼 허우적거리지 않고 깨끗하게 모래왕이 치워 달라는 성궤를 정리했을 거라고?’
가만히 듣다가 투란은 어이없어서 되묻고 말았다.
드라고니아가 이리저리 피하고 있기는 했지만, 결국 투란처럼 문장을 교체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운명의 사슬을 통해 행운을 잔뜩 얻어서 단숨에 일을 해결했을 것이란 말이잖나.
바로 쿡 짚어 묻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겨우 변명 같은 대답을 늘어놓고 있었다.
―내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꽤 있었잖아. 네가 마법의 성채를, 몬스터가 돼 버린 고대 마법의 성채를 삼키고 고치가 되어 멈춰 버린 듯했던 이 년 동안이란 시간이 말이다. 그사이에 이것저것 나도 바쁘기는 했다만, 그래도 상황을 되짚고 검토할 시간은 충분했지.
‘그래, 알았어. 그 충분한 여유 동안에 뭘 알아낸 거야? 돌리지 말고 바로 말해 줘. 네가 이것저것 배려해서 돌려 말하니까 간질거리는 기분이 배 속에서 보글보글하는 것 같아서 이상하단 말이야!’
―그건 뭔 기분이냐? 뭐, 아무튼 나는 생각했다, 몬스터 엠블럼이 왜 굳이 펜릴의 문장이어야 하는가. 어떤 면에서는 불완전하고 위험하다고까지 하는 펜릴이어야 할 까닭이 대체 무엇인가. 제단과 모래왕의 일을 연관 지어 생각할수록, 이 사막이 어떤 상황인가를 생각할수록 관계가 없다고 여길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연관이 있을까. 그래서 펜릴의 속성에 대해서, 내가 아는 펜릴에 대해서 되새겨 봤다. 그러다 문득 느꼈지. 천칭 속에서 펜릴은 황금매와 또 다른 성향을 드러낸다는 것을 말이야. 몬스터 에센스와 다르기 때문인지 황금매와 펜릴의 존재에 대해서 나는, 아마 나뿐이 아닐 거라 생각한다만, 아무튼 독특하게 저 아래 심연과 이어진 연계성을 통해서 어느 정도 관측하고 성향을 느낄 수가 있었다. 펜릴은 어쩌면 너의 천칭 속에서 몬스터 에센스와 같은 역할도 하지 않을까 싶기까지 했지. 어두운 늑대, 빛을 삼키는 어두운 늑대라는 몬스터의 역할을 말이다. 그 묘한 느낌을 통해 어두운 늑대가, 펜릴이 아크휠의 환영 아래에 서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를 알 수 있었다. 투란, 어두운 늑대는…… 그 시조이자 근원이라는 펜릴이 빛의 정령과 만나면 뭘 어떻게 할 것 같으냐?
‘삼킨다? 빛을 삼키는 어두운 늑대니까? 정령을 삼키는 거야?’
―빛을, 빛의 환영을 지워 없앤다. 주변을 에워싼 빛의 효과를 삼키고 없애 버리는 거야. 거기에 유렐리아의 힘이, 범람하는 폭풍의 날개가 곁들여진다면 어찌 될까? 널 괴롭혔던 사막의 환영은 처음부터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했을 거다. 그 생각을 하면서부터 바로 추측할 수 있었지. 어두운 늑대의 힘을 담은 폭풍은, 사룡이 수백 미터의 영역을 장악하든 수 킬로미터의 영역을 장악하든, 수백 킬로미터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뒤흔드는 폭풍의 사나움은 그런 사룡의 격동을 삼킬 수 있다고 예측하게 되었어. 실패작이란 말 대신에 괴작이란 말을 듣는 어두운 늑대, 펜릴의 문장이라면 사룡을 폭풍 속에 가두고 조이고 길들이는 유렐리아를 다룰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이야. 더불어 모래왕이라 해도, 아무리 오랜 세월을 공들여 사막이 된 대지를 장악하는 정령의 왕이라 해도 자신이 간섭할 수 없는 바람의 영역 안에서 날뛰는 유렐리아에게는 제대로 힘을 못 쓴다는 것도 예측할 수 있었다.
잠시 드라고니아가 말을 멈췄다.
투란은 조금 맹해져서 사막의 밤 풍경을 향해 눈을 깜박였다.
딱히 다가오는 것도 없었고, 멀리서 날뛰는 것도 없었다.
그저 여린 모래바람만이 황량하고 맹한 투란의 마음을 달래듯 살갗에 느릿하게 찾아와 희미한 풍경이 되라는 듯이 달라붙을 뿐이었다.
그 까칠하면서도 끈적한 살갗의 촉감 속에서 투란은 조심스러운 드라고니아의 말투를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음, 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괜히 천칭으로 유렐리아를 삼키고 데굴거리면서 사막을 기어 다닌 탓에 대마도사의 마법이…… 그 계획이 완전히 망가진 꼴이 돼 버려서…… 결과가 엉망진창이란 얘기?’
―엉망진창은 아니야, 엉망진창은…… 단지 굉장히 꼬여버린 상황이 되었다는 거지. 모래왕이 뭘 어찌하기 전에 돌파해서 으깨 놨어야 할 성궤를 모래왕의 도움을 받아 가면서 간신히 정리했다? 그냥 그 정도 이야기일 뿐이다.
‘이런 썩을…….’
왠지 뒷골이 퀭하니 썩는 느낌에 투란은 살짝 이를 갈고 말았다.
사막을 헤매는 대신에 바로 빛의 정령을 씹어 먹으면서 짓밟고 다닐 수 있었다니……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고, 약간 미친 것처럼 보였던 마녀의 도움으로 겨우 길 찾기를 익히고…….
‘야, 키유나는? 키유나는 운명의 사슬이랑 어떻게 엮이는 거야? 여기 휩쓸린 사람이 나만이 아니잖아?’
돌연 스쳐 가려는 의문을 투란은 바로 꺼냈다.
과연 대마법사는 이 사막에 어떤 계획을 품었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