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7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64)
커다란 구멍처럼 사막 한복판이 푹 꺼진 채였다.
그 속에서 뒤뚱거리며 샌드 리저드 한 무리가 겨우 기어 나오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누런 모래를 머금고 꾸물거리는 모습이었다.
높은 곳, 혹은 먼 곳에서 본다면 모래 수렁에 빠진 벌레 무리가 무너지는 수렁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버둥거리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무리는 제멋대로 흩어진 채로 제각각 살아남으려 버둥거리지는 않았다.
한 마리, 다른 샌드 리저드와 구분되는 독특한 볏으로부터 이어져 나간 듯한 등지느러미를 꼿꼿이 세운 한 마리를 중심으로 샌드 리저드 무리는 서로 돕고 있었다.
서로를 밀어 올리고, 높은 쪽에서 낮은 쪽을 끌어당기고…….
그 와중에 너무 낮은 곳에 있다가 모래 수렁에 휩쓸린 경우에는 무리로부터 자신을 끊어 내며 홀로 빠져드는 모습까지 보였다.
“감동적인데? 전에 봤던 녀석들도 저랬을까?”
모래 수렁을, 그 커다란 구멍의 테두리 너머에서 내려다보는 투란이 간단하게 감상을 토해 냈다.
―비슷했겠지, 같은 품종이니까. 다른 무리이기는 해도 습성은 같지 않겠나?
드라고니아는 살짝 미심쩍은 듯이 말하고 있었다.
투란도 그 까닭을 알고 있었다.
몬스터는 같은 품종이라도 무리 짓는 방식에 따라 완전히 다른 습성을 드러낼 때가 있으니까.
‘뭐, 여기가 춤추는 산맥도 아니고.’
투란은 간단히 드라고니아에게 동감한다는 듯, 소리 없이 중얼거리면서 느긋하게 앉았다. 조금 전에 무심결에 낸 말을 들었는지 수렁에서 빠져나오려 애쓰는 샌드 리저드의 한 마리…… 무리의 중심을 잡고 있는 한 마리가 누런 모래알 같은 눈알을 굴려 자신을 바라본 듯했다.
―왜?
투란이 기다리는 듯한 자세를 취했기에 드라고니아가 의아한 듯 물었다.
‘음, 뭐랄까 저게 나오면 목을 확 꺾어 버리고 싶어졌다고 해야 할까?’
―샌드 리저드의 본능이냐?
‘아마도.’
―같은 품종인데 다른 무리이면 적의를 품는 거냐?
‘아니, 그렇게 우두머리를 꺾거나 그 대리자를 꺾어야 무리에 합류할 수 있나 봐.’
가만히 샌드 리저드의 본능을 살피면서 투란이 대답했다.
―아, 그런 경우인가.
드라고니아는 비슷한 다른 상황을 아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이 그 납득하는 시늉에 피식 웃으며 묻는다.
‘안 말려?’
―이젠 사막의 경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몬스터잖아. 불과 30킬로도 되지 않은 곳에 네가 가려는 인간의 도시까지 있지. 저 무리가 이 구덩이에서 벗어난다면 모래 아래 파묻혀 보이지 않는 수백 마리까지 함께 끌어 올릴 테고…… 이러나저러나 귀찮지 않게 여기서 정리할 생각이잖아?
조금 심드렁하니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계획을 정리하듯 말하고 있었다.
투란은 저편에 높이 치솟아 그 너머를 가리고 있는 모래 언덕을 흘깃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얘네들 그냥 지나갔다가 뒤따라 붙으면 내가 끌고 왔다는 오해를 할 수도 있고…… 나중에 도시에서 눈치 보고 싸우는 것보다는 여기서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이 이모저모로 편하지.’
―뭐가 편한가는 모르겠다만, 기왕 편안한 방법을 고른다면 수렁 속에서 버둥대는 지금 찍어 누르는 쪽이 낫잖아?
‘음, 그게 또 좀…….’
투란은 쓴웃음을 지었다.
샌드 리저드의 본능은 다른 무리가 수렁 속에 빠진 경우에 돕지는 않아도 벗어나는 것을 훼방 놓지는 않는다는 의지를 품고 있었다. 억지로 찍어 누르려면 그럴 수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수렁에서 벗어난 다른 무리의 대표를 싸워서 이기고 그 살과 피를 취하고 싶다는 본능은 투란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과연 그렇게 할 경우에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샌드 리저드의 형상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저 등골에 유난히 돋보이는 묘한 지느러미를 지닌 놈처럼 될 것인가?
저 독특한 녀석은 수컷으로 보이니 왕이라고 해야 하는가 등등…….
―상당히 쓸데없는 탐구심이로군.
드라고니아가 투덜거렸다.
투란은 버둥거리는 무리를 보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열심히 달려오는 사이에 시간이 흘렀고, 해가 돋아나 새파란 하늘을 밝혀 주고 있었다. 그리고 밤이나 낮이나 변함없는 사막의 풍경은 환영이 사라지든 말든 아무 상관 없이 그대로인 채.
‘생각해 보니, 대체 뭔 생각이었나 모르겠네.’
―대체 뭔 말이냐?
‘어? 아…… 그 빛의 정령…… 아크휠이 보여 줬던 환영 말이야. 멀쩡한 사막이라도 방향 잡기 힘든데 그걸 굳이 환영으로 감췄나 싶어서. 다른 환영이었다면…… 모래를 물로 꾸미거나 했으면, 그냥 녹원처럼만 꾸며 놨어도 치명적인 거잖아?’
―그랬다면 이 사막은 일찌감치 죽음만 가득한 곳이 되었겠지. 삶의 고통이나 절망 따위는 전혀 없이, 아주 고요한 죽음만 남겨진 영역이 되어 있었을 거다. 그런 것은…….
‘애써 사막을 만든 목적에서 벗어난다? 고통스럽게 살라는 때문이라고?’
―그래, 원래 드래곤의 저주가 그렇지.
‘흐흠…… 아, 저거 이제 다 나온 모양이네.’
투란이 대견하다는 듯이 말하면서 느릿하게 일어섰다.
끝내 중심이었던 우두머리, 등골에 지느러미가 돋아난 녀석이 선두에 서서 모래 구덩이의 가장자리에 도달했다. 그 꼬리를 잡고 다른 녀석들이 줄사다리 노릇을 하니 무리는 모래 수렁 속에서 순식간에 벗어나고 있었다. 심지어 수렁 아래에 쓸려 내려갔던 몇몇도 수렁 위를 꿈틀거리는 무리의 줄사다리를 향해 다시 튀어나와 벗어나는 중이기도 했다.
그런 광경을 모래를 툭툭 털고 바라보는 투란의 태도에 드라고니아가 어이없다는 듯,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묻는다.
―아까부터 궁금한데, 대체 저 꼴이 어디가 그리 대단해서 감동하는 거냐?
‘응? 그야…… 몬스터면서 서로 밀어내고 잡아먹지 않으면서 협력하잖아? 딱히 둥지 우두머리한테 조종당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뭐랄까, 사람이 서로 돕는 모습이랑 닮았달까?’
투란은 히죽거리면서 둘러대듯이 대답했다.
곧바로 이죽거리는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좋은 감정을 느꼈으니, 몰살할 보람이 있는 거로군.
‘내가 무슨 악마냐?’
툴툴거리면서도 투란의 걸음은 가볍게 수렁의 외곽을 따라 디디고 있었다. 막 저편에서 수렁 밖으로 벗어난 녀석들에게 축하해 주러 다가가는 사람처럼.
찌리리릿! 카아아앗!
모래투성이 지느러미가 바르르 떨고 활짝 연 입 속에서 괴성이 흘러나왔다.
수렁에서 벗어난 무리를 이끄는 샌드 리저드 우두머리가 투란의 접근에 대해 경고하는 외침이었다.
막 수렁에서 벗어난 샌드 리저드 무리는 곧바로 더욱 넓게 퍼지면서, 수렁과 거리를 두면서 투란을 마주 보며 진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무질서한 본능과는 거리가 먼 훈련받은 군단병이 보일 듯한 광경이었다.
“역시 몬스터답지 않아.”
소리 내 중얼거리면서 투란은 두 손을 활짝 펼쳤다가 꽉 쥐었다. 손목에서 모래 줄기가 뻗어 나가면서 손아귀에 찰싹 감기듯이 잡혔다. 단숨에 모래로 이뤄진 두 자루 검을 쥔 모습이었다.
저편에서 진형을 갖추는 샌드 리저드도 마찬가지였다.
방패와 검, 창의 형상이 두 발로 선 샌드 리저드의 손아귀에 착실하게 쥐어져 있었다. 단순히 겉멋으로 진형을 갖춘 것이 아니라고 과시하듯.
투란은 계속 걸어가면서 목청을 가다듬었다.
인간의 목과는 다른 샌드 리저드의 목이 형성되었고, 샌드 리저드 특유의 외침이 투란의 입에서 터져 나갔다. 방금 전까지 사람의 목소리를 내던 입은 이미 사라졌고 볼까지 샌드 리저드의 형상이 된 다음이었다.
저편에서 진형을 꾸미던 샌드 리저드 무리에서 혼란이 일어났다.
―흐흠? 정말 희한하긴 희한하군. 마치…… 인간의 군단병을 보는 것 같잖아?
드라고니아가 그 광경에 어이없고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그렇지?’
투란은 기대했다는 듯이 대꾸했다.
샌드 리저드 무리는 다가오며 도전의 포효를 터뜨린 투란을 놓고 의견이 갈라진 모습을 보였다.
도전을 받아들일 것이냐, 무리 전체가 맞설 것이냐 하고.
혼란스러운 모습은 보는 입장에서 당혹스러웠지만, 결과는 금방 나왔다.
우두머리가 다시 머리의 볏부터 꼬리까지 이어진 지느러미를 울리면서 포효했고, 순식간에 무리가 진형을 바꾸고 있었다.
―일대일로 싸우자는 거지?
그 진형을 보며 드라고니아가 한층 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좌우로 길게 늘어선 다음, 중앙에 한 마리의 샌드 리저드가 홀로 버티고 선 채 무장을 꾸미고 있었고 나머지는 방패와 검을 늘어뜨린 채로 구경하는 풍경을 꾸미고 있었으니…….
‘맞아, 왜인지 모르겠지만 샌드 리저드의 본능이 저래.’
자신이 파악한 바가 맞다는 것을 확인한 투란이 즐거운 듯이 말했다.
―그래서 샌드 리저드의 형태로만 싸우겠다고? 이길 수 있기는 하냐? 저 우두머리가 직접 나섰는데?
비꼬는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물었다.
홀로 선 대전자가 우두머리란 것을 짚는 말에 투란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좀 예상 밖이기는 한데…… 일단 싸워서 이겨 보자고. 투지가 끓어오르는 중이니까.’
샌드 리저드의 본능이 투란을 충동질하고 있었다.
우두머리를 상대할 기회를 잡는 것이 쉽지 않다는 듯,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더욱 강렬하게 모래 가득한 피와 살을 원하고 있었다.
―아니, 그건 좀…….
드라고니아가 그 충동을 알아차리고 한숨을 쉬듯 웅얼거렸다.
하지만 그 순간에 투란은 걸음을 뜀박질로 바꿨고, 내달리는 화살처럼 두 손으로 창을 들고 내미는 우두머리를 향해 돌격했다.
모래 창과 모래 검이 격돌했다.
퍼석!
둘이 동시에 부서졌다.
사아앗!
새로운 검과 창이 순식간에 솟아났다.
모래의 회오리를 감은 듯한 투란과 우두머리가 다시 격돌했다.
퍼억, 퍼석!
두어 번 부딪혔다 싶은 순간, 다시 창과 검이 부서지고 흩어졌다.
캬아아아, 캬아하앗!
샌드 리저드의 무리가 합창하는 듯한 괴성을 울려 냈다.
분위기를 돋우려는 듯한 그 괴성에 호응하듯이 우두머리가 네발 도마뱀처럼 엎드리며 바닥을 후려쳤다.
둔한 울림과 함께 모래 속에서 여러 자루의 창이 치솟으며 투란을 찔러 왔다.
사아앗.
투란의 발이 모래를 휘젓듯이 돌려찼고, 여러 자루의 검이 창대를 후려치고 함께 뭉개져 버렸다.
찌리리릿!
볏을 울리고 지느러미를 떨며 우두머리가 다시 일어섰다.
이번에는 창이 아닌 커다란 양날 도끼 두 자루를 두 손에 쥔 모습이었다.
우두머리는 성큼성큼 투란을 향해 다가왔다.
투란도 두 자루 검을 쥐고 성큼 우두머리를 향해 다가갔다.
도끼와 검이 서로를 향해 난폭하게 휘둘러졌다.
퍼석, 푸스슥.
검이 부서졌고, 도끼는 망가졌다.
―결집력이…….
드라고니아가 상황을 파악하고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투란은 그 말을 듣지 않고 발을 움직였고, 그 움직임에 따라 회오리처럼 모래가 다리를 휘감으며 치솟았다. 다리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바로 붙어 온 손목으로 모래 회오리가 엮여 들고 곧바로 손목을 감고 손으로 뻗어 가며 새로운 검의 형태를 자아냈다.
퍼억! 푸스슥.
검이 요란하게 부서졌고 망가진 도끼가 조금 더 망가졌다.
파삭, 푸스슥.
새로운 검이 다시 으깨졌고 양날 도끼가 외날 도끼처럼 변했다.
이 상황이 명확하게 알려 주는 바는 우두머리가 모래로 구현한 도끼의 결집력이 투란이 모래를 다뤄 만들어 내는 검보다 훨씬 강하다는 점이었다. 한편으로는 우두머리가 다시 도끼의 형태를 손보는 것보다 투란이 모래로 새 검을 만들어 내는 쪽이 훨씬 빠르다는 점 또한 명확했다.
이 차이는 투란이 삼킨 샌드 리저드와 이 무리의 우두머리가 몬스터로서 지닌 기량의 결과였다.
거기에 투란은 한 가지를 더하기로 했다.
‘테라트.’
사사삭.
새로운 검이 더욱 빠르게, 더욱 매끄럽게 투란이 손에 쥐어졌다.
콰악, 푹.
검이 도끼에 꽂혔다.
외날이 된 도끼에 새로운 검이 파고든 채로 멈췄다.
투란과 우두머리가 서로를 노려봤다.
우두머리의 눈 사이, 이마 언저리에 주름이 잡혔다.
캬앗, 캬캬칵!
성난 울음이 우두머리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말은 아니었지만 투란은 그 의미를 왠지 알 듯했다.
“반칙은 무슨……!”
절로 대꾸하다가 자기 목소리에 흠칫하면서 멈추고 나니, 웃음이 투란의 입가에 걸리고 말았다. 그리고 멈춘 말이 더 큰 외침이 되어 이어진다.
“너도 딴 놈들 힘을 끌어쓰고 있잖아!”
우두머리를 향한 샌드 리저드 무리의 합창 같은 괴성, 그 포효가 우두머리의 능력을 강화하고 있었던 것이다.