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7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62)
투란이 사막에 닿기 전에 이미 사막의 거주자들에게는 사룡의 재앙이 닥쳤다.
키유나는, 키유나와 함께 살아가던 모두가 그 불행을 피하지 못했다.
운명의 사슬은 그들에게 대체 무슨 짓을 했는가?
―그건 쉽게 뭐라 말할 수가 없어.
‘너, 뭔가 짐작은 하고 있잖아?’
―짐작이야 여러 가지 해 봤다. 다만 휘광의 성궤를 해결하고 모래왕을 해방하는 쪽과는 경우가 다르니까, 여기서 직접 보고 듣지 않은 부분이 훨씬 더 크니까 어떤 짐작이든 억측이 되기 쉽다는 말이다.
‘어떤 억측을 했는데?’
묻는 투란의 말투는 조심스러웠다.
어지간히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드라고니아가 저리 조심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으니까.
이런 투란의 태도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어물쩍 넘기려던 드라고니아가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저주. 이 사막에 그 저주가 더욱 강력하게 구현된 탓이라고 짐작해 봤다. 운명의 사슬이 그들을 모래 미궁의 망령이 돼 버린 처지에서, 그렇게 될 상황에서 구해 내려 했다면 드래곤의 저주는 그 반대로 작용할 거라고 말이야. 운명의 사슬이 대마법이라면, 드래곤의 저주 또한 그에 못지않은 거대한 힘이니까. 그 충돌의 결과, 운명의 사슬이 인도한 자가 여기에 당도하기 전에 사룡이 그 화신을 드러낸 것이라고 추측해 봤지. 하지만 투란, 이 추측은 그저 막연한 망상이나 다름없다. 뭐 하나 확실한 근거가 없으니까. 운명의 사슬이라고 해도 결국 모래왕이 한 말이 아니었다면 전혀 생각할 리가 없는 마법이었어. 단지…… 눈보라의 산맥에서 조금 기괴한 일에 휘말린 정도로 여기고 말았을 거야.
‘음, 드래곤과 대마법사가 힘 겨루는 틈새에 끼어 버렸다는 얘기네?’
투란은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 사막에서 겪은 일을 되새겨 보자니, 음유시인의 이야기 속에서만 듣던 전설에 한 발 걸친 듯했다.
드래곤이고 그림 투아란이고…… 거기에 비해 대마도사 카엘은 어쩐지 이것저것 소소한 일에도 잘 끼어든다는 느낌이라 아예 친숙할 지경!
투란의 입가에서 슬쩍 새어 나갔던 헛웃음이 짙어지면서 시냇물처럼 콸콸 새어 나갔다.
―왜 그러냐?
드라고니아가 조금 이상한 투란의 상태를 알아차린 듯 물었다.
‘아, 바보 같잖아.’
투란은 뒷머리에서 볼로 손을 옮겨 긁적이며 대꾸했다.
―무슨 말이냐?
드라고니아는 전혀 납득할 수 없어 다시 묻고 있었다.
억측이었지만 듣고 싶다 해서 들려줬더니 바보 같다니…… 한데 드라고니아의 억측을 비웃거나 어이없어하는 낌새는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뭐가 바보 같다는 말인가, 드라고니아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드래곤이든 드래곤 로드이든…… 그런 전설의 내막을 알면 어쩔 거냐고. 대마도사가 함정을 파 놔서 걸렸다고 쫓아가서 따질 거야? 억울해도 뭘 어쩔 수가 있어? 아, 너라면 뭐 어떻게든 해보고 싶은지도 모르겠지만, 난 아니란 거지. 난 그저…… 그냥 몬스터 로드일 뿐이니까.’
―허? 그냥? 그냥 몬스터 로드?
어이없어하며 드라고니아가 되뇌었다.
투란은 키득거리면서 볼을 긁던 손으로 가슴을 더듬으며, 마치 자신에게 들려주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조금은 운이 좋은 몬스터 로드라고 해야 하나? 아니, 춤추는 산맥 깊은 곳에서 살아 나왔으니 억세게 운이 좋은 몬스터 로드? 딱 그 정도잖아? 희한하고 특이한 몬스터를 운 좋게 얻은 것뿐이고…… 맞잖아, 내가 무슨 마법사냐 무투가냐. 세상의 모든 이치를 간파하는 현자(賢者)일 리도 없잖아? 그저 고아이고…… 홀로 살아남기 위해 몬스터 로드가 되려고 했던 고아였고, 결국 몬스터 로드가 된 것뿐이지.’
드라고니아는 침묵했다.
가슴팍에 대롱거리는, 이전보다 또렷한 느낌을 전해 오는 유니콘홀드의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투란은 가만히 밤하늘 아래의 고즈넉한 사막을 바라봤다.
모래왕이라는 거대한 정령이 사라진 탓인가, 한없이 고요하며 여린 바람결에 모래 먼지를 흩날리는 사막은 거대하게 구불거리는 누런빛 물결이 고정된 것처럼 보였다. 그 풍경 아래에 뭐가 있는 것처럼 살짝 먼 곳에서 먼지 기둥이 간간이 치솟기는 했지만…….
펄럭, 파앗.
투란이 손에 힘을 주는 순간, 목걸이로부터 마력의 파동이 흘러 나가며 앉은 자리에 포석이 생겨났다. 주변의 모래를 밀어내고, 말끔하게 자리 잡은 포석이 투란을 받쳐 주는 깔개가 되어 나타난 것.
푸스슷.
주변의 모래가 포석으로 살짝 얹혀 오기도 했고, 포석으로 인해 밀려 내려가기도 했다. 아주 작은 높낮이의 변화가 만들어 낸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 조그마한 광경을 흘깃하면서 투란은 입을 다물고 소리 없는 이야기를 잇고 있었다.
‘이런 신기한…… 그래도 결국 몬스터인 성을 삼켰다고 해도 말이야. 만약 현자라든가 훌륭한 마법사라든가 했다면 삼키고 이 년씩이나 걸려서 정리하는 일도 없었잖을까? 아무튼 이렇게 저렇게 얽혀서 너 같은 드라고니아도 문장에 담아 두고 있다고는 해도, 결국 나는 그냥 운 좋은 몬스터 로드일 뿐이라고.’
뚜둑.
손에 조금 더 힘을 주니 손가락 뼈마디가 억센 소리를 냈다.
하지만 투란은 손아귀에 담겨 있는 유니콘홀드의 목걸이는 꿈쩍도 않는다는 것을 고스란히 느꼈다.
모래바람이 실어 온 미세한 먼지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들어 으스러지는 듯했지만 ‘천칭’에 담긴 마법의 고성(古城)에서 발현되어 나온 이상한 목걸이는 매끈하고 깔끔한 채로 멀쩡했다.
‘그러니까…… 전설이랑 엮인 험한 일은 이제 그만 잊자! 당장 관심 갖고 해결해야 할 일은 저기 모래 속에서 쳐들어오는 놈이라고.’
피식, 새는 웃음과 함께 투란은 펑펑 모래 먼지를 기둥처럼 솟구치게 하며 다가오는 것에 눈길을 보냈다.
모래 아래 깊이 묻힌 채로 움직이는 탓인가 그 형체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모래 아래의 풍경은 프로브가 깔끔하게 탐지해서 투란에게 느끼게 해 줬고, 모래에 가려진 형체를 그대로 투란의 시야에 비춰 주기도 했다.
―모래 지렁이라고 부르는 괴수일 거야. 몬스터라기에는 애매하고, 마수라고 하자니 딱히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만…… 몸길이만 백 미터는 되는 놈이라서 그냥 짐승이라 여기기도 애매한 놈이지.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말에는 흥미가 없다는 듯, 투란이 관심을 갖자는 것이 오히려 더 흥미롭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마치 사방 수백 미터를 탐지하는 일 따위는 시시하고 귀찮다는 듯한 그 말투가 살짝 투란의 마음 한구석을 찌르는 듯했다.
‘하, 하, 하. 문장으로 못 삼킨다는 얘기야? 뭐, 딱히 필요도 없어 보이긴 하네.’
―그래? 이제부터는 필요하면 삼킨다고 정한 거냐?
드라고니아가 툭 내놓는, 한층 더 냉랭하게 비꼬는 듯한 말투가 투란을 쓴웃음 짓게 했다.
콰콰콰!
모래를 가르며 괴수의 앞부분이 돌출되었다가 가라앉았다.
모래가 요동치며 그 아래에서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가깝고, 얼마나 커다란가를 확연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투란의 주변도 요동치면서 모래가 일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수조(水槽)의 마개가 뽑혀 물이 새어 나가는 것처럼, 투란을 중심으로 모래는 바닥에 구멍이 뚫려 새어 나가는 것처럼 흘러 나갔고 포석으로 이뤄진 커다란 마당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당은 단을 이뤘고, 성벽 없는 성채의 안뜰처럼 낮은 벽을 품고도 있었다.
괴수라 일컬어진 모래 지렁이가 백 미터에 달하는 몸통, 지름이 오륙 미터는 되어 보였지만 그 몸길이로 인해 가늘고 길게 보이는 형체를 마당 위로 내던지며 모래 아래에서 튀어나왔다.
그 거대한 형체를 보며 투란은 왜 이 괴수의 이름이 모래 지렁이인가를 금방 알 수 있었다.
뭉툭한 머리가 딱 지렁이의 머리통이었고, 동그랗게 열린 입도 딱 지렁이의 입이었다. 그 몸 껍질이 모래로 된 가죽처럼 보이는 것은 단순히 모래가 들러붙은 탓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보니, 작고 까칠한 돌기가 모래를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투란에게는 딱 샌드 리저드의 형상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환영으로 채워지고 봉쇄된 사막에 적응해서 살아남은 형상…….
카르륵, 콰콰콰!
포석이 가라앉으며 벽이 솟구쳤다.
모래 지렁이가 얹힌 마당이 통째로 가라앉으며 투란이 앉은 자리는 자연스럽게 위로 치솟는 꼴이 되었다.
쿠르릉, 쿠릉.
요동치려는 모래 지렁이를 억누르듯 바닥과 벽이 움직였다.
백 미터 이상의 길이, 수 미터의 폭을 지닌 복도처럼 보이는 함정 속에 모래 지렁이가 빠진 듯한 광경이 생겨났다. 모래 지렁이가 온몸을 뒤흔들며 그 안에서 튀어 오르려 했지만, 보이지 않는 천장에 가로막힌 것처럼 어느 높이 이상으로 몸을 밀어 올리지 못했다.
그리고 금방 그 벽 속에서, 물결처럼 일렁이는 벽을 물처럼 통과한 병사들이 폴 액스와 글레이브로 무장한 채로 튀어나와 모래 지렁이를 내리찍었다. 더 이상 모래 지렁이가 난동을 부리지 못하게 난폭하게 난자하는 광경이었다.
―언데드 병사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거냐?
냉정해졌던 듯하던 드라고니아가 살짝 놀라 묻고 있었다.
병사들은 우람한 체격과 튼튼한 팔다리를 갖춘 모습이었지만, 결코 살아 있는 자라고는 할 수 없는 죽은 자였다.
씁쓸하게, 쓴웃음을 입가에 매달고 투란이 소리 없이 답한다.
‘그래, 일만 이천사백사십 명. 자수정에 혼의 서약을 해 버렸던 멍텅구리 군단병들이지. 몬스터에게 먹히고 몬스터의 일부가 돼 버렸지만…… 한 명씩 다독여 줘야 겨우 얌전해진 망령 아저씨들이야. 기타 등등 몬스터 데드워커처럼 억지로 누를 수 없었던…… 죽어서도 상황 파악 못 하는 못된 아저씨들이지.’
―이 년 동안, 저들을 수습했던 거냐?
떨림을 담은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다시 물었다.
투란은 삐죽 입술을 내밀며 뚱하니, 하지만 역시 소리 없이 답한다.
‘수습? 아니, 꿈을 꿨지. 깨면서 거의 다, 아주 열심히 잊었는데…… 이놈의 목걸이가 대롱거리면서 다시 기억나게 해 주네. 아, 저 모래 지렁이 아주 야들야들한 모양이야?’
부우으으!
모래 지렁이의 입이 크게 열리며 길고 깊은 괴성이 울려 나왔다.
그 괴성 틈새로 퍽퍽거리고 쩍쩍거리는 소리가 미묘하게 어우러졌다.
괴성이 나오기 전에는 달빛 별빛 가득한 밤하늘 아래, 광막한 사막 한구석을 찰지게 채우던 소리였다.
그 소리에 따라 모래 지렁이의 몸통 곳곳이 갈라지고 속살이 드러나고 있었다.
너무 많은 속살을 드러낸 모래 지렁이가 마침내 둔한 감각으로도 참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처럼 비명을 내지른 것이 저 괴성이었다.
그 광경을 보며 투란은 가늠하고 있었다.
‘길고 나름 두툼하기는 하지만…… 저 정도면 엘리트 그랑츄 열 마리 정도면 가볍게 찢어 놓겠는데? 아니, 그냥 그랑츄라도 스물이면 두 시간 걸리지 않고 때려 부술 수 있어 보여. 참 야들야들하네.’
―춤추는 산맥의 몬스터랑 비교하지 마라. 정상적인 세상에는 몬스터라도 칼질하면 칼날 박히고, 활 쏘면 화살이 푹푹 꽂히는 것이 상식이니까.
드라고니아가 약간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콰르르…….
바닥이 한층 더 가라앉았고 양쪽의 벽이 기울어지면서 뚜껑처럼 모래 지렁이의 긴 몸통을 억눌렀다.
스스슥.
모래가 모래 지렁이를 덮은 지붕, 그 포석의 형태 위로 쏟아졌다.
사막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이질저인 포석이 저절로 모래 아래로 가라앉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투란이 깔고 앉은 자리도 다시 모래로 덮히며 밤의 사막 풍경과 어울리는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고요해진 풍경을 보면서 투란은 느릿하니 몸을 누였다.
‘이제 수백 미터 안팎으로 조용하지?’
―그래.
‘어느 쪽이 가장 빨리 사막에서 벗어나는 방향이야?’
―알드바인 쪽으로 가는 것 아니냐?
‘어? 그야…… 모래왕이 손 뗀 것처럼 보여도 사막은 지긋지긋하잖아. 어디로든 일단 사막부터 벗어나자고, 돌아가는 길이 외곽을 따라 빙 돌게 되더라도 말이야.’
―빙빙 돌아도 한참 돌 거다만…… 일단 북방의 검은 바다 쪽이 가장 빠르게 사막을 벗어나는 방향이다. 어쩌면…….
‘어쩌면?’
―검은 바다가 알드바인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지.
‘흐음?’
―검은 바다의 잊힌 항구, 유적 도시에 상아탑이 아직 관심을 거두지 않았다면 말이야.
‘유적 도시?’
―앙트 왕국의 북방 항구, 언더섀도우로 가는 길목 중에서 제법 유명한 곳이니까. 검은 바다가 검은 산맥의 강줄기로 이어진다. 브로큰 킹덤으로 가는 뱃길이라고 들었어. 동시에…… 언더섀도우에서 기어 나온 마물들이 춤추는 산맥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만…… 요즘 상황은 가 보기 전에는 뭐라 말할 수가 없다.
‘뭔가 낯선 이야기가 줄줄 새어 나오는 곳이네?’
―글쎄다…… 가 보면 그리 낯설지도 않을걸?
미묘한 말투가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